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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582화 (582/616)

<5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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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주목(益州牧) 유언이 사망했다.

울화로 인한 분사(憤死).

피를 한 움큼 토해낸 뒤에 절명하고 말았다.

천군만마를 호령했던 거두가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한순간에 군주를 상실한 유언군 세력이 위태롭게 흔들리면서 지배와 통치의 혼란이 빚어졌다.

“늙은 여우가 죽었다!”

“도적에게 빼앗겼던 땅을 되찾을 때다!”

유언의 혹독한 공포정치에 억눌렸던 수많은 호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심미. 누발.

호족 출신의 장수들이 파동(巴東)을 점거했다.

익주를 통일했던 유언군은 유언을 구심점으로 결집된 세력이었다. 아들들을 잃은 충격에 유언이 급사하자 유언군은 위태롭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 이제 어찌해야 하오!”

“일단은 반란부터 진압해야 하지 않겠소! 군세들을 이끌고 출정하겠소이다!”

넷째 공자가 광한군(廣漢郡)에서 오고 계신다.

하지만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우선 들불처럼 확산되는 반란부터 진압해야 했다.

양회와 고패는 빈집을 습격한 도적들을 토벌하겠다며 군세들을 움직였다. 주군이 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성도에서 출전했다.

“일단 지금은 잠잠하지만… 어르신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강족과 저족도 틀림없이 반란을 일으킬 거요.”

“장임을 보냈으니 괜찮을 겁니다.”

관서(關西)에서 유입된 강족과 저족.

공포정치에 억눌렸던 토착세력들.

건위(建爲)의 남만족. 타지에서 고용된 용병 세력.

사방이 온통 적들이다.

불안요소들이 전역에 산재되어 있었다.

유언이 천하통일의 대업을 달성하고자 무리하게 끌어들인 세력들이 도리어 익주를 위협했다. 난폭한 사냥개들이 주인을 잃고 동네를 습격한 격이었다.

“이 개자식들!”

“주군께서 돌아가시자마자…!”

슬퍼할 틈도 없었다.

애도할 시간도,

상복을 입을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유언군 장수들은 애써 슬픔을 억누르고서 병장기를 치켜들었다. 다급하게 오고 계신 새로운 주군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성도를 지켜내야 했다.

“공자의 호위는 누가 맡고 있소?”

“등현 장군이 정예군들을 이끌고 출정했습니다. 분명 공자를 무탈하게 호위할 겁니다.”

불순한 무리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새로운 구심점,

익주의 군세들을 호령할 새로운 효웅이 필요했다.

유언군의 참모들은 비겁하게 도망친 유모를 대신하여 동생 유장을 옹립하기로 결정했다. 사태가 급박했기에 결정은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이제부터 공자를… 아니, 우리들의 새로운 주군을 맞이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주부(主簿) 황권이 승계식의 준비를 맡게 되었다.

관료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이제 광한군에서 새로운 주군께서 오실 것이기에.

그러나-.

유언군의 통치를 뒤엎고자 반란을 일으킨 무리들이 군현을 침탈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여러 호족들이 반란에 가세하면서 사태를 더욱 악화되었다.

“촉군승(蜀郡丞) 감녕이 반란을 일으켰소!”

더욱 최악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강대한 사병집단을 보유한 군벌이었던 감녕이 앞서 거병했던 심미와 주발에게 협력하고자 칼자루를 뽑아들었다.

촉군승 감녕,

포악한 성정으로 유명한 맹장이 반란군에 가세했다는 소식에 성도가 크게 들썩였다.

* * *

국적(國賊)이 결국 노환으로 죽었다.

천하통일의 대업을 착수하는 조조군에게 있어 천운이나 다름없는 소식이었다.

원소군이 멸망했다.

뒤이어 유언군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언이 죽었다는 소식이 확실시되자 조조는 조정에 심어둔 심복들을 소집했다. 결국 늙은 너구리가 죽었으니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드디어 야망을 실현할 때가 온 것이다.

“승상은 한나라를 봉행하고자 지금까지 견마지로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폐하, 승상에게 왕작을 하사하여 구국충정의 충성에 보답할 때가 아니겠사옵니까.”

시중(侍中) 화흠이 운을 떼었다.

뒤이어 상서(尙書) 치려가 주장에 즉시 가세했다.

패국조씨 가문을 추종하는 집단이 강경한 목소리로 압박하면서 조정을 주도했다. 그에 나약한 성정의 관료들은 크게 위축된 반응을 보였다.

“당장 닥치시게!”

“지금 백마지맹을 어기겠다는 겐가!”

한나라를 따르는 늙은 신하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백마지맹을 내세웠다.

백마지맹(白馬之盟).

유씨가 아닌 자는 왕이 되지 못한다.

만약 유씨가 아닌 인물이 왕이 된다면 천하가 그를 도모하리라.

어찌 조조가 왕이 될 수 있는가!

분명 조조가 군세들을 동원하여 한나라를 아비규환의 지옥에서 구원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코 백마지맹의 예외가 될 순 없었다.

“왕망과 동탁도 왕을 꾀하진 못했거늘!”

“승상은 정녕 충신에서 역적이 될 셈인가! 분명 천하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왕에 즉위하겠다는 야심이 패국조씨 가문의 권력을 경계하던 신하들의 역린을 건드렸다.

한나라의 역적이 되겠다는 속셈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조조는 한나라의 역적이다.

모든 문무백관들이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만.”

옥좌가 존재하는 대전에서 싸움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분위기가 매우 살벌해졌다.

유협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러자 거칠어진 양상이 잠시 누그러들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요구할 줄이야…. 더러운 성격머리만큼이나 순리라는 것을 모르는군.’

조조가 심복들을 동원하여 본격적으로 야심을 드러내자 조정이 극명하게 양분되었다.

서로에게 살의를 표출하는 관료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근심어린 한숨을 흘렸다.

“승상은 엄동설한을 뚫고 하북을 정벌했다. 백성들을 대표하여 정벌을 완수한 승상에게 응당 보답을 내려야 하지 않겠는가.”

“폐하! 결코 부당한 말씀이십니다!”

유협의 발언에 사손서가 대경실색하며 경악된 목소리를 내질렀다.

반면 황제와 승상이 몰래 밀약을 나눴음을 알고 있었던 패국조씨 가문의 관료들은 쾌재를 불렀다. 미리 언질을 주고받았다면 일이 수월하게 진행될 테니.

“폐하, 위군을 할양해주십시오!”

“승상에게 맡긴다면 북방이 안정될 것이옵니다!”

화흠과 치려가 더욱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위군(魏郡)을 양도해달라.

그 말은 곧 위왕(魏王)에 책봉해달라는 요구였다.

막힘없이 요구하는 화흠과 치려의 행동에 조정대신들은 옛날부터 조조가 왕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이 역적 놈들…!”

“처음부터 역심을 꾀하고 있었구나!”

조정대신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소리쳤다.

한나라로부터 분리된 독립국.

황실의 간섭을 일체 받지 않는 새로운 조정.

언젠가 옥좌마저 찬탈하려는 과정임이 틀림없었다.

난세를 제패하는 조조군의 활약을 지지했던 조정대신들은 배신감이 치를 떨었다. 장님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역적들을 옹호했다는 사실에 모멸감을 느꼈다.

“폐하.”

“잠시 무례를 범하겠습니다.”

끼익-.

문이 열리면서 흑발의 여인들이 들어섰다.

표기장군(驃騎將軍) 조인.

위장군(衛將軍) 조홍.

패국조씨 가문을 대표하는 장수들이 친위대를 이끌고서 모습을 드러냈다. 뒤이어 창검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신속하게 궁궐을 장악했다.

“감히 어전에서 무례를 범하다니…! 소란을 준동했던 난신들을 모두 끌어내라!”

조홍이 크게 일갈하며 무관들을 투입시켰다.

어전에서 무력이 가해졌다.

조조의 야심을 강경하게 비판했던 조정대신들은 강제로 끌려가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한나라의 역적임을 직접 증명하는 행위였음에도 조홍은 결코 망설이지 않았다. 패국조씨 가문과 사촌언니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여걸다웠다.

“크흠!”

거칠게 압송되는 조정대신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화흠과 치려가 헛기침을 흘렸다.

철면피처럼 어전에서 계속 무례를 범했음에도 일말의 가책을 느끼는 듯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결코 없겠지만.

“폐하, 소장들이 궁궐을 호위하겠습니다. 부디 염려를 놓으십시오.”

호위,

누가 그 말을 믿을까.

병력들을 동원하여 조정을 틀어쥐겠다는 속셈이 분명했다. 권력만을 추구했던 역적들처럼 조조 또한 무력으로 조정을 장악하는 수순을 밟았다.

표기장군 조인은 무뚝뚝한 목소리로 어린 황제에게 연금령(軟禁令)이나 다름없는 행동을 통보했다.

“강압적으로 찬탈을 달성하고자… 일부러 대장군을 하북에 남겨둔 것인가?”

유협이 물었다.

그에 조홍과 조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바로 그렇습니다.

패국조씨 가문의 여걸들은 무거운 묵묵부답으로 물음에 대답했다.

“승상과의 약조는 지키겠다. 하지만 짐의 신하들에게 위해를 가하진 말아다오.”

“황명을 받들겠습니다.”

금발을 늘어뜨린 소녀가 해탈한 목소리로 한나라를 멸망시키려는 찬탈자들에게 부탁했다.

신하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못난 황제를 만난 탓이다.

그저 나약한 황실에 충성한 죄 밖에 없다.

머지않아 4백 년 왕조는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게 될 터.

유씨가 아닌 조씨,

한(漢)을 대신하여 위(魏)가 들어서게 되리라.

난세의 연쇄를 완전히 끊어내고자 찬탈을 묵인해준 유협이 한탄이 느껴지는 침음을 삼켰다. 결국 한나라가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직감했기에.

“…승상을 위왕에 책봉하겠다. 그러니 그대들은 미리 계획한 대로 즉위식을 준비하도록 하라.”

억지로 연명하고 있었을 뿐.

이미 한나라는 수명을 다한 상태였다.

모든 것들을 내려놓으리라.

오라버니께서 결국 양위를 결정하셨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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