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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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조조가 역심을 드러냈다.
왕이 되려 한다.
그것은 백마지맹(白馬之盟)의 위반을 뜻했다.
어떻게 유씨가 아닌 자가 왕이 된단 말인가.
조조는 역적이다.
언젠가 옥좌마저 찬탈할 대역죄인이다.
한나라에 충성하는 사대부와 호족들이 사병을 집결시키며 반란을 일으켰다. 당장 허도로 진격하여 역적을 참살하겠다며 대의의 기치를 치켜들었다.
“환관 년을 척살하라!”
“반역의 무리들을 모조리 베어라!”
사예주(司隸州). 예주(豫州). 서주(徐州).
중원 3개 주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재야로 내려간 명사.
조정을 오랫동안 섬긴 사대부와 호족들.
백마지맹을 배신한 역적에 맞서고자 창검을 치켜들었다. 반란군은 관아를 습격하여 패국조씨 가문과 연관된 인사들을 모두 살해하면서 전운을 고조시켰다.
“반란을 진압하라!”
“이 역도들이…! 네놈들이 무사할 것 같으냐!!”
조조군은 반란의 불씨들이 확산될 것을 예견하고서 정예부대를 투입시켰다. 소규모 반란들을 속전속결로 진압하기 위함이었다.
기병들이 진격했다.
거친 말발굽이 반란의 불씨를 짓밟았다.
오합지졸에 불과한 사병들은 허도에서 투입된 정예부대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풍전등화와도 같은 한나라를 구하고자 결의를 부르짖었던 세력들이 꺾여나갔다. 결국 강력한 무력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조조는 역적이다!”
“한나라의 충의지사들이여! 환관 년을 쳐라!!”
위나라를 건국하여 새로운 조정을 세우려 한다.
한나라 조정의 권위가 실추되었다.
그것은 한나라 조정을 유명무실한 빈껍데기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패국조씨 가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인사들로 새로운 조정을 채울 터. 결국 한나라 조정은 무력한 산송장이 된 채로 방치되겠지.
결코 좌시할 수 없다.
충신들이여,
역적을 토벌하기 위해 궐기하라.
우리들의 손으로 4백 년 왕조를 지켜내자!
사대부와 호족들이 반역을 도모하려는 조조를 저지하고자 거병했다. 마치 잠룡의 역린을 건드린 것처럼 한나라 부흥의 불씨가 거침없이 타올랐다.
* * *
겨울이 흘렀다.
그리고 봄이 찾아왔다.
추위가 끝나고 온기가 피어난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새로운 계절을 맞이했다.
“주군, 마지막 반란을 진압하고 돌아왔습니다.”
혹한이 몰아치는 엄동설한을 몰아낼 것처럼 반란의 불씨들이 확산되었다.
하지만 모두 진압되고 말았다.
무의미한 발악들이 이어졌을 뿐,
한나라 부흥을 부르짖었던 반란군은 거병에 실패하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내지 못했다.
우후죽순처럼 수많은 항거들이 이어졌지만 결국 덧없는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내지 못한 거병은 그저 반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수고 많았다.”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진압군을 지휘했던 제장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봄이 시작되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겨울이 끝났다.
무력을 동원한 공포정치로 황실과 조정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조조는 마침내 수성에 성공했다.
충의지사를 주장하는 수많은 사대부와 호족들이 허도로 진격했지만 모두 무너졌다. 수많은 시도들이 허무하게 진압되자 한나라 부흥의 기세가 꺾여나갔다.
“…참으로 덧없는 저항이었다.”
이것이 바로 백마지맹의 저항인가?
참으로 같잖다.
무력한 발버둥에 불과했다.
조조군의 아성(牙城)을 뒤흔들기엔 한참 모자랐다.
반란의 불씨들을 강경하게 진압하여 사태를 속전속결로 제압한 조조는 즉위식 준비를 서둘렀다.
학수고대하며 염원해온 신년(新年)이 도래하였으니 새로운 나라의 시작을 만천하에 알릴 때였다. 조조는 늠름한 목소리로 호령하면서 제장들을 집결시켰다.
“언니!”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위장군(衛將軍) 조홍. 표기장군(驃騎將軍) 조인.
종친들이 도착했다.
이윽고 휘하 장수들도 모두 모였다.
혹한을 견뎌내면서 반란을 진압한 주역들은 고양된 표정으로 주군의 명령을 기다렸다. 마침내 목적을 완수하였음에 주먹을 거머쥐었다.
“이제 업성으로 향하겠다.”
위나라의 수도.
업성(鄴城).
사랑하는 남편과 총애하는 심복들이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나라의 터전.
마지막 난관이었던 한나라 부흥군마저 진압한 조조는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용맹무쌍한 위엄을 뽐내는 제장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자렴, 모든 준비를 맡기겠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즉위식이 거행될 업성으로 향하고자 대규모 행단을 꾸리도록 명령했다.
새로운 나라를 알리는 행차였다.
만천하가 위나라의 등장을 깨닫도록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준비해야 마땅했다.
사치스러운 안목으로는 결코 조홍을 대적할 인물이 없었기에 전권을 맡겼다. 분명 그녀라면 모든 이목들이 집중될 정도의 웅장함을 보여주리라.
‘성휘, 다시 재회할 순간만을 기다렸다네. 아이들을 부디 반갑게 맞이해주게.’
남편을 만날 수 있다.
연모하는 사내와 재회할 수 있다.
얼굴을 마주하면 무슨 말부터 전해야 할까.
많이 추웠을 텐데.
엄동설한의 북방에 남겨둔 것이 너무도 미안했다.
설령 어쩔 수 없는 이유들이 있었더라도 그저 미안할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조조는 앞으로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겠노라고 깊게 다짐했다.
* * *
업성에서 위왕의 즉위식이 거행된다.
한나라 부흥군은 어떻게든 저지하고자 소규모 전투를 이어나갔지만 무력한 발악에 불과했다.
대세를 막을 순 없다.
결국 위나라가 한나라를 대신하게 되리라.
유협과 조조는 근위병단의 삼엄한 호위를 받으면서 업성으로 향했다.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여 수많은 병력들이 대열을 지켰다.
“명을 완수하고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업성에 거의 도달했을 때,
혹한의 눈보라를 꿋꿋하게 이겨냈던 군세들이 왕위를 거머쥐려는 주군을 맞이했다.
대장군(大將軍) 이성휘.
상서령(尙書令) 순욱. 거기장군(車騎將軍) 하후돈.
전권을 위임받고서 하북을 통치했던 충직한 심복들이 정갈하게 예를 갖췄다. 휘하의 제장들도 합세하여 불변의 충성을 보여주었다.
“성휘…. 그동안, 무탈했는가?”
“물론입니다.”
감격에 벅찬 목소리로 남편에게 물었다.
이성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무탈했다.
아무 일 없이 건강하다.
한동안 이별했던 본처와 재회한 이성휘는 장졸들에게 호위를 명령했다. 뒤이어 즉위식의 명분을 보태고자 참석한 어린 황제를 마주하였다.
“폐하.”
“오랜만이다!”
복잡한 심정으로 유협을 바라보았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민이 상당했는지 무뚝뚝한 얼굴에 그대로 비춰질 정도였다. 그에 유협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괜찮다, 짐이 바라던 일이니….”
“폐하.”
“정말… 정말 괜찮다, 그러니까 오라버니가 염려를 거뒀으면 한다.”
“…알겠습니다.”
숙연한 분위기가 흘렀다.
드디어 즉위식이 거행된다.
기쁜 날이면서도 동시에 슬픈 날이기도 했다.
금발을 늘어뜨린 소녀를 묵묵히 응시하던 이성휘는 가슴에 손을 올리면서 예를 취했다.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의중을 담은 행동이었다.
“…….”
숙연함이 흐르는 이성휘의 행동에 유협은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억눌렀음에도 두 눈에서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괜찮을 리 없다.
당연히 괜찮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참아야 했다.
모든 것들을 내려놓기로 다짐했으니까.
오라버니에게 매달려 울음을 터트리고 싶은 마음이었음에도 꾹꾹 참았다. 아직 한나라의 황제였기에 결코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상서령.”
“예, 주군….”
이성휘가 유협을 다독이고 있었을 때,
조조는 순욱과 하후돈을 대동하고서 업성에 들어섰다. 성벽 위에서 펄럭이는 깃발들을 응시하던 조조는 순욱에게 입을 열었다.
“진심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나의 길이다. 부디 이해해주길 바란다.”
“예…. 알고 있습니다.”
꿋꿋하게 일관했던 신념을 내려놓고서 패업에 동참하기로 결정한 신하에게 격려를 보냈다.
왕좌지재의 재상을 진심으로 아꼈기에 그녀의 가세를 반갑게 맞이했다. 원소를 아군으로 맞이했을 때처럼 진심으로 기뻐하는 반응을 보였다.
“많은 결례를 범했습니다, 주군.”
“괜찮다. 용서하겠다.”
순욱이 고개를 숙이면서 사죄했다.
그에 조조는 어깨를 으쓱이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군신(君臣).
옆을 호위하던 하후돈은 그녀들의 모습에 헛기침을 흘렸다.
나중에 진실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맹덕이 지금처럼 자애로운 모습을 보여줄까. 두 눈을 부릅뜨며 질투를 휘두르는 모습을 예상하자 벌써부터 아찔해졌다.
“큼큼….”
“마침 오늘 날씨도 좋네요.”
여포와 장료가 장졸들을 지휘하면서 업성을 순찰하는 조조를 뒤따랐다.
하북의 수많은 반란들을 진압했던 여걸들은 저마다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여포는 긴장된 헛기침을,
장료는 평소와 다름없는 천연덕스러운 모습으로 일관했다.
순욱. 하후돈. 여포. 장료.
4명의 여인들이 일제히 질투의 화신을 바라보았다. 뱃속에 있는 소중한 새 생명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