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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589화 (589/616)

<58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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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다.

실로 파렴치한 곤경이 처했음을.

하지만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한 이성휘는 망설임 없이 사마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대로 환관이 될 순 없다.

십상시(十常侍)의 일원이 되는 불명예만큼은 꼭 막아야 했다.

“왜, 왜 본좌한테 해답을 물음?! 대장군의 파렴치한 사생활에 본좌를 동아줄처럼 엮지 마셈!”

흑발을 늘어뜨린 귀여운 소녀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어깨를 떨었다.

역병이다…!

빠르게 감염시키는 역병이 분명했다.

사마의는 아연실색하며 문제에 관여하는 것을 꺼려했다. 성질머리 더럽기로 유명한 조조라면 분명히 일에 관여한 사람까지도 처형장으로 보낼 테니까.

“중달. 내가 가장 총애하는 참모가 바로 너다.”

“지, 진짜?!”

대장군이 가장 총애하는 참모라는 영예로운 찬사를 듣게 된 사마의가 반색하며 물었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쑥스러움에 찬 함박웃음을 지었다.

“헤헤, 헤헤헤…! 당연한 말임! 응당 본좌야말로 천하제일의 참모가 아니겠음? 본좌의 동기들은 한낱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함.”

헤벌쭉해진 입가가 귓불에 닿을 것만 같았다.

그리도 좋은 걸까.

히죽히죽 웃는 천진난만한 모습이 귀엽다.

단번에 이성휘의 사탕발림에 현혹된 사마의는 거만하게 콧대를 높였다.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분기탱천한 사마의는 ‘대장군이 가장 총애하는 참모’로서 즉시 해답을 내놓았다.

“그만큼 공을 세우면 되는 거 아니겠음? 분명 속물인 조조는 덥석 넘어갈 거임.”

“…….”

쓰읍.

그게 그렇게 되나.

사마의의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단순하고 터무니없는 대답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절묘한 방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말하는 사마의의 당당한 목소리 때문일까. 실수를 상쇄할 만한 어마어마한 공헌을 세우라는 사마의의 답변에 관심이 솔깃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공을 세우면 되지?”

“큼큼….”

“지혜롭고 총명한 중달 공, 부디 이 어리석은 대장군에게 고견을 알려줬으면 한다.”

“대장군이 애원하니까 특별히 알려주는 거임!”

이성휘의 간곡한 탄원에 어깨가 으쓱해진 사마의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가르침을 내려주었다.

“지금 대장군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겠음?”

“…….”

아내의 발치에 엎드려 싹싹 빌기?

아니,

싹싹 비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목이 달아날 테니까.

“대장군이 남방을 정벌하는 거임!”

“남방?”

남방(南方).

장강 이남에 위치한 지역들을 일컫는다.

익주(益州). 형주(荊州). 양주(揚州). 교주(交州).

한나라 13주의 영토들 중에 9개 주를 정벌한 조조군은 남방 4개 주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형주를 제외한 남방의 지역들은 척박한 황무지였지만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했다. 그렇기에 사마의는 남방 정벌을 대안으로 꺼내들었다.

“남방을 정벌한다면 제아무리 난봉꾼이라도 관용을 베풀어주지 않겠음? 정상참작이라는 말도 있잖음!”

“…….”

알쏭달쏭한 대답이다.

과연 문제가 그렇게 풀릴까?

사마의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달의 대안이 유치찬란하게 들리지만… 유표군은 어차피 반드시 없애야 할 숙적이다. 익주가 혼란스러운 작금을 이용하여 형주를 빠르게 끝내야 된다.’

원소군을 멸망시켰다.

유언군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남은 적수는 이제 유표군 뿐이었다.

남양군(南陽郡)의 패권을 두고 전쟁까지 치렀던 적대관계가 아니던가. 게다가 유표는 황실과 조정이 선포한 국적(國賊)이었기에 반드시 토벌해야 했다.

“일리가 있군.”

이성휘가 탁자에 걸터앉으며 중얼거렸다.

과연 사마의,

와룡의 호적수다운 신묘함이었다.

국적을 토벌하겠다는 명분으로 남방 정벌을 일으킨다면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터. 조조 또한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일 것이었다.

“하지만 과연 괜찮을까. 아무리 절체절명의 위험을 짊어진 상황이라지만… 아만의 노여움을 피하고자 정벌을 핑계로 도망치다니. 나중에 발각되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텐데.”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쉽지 않은 결정이다.

망설임이 느껴지는 표정을 지으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일단 어떻게든 피하는 게 좋지 않겠음? 시간을 끌수록 들킬 확률이 높아지잖음. 계속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항변해볼 겨를도 없이 끝장날 거임.”

“…….”

시일이 흐를수록 배가 점점 불러올 터.

언젠가 발각될 터.

조조에게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던 이성휘는 사마의의 대답을 듣자마자 남방 정벌을 결정했다.

* * *

주위상계(走爲上計).

상황이 좋지 못하면 패주하라.

병법 36계에 등장하는 패전계(敗戰計)의 작전이다.

어차피 발각되면 거세되는 목숨이기에 우선 정벌을 명분으로 정상참작의 방법을 노리기로 했다. 실로 비겁하고 치졸한 방법이었지만 결국 어쩔 수 없었다.

“후우….”

무거운 마음을 짊어지고서 발걸음을 내딛었다.

펄럭이는 위왕(魏王)의 깃발.

깃발을 응시하는 이성휘의 시선에서 일말의 두려움이 느껴졌다.

두렵다.

후환이 너무도 어려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좆물… 아니, 물인 것을.

“지금은 업무시간일 텐데…. 성휘, 무슨 일인가?”

참모들과 업무에 집중하던 조조가 집무실을 방문한 남편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이른 오후였다.

업무가 끝나려면 한참 멀었을 텐데.

급히 의논해야 할 일이라도 있는 걸까.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은 눈짓으로 참모들을 내보낸 뒤에 이성휘를 맞이했다. 그에 이성휘는 경직된 표정을 지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남방 정벌을 계획하려 합니다.”

고민을 거듭하던 이성휘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에 조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형주에 이어 익주까지 정벌하겠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원소군을 멸망시키면서 하북의 전력을 흡수한 조조군은 나머지 세력들을 모두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었다.

충분히 가능하다.

이성휘가 나선다면 가능하고도 남았다.

군웅할거를 이끌었던 군벌들을 모두 멸망시켰던 천하제일검이 아닌가. 유표군이 결사항전을 벌이더라도 결국 1년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었다.

“성휘가 무리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일세. 유표군에 이어 유언의 잔당들까지 처리하겠다니….”

“혼란을 진정시킬 시간을 줘선 안 됩니다. 모두 한꺼번에 진멸해야 합니다.”

유언군의 잔당들이 새로운 후계자를 중심으로 세력을 다시 쌓는다면 귀찮아질 우려가 컸다.

또한 유언군이 중흥에 성공한다면 유표군은 전령을 파견하여 군사동맹을 맺으려 할 것이었다.

익주와 형주가 합심하여 정벌군에 대항한다면 천하통일은 난항으로 접어들 터. 그렇기에 이성휘는 속전속결로 두 세력들을 끝장내려 했다.

“위나라의 힘을 만천하에 증명할 기회입니다. 정벌에 성공한다면 한나라의 수명을 일찍 앞당길 수 있을 겁니다.”

천하통일은 모든 백성들의 염원이다.

또한,

한나라를 집어삼킬 훌륭한 대의명분이기도 했다.

새로운 국가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천하통일에 집중해야 한다. 절대적인 전력을 자랑하는 세력임을 만천하에 증명한다면 한나라 부흥군의 기세는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되리라.

“성휘의 뜻은 잘 알겠네. 윤허하도록 하지.”

이성휘의 의지가 강철처럼 확고함을 깨달은 조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정벌을 윤허했다.

정벌군의 준비가 만만치 않겠지만 참모들을 총동원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즉시 조조는 참모들을 집무실에 소집하려 했다.

하지만,

이윽고 멈추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을 응시했다.

“항상 애써주어 고맙네. 성휘는 천하의 바람둥이지만 내게는 어디에 자랑해도 부끄럽지 않은 나의 사랑스러운 남편일세.”

“…….”

꽂힌다.

비수가 되어 양심에 꽂혔다.

얼굴을 붉히면서 애정을 속삭이는 조조의 일편단심 사랑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릴 정도로 좌불안석 상태였다.

“나와 아이들을 위해… 연이어 애써주어 정말 고맙네.”

“그것이 가장의 본분이 아니겠습니까.”

뺨을 바르르 떨면서 가식을 떨었다.

잠시 철면피가 되었다.

귀신처럼 속내를 꿰뚫어보는 아내를 속이기 위해서였다.

“자, 잠시… 씻고 오겠네. 잠시 여기서 기다리게.”

“예?”

어째서 목욕을….

이성휘가 몸을 떨면서 불안감을 호소했다.

붉게 상기된 뺨.

촉촉하게 젖어든 붉은 눈동자.

초야를 맞이했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오늘 밤에 앙이와 비아에게 동생을 만들어주는 게 좋지 않겠나. 형주와 익주를 연이어 정벌하려면 시일이 제법 오래 걸릴 테니… 성휘의 자취를 내 몸에 새기고 떠나주게.”

정벌을 허락받고자 집무실을 방문했던 이성휘는 갑작스럽게 의무방어전을 떠안게 되었다.

당혹스러워하는 남편의 모습에 조조는 배시시 웃음을 터트렸다.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분골쇄신하며 노력하는 남편의 모습에 야릇한 매력을 느꼈다. 뇌쇄적인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보면서 겉옷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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