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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554화 (554/616)

<5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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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성을 탈환하고자 공세를 전개했던 청주와 병주의 병력들이 말머리를 돌려 철군했다.

주군께서 철군을 명령하셨다.

철군을 종용했던 원소의 엄명에 혼비백산하듯 경악한 군세들은 금세 흩어지고 말았다.

이제 어찌 대응해야 한단 말인가.

심사숙고하며 대책을 의논했으나 결국 결정을 내리지 못한 왕수와 곽원은 군세들을 이끌고 청주와 병주로 물러나야 했다.

“주군!”

“결국 조조의 손을 들어주신 것입니까!”

조조군에게 포로로 붙잡혔다가 석방된 장합과 고람이 원소에게 진의를 물었다.

수많은 전우들을 살해한 조조군에게 가담한 주군의 결정을 믿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진의를 확인하고자 급히 달려왔다.

“맹덕에게 가담하기로 했어요.”

장수들의 절박한 물음에 체념으로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이다.

조조의 패도(覇道)에 동참하기로 했다.

이미 세력은 멸망했고 기사회생의 방도는 요원하기만 하다. 잔인무도한 유혈사태가 지속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던 원소는 결국 완전한 패배를 받아들였다.

“크윽…!”

“소장들을 죽여주십시오!”

주군께서 비참한 결정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장수들은 한탄을 토해내면서 무릎을 꿇었다.

치욕스럽다.

뱃속에서 불길이 치솟는 듯했다.

우리들의 무능으로 인해 주군께서는 숙적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을 짊어지시게 되었다.

장합과 고람은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패배자로 전락해버린 차디찬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지금부터 저는 안타까운 희생이 계속 이어지지 않도록 사력을 다해 저지할 생각이에요.”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한탄을 토해내던 장수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밝혔다.

지금까지 천하통일의 대업을 위해 희생했던 용맹한 장졸들을 배신하는 결정처럼 비춰질 수도 있었음에도 원소는 확고한 의지를 관철했다.

“뜻에… 따르겠습니다.”

“소장들은 오로지 주군을 따를 뿐입니다.”

장합과 고람을 위시한 원소군 장수들이 비분강개를 억누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의 결단이다.

우리들은 그저 결단에 복종할 뿐이다.

대의와 이상을 짓밟고 유린했던 조조군을 진심으로 증오했다.

하지만 주군께서는 살육의 연쇄를 끊어내고자 각골통한의 치욕을 짊어지는 결정을 내리셨다. 그를 통감한 장수들은 가시밭길을 고독하게 걸어가려는 주군과 함께하고자 ‘동참’의 뜻을 밝혔다.

“…고마워요.”

내게는 너무도 아까운 사람들이다.

험준한 가시밭길이 될 터.

그럼에도 기꺼이 따르겠노라고 나서주었다.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충성스러운 부하들의 모습을 응시했다.

* * *

원소군을 멸망시킨 조조군은 하북의 군현들을 점진적으로 복속시켰다.

발해군(勃海郡)이 종속되었다.

충직한 선비였던 최염은 주군께서 협력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투항을 결정했다.

다른 군현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주군께서 회군을 명령하자 병주와 청주에서 당도한 군세들이 말머리를 돌렸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조조군에 투항의 뜻을 밝혀왔다.

“주군, 청주에서 사자가 도착했습니다.”

청주별가(青州別駕) 왕수가 사절단을 보내왔다.

주군의 뜻에 따르겠다.

청주의 군세들을 이끌었던 청주별가가 결국 전면투항을 결정했다.

심사숙고하며 번민을 거듭했던 왕수는 다른 장수들처럼 주군의 결정을 받들었다. 여남원씨 가문에 충성을 맹세한 사대부답게 매우 투철한 면모였다.

“경하드립니다!”

“청주의 군현들이 모두 넘어왔습니다!”

원소와 공손찬이 아비규환의 공방전을 거듭했던 청주 지역을 무혈로 점령했다.

청주에서 날아든 낭보에 조조군 장수들은 파안대소하며 조조에게 달려왔다. 누구보다 기뻐할 주군의 모습을 두 눈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도 들었다. 호들갑 떨지 마라.”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면서 야단법석을 떨던 장수들을 꾸짖었다.

히잉….

선두에 섰던 조홍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어찌된 일일까.

언니의 반응이 엄동설한의 눈보라처럼 한없이 냉혹하기만 했다.

청주별가 왕수가 투항하면서 청주의 군현들이 모두 넘어왔음에도 기뻐하지 않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언니의 반응에 당혹스러운 것은 조인도 마찬가지였다.

“흥, 본초 녀석…. 아주 적극적이군.”

턱을 괴었다.

그리고 투정이 담긴 군소리를 내뱉었다.

잔뜩 찡그린 얼굴에는 불만이 범람하고 있었다.

조조를 오랫동안 보필해온 장수들은 절대로 주군을 건드려선 안 된다는 것을 직감했다. 지금 주군께서는 짜증을 최대한 억누르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어, 어째서….’

‘그것을 어찌 알겠나!’

‘지금은 닥치고 있는 게 상책일세!’

입을 꾹 다물었다.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심기를 건드려선 안 된다.

장수들은 노심초사하는 심정으로 주군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조조는 사적인 감정을 고스란히 표출하는 저돌적인 성정이었기에 더욱 두려웠다. 지금까지 그로 인해 쫓겨나고 좌천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분노의 희생양이 될까 두려웠던 장수들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병주는 어떻게 되었지?”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조조가 물었다.

그에 뒤에서 대기하던 곽가가 대답했다.

청주가 투항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병주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주군의 엄명을 받들어 말머리를 돌렸음에도 여전히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리라. 계속 왕수에게 과격한 공세를 주장했던 곽원은 심중의 불만을 그대로 표출하듯이 철군하면서 모든 길을 끊어버렸다.

“참으로 아둔한 놈입니다!”

“제 분수도 모르고 감히 대적하려 들다니…!”

틀림없다.

병주에서 항전하려는 속셈이다.

그에 발끈하여 장수들이 소리쳤다.

당랑거철(螳螂拒轍)이나 다름없는 어리석고 무모한 행위가 아니겠는가.

이미 대세가 결정되었음에도 결과에 불복하는 곽원의 행동은 무력한 저항일 뿐이었다. 장수들은 병력을 동원하여 진압할 것을 조조에게 간언했다.

“너희들이 논할 문제가 아니다.”

조조가 인상을 찡그렸다.

맹렬한 목소리로 진압을 주장하던 장수들은 차가운 목소리에 즉시 입을 다물었다.

“봉효.”

“예, 주군.”

“본초와 의논하겠다. 연통을 넣어라.”

“알겠습니다.”

이윽고 조조는 손을 내저으면서 한걸음에 달려왔던 장수들을 물렸다.

주군의 노골적인 축객령에 장수들은 잔뜩 시무룩한 표정으로 물러나야 했다. 부드럽고 따스한 온기가 감도는 원소군과는 크게 상반된 모습이었다.

* * *

연통을 보내리라고 예상했던 것처럼 원소는 곽가가 도착하기 무섭게 발걸음을 움직였다.

단정하게 빚은 머리카락.

멋들어진 기품이 넘치는 고귀한 예복.

일말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모습이다.

위풍당당한 면모를 뽐내는 원소의 모습을 응시하던 곽가는 기품에 압도되었는지 어깨를 움찔 떨었다.

“병주가 항전을 선택했다고요?”

“아직 확정은 아니다. 기미가 보인다는 뜻이지.”

원소가 물었다.

그에 조조가 어깨를 으쓱였다.

“놈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귀찮아진다. 그것은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네, 그렇죠.”

혹독한 북방에서 사나운 외적들과 싸우면서 훈련과 실전을 거듭한 병주의 기병군단은 일당백을 자랑하는 최고의 전력이다.

과거 공손찬이 기병들을 이끌고서 하북을 호령하지 않았던가.

숙적을 물리치고 하북을 점령한 조조에게도 북방의 기병군단은 상대하기 난감했다. 정공법으로 싸운다면 분명히 많은 피해가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었다.

“분명 나에게 약조했었지. 하북을 평화롭게 병합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겠노라고.”

“물론이죠.”

조조가 엄중한 목소리로 약조의 이행을 요구했다.

살벌한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원소는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병주의 기병군단이 호관을 넘어 업성으로 진격할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음에도 원소는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사태를 해결할 방도가 있어요.”

“그게 뭐지?”

“맹덕, 병주자사 고간을 병주로 보내주세요.”

“…으음.”

병주자사 고간을 병주로 파견하여 곽원과 장졸들을 설득할 수 있도록 부탁했다.

받아들이기 힘든 의견이다.

조조는 무거운 침음으로 속마음을 내비쳤다.

만약 고간을 풀어줬다가 곽원에게 합세하여 반란이라도 일으킨다면 위태로운 후환으로 이어질 터. 고간은 소수의 병마들로 병주를 호령했던 날래고 강한 장수였기에 더욱 우려가 컸다.

“걱정 마세요. 믿을 수 있으니까.”

“믿으라면 믿겠다만…. 완전히 안심할 순 없군.”

원소는 믿을 수 있다.

이미 행동으로 증명해보였으니까.

하지만 고간은 달랐다.

싸움에서 사로잡힌 항장이 아니던가.

천신만고 끝에 사로잡았던 맹호를 그대로 놓아주는 것은 아닐까 우려하는 것은 당연했다.

“말했잖아요. 성휘의 부인이 되는 것을 허락해준다면 하북을 평화롭게 복속시킬 수 있도록 기꺼이 전력을 다하겠다고요.”

“…그게 마음에 안 든다는 거다.”

원소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진난만한 벗의 모습에 조조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은 당연했다.

실로 당당하기 짝이 없다.

벗의 남편을 빼앗겠다는 후안무치한 말을 지껄이면서도 일말의 부끄러움도 보이지 않았다.

“큭! 하여간 뱃속에 욕심이 그득하게 쌓인 것은 전혀 변한 게 없군! 황제를 설득하여 제후에 봉해질 수 있도록 할 터이니 그것으로 만족해라!”

“사양하죠. 저는 오직 성휘의 정실이 되고 싶을 뿐이에요.”

천하의 부를 거머쥐었다.

지금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부와 권력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단 하나….

지금까지 오매불망 애태우면서 간직해온 사랑의 실현을 원할 뿐이었다.

까드득-!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벗의 요구에 조조는 불편해진 심기를 보여주듯 이를 갈았다.

이 정도면 맹탁도 충분히 이해해주지 않을까.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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