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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569화 (569/616)

<5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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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라운 허벅지.

코를 자극하는 달콤한 체취.

부끄러움에 물든 진녹색의 눈동자.

붉게 물든 뺨과 얼굴을 간질이는 숫처녀의 숨결.

새하얀 허벅지에 머리를 올리고서 수줍음에 바르르 떠는 숫처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호화로운 금상첨화.

“…….”

어안이 벙벙하다.

대체 무슨 상황이지?

당최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릎베개를 해주겠다는 순욱의 제안에 반쯤 본능적으로 이끌린 이성휘는 그대로 눕게 되었다.

“어, 어떤가요? 처음이라 잘, 모르겠어서….”

처음이다.

당연히 처음일 수밖에 없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곱게 자란 사대부의 여식이 외간남자에게 무릎을 허락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해봤을 리가 없지 않은가.

상아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미녀는 쑥스러움에 물든 한숨을 폭 흘리면서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가요…?”

어색하다.

집무실에 어색한 공기만이 가득했다.

그저 얼떨떨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성휘는 보드라운 허벅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허도로 귀환한 본처에게 발각된다면 필시 이번에야말로 극형을 면치 못할 터. 분명 휘하 장수들에게 잔혹한 채찍질을 명령하리라.

‘그래도 들키지만 않는다면….’

휘하의 아름다운 장수들과 음탕한 광란을 만끽했던 이후부터 양심이 더욱 옅어졌다.

네모였던 양심이 부딪치고 또 부딪치기를 반복하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동그라미가 되어버렸다.

“…대장군.”

“예.”

무릎베개를 허락한 숫처녀가 고개를 숙이면서 사내와 시선을 마주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걸까.

도톰한 입술을 우물대면서 주저하던 순욱은 이윽고 용기를 내어 이성휘에게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를 구해줘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전하고 싶은 말들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얽혀버린 실타래처럼,

사방에 돋아난 들꽃들처럼 말이다.

-저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대장군은… 왜 저에게 이렇게까지 잘해주시죠?

-그러니까 결국 오해를 해버리잖아요…. 당신이 나를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허황된 기대를 해버렸어요.

홍수가 범람하듯 몰아닥친 수많은 말들.

먼저 무슨 말을 전해야 할까.

이성휘의 시선을 응시하면서 조용히 뇌리를 정리하던 순욱은 반드시 전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당연한 일입니다. 주군께서도 영천순씨 가문의 공자를 무조건 생포할 것을 명령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뇨, 그래도 고마워요.”

당연히 해야 될 일이었다.

분명 당신은 그렇게 말할 테죠.

정직하고 성실한 당신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며 겸허히 대답할 게 분명해요.

짐작했던 예상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이성휘의 대답에 순욱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없는 동안에 정성을 다해 오라버니를 후대해줘서 고마워요. 직접 의원들까지 보내주셨잖아요.”

적당히 체면치레로 예우를 표시하려 했다면 의원들을 발탁하여 보내는 수고까지 감당하진 않았겠지.

오라비에 대한 감사에 자신의 마음을 슬쩍 더했다.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들키지 않기를 바랐다.

사내의 얼굴을 묵묵하게 응시하던 여인은 섬섬옥수처럼 고운 손길을 뻗으면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따스함이 담긴 진녹색 눈동자.

잘 익은 살구처럼 물든 뺨.

상냥하게 머리를 쓰다듬는 자애로운 손길.

이성휘는 탄성만을 흘렸다.

꿈에서나 겪을 것 같은 얼떨떨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보답이에요. 백성들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는 대장군에게 주는 상이기도 하고요.”

아름다운 미녀가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따사로운 햇살처럼 그녀의 순결한 미소에 이성휘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천아(天鵝)의 꽃.

상서대를 관장하는 아름다운 상서령.

백옥처럼 단아한 기품과 용모를 자랑하는 영천순씨 가문의 아가씨.

조정에 출사한 관료들이 맹목적으로 상서대에 지원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름다운 미녀가 매일 달콤한 포상을 내려준다면 분골쇄신하여 업무에 매진할 테니까.

“후후. 이러니까 대장군이 아이처럼 보이네요.”

가만히 바라보면서 손길을 받아들이는 이성휘의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보였던 걸까.

순욱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이성휘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자애롭고 따뜻한 손길이 이어질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마음속에서 몰아쳤다.

“…누가 볼까 두렵습니다.”

“괜찮아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요.”

숫처녀인 대명문가의 여식이 외간남자와 다정한 애정행각을 벌였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면 영천순씨 가문의 위광에 온갖 오명들이 가해질 터.

게다가 순욱은 영천순씨 가문을 대표하는 재녀였기에 더더욱 위험했다.

혹시라도 누를 끼칠까,

아름다운 재녀의 앞길을 막게 될까 노심초사하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꼭 한 번쯤은… 이렇게 시선을 마주하고서 감사를 전하고 싶었어요. 드디어 제 바람이 이뤄졌네요.”

하지만 그럼에도 순욱은 개의치 않고 외간사내에게 무릎베개를 허락했다.

연모하니까.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기에.

찰나에 불과하더라도.

설령 잠깐으로 끝나게 되더라도.

가까운 지척에 마주앉아 서로를 바라보면서 연모하는 사내의 마음을 흔들고 싶었다.

“혹시 두근거렸나요?”

순욱이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손가락을 뻗어 이성휘의 콧등을 꾹 눌렀다.

고아한 기품과 총명함으로 관료들의 모범으로 칭송받는 상서령답지 않은 앙큼한 장난이었다.

“농담이에요.”

한손으로 입가를 폭 가리면서 웃음을 흘렸다.

* * *

아슬아슬하고 대담했던 시간을 끝낸 뒤,

순욱은 곧장 상서대로 복귀했다.

그 뒤-.

상서대의 관료들을 모두 퇴청시켰다.

직속상사의 일방적인 명령에 관료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결국 직장에서 퇴근했다.

“아아아아아!! 무, 무슨 짓을…! 무슨 짓으으을!!”

상아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은 체면마저 집어던진 채 비명을 내질렀다.

홀린 게 분명하다.

틀림없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대명문가의 여식이 어찌 외간남자와 과감한 애정행각을 나누었단 말인가. 집안 어르신들께서 만약 아시게 된다면 쩌렁쩌렁한 불호령을 내릴 게 분명했다.

‘무슨 낯으로 대장군을 마주해야 할지….’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지 리가 없으니까.

외간남자에게 무릎베개를 종용했던 모습에 크게 환멸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가벼운 여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으으…! 분명 가벼운 여자라고 생각하겠죠…. 조카님처럼 음란한 치녀라고 여길지도 몰라요.”

영천순씨 가문의 명망을 깎아먹는 망나니는 조카님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어쩌자고 그런 짓을 저지른 걸까.

‘그래도… 진심으로 좋아하니까.’

그저 말뿐인 감사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가까워지고 싶다.

좀 더 가까운 관계가 되고 싶었다.

단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끌리게 된 걸까.

참고 또 참으면서 억눌러온 풋풋한 감정이 결국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절대로 마음을 고백해선 안 된다는 도덕심의 제한이 마침내 반발을 일으킨 것이리라.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엄청 귀여웠어요….’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올린 채 그대로 굳어버린 이성휘의 모습을 상상하자 미소가 흘러나왔다.

파렴치한 짓을 했다.

하지만 파렴치한 짓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쑥스러워하는 이성휘의 모습을 결코 보지 못했겠지.

귀여웠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책상에 엎드린 순욱은 실웃음을 이어나가면서 행복했던 찰나를 뇌리에 선명히 집어넣었다.

“고모님, 계세요~.”

문 너머에서 들려온 간질이는 목소리.

그 목소리가 귓가에 전달되자마자 순욱은 날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분명 조카님…,

비서랑(秘書郞) 순유의 목소리였다.

혹시라도 조카님에게 들킬까 두려웠던 순욱은 자리에 정좌하고서 상서대의 손님을 맞이했다.

“오, 오셨어요… 조카님.”

“상서대의 관료들이 모두 퇴청했더라고요.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일벌레로 유명한 상서대의 관료들이 오후가 되자마자 모두 퇴청하다니. 혹시 상서대에 불이라도 났나.

의아함을 느낀 순유는 곧바로 상서대를 찾았다.

“아무 일도 없습니다. 모두 과중한 업무 때문에 피로가 쌓여 퇴청을 명령한 것입니다.”

“그런가요.”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하던 순유는 고모님의 머리와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것에 의아함을 느꼈다.

자기관리에 누구보다 철저한 고모님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다니? 집에서도 결코 나태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순욱이었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혹시 고모님, 대장군과 만나셨어요?”

“그, 그럴 리가요! 그럴 리 없잖아요!”

순유가 두 눈을 빛내면서 슬쩍 미끼를 던졌다.

그 순간,

연애에 숙맥인 숫처녀가 단번에 걸려들었다.

“헤헤, 만나셨구나~ 그것도 단둘이서요.”

고모님과 대장군이 은밀하게 만났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아차렸다.

순유는 능글맞은 너구리에 빙의하여 히죽히죽 웃음을 터트렸다. 드디어 고지식한 고모님이 연애에 발걸음을 내딛었음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셨어요? 고지식한 고모님께서 설마 무릎베개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는 애정행각을 하셨을 리는 없는데….”

“히익!”

취조가 끝나기가 무섭게 노골적인 반응이 날아들었다.

순유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죠,

이 새된 반응은.

거짓말에 서투른 계집아이나 낼 법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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