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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562화 (562/616)

<56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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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령(尙書令) 순욱이 도착했다.

한나라의 상서령이 이성휘의 호위를 받으면서 당도하자 수많은 군중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모든 문무백관을 통솔하는 상서령이 왕림한 것이었기에 하북 백성들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했다. 상아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를 목격한 백성들은 경탄을 금치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서 오세요, 고모님.”

“오랜만이에요.”

엄동설한을 뚫고 업성에 당도한 고모님을 맞이하고자 비서랑(秘書郞) 순유가 도착했다.

정말 오랜만의 재회였다.

순욱은 내정(內政)을, 순유는 외정(外政)을 주로 담당했기 때문이었다.

업성에서 재회한 영천순씨 가문의 아가씨들은 안부를 묻고 답하면서 내성으로 향했다.

“대장군을 곤혹스럽게 만들진 않았겠죠?”

순욱이 진녹색 눈동자를 번뜩이며 물었다.

이실직고하는 게 좋을 거야.

나중에 들켜서 된통 설교를 당하고 싶지 않다면.

범죄자를 심문하는 듯한 고모님의 날카로운 물음에 순유는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과연 대장군을 남몰래 짝사랑하는 고모님다운 행동이었다.

“그, 그럼요…! 선조들의 올바른 미풍양속을 받들어 처신에 특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걸요.”

음란한 서적들을 연재하여 미풍양속을 크게 뒤흔들었던 범죄자답게 유려한 처세술을 자랑했다.

순욱은 그런 조카를 미심쩍은 눈길로 바라보았다.

어디서 거짓말을….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임이 분명했다.

차라리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바라는 게 낫지.

“고모님, 고모님.”

“네.”

순유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불렀다.

히죽-.

악동처럼 짓궂은 웃음을 흘렸다.

오랜만에 재회한 고모님을 놀릴 생각에 싱글벙글한 듯하다.

“대장군과 엇갈리지 않고 만나서 다행이에요. 고모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대장군이 병마들을 이끌고 나서셨거든요.”

“그, 그런가요?”

“직접 고모님을 맞이하고자 나서신 거예요. 그만큼 고모님을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크흠! 대장군은 근면한 성품이시니까요.”

순유의 의미심장한 발언에 순욱은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돌렸다.

각별히.

대장군이 나를 각별하게 여긴다니….

짓궂은 농담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갈대처럼 흔들리던 마음이 다시금 애처롭게 요동쳤다.

“조카님…. 오라비께선 괜찮으신가요?”

마음을 가라앉힌 순욱이 근심을 내비치면서 순유에게 물었다.

칩거에 들어가셨다고 들었다.

분명 고통스러운 마음의 병에 빠지셨을 터.

어떻게 오라비를 위로할 수 있을까.

순욱은 오라비를 원소군에 두고 조조군에 임관했던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을 원망하면서 죄책감을 이어나갔다.

“이틀에 한 번씩 대장군께서 사람을 보내어 안부를 확인하고 계세요. 저도 가끔씩 들러서 확인하고 있고요.”

“예? 대장군께서요?”

“업보를 크게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치중종사 심배처럼 될까… 걱정이 크셨던 것 같아요.”

“…….”

업성이 함락되고 세력이 패망하자 원소를 추종했던 수많은 사대부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멸망을 막지 못했다.

결코 구차하게 연명할 생각은 없다.

집단으로 목숨을 끊었던 위군심씨 가문처럼 수많은 사대부 가문들이 자결을 맞이했기에 이성휘는 순심을 계속 걱정했다.

“매번 대장군에게 근심만 끼치네요….”

어깨를 바르르 떨면서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대장군이 오라비의 신변을 보살폈음을 사실을 알게 된 순욱은 심려를 드러냈다.

한없이 고마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너무도 미안했다.

사력을 다하여 은혜를 갚겠다고 다짐했음에도 계속 빚만 늘어날 뿐이다. 노력을 거듭해서 상서령의 지위에 올랐지만 보은(報恩)은 까마득하기만 했다.

* * *

업성까지 순욱을 호위했던 이성휘는 병마들을 이끌고 주변 군현들을 정찰했다.

전쟁이 끝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방심할 순 없었다.

조조군의 지배를 뒤엎으려는 무리들이 도처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성휘는 반란을 방지하고자 병마들을 동원한 무력시위를 자주 벌였다.

“으아앗! 춥다, 추워!”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콧물을 훌쩍이면서 어깨를 바들바들 떨었다.

기병들을 이끌고 설원을 질주했으니 추위에 지치는 것은 당연했다. 그녀를 호위했던 무관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는지 낯빛이 새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천하무쌍도 추위는 못 이기는 모양이군.”

“당연하잖아, 주인님! 북방의 추위는 진짜 지옥이라고…!”

병주 출신이었던 여포는 북방의 엄동설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겨울이 들이닥칠 때마다 얼어죽은 시체들이 즐비할 정도였다. 병주에서 계속 겨울을 맞이했던 여포는 꽁꽁 얼어붙은 시체들을 몇 번이고 보아왔다.

북방의 추위를 또 경험하다니…!

여포는 크게 한탄하면서 경쾌한 재채기를 했다.

“역시 많이 춥군.”

이성휘가 피풍(披風)을 벗어 여포에게 덮어주었다.

히히히.

여포가 웃으면서 피풍을 꾹 움켜잡았다.

계속 입고 있었기 때문일까.

피풍에 남은 온기가 꽁꽁 얼어붙은 몸을 감싸는 것처럼 따스했다.

“무리를 하게 만들어 미안하다. 연이은 악전고투로 피로가 쌓였을 텐데.”

“괜찮아, 주인님하고 함께잖아.”

전혀 힘들지 않다.

경애하는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한없이 상냥한 사람이다.

그를 바라보면서 배시시 웃었다.

대장군의 피풍을 걸친 여포는 사랑스럽게 눈웃음을 지으면서 이성휘를 위로했다. 그에 이성휘는 옅은 미소를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고맙다.”

“당연히 고마워해야지. 이 천하무쌍이 이렇게 헌신적으로 도와주는데.”

맞는 말이다.

당연히 고마워해야 마땅했다.

한손을 뻗어 여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여포는 애완동물처럼 머리를 숙이면서 부드러운 손길을 받아들였다.

“과분하게 받은 인복 덕분이겠지. 용맹하고 충성스러운 장수들을 휘하에 두고 있으니.”

“크흠! 쑤, 쑥스럽잖아!”

이성휘의 칭찬일색에 여포는 말을 더듬으면서 부끄러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온몸을 뒤덮은 추위를 몰아내고자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한 것처럼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경애하는 주인님의 칭찬일색에 도취한 여포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부끄러우면서도 속으로는 몹시도 기뻤는지 헤실헤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어머, 오늘도 뜨거우시네요. 정말 부러워요.”

정찰에서 돌아온 장료가 여포와 이성휘를 응시하면서 고혹적인 눈웃음을 지었다.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알콩달콩한 분위기라니.

전생에 부부가 아니었을까.

쑥스러움에 물든 표정으로 우물쭈물하는 여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문원, 이상은 없었나?”

“여전히 경계하는 우리들을 눈치였어요. 하지만 적개심은 없는 듯 보였습니다.”

원소군을 추종했던 하북 백성들이 지배권을 찬탈한 중원 세력을 하루아침에 받들 리가 없었다.

민심을 얻을 선정이 필요했다.

또한 반기를 억누를 무력이 절실했다.

그렇기에 조조는 순욱과 이성휘에게 하북의 통치를 맡긴 것이다. 과연 철두철미한 철혈의 승상다운 현명함이었다.

“주인님, 이제 돌아가실까요?”

장료가 이성휘와 팔짱을 끼며 물었다.

요염한 눈웃음을 지었다.

의도적으로 젖가슴을 내밀어 유혹하듯이 흔들었다.

본처(本妻)께서 자리를 비우셨다.

본격적으로 주인님과 불륜을 치를 기회였다.

장료는 조조가 군세들을 이끌고 귀환하자마자 경애하는 주인님과 동침할 궁리부터 했다. 여포도 마찬가지였는지 계속 곁눈질로 이성휘의 눈치를 살폈다.

“말머리를 돌려라. 업성으로 귀환한다.”

“응!”

이성휘가 고삐를 잡아당기면서 명령했다.

그에 여포와 장료가 대장군의 분부를 받들었다.

* * *

본처께서 떠나셨다.

그 말은 즉,

무주공산(無主空山)이라는 뜻이었다.

이성휘와 이어질 천재일우의 기회임을 간파한 순유는 고모님의 설득에 총력을 기울였다.

-주군을 고모부로!

-고모님에게 야설 집필을 허락받기 위해.

처음 느끼는 감정에 전전긍긍하는 고모님을 돕고자 기꺼이 나섰다. 효성이 지극한 조카로서 고모님의 어려움을 방관할 순 없었으니까.

“고모님의 식사에 미약을 탈까?”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어떻게든 연애사업을 도우려는 순유 본인도 경험이 전혀 없는 숫처녀였다.

야설로 연애를 배웠다.

현장조사를 통해 배웠던 음담패설들로 어렴풋이 남녀관계를 익혔다.

그렇다보니 당연히 정상적일 리가 없었다.

“어떻게 고모님을 설득하지? 주군도 고모님을 내심 좋아하는 것 같던데….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잔뜩 먹인 다음에 합방을 유도하면 되지 않나.”

실로 파렴치한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예주의 대명문가인 영천순씨 가문의 아가씨가 꺼낸 발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천박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회를 만들어도 정작 고모님이 행동에 옮기기 않으면 안 되는데….”

청렴하고 겸허한 학자로서 사대부와 호족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는 고모님이 과연 행동으로 보여주실까?

모르겠다.

순유가 생각하는 순욱은 잠자리에서도 경건한 목소리로 경전을 읊을 여자였으니까.

끝까지 주저하고 망설일 가능성이 높았다.

불가능에 가까운 난이도였기에 순유는 침음을 삼키면서 고민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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