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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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휘에게 전권을 일임하고서 허도로 귀환한 조조는 황실과 조정에 승전보를 알렸다.
하북 4개 주를 제패했다.
사대부와 호족들까지도 굴복시켰다.
천하이강을 형성했던 하북을 단번에 정복한 조조군의 위명이 산천초목조차 떨게 만들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지방의 군벌들은 조조군의 위세에 경악과 두려움을 금치 못했다.
“폐하. 하북을 평정하고 돌아왔습니다.”
마침내 숙적마저 쓰러트리면서 완전한 권력을 거머쥐게 된 흑발의 여인이 들어섰다.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좌중을 압도하는 위압감을 드러냈다. 그러자 관료들은 살벌한 위세에 공포를 느꼈는지 조조가 다가오자 시선을 황급히 피했다.
“…노고가 많았다, 승상.”
하북을 제패했다.
더 이상 조조를 막을 자는 없으리라.
금발을 늘어뜨린 소녀는 난세의 간웅을 응시하면서 한나라의 끝을 예견했다. 결국 원소군을 멸망시킨 조조군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것처럼 위세가 높았다.
“과연 대단하군….”
“신속하게 하북을 제패하다니. 천하의 원소조차 적수가 되지 못했단 말인가.”
하북을 대표하는 수많은 맹장들을 거느렸던 원소가 결국 조조에게 무너졌다.
건곤일척의 결전이었을 터.
분명 사력을 다한 전면전이었으리라.
오랜 벗이자 숙적이었던 원소를 마침내 쓰러트리면서 패권을 거머쥐었다. 결전의 완승으로 계속 무소불위의 권력을 이어나가게 된 조조의 행보에 여러 조정대신들은 불안감을 금치 못했다.
“그저 본분을 다했을 뿐입니다.”
불안감.
공포와 두려움.
조조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수많은 우려와 두려움을 감지했다.
결전에서 완승을 거두고 돌아왔음에도 조정의 관료들은 조조를 경계하며 두려워했다. 마치 맹견에게 물릴까 노심초사하는 장정들을 보는 것 같았다.
“수많은 장졸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겠지…. 전화에 휩쓸렸던 하북의 사정은 어떠한가?”
시체들이 산을 이루었다.
흘러내린 핏물은 새하얀 설원을 뒤덮었다.
전선에 참전했던 수많은 장졸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보고를 받았던 유협은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조조에게 사정을 물었다.
그에 조조가 대답했다.
“수많은 전사자들이 발생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무고한 희생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장군에게 전권을 위임하였으니 괜찮을 겁니다.”
이성휘와 순욱,
총애하는 부하들을 위군(魏郡)에 배치했다.
통치에 반발하는 원소군의 잔존세력이 반기를 들더라도 거뜬히 막아낼 수 있을 터.
조조는 허도로 귀환하자마자 오로지 앞으로의 계획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은 하북에서 거둔 승리를 발판으로 야망을 실현할 때였기 때문이다.
“…….”
“…….”
만인지상의 옥좌에 앉은 황제와 무소불위의 권력을 거머쥔 승상이 서로를 응시했다.
경멸. 적대.
부정적인 감정들이 두 눈에 넘쳐흘렀다.
누가 그녀들을 군신(君臣)이라 여길까.
유협과 조조는 서로를 멸시하면서 위태로운 평행선을 이어나갔다. 기름을 가득 흩뿌린 병참처럼 위험천만한 적대관계였다.
만약 조율을 담당했던 이성휘가 없었더라면 끔찍한 파국에 치달았으리라. 유협과 조조는 서로를 계속 노려보면서도 이성휘를 떠올리며 분노를 가라앉혔다.
“폐하, 진언드릴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공(公)에 책봉해달라는 부탁인가.
아니면 왕(王)에 책봉해달라는 강요인가.
망설임 없이 야심을 드러낼 터.
유일한 호적수까지 물리친 조조는 대적자가 존재하지 않는 진정한 만인지상에 등극했다.
황실과 조정을 모두 뒤엎을 힘이 있다.
조조군이 무력을 동원하여 숙청을 자행한다면 모든 조정대신들이 희생될 터. 유협은 난세의 간웅을 바라보면서 침음을 삼켰다.
“폐하께서 원소를 사면해주십시오.”
예상을 아득하게 뒤집는 대답이 나왔다.
유협은 물론,
조정대신들 또한 경악하며 조조를 응시했다.
사면(赦免).
조조는 황제와 조정대신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호적수의 면죄(免罪)를 요구했다.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는 늠름한 목소리에 좌중이 크게 들썩였다.
* * *
비록 원소는 국적(國賊)으로 선포되진 않았지만 그에 준하는 역적임은 분명했다.
황위를 찬탈하고자 군세들을 규합했던 유표와 유언에 필적하는 대군벌이 아니었던가.
아니,
오히려 그들보다 흉악했다.
군웅할거로 성장한 군벌들을 규합하여 황실과 조정을 도모하려 획책했다. 이른바 원소는 교활한 권모물수로 역적들을 준동시켰던 우두머리인 셈이다.
“어찌 역적을 옹호하는가!”
“원본초는 대역무도한 죄인일세! 당장 끌어내어 목을 쳐야 마땅하거늘!”
곧바로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불가하다.
결코 불가한 일이다.
조정대신들은 강경한 목소리로 원소의 사면을 요구한 조조에게 노여움을 내비쳤다. 조정은 결코 대역죄인의 사면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반응이었다.
“이것들이 감히!”
“잠시 풀어줬더니 다시 기어오르는군.”
겁대가리를 상실한 조정대신들의 행동에 대전에 들어섰던 조조군 장수들이 주먹을 거머쥐었다.
당장 달려들어 샌님들을 피떡으로 만들어버릴 것처럼 흉흉한 기세를 드러냈다.
그러자 강경하게 항변했던 조정대신들의 위세가 잠시 주춤했다. 칼자루를 거머쥐고 있는 쪽이 누구인지를 깨달은 것이리라.
“하북 백성들을 통제하기 위함입니다.”
“…….”
원소를 대역죄인의 죄목으로 처형한다면 분명 하북의 사대부와 호족들이 궐기를 일으킬 터.
반발은 증오로,
증오는 무자비한 전쟁으로 확산되리라.
조조는 원소군이 패전으로 멸망했음에도 여전히 하북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에 유협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상의 뜻이 그러하다면… 잠시 원소의 처결을 유예하도록 하라. 원소의 처결은 충분한 논의들을 거친 이후에 결정하겠다.”
지금까지 황실과 조정의 명망보다도 백성들의 안위를 항상 우선시해온 유협은 결국 조조의 진언을 수용했다.
이미 수많은 장졸들이 죽었다.
더 이상 하북에 참화를 일으킬 순 없다.
군벌들과 연합하여 황실을 위협했던 원소는 대역죄인이 분명하다. 하지만 섣불리 원소를 처형했다간 하북 전역을 휩쓸 후폭풍이 날아들 것이었기에 매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폐하! 하오나…!”
“원소는 대역죄인입니다! 극형이 마땅합니다!”
원소는 원술과 다를 바 없는 대역죄인이다.
관용과 동정은 있을 수 없다.
군벌들을 선동하여 반기를 획책했던 대역죄는 반드시 극형으로 물어야 했다.
강경한 결사반대에 직면한 유협은 한숨을 흘리면서 두 눈을 감았다.
* * *
반발은 당연했다.
조정대신들의 강경한 반발을 모두 예상하고서 포문을 연 것이었다.
원소는 대역죄인이다.
그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씨발! 개자식! 녹봉이나 타먹는 버러지들이!!”
흑발의 여인이 시장잡배처럼 거칠게 욕을 내뱉으면서 발걸음을 성큼성큼 내딛었다.
버러지들.
감히 어느 안전에 항변이냐.
거만하고 무능한 조정대신들을 모두 텃밭이나 일구는 촌부로 만들어버리겠다며 이를 빠득 갈았다. 숙청의 칼날을 휘두를 것처럼 흉흉한 조조의 모습에 제장들은 긴장된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당에게 길일을 잡아 칼춤을 춰야겠군.”
그냥 해본 말일까.
아니,
농담으로 한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연이은 숙청으로 정적들을 제거한 숙청전문가 조조의 발언이었기에 더욱 신빙성이 높았다.
“본초의 주변을 주도면밀하게 감시해라. 본초를 도모하려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알겠습니다.”
현재 원소는 몰락한 패주(敗主)의 신분으로 패국조씨 가문에 연금된 상태였다.
엄격하게 통제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원소의 목숨을 도모하려는 흉수들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돌발적인 발언으로 황실과 조정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조조는 이윽고 저택으로 향했다.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렸을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재회하기 위해서였다.
“어마니!”
“엄마!”
저택에 도착했을 때,
마침내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재회했다.
미리 소식을 들은 것일까.
추운 날씨였음에도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급한 발걸음으로 달려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되자 흉신악살처럼 무시무시한 살의를 발산하던 조조의 얼굴에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모성애가 깃들었다.
“앙아. 그리고 비아야. 그간에 별일 없었지?”
“네엡!”
조조가 물었다.
그에 조앙이 당찬 목소리로 답했다.
별일이 없어 다행이다.
만약 신변에 문제가 발생했다면 조정을 쓸어버리기 전에 저택의 시녀들부터 먼저 쓸어버렸으리라.
“건강하니… 정말 다행이다.”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토끼처럼 귀여운 아이들을 꼭 끌어안았다.
돌아왔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
아이들의 따스한 체온을 느끼면서 집에 돌아왔음을 재차 실감했다. 눈물을 뚝뚝 떨어트릴 것처럼 숙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조앙과 조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부지는요?”
“아빠…! 안 보여!”
조앙과 조비가 빤히 쳐다보면서 물었다.
아빠.
엄마와 같이 떠난 아빠가 없다.
아이들의 물음에 조조는 잠시 침묵을 삼켜야 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한 듯한 모습이었다.
“주군! 주구우운!!”
아버지와의 재회를 기대하는 자식들에게 슬픈 소식을 전하려 했을 때,
주황빛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다급하게 소리치면서 달려왔다.
군사좨주(軍師祭酒) 곽가였다.
바닥이 빙판처럼 꽁꽁 얼어붙었음에도 곽가는 재빠른 전광석화를 시전했다.
그 결과-.
“꺄아아아악!!”
우당탕탕, 하는 소리와 함께 넘어졌다.
그리고 굴렀다.
데굴데굴 구르는 도토리를 보는 것처럼.
“무슨 일이지, 봉효.”
“아악…! 머, 머리에서 피가!”
“머리는 괜찮으니 호들갑 떨지 말게.”
“네엡.”
큼큼.
곽가가 쑥스러움에 찬 헛기침을 했다.
“재밌다! 한 번 더!”
패국조씨 가문의 말괄량이 소녀가 꺄르륵 웃으면서 곽가에게 손을 뻗었다.
크흠흠…!
그에 곽가는 재차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수개월만의 재회일세. 잠시 재회의 기쁨을 미뤄야 할 정도로 급한 일인가.”
“…송구스럽습니다.”
곽가가 낯빛을 흐리면서 대답하자 조조는 중차대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북에서 반란이 벌어졌나.
아니면 유언이나 유표가 움직인 것인가.
조조는 조앙과 조비를 시녀들에게 맡기고서 총애하는 참모의 보고를 기다렸다.
‘시시콜콜한 일에 불과하다면… 한겨울에 얼어붙은 신원미상의 변사체로 만들어주겠다.’
하지만 곽가가 세작들에게 입수한 첩보는 분명 ‘시시콜콜’의 한계를 아득하게 초월한 보고였다.
“주군…. 유언이 죽었습니다.”
익주목(益州牧) 유언이 사망했다.
병마 때문일까.
아니면 고령으로 인한 노환 때문일까.
거병한 군벌들을 모두 진압하여 파촉(巴蜀)을 석권했던 한나라 황실의 종친이 죽었다. 유언이 허무하게 사망했다는 소식에 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