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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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군(漢中郡) 정벌이 실패했다.
오두미교의 심복들과 반란을 획책했던 장로를 토벌하고자 출전한 유언군이 매복에 무너지고 말았다.
적들의 유인계(誘引計)였다.
험준한 골짜기에 매복하고 있었던 장로군 병력들이 유언군의 배후를 들이쳤다.
장로군의 반란을 속전속결로 진압하고자 가맹관(葭萌關)을 격파했던 유언군은 한낱 반란군에 불과한 오합지졸에게 대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많은 병력을 잃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 주군! 유탄 공자께서… 전사했습니다.”
휘하의 장수들을 거느리고서 정벌군을 지휘했던 유탄이 장로군의 화살세례에 절명했다.
결국 유탄이 죽었다.
아버지의 강압적인 기대를 떠안았던 익주의 후계자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장남에 이어 차남까지 연이어 사망했다.
지리멸렬한 전장에서 겨우 돌아온 장수들로부터 비극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익주의 새로운 후계자로 육성하고자 둘째 아들을 강압적으로 내세웠던 유언은 크게 오열하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범이에 이어…! 탄이마저 죽었단 말이냐!”
모든 힘이 빠져나갔다.
기력과 혈기,
천하를 거머쥐겠다는 야망마저도.
한나라의 새로운 황제가 되겠다는 야심을 내세우면서 천군만마를 호령했던 유언이 급격하게 무너졌다.
내 야심이 아들들을 집어삼켰다.
온몸을 짓누르는 죄책감이 기력과 혈기를 집어삼키면서 익주의 노련한 야심가를 위협했다.
“쿨럭…! 쿨럭쿨럭!!”
연이어 기침을 토해냈다.
슬픔과 통한이 느껴지는 마른기침이었다.
두 아들들이 요절했다.
아버지의 헛된 욕망에 결국 희생되고 말았다.
장로군의 진압에 실패하고 수많은 병력들을 잃었다는 비보보다도 유탄의 죽음을 더욱 슬퍼했다. 폐부를 관통당한 사람처럼 숨을 연신 헐떡였다.
“부디 죽여주십시오!”
“공자를 지켜내지 못한 소장들의 책임입니다!”
고패. 등현. 냉포. 양회.
유탄을 보필하면서 정벌군을 지휘했던 장수들이 바닥에 머리를 강하게 찧었다.
공자를 지켜내지 못했다.
또한 수많은 병력들을 잃고 진압에도 실패했다.
어찌 감히 살기를 바라겠는가?
우리들은 모두 죽어 마땅한 죄인이다.
오합지졸에 불과했던 장로군 따위에게 대패를 당했으니 아군의 위세가 크게 꺾였을 터. 분명 천하의 조롱거리가 되었으리라.
익주의 충성스러운 장수들은 목숨으로 대죄를 씻겠다며 참형을 자청했다. 전선에 참전했던 수많은 장졸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나의 무모하고 헛된 야망이… 젊은 아들들의 목숨을 빼앗았구나! 내가 아이들을 죽인 것이다!”
위대한 황제가 되겠다.
광무황제(光武皇帝)께서 그러하였듯,
군웅할거로 성장한 역적들을 모조리 격파하여 한나라의 새로운 하늘이 될 것이다.
포부와 용맹을 짊어지고 혈혈단신으로 시작했던 한나라 황실의 효웅은 비참한 파국을 맞이했다. 유언은 야심의 상실과 함께 끔찍한 우환을 얻고 말았다.
“크흑, 어르신!”
“소장들의 책임이옵니다…!”
대규모 정벌군을 투입했음에도 반란의 진압에 실패했으니 장로군은 한중군을 중심으로 발호할 터.
풍요로운 익주를 발판으로 관서와 관중을 도모하겠다는 웅대한 계획이 무너졌다. 한중군을 장로가 차지하면서 익주 내부에 적이 생겼기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분명 장로군은 집요하게 군현들을 침탈할 터.
그렇기에 유언은 익주의 용맹한 장수들을 동원하여 반란을 평정하려 했다. 하지만 결국 진압에 실패하면서 조조군보다 성가신 적수를 두게 되었다.
“제장들은 어서 새로운 정벌군을 편성하라! 반드시 한중군을 탈환해야 한다!”
“어, 어르신?!”
쇠약해진 몰골로 주저앉았던 유언이 오열을 삼키면서 장수들에게 정벌군 편성을 명령했다.
아들의 복수를 위해서일까.
두 눈을 부릅뜨며 주먹을 거머쥐었다.
잔인하게 살해당한 장남의 복수를 위해 천군만마를 동원하여 서량을 급습했던 전적이 있었다. 그에 장수들은 차남의 원통함을 달래고자 정벌군을 일으키려는 것이라고 여겼다.
‘한중은 중원의 파도를 막는 방파제다! 만약 한중이 중원의 환관 년에게 넘어간다면… 익주는 중과부적의 운명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방파제가 무너진다면 지금까지 사력을 다해 쌓아올린 모든 토대들이 거센 파도에 휩쓸리게 될 터.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혈혈단신으로 이룩한 세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아들을 잃은 비통함에 오열하면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유언은 매몰차게 결단을 꺼내들었다. 제장들에게 명령하여 성도에 병력을 집결시키도록 했다.
“내가 직접 가겠다! 기필코 장로, 은혜를 원수로 갚은 천인공노할 축생을 주살할 것이다!”
유언이 몸을 일으켰다.
맹렬한 혈기를 토해냈다.
단기필마로 시작하여 익주를 제패했을 때처럼 용맹한 효웅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내 손으로 배은망덕한 축생을 죽이겠다.
유약한 아들들을 어떻게든 후계자로 육성하고자 연이어 내세웠던 유언이 결국 칼자루를 뽑아들었다. 늠름한 위엄을 떨치면서 장졸들을 호령했다.
그러나-.
“어억!!”
유언이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늙은 육신이 뒤로 쓰러졌다.
“어, 어르신!”
“의원을 데려와라! 어서 의원을 데려와!!”
전성기의 혈기를 담아내기엔 육신이 너무도 노쇠해진 상태였다.
연이어 중첩되었던 극심한 부담들이 유언의 명줄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그릇이 버티지 못했다.
더 이상 무엇도 담아내지 못할 정도로 닳아버렸다.
천하통일의 대업을 승계할 익주의 후계자를 염원했던 유언은 끝까지 염원을 달성하지 못했다. 후계자로 내정하려 했던 아들들이 비참하게 사망하면서 야망의 승계는 끝내 단절되고 말았다.
* * *
익주에 연이어 악재들이 들이닥쳤다.
장남 유범이 사망했다.
또한 차남 유탄마저 요절하고 말았다.
급히 제장들을 소집했던 유언마저 노환으로 쓰러지면서 시커먼 먹구름이 드리우게 되었다. 그에 유언군의 참모들은 급히 삼남(三男) 유모를 불러들였다.
“저, 저는 못합니다! 어떻게 제가 익주목을…! 차라리 장이를 데려오십시오!”
어떻게든 기사회생을 꾀하고자 유모를 성도로 불러들였지만 도리어 사태가 악화될 뿐이었다.
유모는 어릴 적부터 병환을 앓았을 정도로 매우 병약했다. 또한 주기적으로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깊은 정신병마저 앓고 있었다.
본인도 그것을 알고 있는 걸까.
사색이 되어버린 낯빛으로 손사래를 쳤다.
“어르신께선 지금 위독하십니다! 작금의 위기를 공자께서 타파하셔야 합니다!”
“모, 못…! 못합니다! 분명… 저도 형님들처럼 비참하게 죽게 될 겁니다!”
전장에 참전했던 형님들이 모두 죽었다.
분명 자신도 죽게 될 터.
유모는 아연실색하며 펄쩍 뛰었다.
휘하의 제장들까지 몰려와 유모에게 간곡히 부탁했음에도 한사코 거절했다. 식은땀을 뚝뚝 흘리면서 발작하듯이 벌벌 떨어댔다.
“알겠습니다…! 그럼 공자께서 사경을 헤매시는 어르신의 환후라도 봐주십시오! 더 이상 저희들도 무리하게 부탁하지 않겠습니다.”
“내, 내가… 그런 거짓말에 넘어갈 것 같소?! 난 절대 소, 속지 않을 거요!”
종사(從事) 왕루가 고개를 숙이면서 부탁했다.
하지만 자신을 꾀어내어 익주목에 앉히려는 수작질이라고 여긴 유모는 그대로 성도를 떠나버렸다.
실로 비정하지 않은가.
부친이 사경을 헤매는 상황에 줄행랑을 치다니.
유모를 불러들였던 유언군의 참모들은 기대를 완전히 접어야 했다. 그리고 광한군(廣漢郡)으로 속관들을 파견하여 사남(四男) 유장을 불러들이기로 결정했다.
“결국 떠났단 말이냐, 못난 녀석….”
성도에 도착했던 유모가 다시 떠났다.
병석에서 소식을 들은 유언은 씁쓸함을 토로했다.
장남과 차남이 죽었다.
삼남은 아버지의 부름을 뿌리치고 달아났다.
권력을 승계할 후계자를 육성하고자 자식들에게 엄격한 면모를 보였다. 유약한 자식들을 무리하게 몰아세우면서까지 어떻게든 난세에 어울리는 후계자로 만들려 노력했다.
“다 틀렸다. 결국 다 틀렸어…. 내가 범이와 탄이를 죽인 것이다. 내가 젊은 날에 저지른 업보 때문이다.”
만인지상의 권력을 거머쥐고자 수많은 정적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였다.
통치에 불응했던 사대부와 호족들을 잔인하게 살해했으며, 또한 반란 진압에 가세했던 무장들까지 숙청하면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옥좌를 차지했다.
어디 그뿐인가.
황제에게 건의하여 주목제(州牧制)를 부활시켰다.
마침내 군사권까지 거머쥔 지방관들이 도처에 난립하면서 난세가 악화일로로 치달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백성들이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분명 하늘께서… 이 유군랑이 범한 업보를 노여워하여 천벌을 내린 것이다. 만승천자가 되겠다는 헛된 야욕에 빠져 난세를 조장하였으니… 참혹한 인과응보가 떨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쿨럭-!
쿨럭-!!
연이어 기침을 토해냈다.
울분을 쏟아내기 위함일까.
기침을 토해낼수록 더욱 격해졌다.
이윽고 기침에 이어 핏물을 토해내기에 이르렀다.
“결국 내가… 자식들의 장래를, 모두 망쳤다.”
비참하게 요절한 자식들을 무슨 낯으로 볼까.
원통하다.
울화통이 치밀 정도로 원망스러웠다.
만인지상의 옥좌를 삼키고자 한평생을 모두 바쳤건만 손아귀에 잡히는 것은 공허뿐이다. 오로지 싸늘하게 식은 공허만이 마음속에 가득했다.
“유군랑이…! 천하의 유군랑이, 이렇게 죽는단 말이더냐…! 원통하다, 원통하다… 하늘이여.”
들불처럼 타오르는 미련을 나지막이 중얼거리던 목소리가 이윽고 멎어들었다.
익주를 제패한 영웅.
주목제를 부활시켜 난세를 이어지도록 만들었던 천하의 모략가.
익주 전역을 통일하고서 천군만마를 호령했던 효웅이 생을 마감했다. 스스로 포기했기 때문일까. 어떠한 유지도 신하들에게 남기지 않았다.
천하의 권력을 거머쥐고자 한평생을 바쳤던 군웅의 최후라고 하기엔 너무도 덧없는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