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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551화 (551/616)

<5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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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을 제패했던 군주가 당도했다.

4개 주를 통일한 패자.

천하통일의 대업을 부르짖었던 야심가.

금발을 늘어뜨린 아름다운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조조군 본영에 엄숙한 침묵이 감돌았다.

‘원소…!’

‘저 여인이 바로 하북의 패자인가.’

고결한 기품과 늠름한 용맹.

청초하고 늘씬한 몸에서 영웅으로서의 무거운 위압감이 넘쳐흘렀다.

패자(敗者)의 굴욕적인 모습은 없다.

대군벌로서의 위풍당당한 면모만이 보일 뿐이었다.

적진에 입성하는 일이었음에도 하북의 여걸은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내딛었다. 고결하고 용맹한 여걸의 모습에 조조군 장수들은 감탄을 보냈다.

“투항한 병사들은 어떻게 되었죠?”

원소가 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이성휘가 대답했다.

“무장을 해제한 채 대기하고 있습니다. 장졸들에게 엄명을 내려두었으니 불상사는 없을 겁니다.”

병장기를 버리고 투항해온 업성의 장졸들은 성외에서 안전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세력이 멸망했다.

또한 제장들을 이끌었던 군주도 붙잡았다.

조조군은 포로들의 의중을 받아들여 군부의 장졸로 편입하거나 자유롭게 석방하려 했다. 설령 석방된 장졸들이 적으로 돌아서더라도 위협이 되지 못하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원소가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감사를 전했다.

그들이 무사하여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가슴에 손을 얹었다.

원소의 입장에서 포로로 붙잡힌 장졸들은 싸우기를 포기하고 숙적에게 투항해버린 불충한 무리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포로로 붙잡힌 장졸들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나의 장졸이다.

또한 나의 백성들이었다.

절박한 처지에 내몰렸음에도 원소는 자애로운 성모처럼 부드러운 자애를 보였다.

“모두 타버렸군요. 백성들은 괜찮은가요?”

“치열한 시가전이 발생했지만 백성들은 다행스럽게도 무사합니다. 미리 피신한 덕분입니다.”

조조군과 원소군은 무고한 백성들이 참화에 휘말리지 않도록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백성들을 대피시켰다.

또한 대피한 곳으로는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

업성 공방전은 매우 치열한 격전이었음에도 백성들에게 피해가 이어지지지 않은 전투였다. 천하의 패권을 결정하는 전투가 오명으로 물들까 크게 우려한 것이리라.

“본초.”

“…맹덕.”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좌우에 제장들을 대동하고서 위풍당당한 기염을 뽐냈다.

승자로서의 위엄.

천하통일의 대업을 앞둔 지배자.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면서 오랜 벗을 맞이했다.

“오랜만이네요.”

“그래, 오랜만이지.”

원소는 오랜 벗이자 숙적이었던 조조를 마주하면서 애써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온몸을 짓누르는 긴장감이 몰려왔음에도 애써 참아내면서 고아한 기품과 여유를 보였다.

“강녕… 하진 않았겠군.”

“우리들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까요.”

비참했던 참화를 치르고서 재회한 군주들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벗이자 숙적.

숙적이자 벗.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에 정체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서로를 여전히 친구처럼 대하면서 재회를 받아들였다. 물론 연속하여 누적된 복잡한 앙금만큼은 어쩔 수 없었지만.

* * *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던 업성의 정경은 건조하고 메마른 회색으로 가득했다.

폐허가 된 시가지.

맹렬한 참화에 그슬린 성벽.

파괴의 흔적들이 수도 없이 난무하고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면서 파괴의 흔적들을 훑어보던 원소는 숙연함을 머금으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재회하게 되어 유감이다.”

건곤일척의 결전으로 엇갈린 승자와 패자로서 재회한 조조와 원소는 본영 주변을 잠시 거닐었다.

회포를 풀기 위함일까.

우여곡절 끝에 재회한 벗과 담소를 나누었다.

분위기가 천 길 심해에 빠진 것처럼 무거웠다.

오랜 죽마고우였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축적된 앙금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불편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저희는 이렇게 재회할 운명이었어요. 우리들은 같은 것을 목표하고 있었으니까요.”

승자와 패자로 재회하게 될 숙명이었다.

천하는 양분할 수 없다.

비로소 하나가 되어야만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천하의 권력을 결정하는 경쟁에서 한쪽이 승리하였기에 재회가 이루어졌다. 만약 승패가 결정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서로에게 칼끝을 겨누고 있었겠지.

“그래….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지. 너와 내가 낙양에서 헤어졌을 때부터 말이다.”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원소.

오랜 벗과 결국 숙적으로 만나리라는 것을.

어쩌면 거병을 획책하고자 낙양에서 출병했을 때부터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욱 쓰라린 고통이 밀려들었다.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죠. 천하의 권력을 차지하고자 쉴 새 없이 부딪치면서 싸워왔어요.”

“시체로 산을 쌓고 핏물로 바다를 만들어냈지.”

천하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이 참혹한 시산혈해를 불러일으켰다.

지독한 원죄(怨罪)였다.

야심을 이루고자 수많은 생명들을 살해했다.

수많은 격전들을 치르고서 승패를 결정지은 군주들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후회와 반성을 쌓아올렸다.

“하북을 점령했으니 명실상부한 패자가 되었군요.”

중원에 이어 하북까지 정복했다.

천하이강의 구도로 대립했던 숙적마저 마침내 멸망시켰으니 더 이상 거칠 게 없었다.

드디어 천하를 손에 넣었다.

원소는 씁쓸함이 감도는 웃음을 지으면서도 조조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속단하긴 이르다.”

“아뇨, 사실상 천하통일을 이룬 셈이죠.”

익주(益州). 형주(荊州). 양주(揚州). 교주(交州)

4개 주의 영토.

천하의 절반이 여전히 군벌들의 수중에 있었다.

하지만 군벌들이 소유한 병력은 중원에서 호령하는 천군만마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남방을 장악한 군벌들이 동맹하여 연합군을 형성하더라도 조조에게는 압도적인 힘이 있었다. 대장군 이성휘를 투입하여 반란을 평정하도록 명령한다면 수년 이내로 정벌을 끝낼 수 있을 터였다.

“본초,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운을 띄웠다.

염치없는 말임을 알고 있다.

꿈과 야망을 무너트린 주제에 부탁을 늘어놓다니.

그럼에도 반드시 숙적의 조력이 필요했다.

“알고 있어요. 병주와 청주에서 당도한 군세들에게 무장 해제와 전면투항을 명령해달라는 거죠? 만약 그들이 개입한다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될 테니까.”

“…….”

과연 날카로운 혜안은 여전했다.

이미 행동을 예견하고 있었을 줄이야.

처참한 시산혈해가 되풀이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조조는 원소에게 중재를 부탁했다.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익한 살육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협력해다오. 덧없는 살생을 막기 위해서다. 그들을 막아내지 못하면 업성은 다시 피바다가 될 거다.”

“흐음.”

승패는 이미 결정되었다.

병주와 청주의 군세들이 가세하더라도 무너진 전황을 뒤집는 것은 불가능했다.

무익한 죽음들만 늘어날 터.

하북을 뒤덮은 피비린내만 짙어질 뿐이다.

장졸들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는 원소가 덧없는 희생을 용인할 리가 없었다. 더 이상의 싸움은 필부의 만용에 불과했다.

“관직을 내리고 제후에 책봉해주겠다. 앞으로의 대업에 동참해준다면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다.”

협력과 가담을 조건으로 사실상 소원권이나 다름없는 제안을 했다.

순탄하게 하북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원소의 명성과 영향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반발은 희생을 부른다.

저항은 불필요한 살육을 일으켰다.

가급적 평화적인 방법으로 하북을 점령하고 싶었기에 원소의 협력이 절실했다. 그렇기에 조조는 원소의 영향력을 동원하여 성난 민심을 다독이려 했다.

“아뇨, 더 이상… 위에 올라서고 싶지 않아요.”

원소가 인상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진저리가 난다.

모멸과 혐오감마저 느낄 정도였다.

천하의 권력을 거머쥐겠다는 야심을 달성하고자 얼마나 많은 장졸들이 목숨을 잃었던가. 원소는 숙연한 목소리로 조조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죠. 위군에 당도한 군세들을 일단 임지로 돌려보내겠어요. 그 다음에 투항을 권유해보도록 하죠.”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부드러운 미소를 흘리면서 오랜 벗의 제안에 화답했다.

권력을 원치 않는다.

또한 더 이상의 살육도 원치 않았다.

조조군의 침략에 응전하여 공방전을 치르더라도 결국 무익한 희생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원소는 협력을 요청한 조조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물론 무상이라고 말하진 않았어요. 아무런 보답도 없이 협력해줄 정도로 순박하진 않으니까요.”

조건부 협력으로 원소가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북의 패자였던 여장부를 대업에 끌어들이는 일이다. 분명 ‘쉽사리 결정하기 어려운 것’을 요구할 터.

움찔-.

불안한 직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불쾌감이 밀려드는 예상을 떠올린 조조는 두려움에 젖은 눈길로 오랜 벗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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