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화>
=============================
위왕(魏王)으로 즉위한 조조는 가장 먼저 이성휘를 위나라의 대장군으로 임명했다.
한나라의 대장군이었다.
또한 이제는 위나라의 대장군이 되었다.
위나라는 한나라를 통째로 집어삼키기 위한 포석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조조는 위나라 군부와 한나라 군부를 병합한 뒤에 이성휘에게 군권을 위임했다.
“파촉(巴蜀)이 상당히 위태로운 모양입니다. 수많은 피난민들이 관중(關中)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난세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수많은 군현들 중에서 가장 먼저 안정을 되찾은 지역이 익주(益州)였다.
하지만 활기찬 태평성대를 이어나갔던 익주는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모했다. 음지에 숨어 기회를 기다려온 호족들이 일거에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익주의 혼란이 실로 참혹했다.
성도(成都)를 제외한 모든 지역들이 참화에 휩싸였다고 한다.
위나라의 대장군에 임명된 이성휘는 관중의 전령들이 보낸 소식을 곧바로 조조에게 전달했다.
“익주의 고목이 허망하게도 쓰러졌군. 울화통이 치밀어 죽어버린 건가? 연이어 참화에 아들들을 잃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장남과 차남이 죽었다.
유약한 삼남은 그대로 도망쳐버렸다.
결국 유언의 넷째 아들이 세력을 계승할 터.
하지만 새로운 후계자로 선정된 유장은 위풍당당한 효웅이었던 부친에 비해 한참이나 모자랐다. 결국 유언군은 혼란에 침식되어 멸망할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 형주를 칠 기회입니다.”
이성휘가 형주(荊州) 정벌을 진언했다.
하북을 무탈하게 복속시켰다.
그리고 원소군을 아군의 산하로 편입했다.
조조가 위왕으로 즉위하면서 장졸들의 사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성휘는 하북과 중원의 강병들을 모두 동원하여 형주를 침공하려 했다.
“너무 이른 게 아닌가?”
“먼저 형주부터 끝장내야 합니다. 유표군이 멸망하면 양주도 결국 무너질 겁니다.”
양주(揚州).
강동을 제패한 손견군을 뜻했다.
일기당천의 무력으로 양주를 제패한 손견군은 사나운 용맹을 자랑했지만 지지기반이 미약하다. 결국 유표군이 멸망한다면 내부적으로 참담한 혼란에 휩싸이게 될 터였다.
“손견…. 원술의 떨거지도 언젠가는 처리해야겠지.”
중원과 하북을 모두 정복했다.
손견군은 그저 무력한 피라미에 지나지 않았다.
장강을 앞에 끼고 있을 뿐,
대군을 동원하여 파상공세를 가한다면 결국 손견군은 수세임을 느끼고서 백기를 들게 되리라.
압도적인 격차가 존재함을 알기에 조조는 손견군을 원술의 잔당으로 취급했다. 같은 반열에 두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손견군이 무력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웃하고 있는 귀 큰 년인데. 계속 잠잠한 것이 수상쩍군. 곧바로 세작들을 파견해야겠어.”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은 능글맞은 계집을 떠올리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상종하기 싫다.
원소에 필적하는 천적이라고 할까.
조조는 유비군의 전폭적인 가세로 하북을 제패하는 성과를 거뒀음에도 계속해서 의심을 거듭했다. 귀 큰 년을 절대로 신뢰할 수 없다는 불신이 아름다운 얼굴에 가득했다.
“또 유비를 의심하십니까.”
“큭! 하지만 충분히 의심스럽잖은가! 절대 귀 큰 년을 믿어선 안 되네!”
이성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반응이다.
그에 조조는 고운 미간을 찌푸리면서 발끈했다.
“분명 교활한 꿍꿍이가 있겠지. 그러니까 버러지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와중에도 잠잠한 걸세.”
한나라 부흥을 대의명분으로 거병한 반란군 세력들이 준동하고 있음에도 유비군은 침묵을 이어나갔다.
반란에 가세하진 않았다.
하지만 반란을 진압하지도 않았다.
철저히 중립을 표방하듯이 반란을 묵인했다.
전령을 파견하여 반란군의 토벌을 명령했지만 유비는 몸이 아프다는 변명을 내세웠다. 조조가 끊임없이 유비를 의심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유비는 수많은 활약들을 거듭했던 동맹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한나라의 종친이지 않습니까. 분명 전면에 나서기 껄끄러운 심정일 겁니다.”
역심을 품었을까 의심하는 조조의 모습에 이성휘는 유비를 비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나라의 종친이다.
또한 황실과 조정으로부터 책봉된 제후였다.
유비군은 위나라의 산하에 위치한 동맹이지만 한나라에 충성하는 세력이기로 하다. 그렇기에 유비가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으로 추측했다.
“성휘는 누구 편인가! 감히 과인 앞에서 음흉한 계집을 옹호하다니!”
“예…?”
조조가 크게 노발대발하며 소리쳤다.
아뿔싸.
무심코 역린을 긁고 말았다.
노여움이 가득한 아름다운 얼굴을 목격한 이성휘는 자신의 실수를 통감했다.
조조 앞에서 유비를 변호하다니!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곧장 현장에서 멍석말이를 당했으리라.
“유비가 역심을 품지 못하도록 아만께서 이미 안배를 마련해두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다만….”
이성휘의 반론에 조조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팔짱을 꼈다.
이런 고집불통 같으니.
말괄량이 딸이 생떼를 쓰는 모습이 떠올랐다.
조비가 과연 누구를 닮아 말괄량이일까?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유비군은 청주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청주에서 유비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읏!”
이성휘가 양손으로 조조를 번쩍 안아들었다.
옥좌로 향했다.
그녀를 호화롭게 장식된 옥좌에 앉혔다.
“제가 확실히 유비를 감시하겠습니다.”
유비군을 청주(青州) 제국(濟國)으로 파견했다.
청주는 기주와 가까운 지역이다.
바로 지척에서 감시하고자 청주로 보낸 것이었다.
지금까지 세운 공훈들을 참작하여 제나라의 제후로 책봉하겠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유비군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조조의 제안을 받아들여 청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수상쩍은 계집을 제나라의 제후로 삼는다니…. 개한테 안장을 씌우는 격이지 않겠나.”
개한테 안장을 씌우는 격.
혹은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조조는 본인의 결정임에도 안타깝게 여기면서 번복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유비가 정말 어지간히도 미운 듯하다.
“우여곡절을 함께했던 동맹이지 않습니까. 부디 아만께서 넓은 아량을 베푸시지요. 분명 사대부와 호족들도 아만의 아량에 감격할 겁니다.”
이성휘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옥좌에 앉은 조조의 신발을 벗겼다.
“이미 천하는 아만의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늘씬하게 뻗은 다리를 주무르면서 다독여주자 의심의 응어리가 삽시간에 녹아내렸다.
애써 웃음을 억눌렀다.
하지만 피로에 젖은 다리를 정성스럽게 주물러주는 이성휘의 상냥한 배려에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왜 이렇게 잘해주지?
혹시 또 다른 여자하고 바람이라도 피웠나?
만인지상의 권력을 거머쥔 위왕은 사랑스러운 남편을 바라보면서 짓궂은 농담을 중얼거렸다.
* * *
유표군은 유비에게 밀지를 보내어 군사동맹을 맺으려고 했지만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유비군이 청주에 있다.
뒤늦게 사실을 접한 유표군은 난색을 지었다.
조조는 유비에게 제나라의 제후로 책봉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웠다. 분명 유비를 경계하여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이리라.
“그럼 유비군이 안 된다면… 양주의 손견군과 동맹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분명 놈들도 조조군을 경계하고 있을 겁니다!”
양양채씨 가문의 장수이자 채모의 종제였던 채중이 호기로운 목소리로 유표에게 진언했다.
그에 유표가 벼루를 내던졌다.
“닥쳐라!!”
콰직-!
벼루가 바닥에 떨어졌다.
마치 날벼락이 떨어진 것처럼 소리가 요란했다.
채중을 비롯하여 수많은 장수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혹시 벼루가 자신에게 날아올까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양주의 파락호와 동맹하는 일은 없을 거다!!”
손견과 동맹?
차라리 환관 년에게 머리를 조아리겠다.
전임 형주자사를 살해했던 손견은 형주의 철천지원수나 다름없는 인물이다. 그리고 조조군의 사주를 받고 딸년과 함께 형주를 노략질하기까지 했다.
압도적인 열세에 놓인 형국이었다.
채중의 진언처럼 막강한 군세들을 보유한 손견군과 동맹하는 것이 상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상책을 뿌리쳤다.
여남원씨 가문의 망나니를 따랐던 사냥개에게 도움을 구걸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모든 전함들을 대기시키게! 틀림없이 조조군은 형주를 노릴 걸세!”
“예, 매형!”
유표의 호령에 채모가 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채중과 채화,
양양채씨 가문의 장수들도 응했다.
하북을 정복한 조조군은 천군만마를 동원하여 남방까지 평정하려 들겠지. 그것을 직감한 유표는 형주가 자랑하는 함대들을 번성(樊城) 주변에 배치했다.
‘조조, 네년의 오만방자한 야망을 차가운 장강 아래에 수장시켜주겠다! 결코 형주는 하북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이를 빠득 갈았다.
두 눈에 증오가 서렸다.
주먹을 거머쥐면서 분기를 내비쳤다.
천하를 양분하면서 위세를 자랑했던 원소가 허망하게 멸망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파촉을 발판으로 천하를 거머쥐려 했던 유언이 급사했기 때문일까.
증오와 분기를 내세우면서 철저히 위장했음에도 극도의 두려움을 숨기진 못했다. 조조군이 형주를 침공할 것을 확신한 유표는 공포에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