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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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성휘는 절체절명의 위험에 처한 상태였다.
하북을 정벌했다.
무사히 위나라가 건국되었다.
한나라의 대장군이며 위나라의 대장군이기로 한 최고의 명예를 누렸음에도 이성휘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다.
무엇이 천하제일검을 그토록 긴장하게 만드는 것일까. 사랑하는 아내와 재회한 이후부터 걱정이 늘어났다.
“주인님, 나 임신했어!”
“후후…. 저도 주인님의 아이를 가졌답니다♡”
2개월하고도 보름.
조조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이성휘는 하북을 통치하면서 애인들과 농밀한 관계를 맺었다.
아내가 허도로 돌아갔다.
아름다운 미녀들과 업성에서 함께 일했다.
무시무시한 질투를 자랑하는 아내께서 잠시 이별하게 되면서 긴장이 풀린 걸까. 결코 감당하지 못할 후환들을 쌓고 말았다.
‘젠장, 밖에다가 쌌어야 했는데….’
수많은 여인들을 취하면서 부쩍 뻔뻔해진 이성휘는 질내사정을 즐긴 자신을 질책했다. 차라리 밖에 쌌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한탄하기까지 했다.
천하제일의 바람둥이,
그 이명에 걸맞은 인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고맙다. 축하한다.”
이성휘가 웃으면서 여포와 장료를 응시했다.
시녀들이 동시에 임신.
아내의 노여움이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뻤다.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여포와 장료의 모습에 이성휘는 옅은 미소를 흘렸다. 이번에야말로 이혼을 통보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애서 억누르면서.
“이걸로 진짜… 주인님의 아내가 된 거네? 뭔가 부끄러우면서 기뻐. 쑥스럽기도 하고.”
여포가 얼굴을 붉히면서 중얼거렸다.
새하얀 뺨을 긁었다.
애엄마가 됐다는 사실이 여전히 부끄러운 듯했다.
전장에서 혈기를 불태우면서 활약했던 여걸이 아이를 가진 엄마가 되었다. 벌써 아이를 낳은 것처럼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앞으로도 많이 아껴주셔야 해요? 주인님의 아이를 건강하게 낳을 테니까….”
장료도 배시시 웃으면서 이성휘에게 속삭였다.
기쁘다.
어찌 기쁘지 않을까.
사랑하는 주인님의 아이를 가졌는데.
지금까지 항상 조조와 초선을 부러워했다.
담담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아들을 둔 그녀들을 동경해왔다.
“귀여운 딸일까요, 아니면 아들일까요?”
“글쎄.”
“저는 아들이었으면 좋겠네요. 특히 주인님을 빼닮은 아들이요!”
“나는 딸도 괜찮을… 아, 아니다.”
시녀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 일쑤였던 말괄량이 공주님을 떠올린 이성휘는 급히 대답을 바꿨다.
안 돼.
딸은 안 돼….
물론 사랑스럽고 귀엽지만, 둘째 딸을 가지는 것은 잠시 심사숙고를 해볼 문제였다.
‘아만에게 이실직고하면 조금은 참작해주려나…. 지금까지 줄곧 그래왔으니까 어쩌면 웃으면서 넘어가줄지도 모르지.’
최대한 행복회로를 돌렸다.
봐줄지도 몰라.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니까.
대뇌부터 척추에 이르기까지 뻔뻔함으로 가득 차버리게 된 걸까. 얼토당토않은 말을 중얼거리면서 질투심 많은 아내가 용서해줄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했다.
“나… 서방님의 아이를 가진 것 같아.”
여포와 장료를 보낸 뒤,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으로부터 통보를 받게 되었다.
아이를 가진 것 같다.
계속 달거리가 멈췄으니 분명했다.
대장군을 보좌하며 하북의 군권을 담당했던 거기장군(車騎將軍) 하후돈도 아이를 가졌다. 아마도 시녀들과 비슷한 기간에 임신을 한 듯했다.
“정말입니까?”
“의원한테 진맥을 받았으니까 확실할 거야.”
“정말 기쁜 소식입니다, 원양.”
“응….”
실로 대단한 업적이다.
혈혈단신으로 전장을 휩쓸었던 시녀들에 이어 일당백을 자랑하는 패국의 여걸까지 아이를 가졌다.
한꺼번에 세 미녀들을 임신시켰다.
천하제일검의 절륜함은 과연 경이로울 정도였다.
만천하를 요동치게 만들 정도의 무용담이었지만 당사자는 두려움을 호소할 뿐이었다. 질투가 많은 아내께서 사실을 알게 된다면 결코 가만있지 않을 테니.
사마천처럼 궁형(宮刑)을 받게 되지 않을까.
많이 아프겠지.
마취도 없이 자르는데 아프지 않을 수가.
지금부터 역사서 편찬을 준비해야 하나?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한참을 고민했다.
“불편한 곳은 없으십니까?”
“응, 지금은 괜찮아. 나중에는 배가 커지겠지만.”
하후돈이 아랫배를 쓰다듬으면서 새하얀 뺨을 붉혔다. 아름다운 얼굴이 쑥스러움으로 달아올랐다.
풋풋한 귀여움이 느껴졌다.
누가 그녀를 패국의 여걸이라 생각할까.
선두에서 과감하게 적들을 무찔렀던 패국의 여걸이 사랑스러운 새색시처럼 수줍게 웃었다. 두 눈에서 애틋한 감정이 느껴졌다.
“패국조씨 가문의 여식들과 혼인하더니… 패국하후씨 가문의 여식까지 임신시키다니, 과연 이 하후원양의 서방님다운 담대한 배포야.”
담대함을 넘어 무모한 수준이 아닐까.
연이은 숙청으로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했던 철혈의 지배자를 아내로 두고 있음에도 계속 바람을 피우다니 말이다.
아니,
명확히 따지면 바람은 아니다.
하후돈과는 이미 혼례를 치른 관계가 아닌가. 그리고 여포와 장료도 이성휘의 첩이었다. 아내를 속이고 불륜을 저지른 것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대장군, 저… 아, 아이를… 가진 것 같아요….”
“…….”
하후돈을 보낸 뒤,
이성휘는 대장군부의 집무실을 방문한 순욱에게 포탄발언을 듣게 되었다.
그대로 얼어붙었다.
엄동설한에 동사한 시체를 보는 듯했다.
“헤헤, 진짜 고모부가 되시겠네요. 고리타분한 영천순씨 가문의 일원이 되신 것을 축하해요.”
고모님을 뒤따라온 조카가 발랄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성휘를 응원했다.
집필을 허락받은 덕분일까.
아니면 주군을 고모부로 만들겠다는 웅대한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일까.
유독 순유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본인은 안타깝게 임신이 아니었지만 속전속결로 기정사실을 이뤄낸 고모님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무척 기쁩니다.”
“네에…”
상아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미녀는 가녀린 어깨를 움츠리면서 부끄러움에 떨었다.
다람쥐처럼 귀여운 모습이다.
꼭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숨통이 막힐 정도로 연쇄적인 두려움에 혼미해지는 순간에도 정신을 꽉 붙잡았다. 진심으로 임신을 기뻐하는 여인에게 꼴불견 같은 모습을 보일 순 없었으니까.
“…대장군.”
“예.”
“싸, 쌍둥이래요. 맥이 두 개가 잡힌다고….”
“…….”
눈앞이 아찔해졌다.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여포. 장료. 하후돈. 순욱.
농밀하게 정욕을 불태웠던 여인들이 한꺼번에 임신했다. 본처께서 사실을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궁형을 선고받게 되리라.
미리 자지와 작별인사를 나눠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한은 없겠지.
천하를 제패했던 여걸들의 순결을 취했으니까.
“…….”
대장군에서 환관으로 전직하게 될지도 모르는 초유의 사태에 놓였다.
이대로 십상시(十常侍)가 될 것인가.
어떻게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성휘는 위기를 알리는 경종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것을 느끼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일단… 중달한테 물어보자.’
가장 믿음직한 참모,
우선 사마의에게 해답을 묻기로 했다.
* * *
유언의 사남(四男), 유장이 죽었다.
벌집이 되어버린 마차.
수많은 화살들이 박힌 흉물을 보고서 직감했다.
무력을 동원한 공포정치로 익주를 제패했던 유언의 핏줄이 마침내 끊어졌다. 습격을 주도한 감녕은 부하들을 보내어 유장의 생사를 확인하게끔 했다.
“마, 마차에… 유장이 없습니다!”
“뭐? 무슨 개소리냐!”
부하들의 외침에 감녕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참혹하게 망가진 마차에 다가섰다.
같잖은 속임수였다.
텅 빈 내부가 꾀에 걸려들었음을 말해주었다.
유언군의 참모들에게 뻔히 넘어갔음을 깨달은 감녕은 이를 빠득 갈면서 물러섰다. 뒤이어 두 눈을 번뜩이면서 살의를 불태웠다.
“찢어죽일 놈들…! 기필코 성도를 불태워버리겠다!”
광한군(廣漢郡)을 출발한 유장이 결국 성도에 도착했을까. 분명 지금쯤이면 도착했을 터였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머지않아 유언군은 패망한다.
공포정치에 억눌렸던 호족들의 분노가 유언이 쌓아올린 탑을 무자비하게 무너트리리라.
“어르신, 피하셔야 합니다!”
감녕이 분노를 곱씹고 있었을 때,
성도를 정탐하고 돌아온 부하가 급보를 알렸다.
“도, 동주병이 움직였습니다!”
동주병(東州兵).
중원에서 유입된 장정들로 구성된 유언의 친위부대였다.
오로지 익주목의 명령만을 받드는 동주병은 일당백의 정예로 유명했다. 수많은 반란들을 진압했던 동주병의 전력은 감녕조차도 우그러지게 만들었다.
“결국 동주병이 그 핏덩이를 주군으로 인정했단 말이냐? 참으로 우습군, 장남도 아니고 넷째 아들을 지키겠답시고 천하의 동주병이 움직일 줄이야…!”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철군을 명령했다.
“하지만 조급함을 느낄 필요까진 없겠지. 늙은이가 한평생 쌓아올린 유산은 결국 잿더미가 될 테니.”
익주 전역에서 거병이 일어나고 있었다.
유언이 죽었다.
마침내 유언군의 통치가 막을 내렸다.
비참하게 사망했던 형들처럼 유장 또한 우유부단한 성정의 인물이었다. 부친의 뒤를 이어 세력을 계승하더라도 반란의 불길에 삼켜질 게 분명했다.
더 이상 익주에 미래는 없다.
당대의 효웅이 떠난 자리는 오로지 걷잡을 수 없는 혼란만이 존재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