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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567화 (567/616)

<5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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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수척한 오라버니의 모습에 경악한 순욱은 섬뜩해진 간담을 쓸어내려야 했다.

생명에 지장이 없다.

탕약을 마시면서 원기를 회복하고 있다.

오라버니에게 대답을 듣고 나서야 순욱은 철렁했던 마음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참으로 면목이 없구나. 영천순씨 가문의 위상에 먹칠을 하고 말았다.”

오환족 군세들을 이끌고 업성으로 진격했다가 이성휘의 매복에 걸려 대패했다.

천하의 명사들은 세력을 멸망으로 이끌었던 어리석은 참모를 크게 질책하면서 비웃겠지. 세간의 지탄이 두려웠던 순심은 낯빛을 흐리면서 고개를 숙였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오라버니께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사면초가에 빠진 주군을 구원하고자 누구보다 용감하게 전장에 출진하지 않았던가.

짙어지는 패색을 직감한 장수들이 주군을 배신하고서 돌아섰던 순간에도 결코 충절을 꺾지 않았다.

오라버니가 자랑스럽다.

비록 적대관계의 참모였다고 할지라도.

충성과 결의를 끝까지 관철했던 오라버니는 영천순씨 가문의 명예를 드높인 하북의 충신이었다. 순욱은 진심으로 오라버니에게 경의를 표했다.

“꼼짝없이 내황에서 대패를 당하다니…. 과연 대장군은 천하가 내린 무인이더구나. 과연 소문대로 기만책의 귀재였다.”

거짓 정보로 참모들을 현혹했다.

본대를 동원하여 업성의 방위를 뒤흔들었다.

재빠른 기동력을 발휘하여 내황성에서 출진한 오환왕 답둔을 신출귀몰한 전법으로 전멸시켰다.

분명 수세에 몰린 상황이었거늘.

어떻게 악전고투의 전황을 단번에 뒤집을 기만책을 고안해냈단 말인가.

세력을 멸망시키고 주군을 패배로 떨어트린 이성휘가 원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에게 존경과 경탄을 느꼈다.

“오라버니, 본초 공께서는 무사하십니다. 지금쯤 허도에 무사히 도착하셨을 거예요. 승상께서 친히 본초 공의 사면을 이끌어내실 것이니 안심하세요.”

“…다행이구나. 고맙다.”

여동생의 대답에 순심은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력이 멸망했다.

결국 천하통일의 대업은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주군만큼은 반드시 무사하시길 염원했다.

수많은 장졸들이 주군을 지키고자 초개처럼 목숨을 내던지지 않았는가. 순심은 망국의 신하가 되는 치욕을 겪었음에도 끝까지 충성을 관철했다.

“저는 오라버니께서… 무사하셔서 정말 기쁩니다.”

강산이 핏물로 물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새하얀 설원을 시산혈해로 뒤덮었던 아비규환의 전쟁이 수많은 생명들을 삼키고 지나갔다.

그렇기에 매일 걱정하면서 오라버니를 기다렸다.

무사하기를.

다시 오라버니와 만나기를….

순욱은 차오르는 눈물을 억누르면서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다시 재회하여 기쁘구나. 홀로 살아남았을 때는… 그저 치욕이라 생각했는데, 너를 보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절하게 쓰러지는 오환족 전사들을 바라보면서 죽기를 각오했다. 검을 뽑아들어 조조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전장에서 죽으려 했다.

하지만 결국 포로로 붙잡히고 말았다.

순심은 순욱의 오라비이자 영천순씨 가문의 종친이었기에 결코 죽여선 안 된다는 엄명이 병사들에게 내려졌기 때문이다.

업성의 최후를 보고 말았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멸망을 지켜보아야 했다.

두 눈을 감으면서 당시를 떠올린 순심은 회한에 잠긴 쓴웃음을 지었다.

“대장군에게 대신 감사를 전해다오. 직접 은인에게 감사를 전해야 마땅하나… 너에게 맡기고 싶구나.”

“분부를 따르겠습니다.”

하북을 복속한 조조군은 원소군 인사들에게 귀순을 종용하면서도 모두 석방을 윤허했다.

그리고 조조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이성휘는 석방된 인사들의 생계를 지원해주었다. 마지막까지 주군에게 충성을 다했던 충신들에 대한 예우였다.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다.

멸망의 원흉이지만…,

그는 숙적들의 명예까지 배려하는 명예로운 자였으므로.

오라비의 당부에 순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물러나보겠습니다. 오라버니, 부디 잊지 마시고 탕약을 잘 챙겨드세요.”

“고맙구나.”

상아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미녀는 경애하는 오라버니에게 인사를 올린 뒤에 내실을 벗어났다.

탁-.

물러난 뒤에 장지문을 닫았다.

그리고 잠시 문 앞에 우두커니 섰다.

계속 걱정하면서 안부를 기다렸던 오라비와의 재회가 얼떨떨하게 느껴졌다. 혹시 꿈은 아닐까 두려워했을 정도였다.

“아가씨, 공자께선 괜찮으십니까?”

“다행히 건강하세요.”

순욱의 대답에 노복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위군심씨 가문과 다른 사대부 가문들처럼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면 어쩌나…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모릅니다.”

죽음으로 충절을 완수하겠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들이 많았기에 두려운 것은 당연했다.

얼마나 걱정이 많았을까.

안쓰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상서령께서 오셨습니까.”

순욱이 잠시 담소를 나누고 있었을 때,

포의를 입은 사내들이 다가왔다.

순심에게 탕약을 올리고자 저택을 방문한 의원들이었다.

“진찰을 온 건가요?”

“대장군께서 보내셨습니다. 매일 어르신의 맥을 진찰한 뒤에 탕약을 올리고 있습니다.”

계속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약재와 곡식들,

그리고 건강을 보살필 의원들까지.

이성휘의 선의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지금까지 받은 은혜들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 망설여졌다.

대명문가의 여식으로서 가문을 대표하여 보은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마땅히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였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지금까지 받은 은혜들을 갚을 수 있을까.

경직된 표정을 지으면서 심사숙고를 거듭하던 순욱은 지금까지 간직해온 마음이 점점 짙어지는 것을 느꼈다.

* * *

틀림없었다.

이 감정은 사내를 향한 연모였다.

주군의 남편을 연모하게 되었다.

한없이 마음을 애태우면서 고민을 이어가던 순욱은 결국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게 되었다. 단단히 빠져버린 마음은 계속 사내를 볼 때마다 커져만 갔으니까.

“…대장군.”

결국 순욱은 행동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오라비에게 부탁받은 감사를 전하기 위해서라도.

한나라의 상서령은 쿵쾅쿵쾅 요동치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면서 대장군의 집무실로 향했다.

“또 일이야, 주인님?”

“주인님께선 해야 될 일들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집무실에는 대장군을 열렬히 사모하는 여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여포와 장료,

아름다운 여인들이 이성휘의 곁을 채웠다.

정실부인이신 주군에게 대장군의 첩으로 인정을 받지 않았던가. 여포와 장료가 이성휘의 첩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었다.

“내가 벼루를 갈아줄게!”

여포가 호기롭게 나섰다.

하지만 그 순간,

콰직-.

압도적인 괴력에 벼루가 박살났다.

덤으로 먹물까지 쏟아지면서 책상 위의 공문서들을 아예 못 쓰게 만들어버렸다.

‘다음에 다시 올까요…. 여포 장군과 장료 장군께서 계시니까, 방해하게 둬선 안 되겠죠.’

떠들썩한 목소리들을 몰래 경청하던 순욱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방해.

과연 나는 방해인 걸까.

연모하는 여인들과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는 이성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안타까움을 삼켰다.

“아.”

그로부터 한 시진이 지났을 때,

순욱은 재차 이성휘의 집무실에 발걸음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집무실에 선객이 있었다.

“서방님, 이번에 좋은 명주를 구했으니까 퇴청하고 같이 마시자! 그리고 진탕 퍼마신 다음에… 오랜만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분명 밤새도록 떠들어대도 모자랄 거야!”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쑥스러움에 물든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육감적인 몸매의 여장부,

패국의 여걸이라 불리는 하후돈이었다.

늠름하고 호탕하기로 유명한 맹장이었지만 오직 이성휘에게만 소녀처럼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뺨을 불그스름하게 물들인 하후돈은 이성휘와 시선을 마주하면서 활짝 웃음을 터트렸다. 연모하는 사내에게 보내는 연모와 경의의 표현이었다.

“좋아! 그럼 약속한 거다?”

여걸과 단둘이 마시는 술자리.

이성휘는 단번에 하후돈의 제안을 승낙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연모하는 아내의 부탁이었으니까.

“…….”

집무실을 출입할까 망설이던 순욱은 다시금 물러서야 했다.

여포와 장료,

그리고 하후돈.

모두 대장군과 혼례를 치른 여인들이었다.

지아비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그녀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뜻을 접기로 했다. 게다가 당장에 해결해야 될 일도 아니었으니까.

“본좌 왔음!”

“중달, 집무실에서 뛰지 마세요!”

“혹시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대장군 어르신?”

그 뒤-.

대장군부의 어린 참모들이 집무실을 방문했다.

사마의. 양수. 제갈량.

지혜롭고 총명한 재녀들이 대장군의 업무를 보필하고자 기꺼이 찾아왔다.

하후돈이 떠나자 썰렁해졌던 집무실의 분위기가 다시 떠들썩해졌다. 발랄한 소녀들이 마치 참새처럼 재잘대면서 이성휘에게 꼭 달라붙었다.

‘대체… 혼자 있을 때가 언제인가요.’

어느덧 퇴청이 가까워진 시각.

순욱은 곤혹이 느껴지는 의문을 느끼게 되었다.

혼자 있을 때가 없다.

항상 아내와 소녀들이 곁을 보필했다.

천하제일의 바람둥이로 명성을 떨칠 사내의 숙명이라고 할까. 순욱은 칠전팔기의 심정으로 계속 이성휘의 집무실을 방문했음에도 원하는 목적을 달성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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