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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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놈.
너무 늦었다.
왜 이제야 왔단 말인가.
혈혈단신으로 반란군과 혈전을 벌였던 국의는 담벼락에 기댄 채 이성휘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빌어, 먹을 놈….”
네놈이 싫다.
낯짝을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도움을 청한 것은 분명 본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주군의 마음을 휘어잡은 불한당만큼은 용서할 수 없었다.
“…커헉!”
기침을 토해내자 핏물이 쏟아졌다.
수많은 자상들을 입었다.
거기에 더해 화살세례에 온몸이 꿰뚫렸다.
결코 회생이 불가능한 중상이다. 서둘러 치료에 돌입하더라도 죽음을 피할 순 없겠지.
국의는 쓴웃음을 흘리면서 죽음을 각오했다.
“분명 원소에게 위해를 가하지 말고 얌전히 대기하도록 일렀을 텐데. 군율을 우습게 여긴 모양이군.”
중랑장 소유를 눈앞에서 참살한 이성휘가 날카로운 칼끝을 뻗으면서 장의를 위협했다.
장졸들을 지휘했던 총대장을 바로 현장에서 즉결처분한 이성휘의 행동에 대경실색한 장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무기를 내려놓았다.
병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성휘의 위압에 압도되어 병장기를 황급히 바닥에 떨어트렸다.
이성휘의 엄명에 자신들의 생사가 결정되리라는 것을 직감했기에 식은땀을 흘렸다. 성난 파도처럼 몰아치면서 진격했던 반란군은 이성휘의 등장으로 완전히 사기를 상실했다.
“더러운 새끼들. 바로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주군이었던 사람을 죽이려고 들어? 기회와 이득만 쫓아다니는 개새끼들 같으니라고.”
금발을 늘어뜨린 여걸이 방천화극을 거세게 내리찍으면서 내성을 습격한 장졸들을 꾸짖었다.
단칼에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
명예와 긍지를 모르는 버러지들이 가득했다.
원소가 불쌍할 지경이다.
이딴 쓰레기들을 부하랍시고 두고 있었다니.
“문원, 사태를 수습해라.”
“네.”
장료에게 현장의 수습을 명령했다.
뒤이어 이성휘는 당장이라도 목숨이 끊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호흡을 내쉬던 사내에게 시선을 향했다.
정로장군 국의.
시산혈해의 현장에서 지독한 악연과 재회하게 되었다.
“부하를 보냈더군. 오는 도중에 조우했다.”
이성휘가 물었다.
그에 국의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도착했군.”
대장군부의 기병들이 내성을 습격한 병력을 진압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태가 종결되었다.
업성의 마지막 전투가 끝나는 듯했다.
업성의 군주를 시해하여 전공을 세우겠다는 천인공노할 계획에 동참했던 군세들이 와해되면서 지독했던 참극이 끝났다.
“혈혈단신으로 저들을 막아낸 건가. 과연 공손찬군을 멸했던 명장답군.”
“네놈, 따위에게… 들을 말은 아니다….”
단기필마로 낙양 벌판을 피바다로 만들었던 희대의 괴물에게 감탄을 받게 될 줄이야.
우스운 일이다.
한손으로 상처를 짓누르면서 쓴웃음을 흘렸다.
“부상이 심하다. 분명 오래 버티지 못할 거다.”
“그래, 결국 죽겠지….”
주군을 시해하려 했던 칼날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국의는 목숨이 경각을 다투는 지경이 이르렀다.
치료는 늦었다.
이미 죽은 송장이나 다름없었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려버렸다.
열기가 빠져나가면서 썩은 고목과도 같은 싸늘함이 온몸에 감돌았다.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 국의는 진심으로 연모했던 여인이 있는 관저를 응시했다.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한 미련이 바로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주군은… 관저에 계시다….”
원통하다.
이가 갈릴 정도로 분했다.
치욕스럽다.
놈에게 주군을 부탁해야 한다는 현실이 사무치도록 원망스러웠다.
그럼에도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중원의 정적들로부터 집요한 강압과 협박에 시달릴 주군을 유일하게 구원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이성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꺾으면서까지 주군을 부탁했다.
“반드시… 주군을, 지켜다오…!”
“지키겠다. 맹세하지.”
쿨럭──!!
국의가 핏물을 토해내면서 염원을 남겼다.
부디 주군을 지켜다오.
연모하는 여인의 마음을 강탈했던 불구대천의 원수에게 마지막 유지를 전달했다.
“남길 말은? 남은 가족들이 있을 텐데.”
“…없다.”
오랑캐들이 극성을 부리는 양주에서 가족들을 모두 잃고 난 이후에 자포자기를 하듯 기주로 넘어왔다.
가족은 없다.
유지를 남긴 피붙이 또한 없었다.
실로 덧없는 삶이 아닌가.
빈손으로 들어와 빈손으로 떠나다니.
차갑고 딱딱한 담벼락에 몸을 기댄 국의는 지난 과거들을 회상하면서 두 눈을 감았다.
“있다고 해도… 네놈 따위에게, 남길 말은 없어.”
국의가 비웃음을 날렸다.
원수를 향한 적의.
연적에 대한 질투와 시기가 느껴졌다.
바로 코앞까지 죽음이 도래했음에도 국의는 이성휘에게 일말의 호의도 보이지 않았다. 드센 자존심으로 유명한 하북의 명장다운 모습이었다.
“…가라.”
애써 미련을 떨쳐내듯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아쉬움만 늘어날 터.
눈앞의 연적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정로장군 국의. 백전불굴의 충성과 용맹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
주군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사투를 멈추지 않았던 용장에게 예를 취했다.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발걸음을 움직였다.
관저로 나아가는 이성휘의 뒷모습을 의미심장한 눈길로 바라보던 국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고개를 젖혔다.
‘젠장…! 마지막까지 미련이 남는군. 결국 단념해야 하는 건가. 참으로 엿같은 결말이야….’
마음에 안 드는 결말이다.
결국 놈에게 주군을 맡길 수밖에 없다니.
참으려고 노력해도 질투와 시기가 치밀었다.
‘이성휘. 어쩌면 나는… 네놈을 은연중에 잠시 선망했을지도 모른다.’
주군의 연모와 총애.
대장군의 명성과 천하제일검의 무명.
중원을 호령한 기개와 천하를 제패했던 위상.
부러웠다.
질투에 사무쳤을 정도로.
지금도 뱃속에서 질투의 불길이 솟구칠 정도였다.
‘하지만 마지막에 주군을 지켜낸 장수는 나다. 네놈이 아니란 말이다.’
마지막으로 정신승리를 고하듯이 이성휘를 향해 코웃음을 쳤다.
주군을 지켰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여전히 미련이 남았음에도 전장에서 쓰러진 수많은 전우들을 대신하여 주군을 마지막까지 지켜냈음을 만족했다.
‘그러니 부디…. 무사하셔야, 합니다.’
관저에서 소식을 기다리고 계시겠지.
내가 죽으면,
과연 주군께선 슬퍼해주실까…?
모르겠다.
내 죽음을 슬퍼하실지.
오만불손했던 파락호의 죽음을 과연 진심으로 슬퍼해주실지 의문이 들었다.
아니,
상관없다.
슬퍼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 내 죽음을 슬퍼하지 않아도 좋다.
주군께서 무사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니까.
부하들의 죽음에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 분은,
우리들의 태양이니까.
위대한 하북의 태양.
모실 수 있어 진심으로 영광이었다.
친족들을 황량한 벌판에 묻어두고서 천하를 유랑했던 떠돌이에겐 너무도 과분한 주군이었다.
“…본초.”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하던 주군의 애처로운 모습을 회상하던 국의는 이윽고 눈을 감았다.
상념에 빠져들었다.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깊은 상념으로.
죽음이라는 잠에 빠져드는 찰나에도 연모했던 여인의 안전을 걱정했다.
마지막까지 몰락의 운명을 짊어지고서 주군을 위해 목숨을 불태웠던 하북 최후의 장수가 결국 눈을 감았다.
공손찬을 멸망시켰던 명장.
원소를 하북 최강의 군주로 옹립했던 공신.
하북의 마지막 불꽃은 책무를 완수하고서 안식으로 접어들었다.
* * *
관저로 들어섰다.
시녀들이 좌우로 물러섰다.
마치 관저에 당도하기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길잡이를 자처하면서 나선 시녀의 도움으로 이성휘는 옥좌가 위치한 전각에 당도했다.
“주군께서 기다리고 계시네.”
입구에서 기다리던 중년 남성이 입을 열었다.
별가종사(別駕從事) 전풍.
원소군에 마지막으로 남은 참모였다.
전풍에게 적의가 없음을 확인한 이성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서 전각에 들어서려 했다. 하북을 제패한 군주와 대면하는 일이었기에 주의를 기울였다.
“…헌데 정로장군은 어찌 되었는가.”
전풍이 무거운 목소리로 이성휘에게 물었다.
그에 이성휘가 발걸음을 멈췄다.
“하북의 용장으로서 명예롭게 전사했습니다.”
“그런가….”
반란군에 맞서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했다.
명예로운 죽음이었다.
어느 누구도 감히 지탄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필사적으로 싸웠던 국의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는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었다.
“알겠네. 대답해줘서 고맙네.”
“예.”
이성휘가 양손을 뻗었다.
끼익.
굳게 닫힌 문을 좌우로 열었다.
이윽고 발걸음을 내딛으면서 몰락의 군주가 기다리는 장소에 입성했다. 들어서자마자 마치 옥좌처럼 화려하게 치장된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성휘.”
옥좌에 앉은 여인.
수심에 젖어든 아름다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찬연하게 빛나는 금발.
보석처럼 눈부신 붉은 눈동자.
대리석을 깎아내어 만든 조각상처럼 아름답게 조형된 이목구비.
-원소.
하북의 지배자와 드디어 마주하게 되었다.
가슴이 뛰었다.
긴장감을 떨쳐내고자 마른침을 삼켰다.
다시 재회하기만을 바랐던 여인과 멸망과 몰락으로 빚어진 재회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