<59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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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에게 투항했던 원소군 병력이 가세하여 위군(魏郡)으로 집결했다.
그리고 조조군의 소집령에 응한 유비군이 군세들을 이끌고 평원군(平原郡)에 당도하였다.
전국(戰局)을 거머쥐겠다.
위나라의 군세들을 포함하여 중원 전역에 주둔하고 있던 병력까지 모두 나섰다.
도합 20만.
사상 최대 규모의 정벌군이 편성되었다.
대장군(大將軍) 이성휘.
군웅할거의 영웅들을 모두 매장했던 이성휘가 천하통일을 위한 정벌군을 이끌었다.
“20만…. 예상을 아득하게 벗어난 규모네요.”
치열한 난세가 시작된 이후,
단 한 번도 20만의 병력들이 동원된 적은 없었다.
수많은 세력들을 멸망시키고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 일존(一尊)이기에 가능했다. 중원을 정복하고 서량과 하북까지 정벌한 조조군은 총력을 쏟아내며 20만의 군세들을 일으켰다.
“백성들은 정벌군이 40만에 이른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습니까.”
호왈(號曰) 40만.
남방을 쓸어버릴 40만 대군이 집결했다.
강철의 파도들이 넘실거렸다.
정벌군이 집결하는 웅장한 광경을 목격했던 백성들은 허풍을 담아 40만을 입에 담았다.
“초유의 병력이니까요. 하북과 중원의 백성들이 경악하는 것도 당연해요.”
탐스러운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쓴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조조군이 천하통일에 도전한다.
만약 건곤일척의 결전에서 아군이 승리했다면 군세들을 지휘하는 인물은 본인이 되었으리라.
이미 흘러간 일이다.
그럼에도 미련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맹덕의 자리에 설 수 있었을까….
슬픔에 묻어나는 눈빛으로 이성휘를 하염없이 응시하던 원소는 미련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간직해온 야망을 눈앞의 사내에게 맡겼다.
“저를 대신해서… 성휘가 이뤄주세요. 난세를 평정하는 영웅이 되겠다는 꿈을,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겠다는 야망을 성휘에게 맡길게요.”
포기했던 꿈을,
적수에게 패배하여 무너졌던 야망을,
연모하는 사내에게 맡겼다.
부디 당신이 나의 오랜 꿈과 야망을 이뤄주기를-.
“성휘라면 믿을 수 있어요.”
새하얀 동경심을 담아 고백했다.
그에 이성휘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한 몸이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예를 취했다.
받들겠습니다.
당신의 간절한 꿈과 야망을.
이성휘는 세력의 멸망으로 몰락한 군주로부터 간절한 꿈과 야망을 양도받았다. 기필코 약속을 지키겠다며 우수에 찬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여인에게 다짐했다.
“고마워요.”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면서 활짝 웃었다.
햇볕처럼 찬란한 미소였다.
드디어 원소는 무거운 미련을 내려놓게 되었다.
“승전보를 기다릴게요. 나의 영웅.”
원소가 수줍은 미소를 흘리면서 이성휘에게 기습적인 입맞춤을 했다.
두 팔을 뻗었다.
사내의 목덜미를 안아들면서 입술을 겹쳤다.
부디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기를 바라면서 영웅에게 연모하는 마음을 전달했다. 사랑과 함께 존경심을 입술에 담아 사내의 입술을 빼앗았다.
-무사히 돌아와요.
간절한 염원이 입술의 따스함에서 느껴졌다.
* * *
수많은 장수들이 정벌군에 합류했다.
장합. 고람.
원소군의 항장들이 투입되었다.
유비. 관우. 장비.
중원을 제패했던 도원(桃園) 세 자매도 가세했다.
뒤이어 위나라의 부름에 응답한 영웅호걸들이 집결하면서 용맹무쌍을 떨쳤다. 과연 20만 대군이 동원된 정벌군다운 웅장한 포진이었다.
“현덕 님.”
“자룡, 당신도 참전했군요!”
회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걸이 목도리를 추스르면서 유비에게 다가왔다.
유격장군(遊擊將軍) 조운.
백마기병을 통솔했던 여장부가 대장군부의 객장 신분으로 참전했다.
정벌군에 참여해달라는 주군의 간절한 부탁을 받들고자 무기를 거머쥐었다. 맹금처럼 날렵한 눈빛을 번뜩이면서 ‘상산의 조자룡’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대장군부 직속의 기병대장으로 정벌군에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대장군부의 친위기병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서량에서 수많은 공적들을 세웠다.
공적을 인정받아 단숨에 기병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서량의 금마초를 대적했던 조운은 맹장들의 반열에 올라선 인물이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도 그녀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규모가 경이로울 따름입니다.”
“천하의 호걸들이 모두 집결한 셈이니까.”
군진을 둘러보던 관우와 장비가 말했다.
중원과 하북을 대표하는 용장들이 모두 참전했다.
실로 어마어마한 전력이다.
여포와 장료, 하후돈이 정벌군의 편제에서 돌연 제외되는 변수가 발생했음에도 그를 뒤덮을 정도였다.
“헌데 현덕 님께선….”
“네?”
“아뇨, 아닙니다.”
“자룡과 다시 싸울 수 있게 되어 기뻐요.”
조조는 역적이다.
분명 머지않아 한나라를 멸망시킬 터.
어째서 현덕 님께선 조조를 돕고 계신 걸까.
본인은 오로지 주군의 명령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무장이기에 상관없지만… 유비는 한나라의 중흥을 위해 활약해온 군주가 아니었던가.
‘분명 주군께선 조조를 계속 지지하겠지. 만약 현덕 님께서 한나라의 중흥을 위해 싸우신다면… 언젠가는 적이 될 수밖에 없어.’
세력을 상실한 원소가 조조군에 귀의하면서 조운은 완전히 조조군 소속으로 편입되었다.
대장군부의 기병대장.
직함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성휘의 심복이나 다름없는 신분이 되었다.
혹시라도 오랫동안 존경해온 인연이 적대관계로 돌아설까 우려를 품었다. 유비와는 공손찬군에 몸을 담았던 시절부터 막역한 관계였기에 망설임이 컸다.
“안심하세요,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네?”
그런 조운의 의중을 간파한 듯,
새하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미녀는 풋풋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조운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유비를 바라보았다.
“출진하라!”
“진군을 알리는 북을 울려라! 출정이다!!”
선봉군에 배치된 장수들이 쩌렁쩌렁한 고함을 내지르면서 진군을 알렸다.
출진이다.
모든 장졸들은 함성을 높여라.
북과 나발이 웅장하게 울리면서 20만에 달하는 대군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대규모의 군세들이 천천히 움직이면서 지축을 흔들었다.
“자룡, 그럼 전장에서 보죠.”
“예!”
현덕 님과 함께 싸우게 되었다.
조운은 당찬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병장기를 거머쥐었다.
* * *
예상이 적중했다.
조조군이 움직였다.
백마지맹을 깨부순 역적이 기어코 천하통일을 천명하면서 군세들을 동원한 것이다.
무려 20만 대군이 정벌에 투입되었다.
세작으로부터 급보를 들은 유표군의 장수들은 아연실색하는 반응을 보였다. 수많은 군벌들을 모두 매장했던 이성휘가 직접 나섰기 때문이었다.
“천하제일검…!”
“결국 놈이 형주를 노린단 말인가!”
원소군마저 단숨에 멸망시킨 공포의 군세들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이제 출진했을 뿐이다.
형주에 당도하려면 한 달은 족히 걸릴 터였다.
조조군이 위군에서 출진했다는 소식이 양양성에 도착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유표군 장수들은 눈앞에 굶주린 맹수라도 나타난 것처럼 몹시 두려워했다.
그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유표를 보필하여 형주를 통일했던 장수들은 틀림없는 정예였다. 하지만 유표군은 안타깝게도 매번 조조군에게 완패한 안타까운 전적들이 존재했다.
“무려 20만 대군입니다! 하북에서 흡수한 원소군의 병력들까지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성휘, 그놈이 기어코…!”
양양채씨 가문의 장수였던 채중과 채화는 두려움을 내비치면서도 항전을 주장했다.
형주는 명망 높은 호족들의 땅이다.
한나라의 종친도 아니면서 왕위를 강압적으로 찬탈한 역적 년이 감히 도모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오랫동안 형주를 호령했던 양양채씨 가문답게 공포에 떨면서도 전의를 불태웠다. 결코 조조군은 장강을 넘지 못할 것이라며 확신하는 듯했다.
“어린 황제를 겁박하여 왕위를 찬탈한 환관 년에게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
“모두 창검을 들라! 역적들을 무찌르자!”
백마지맹을 어기고 왕위를 찬탈한 조조.
황실과 조정을 뒤엎어버리고 어린 황제로부터 황위를 빼앗으려 했던 유표.
역적과 역적의 싸움이다.
천하의 호사가들은 역적들의 전쟁에 관심을 기울였다.
유표군은 조조를 왕망과 동탁에게 비견될 역적이라고 주장했지만 유표도 사실 동종이나 다름없었다. 그도 천하의 권력을 거머쥐려는 야심가였으니까.
“실패한 역적은 더러운 오명으로 남게 되지만… 성공한 역적은 시대의 주역으로서 위명을 떨치리라.”
천하를 도모하기 위해선 역적이 될 수밖에 없다.
하늘을 뒤집어야 한다.
그것이 천하의 권력을 취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유표는 조조군을 저지하고자 휘하의 제장들을 동원하여 방어선을 펼쳤다. 언젠가 중원의 군세들이 형주를 도모하리라 예측했기에 신속하게 대응했다.
“이것은 하늘께서 내려준 기회다. 백마지맹을 위반한 역적을 토벌하여 한나라의 기치를 세우겠다.”
한나라 황실의 종친으로서 백마지맹을 위반한 역적을 격퇴한다면 모든 대의명분이 집중될 터.
역적 왕망을 토벌한 광무제(光武帝)가 그러했다.
절체절명의 위기가 날아들었다.
그럼에도 유표는 천재일우의 기회로 여겼다.
역적의 무리들을 토벌하여 한나라 중흥의 대의명분을 짊어지겠다. 20만 대군이 흙먼지를 나부끼면서 남하를 개시했음에도 유표는 완강하게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