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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570화 (570/616)

<57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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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에서 은밀한 밀회.

알콩달콩한 연인들처럼 무릎베개.

호오….

지금까지 고지식한 분인 줄로만 알았는데.

고모님에게 이런 과감한 면모가 있었을 줄이야.

꽃무릇처럼 얼굴을 붉게 물들인 고모님으로부터 전말을 들은 순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완고하신 고모님께서 공세를…! 주군에게 무릎베개를 허락하다니! 주군도 분명 고모님에게 마음이 있으신 게 분명하네요.’

주군과 고모님을 맺어주는 일이 가시밭길을 거니는 것처럼 고단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주군과 고모님은 느리게나마 천천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있는 중이었다.

답답할 정도로 느리지만,

아무튼 진행되고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축하드려요, 고모님! 분명 대장군도 고모님의 대담함에 푹 빠졌을 거예요.”

“푸, 푹 빠지다뇨…. 크흠!”

순유의 대답에 순욱은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결코 싫지는 않았다.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안타까움에 점철된 진녹색 눈동자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글쎄요.”

순유가 책상 위에 턱을 괴고서 물었다.

주군을 뇌쇄시킬 방법.

확고하게 함락시킬 추가타가 필요하다.

당연히 고지식한 고모님은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겠지. 어려움을 호소하는 고모님을 돕고자 순유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나섰다.

“걱정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그래서 걱정인데요….”

괜히 말했다.

끝까지 침묵을 지켰어야 했는데.

혹시라도 도움을 구할 수 있을까,

그래서 조카님에게 사실대로 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불안과 혼란뿐이었다.

아담한 가슴을 두드리면서 고양감을 표출하는 순유의 모습에 순욱의 얼굴에 짙은 수심이 깃들었다.

“대장군을 오랫동안 보필한 저를 믿으세요! 절대로 기대를 배신하지 않을게요. 대장군의 심중은 훤히 꿰뚫고 있으니까요.”

순유는 이성휘의 심복들 중에서도 최측근에 해당되는 참모였다. 당연히 이성휘의 속마음을 손바닥 보듯이 간파하고 있을 터.

자신만만한 순유의 모습에 순욱은 반신반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애에 문외한이다.

곁에서 도와줄 조력자가 필요했다.

이성휘에게 무릎베개를 해주면서 더욱 마음이 깊어진 순욱은 초조함을 이어나갔다. 연모하는 사내의 애정을 간원하는 간절한 애달픔이 두 눈에서 느껴졌다.

“그럼… 조카님이 바라는 게 뭐죠?”

막연한 기대감을 느낀 순욱이 반색하면서 조카님에게 물었다.

분명 바라는 게 있을 터.

결코 단순한 호의는 아닐 것이었다.

과연 한나라의 상서령답게 선택을 고민하는 와중에도 정확하게 순유의 속마음을 간파해냈다.

“에이, 제가 뭘 바라겠어요? 고모님께서 곤혹을 겪으시니까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눈치 챘으니까 어서 말하세요.”

순유가 손사래를 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순욱은 단호하기만 했다.

“그, 그럼…! 제발 다시 집필할 수 있게 해주세요!”

결국 고모님에게 본심을 간파당한 순유는 절박함을 토로하면서 두 손 모아 싹싹 빌었다.

집필 재개.

공이와 달이의 부활.

염원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오랫동안 붓을 놓았음에도 집필의 염원을 한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순유는 연애의 달성을 조건으로 연재 중단의 원흉과 거래를 하려 했다.

“또 불순하고 저속한 글들을 쓸 셈인가요? 아직 교육이 덜 된 모양이군요. 조금은 개과천선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에 순욱은 눈보라처럼 싸늘하게 내려앉은 눈길로 순유를 노려보았다.

* * *

이성휘 또한 순욱과 마찬가지로 얼떨떨함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대체 왜.

무슨 이유로 무릎베개를 해준 걸까?

단순한 감사인사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대담한 행동이었기에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자애로운 상냥함이 느껴졌던 순욱의 진녹색 눈동자를 떠올린 이성휘는 점점 고심에 빠지게 되었다.

‘도덕과 예법을 중시하는 상서령이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부디 기우였으면 좋겠다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을 열렬히 연모하는 여인들의 유혹에 도취되어 관계를 가졌던 적이 몇 번이던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조홍. 조인. 여포. 장료. 초선.

벌써 다섯 명의 미녀들을 첩으로 두었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분명 아내의 노여움이 폭발하게 될 터.

아름다운 여장부들과 광란의 하룻밤을 보낸 이후에 제정신으로 돌아온 이성휘는 귀신보다 무서운 아내를 떠올리면서 불안에 떨었다.

“공달이라면 몰라도 상서령이 그럴 리가…. 여난을 연속으로 겪더니 착각이 지나칠 정도로 심해졌군.”

순욱은 조정의 신하들과 재야의 명사들로부터 많은 존경과 경의를 받고 있는 고결한 학자였다.

나 같은 망나니를 좋아할 리가 없겠지.

그래,

내 착각이 틀림없다.

지금까지 여난의 소용돌이에 번번이 휩쓸렸기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기우를 느낀 것이리라. 오늘 무릎베개를 받았던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접점도 없었으니.

“무슨 일 있음? 고뿔이라도 걸렸음?”

흑발을 늘어뜨린 소녀가 죽간들을 가득 안아들고서 다가왔다.

어사중승(御史中丞) 사마의.

대장군부의 활력이나 다름없는 당돌한 소녀였다.

산토끼처럼 고개를 갸웃하는 사마의의 모습에 이성휘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업무가 우선이므로.

부지런히 업무를 이어나가는 사마의의 모습을 바라보던 이성휘는 뇌리를 어지럽힌 상념을 끊어냈다.

“근데 왜 본좌만 등청하라고 한 거임?”

분명 휴일이었는데.

따뜻한 구들방에서 낮잠을 즐기던 사마의는 난데없는 호출에 끌려와야 했다.

뺨에 바람을 넣으면서 항의의 뜻을 나타냈다.

양수와 제갈량은 달콤한 휴식을 만끽하고 있을 터.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집무실에 등청하여 잔업을 맡게 된 사마의가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당연했다.

“일이 있었다.”

“무슨 일?”

“말해줄 순 없지만… 아무튼 일이 있었어.”

“그건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말임….”

달콤하고 보드라운 무릎베개에 마음이 심란해진 이성휘는 급히 사마의를 호출했다. 사마의의 뚱한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서였다.

효과는 대단했다.

사마의 덕분에 심란했던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다.

지금까지 사마의를 친여동생처럼 여겼기 때문에 긴장된 마음을 내려놓고 마주할 수 있었다.

“오늘 저녁을 대접할 테니 힘내라.”

“흥! 그런 걸로 만족할 본좌로 보임?!”

“혹시 마구간에 빈자리가 있나… 일단 문원에게 물어봐야겠군. 말한테 물려가도 모른다.”

“히에에엑!!”

불만을 토로하는 여동생을 상냥한 방법으로 진정시킨 이성휘는 업무를 계속 이어나갔다.

대장군부를 방문한 순욱이 친절하게 요점들을 정리해준 덕분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녀가 직접 가르쳐준 대로 업무들을 진행하자 문제를 매우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근데 무슨 고민 있음?”

사마의가 고개를 내밀면서 물었다.

호박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소녀의 눈동자와 마주한 이성휘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 마음에 걸리는 고민이 있다.”

“뭐임? 본좌가 손수 해결해드림.”

“바보는 들어도 모를 텐데.”

“씨잉!”

이성휘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사마의는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토닥토닥-!

고사리처럼 아기자기한 손으로 이성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앙증맞은 사마의의 모습에 이성휘는 근심을 내려놓고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아만은 위공(魏公)…, 그리고 위왕(魏王)에 등극하려 하겠지. 한나라 황실의 존립을 중시하는 순욱과 결국 대치할 수밖에 없다.’

천하통일을 위협하는 유일한 적수였던 원소군을 멸망시킨 조조는 명실상부한 최강자가 되었다.

하북을 제패하고 원소를 휘하로 끌어들이며 천하의 제후들을 압도했다. 당연히 조조는 여세를 몰아 승상의 자리보다 높은 반열에 오르려 할 것이었다.

“어떻게든 말리고 싶은데….”

조조가 업성에 병력과 물자들을 집중하여 배치시킨 것은 후일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위군(魏郡)을 새 터전으로 삼는다.

그리고 한나라의 지배력에서 완전히 독립된 새로운 나라를 개국한다.

드디어 위나라의 서막이 열리게 되리라.

사두마차처럼 거침없이 전진할 조조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근심을 이어나갔다. 훗날의 참극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기에 더욱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

“대장군.”

손등을 연이어 두드리면서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을 때,

바깥을 지키던 무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천순씨 가문에서 기별이 왔습니다.”

“기별?”

순욱도,

순유도 아닌….

영천순씨 가문에서 보내온 기별.

대체 무슨 일로 가문에서 기별을 보내왔지?

위나라의 탄생을 정면에서 적대할 순욱을 염려하며 걱정을 이어가던 이성휘는 새로운 고민에 당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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