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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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끝자락에 도달했을 때,
지독했던 ‘겨울전쟁’이 마침내 종결되었다.
업성이 함락되었다.
결국 원소군이 멸망하고 말았다.
마음을 애태우면서 결과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승전을 거뒀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환호성을 내질렀다. 드디어 오랫동안 이어졌던 천하이강의 구도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기 때문이다.
“…승상과 대장군이 이겼다고?!”
금발을 늘어뜨린 소녀가 벌떡 일어섰다.
승전보가 당도했다.
대전에서 회의를 주관하던 황제는 환열이 느껴지는 표정을 지으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세력들을 멸망시켰던 조조군은 결국 유일한 호적수였던 원소군마저 멸망시키면서 천하통일의 대업에 성큼 다가섰다.
“원소가 무너지다니…!”
“드디어 조정군이 하북을 탈환했소이다!”
기주(冀州). 유주(幽州). 병주(并州). 청주(青州).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하북이 마침내 한나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난세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사막에서 일렁이는 신기루처럼 요원하던 희망이 마침내 코앞으로 다가온 듯했다.
조정대신들 또한 유협처럼 감격을 토해내면서 하북의 승전보를 크게 기뻐했다.
“아아, 드디어…!”
유협이 감격에 찬 울음기를 터트렸다.
마침내…!
드디어 마침내!
선황들의 실책과 무능으로 시작되었던 끔찍한 난세가 끝나가고 있었다. 끔찍한 괴물처럼 사납고 잔인했던 난세가 비명을 토해내면서 쓰러져갔다.
“통일까지 머지않았습니다!”
“분명 선황들께서도 크게 기뻐하실 것이옵니다!”
중원에 이어 하북까지 정복했다.
남은 지역들은 변방들 뿐.
결국 조조군의 공세에 무릎을 꿇게 되리라.
황위를 찬탈하려는 유표와 유언은 교활한 승냥이에 불과했다. 하북 세력을 멸망시킨 조조군의 적수가 될 리가 없었다.
‘오라버니…!’
엄동설한의 추위를 돌파하면서 혈전을 벌였을 이성휘의 모습을 떠올리자 눈물이 차올랐다.
백성들의 평화와 안위를 지켜내고자 매번 혈혈단신으로 싸워온 이성휘는 평생 은혜를 갚아도 모자랄 정도로 많은 수고를 해준 은인이었다.
“이제 대장군이 돌아오는 것인가?”
유협이 물었다.
그에 하북 전선에서 도착한 무관이 답했다.
“아닙니다. 대장군은 혼란에 대비하여 업성에 주둔하고 승상이 죄인들을 압송하여 올 것이옵니다.”
“…….”
왜 오라버니가 남고 불여우가 온단 말인가.
반대가 되어야지.
불여우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면 더 좋고.
혹한의 눈보라가 몰아치는 하북에 체류하는 오라버니를 걱정하면서 조조에게 적개심을 표출했다.
‘결국 조조에게… 양위를 해야겠지.’
황위를 넘기겠다.
4백 년 왕조의 막을 내리겠다.
분명 출정하기 전의 조조에게 그리 약속했다.
무능과 가렴주구로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렸던 한나라 황실에 염증을 느낀 유협은 태평성대를 이끌 새로운 패자에게 양위하려 했다.
하북을 제패한 여장부가 귀환하면 곧바로 만인지상에 오르려는 야심을 드러낼 터. 탐욕스러운 간웅이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았다.
‘불여우가 만인지상에 오르면… 오라버니는 황제의 국서(國婿)가 되시겠죠. 지금까지 백성들을 위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노력했던 오라버니께서 당연히 누려야 할 영광이에요.’
유약한 계집의 남편보다는 당연히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패왕의 남편이 어울리겠지.
그렇기에 단념하려 했다.
불여우는 죽도록 미웠지만….
그녀의 남편인 오라버니는 진심으로 경애하는 사람이었기에.
경애하는 오라버니의 핏줄이 황위를 계승한다면 중원은 보다 강성한 국가로 발전할 수 있을 터.
옥좌의 손잡이를 움켜쥔 유협은 체념을 곱씹으면서 하북 정벌을 완수한 조조가 귀환하기를 기다렸다.
* * *
가시밭길이 될 터.
분명 수많은 적의에 둘러싸이게 될 것이었다.
우려가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성휘는 대역죄인의 신분으로 압송되는 원소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면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걱정 말아요. 무사할 테니까요.”
걱정으로 가득한 이성휘의 얼굴을 응시하던 원소가 애써 미소를 지으면서 속삭였다.
짙은 수심이 느껴졌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무뚝뚝한 얼굴이었음에도 원소는 이성휘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정말 여리고 착한 사람이다.
민중들은 천하제일검 이성휘를 무적의 존재로 칭송하지만 여리고 착한 사람이기도 했다.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은 수심으로 가득한 이성휘의 얼굴을 보드라운 손길로 쓰다듬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성휘가 한걸음에 달려올 거잖아요. 지금까지 항상 그랬던 것처럼.”
“물론입니다.”
수많은 흉수들에게 목숨을 위협받았을 때마다 항상 나서서 구해주었다.
그렇기에 원소는 이성휘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보여주었다.
이성휘가 망설임 없이 대답하자 원소는 새색시처럼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촉촉하게 물든 붉은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아련한 마음을 담아냈다.
“하북을 복속하는 과정이 결코 평탄하지는 않을 거예요. 모든 사대부와 호족들이 맹덕의 통치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분명 제가 떠나자마자 노골적으로 반기를 내비치는 무리들이 생겨나겠죠.”
황건적의 반란으로 난세가 촉발된 이후부터 하북은 계속 독자적인 행보를 걸었다.
난세의 풍파에 휩쓸렸던 사대부와 호족들은 원흉인 황실과 조정을 증오하고 있었다. 분명 조정군을 대표하는 조조군의 통치에 강한 불만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머지않아 분열이 발생할 터.
원소는 그것을 강하게 우려했다.
“결코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네, 믿을게요.”
떨리는 불안을 걷어내고자 이성휘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 원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아비를 믿고 따르는 것. 그것이 바로 부인의 역할이니까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고사리처럼 곱고 아름다운 손가락을 뻗으면서 이성휘의 콧등을 쿡 찔렀다.
눈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이성휘는 당혹스러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농밀한 향기를 머금은 장미처럼 어른스러운 매력이 사내의 마음을 붙잡았다. 어린 동생을 귀여워하는 누나처럼 느껴졌다.
“후후, 설렜나요?”
“…….”
“사석에서는 누나라고 불러도 되는데. 물론 여보라고 불러도 좋아요.”
“…숙고해보겠습니다.”
고혹적인 매력에 항상 휘말리기 일쑤였다.
얼굴이 달아오른 이성휘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아찔한 눈웃음.
고아한 기품과 어른스러운 매력.
어떤 사내가 감히 버텨낼 수 있을까.
목석처럼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이성휘조차 결국 항복을 시인했을 정도로 원소는 타고난 요물이었다.
황제나 왕의 첩이 되었다면 틀림없이 서시(西施)나 포사(褒姒)를 능가하는 경국지색의 미녀로 악명을 떨쳤으리라.
“우여곡절 끝에 맺어지게 됐는데… 잠시 떠나게 되었네요. 혼례를 치르기도 전에 이별부터 겪다뇨. 정말 슬퍼요.”
“…….”
말려들어선 안 된다.
결코 휘말려선 안 된다.
이성휘는 되도록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했다.
남편에게 소박맞은 여인을 연기하는 원소의 모습을 응시하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
“성휘하고 맺어져서 기뻐요. 이건 진심이에요.”
원소가 두 팔을 뻗었다.
허리를 껴안았다.
뒤이어 이성휘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렇게 나 혼자서 뻔뻔하게 행복을 누려도 되는지 망설여질 정도로….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아요.”
꿈이어도 괜찮다.
만약 꿈이라면 깨지 않기를.
천신만고를 인내하면서 손아귀에 거머쥔 행복이 부디 오랫동안 이어지기를 바랐다.
수많은 이별들에 슬퍼했던 여인은 혹시라도 눈앞의 행복마저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애처롭게 떨리는 가느다란 어깨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결코 꿈일 리가 없습니다.”
이성휘가 황홀경에 젖어든 붉은 눈동자를 응시하면서 물었다.
늘씬한 허리를 껴안았다.
풍만하고 탐스러운 여체가 품에 들어왔다.
따사로운 체온이 온몸을 감싸면서 현실임을 말해주었다. 직접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기에 가능한 따스함이었으니까.
“그, 그래도 아직 모르겠어요….”
연모하는 사내의 품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만끽하던 원소가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붉게 달아오른 뺨.
부끄러움을 곱씹는 도톰한 입술.
다시 한 번 사랑에 빠져버린 여인은 애써 부정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마치 이성휘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듯한 반응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할 방법은 하나예요. 꿈에서 만난 성휘는 제게 입맞춤을 해주지 않았으니까, 아마 성휘가 입맞춤을 해주면… 바로 알 수 있을 같은데.”
뜨거운 숨결을 내쉬면서 말했다.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가슴이 쿵쾅쿵쾅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용기를 내어 마음을 고백한 원소는 슬쩍 발끝을 올리면서 입맞춤을 유도했다. 자신의 도톰한 입술을 훔쳐가도 좋다는 허락과도 같았다.
“흐읏!”
허리를 꽉 껴안았다.
그러자 원소가 들뜬 신음을 흘렸다.
입술에서 거친 감촉이 느껴졌다.
시선을 가만히 응시하던 이성휘가 마침내 입맞춤을 시도한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내의 입술이 파고들자 원소는 빳빳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입술을 조용히 탐닉하는 거친 감촉이 외로움을 헤매던 숫처녀의 마음을 녹여버렸다.
“하읏…! 츄윱, 츄릅!”
원소가 고개를 쭉 뻗었다.
타액을 훑었다.
입술을 빨면서 혀를 받아들였다.
어른스러운 매력으로 사내를 능숙하게 유혹하던 모습을 어디로 가버렸는지… 두 눈을 질끈 감고서 입맞춤을 받아들이기 바빴다.
“자, 잠시만…! 하읏, 너무 거칠어요…!”
서투르고 어수룩했다.
숫처녀의 전형적인 반응이었다.
뻣뻣하게 굳어버린 처녀를 바라보던 이성휘는 더욱 거칠게 입맞춤에 집중했다. 그녀가 스스로 꿈이 아닌 현실임을 인정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아, 알았어요…! 인정할게요! 성휘,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할 테니까 잠시만요…!”
푸하아!
원소가 거칠게 숨을 토해내면서 말했다.
하지만 이성휘가 입맞춤을 멈추는 일은 없었다.
그 뒤로 원소는 농후한 입맞춤을 몇 번이고 탐닉한 다음에야 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