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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587화 (587/616)

<58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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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도(許都)로 압송된 원소는 포로 신분으로 격하되어 패국조씨 가문에 연금되었다.

조조군의 정예병들이 엄중하게 저택을 호위하며 불상사를 대비했다. 주군의 엄명을 받은 정예병들은 밤낮으로 경계를 이어나갔다.

“오늘도 좋은 날씨네요.”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낮잠을 즐기는 고양이처럼 태평한 모습으로 대청마루에 앉았다.

따사로운 햇살.

뺨을 간질이는 시원한 바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평화였다.

과도한 업무를 부담하면서 정신과 육신을 혹사시키지 않았던가. 그녀에게 있어 한가로운 오후는 오랫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정적(靜寂)이었다.

“주군, 다과를 가져왔습니다.”

“이제 저는 주군이 아니라니까요….”

회색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시녀가 다과들이 잔뜩 쌓인 쟁반을 가져왔다.

조운.

전(前) 원소군 무장.

현(現) 조조군 객장. 대장군 이성휘의 시녀.

복잡하고 미묘한 신분들을 다채롭게 보유한 조운은 원소가 허도로 압송되자 호위를 자처했다. 수많은 위험들로부터 주군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였다.

“아닙니다. 제게 주군은 영원한 주군입니다. 끝까지 봉행하겠습니다.”

“후우…. 정말 외골수군요.”

조운은 원소군의 항장 출신이었음에도 주군을 향한 충성심을 관철했다.

강직한 충성심을 이어나가는 조운의 모습에 원소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조운의 모습에서 강직했던 부하들의 모습을 떠올린 것이리라.

“그런데… 그 복장은 뭔가요? 어울리긴 한데.”

“아앗!”

회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아름다운 미녀는 풋풋함이 느껴지는 시녀복을 입고 있었다.

귀여운 머리장식.

쇄골과 어깨가 드러난 상의.

새하얀 허벅지가 슬쩍 보이는 짧은 치마.

늘씬하고 육감적인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파격적인 시녀복이었다.

입가를 가린 목도리는 여전했지만 전체적으로 노출이 많은 복장이다. 원소는 조운을 응시하면서 만연한 미소를 지었다.

“대장군 이성휘의 시녀들이 입힌 것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서 저항했지만… 무식한 시녀들이 저를 강제로 제압하고서 이 음란한 복장을 입혔습니다!”

잘 익은 사과처럼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조운이 양손을 내저으면서 열심히 항변했다.

충분히 갈아입을 시간이 있었을 텐데….

이미 길들여진 걸까.

사나운 맹수였던 백마기병의 대장은 이성휘의 시녀들에 의해 길들여지고 말았다.

완전히 사육당한 셈이었다.

스스럼없이 시녀복을 착용할 정도로 조운은 대장군부의 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채 주군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무심코 보여준 것이다.

“흐응…. 성휘의 취향인가요.”

“그, 그렇습니다! 이성휘, 그 파렴치한 악당이 시녀들을 사주하여 강제로 입힌 겁니다!”

미약한 움직임에도 야릇하게 펄럭이는 짧은 치맛자락을 응시하면서 심사숙고에 빠졌다.

성휘,

대체 얼마나 난봉꾼인가요.

수많은 처첩들을 거느린 바람둥이임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였다니…. 아무리 여자들을 좋아한다지만 전장에서 붙잡은 항장까지 끌어들인단 말인가.

“그렇다면 저도 입어야 하는 걸까요….”

“주, 주군?!”

“성휘가 좋아한다면 어쩔 수 없죠.”

“안 됩니다! 어떻게 주군께서…! 제 눈에 흙이 들어와도 안 됩니다!”

조운은 결사반대를 외치면서 결코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될 영역에 발을 들이려는 주군을 막아섰다.

고결하고 우아한 주군마저 파렴치한 시녀복을 입게 된다면 마음이 꺾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조운은 절박한 표정을 지으면서 필사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다, 당장…! 당장 벗겠습니다!”

주군께서 더 이상 이 파렴치한 시녀복에 관심을 가지게 해선 안 된다!

조운은 정신줄을 놓아버렸는지 주군이 보는 앞에서 단추를 하나둘씩 풀기 시작했다. 단추가 하나씩 풀릴 때마다 풍만한 가슴이 점점 드러났다.

“또 무슨 엉뚱한 장난이야? 주방까지 꽥꽥 들릴 정도로 소리를 지르질 않나, 이제는 옷까지 벗네.”

갈색 머리카락을 탐스럽게 기른 여인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다가왔다.

또 새로운 시녀였다.

조운처럼 파렴치한 복장을 입고 있었다.

분명 성휘를 섬기는 새로운 시녀겠지.

야생마처럼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늠름한 미녀였다. 새로운 시녀의 아름다운 용모를 응시하던 원소는 이성휘의 성벽에 점점 의구심을 느꼈다.

“당신도 성휘의 시녀인가요?”

원소가 물었다.

그에 여인은 우물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엡…! 마, 마운록이라고… 합니다.”

거짓말이 서투른 강직한 성격이었는지 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시녀는 수상쩍은 반응을 보였다.

가명이다.

신분을 숨기기 위한 이름임이 분명했다.

정확히 짐작했음에도 원소는 눈앞의 여인을 배려하여 속아주기로 했다. 충직한 부하가 시녀복을 벗어던지려는 것을 막아준 은인이었으니까.

“흥, 마운록은 무슨…. 진명은 마초가 아니냐. 우리 주군에게 감히 거짓을 고하다니. 무례한 서량 촌년.”

“크아악! 정체를 숨겨야 한다고 말했잖아, 돌대가리 상산 촌년아!!”

조운이 팔짱을 끼며 콧방귀를 꼈다.

마운록(馬雲騄).

이성휘가 붙여준 새로운 이름이었다.

마초는 주인님께서 하사한 새로운 이름을 애지중지하며 아꼈다. 하지만 조운은 촌스럽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마초…. 서량…. 그렇다면 당신은 정서장군 마등의 여식이군요.”

“…….”

원소의 물음에 마초는 입을 꾹 다물었다.

뻔뻔스럽게 자신의 정체를 이실직고한 조운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운은 철면피로 보일 정도로 떳떳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주군에게 거짓을 고할 순 없다. 어설픈 거짓을 고한 네 잘못이지.”

조운은 요리와 가사에도 능통한 시녀였지만 독불장군 수준의 외골수적인 성격을 자랑했다.

때로는 여포보다 위험하다.

이성휘는 조운을 그렇게 평가한 적이 있었다.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여남원씨 가문의 이름을 걸고 비밀은 엄숙히 지킬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원소가 가슴에 손을 올리면서 엄숙하게 맹세했다.

그에 마초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체가 밝혀져선 안 된다.

분명 주인님께서 그리 말씀하셨다.

부하들을 모두 살려주고 살아갈 이유까지 내려주신 주인님의 엄명이다. 주인님의 엄명을 받든 마초는 항상 노심초사하며 정체를 숨겨왔다.

“자룡,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길러야죠. 충성심을 관철하는 것은 좋지만 배려 또한 우선이에요.”

마치 어린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였다.

주군이 아니라 보모가 아닐까.

경애하는 주군의 훈육에 조운은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와 동일한 처지군요. 앞으로 잘 지내봐요.”

“네엡.”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는 역적의 딸.

그대로 세력을 내어주고 물러난 패망의 군주.

기구하기 이를 때 없는 처지였다.

그렇기에 원소는 마초에게 손을 내밀었다.

* * *

익주 전역으로 반란의 불길이 확산되었다.

유언이 죽었다.

그의 공포정치가 마침내 끝났다.

유언군의 위압에 억눌렸던 익주의 호족들이 한꺼번에 봉기를 일으켰다. 유언의 무자비한 숙청으로 가족을 잃었던 호족들이 반역의 중심에 섰다.

“죽여라! 유언의 아들이다!”

“당장 네놈의 아비 곁으로 보내주마!!”

이윽고 반역의 불길은 유언의 핏줄에게 이어졌다.

삼남(三男) 유모.

성도를 떠나 파군(巴郡)으로 가던 도중에 붙잡혔다.

유언을 철천지원수로 여기던 호족들은 유모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죽어가던 부친을 외면한 채 속세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익주의 공자는 결국 온몸이 찢겨나간 채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저 마차에 유언의 아들이 타고 있다!”

유모가 잔인하게 살해되었을 때,

촉군승(蜀郡丞) 감녕이 군세들을 이끌고 유장을 호위하던 호위대를 급습했다.

유언의 넷째 아들이 있다.

놈을 절대로 성도로 보내선 안 된다.

성도의 관료였던 문객으로부터 유장이 다음 후계자로 임명되었음을 듣고서 곧장 행동에 나섰다. 감녕은 미리 매복하고 있던 병사들에게 공격을 명령했다.

“역도를 쳐라! 국적의 아들을 죽여라!”

유언은 국적(國賊)에 불과하다.

분명 조조군이 익주를 노릴 터.

유언의 자식들은 재앙을 일으킬 화근이 될 터였다.

감녕은 유언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부하였음에도 망설임 없이 배신했다. 칼자루를 뽑아든 감녕은 매서운 검술을 자랑하면서 유장을 호위하던 병사들을 쓰러트렸다.

“감녕, 이 더러운 놈!”

“주군께서 떠돌이였던 네놈을 받아주었거늘!”

유언군의 무관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감녕은 단기필마로 돌진하면서 호위대를 휩쓸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무관들이 쓰러지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크하하! 어서 유장을 내놓아라!!”

쌍검을 치켜든 사내가 고함을 내지르면서 무관들을 위협했다.

유언이 총애했던 맹장답게 수많은 장졸들이 감녕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뒤이어 감녕의 부하들이 현장에 난입하면서 사태는 더욱 급박해졌다.

“마차를 향해 화살을 쏴라!”

피를 뒤집어쓴 감녕이 소리쳤다.

유장을 죽여라.

놈은 틀림없이 마차에 타고 있을 터.

장대비처럼 매서운 화살세례가 일제히 쏟아지며 마차를 강타했다. 수많은 화살들이 꽂히면서 마차를 벌집으로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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