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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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로장군 국의의 분전으로 원소는 무사히 내성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별가종사(別駕從事) 전풍이 그녀를 맞이했다.
배신자들이 성문이 열렸다.
조조군에게 성내가 장악당하고 말았다.
전풍은 연이은 비보에도 꿋꿋하게 장졸들을 지휘하면서 내성을 수비했다. 자신마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남은 병력들마저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될 것이기에.
“남은 병사들은 얼마나 되죠?”
원소가 물었다.
그에 전풍이 참담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불과… 4천도 안 됩니다.”
실로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고작 4천.
현재 거느린 병력들을 합친 숫자였다.
하북 전역을 휩쓸면서 천군만마를 호령했던 세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다.
대부분의 병력들이 백병전에서 죽거나 조조군에 투항하면서 커다란 공백이 생겨났다.
모래성처럼 빠르게 무너져버린 원소군은 존립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몰락하고 말았다. 조조군에게 완전히 빼앗긴 전황을 되찾는 것은 결코 불가능했다.
“참 덧없네요.”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돌아서면서 말했다.
쓸쓸함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리고 무상(無常)의 회한과 한탄이 느껴졌다.
가슴 깊이 절망하는 것은 당연했다.
불과 이틀이다.
겨우 이틀만 완강하게 버텨냈다면 병주와 청주에서 도착한 지원군과 합세하여 조조군을 격파했으리라.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손아귀에 놓인 승리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제아무리 다부진 정신력을 자랑하는 여걸이라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주군, 지금부터 병력을 지휘하도록 하겠습니다.”
국의가 원소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에 원소는 등을 돌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정로장군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무관들을 거느리고 병력을 지휘하는 국의의 모습을 응시하던 전풍이 말했다.
정로장군 국의.
그는 반골(反骨)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과연 그러한 자를 믿을 수 있을까.
충성심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지금까지 많은 오만방자한 행동들을 벌였기에 의심하는 것은 당연했다. 전풍 뿐만 아니라 다른 장수들도 국의를 의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에 원소가 입을 열었다.
“만약 저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했다면 반란군의 무리들로부터 구해주지 않았겠죠.”
칼끝을 겨누면서 목숨을 노리던 무리들로부터 자신을 구해주었다.
어째서 구해준 것일까.
그 의문은 여전히 원소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항상 의심하고 경계했던 인물에게서 구명을 받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의중을 헤아릴 수 없는 국의의 모습에 두 눈을 바르르 떨었다.
“…….”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발걸음을 움직였다.
전풍은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전선에서 주군을 수행했던 저수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주군을 위해 남았겠지.
몰려드는 적들에 맞서 장렬하게 싸우다가 전사했으리라.
‘나도 곧 따라가겠네.’
쓴웃음을 지으면서 오랜 벗과의 이별을 슬퍼했다.
하지만 오래 슬퍼할 필요는 없었다.
머지않아 따라갈 테니.
끝까지 충성을 관철했던 오랜 벗처럼 말이다.
“이제 감상에 젖을 여유는 없을 거요, 군사.”
국의가 전풍에게 다가와 말했다.
“물리쳤던 반란군이 다시 몰려오기 시작했소.”
정로장군 국의의 급습에 패주했던 반란군이 병력을 규합하여 내성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병력이 무려 1만에 달했다.
모두 여남원씨 가문을 배신한 무리들이었다.
역적의 무리들이 저토록 많았단 말인가!
시가지를 점령한 반란군이 노도처럼 밀려드는 모습을 목격한 전풍이 충격을 내비쳤다.
“동요하지 마라! 우리들은 끝까지 싸운다!”
국의가 검을 치켜들면서 소리쳤다.
최후의 일인까지 싸우라.
주군을 대신하여 장졸들에게 엄명을 내렸다.
어떻게든 주군을 지키고자 스스로 절체절명의 사지를 선택한 최후의 장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면서 무수히 많은 반란군을 대적했다.
* * *
무너진 성벽.
불타는 시가지.
초토화된 업성은 지옥을 방불케 했다.
멸망의 기로에 섰다.
결국 오늘 내로 원소군은 멸망하리라.
초라하게 변해버린 성루와 성벽에 조조군의 군기들이 내걸리면서 원소군의 몰락을 알렸다. 하북을 제패했던 세력이 멸망했음을 모든 군중들에게 선언했다.
“끝까지 싸우겠다!”
“덤벼라, 더러운 개들아!!”
용맹무쌍한 하북의 강병들은 세력의 몰락을 부정하면서 병장기를 휘둘렀다.
업성 도처에서 항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조조군과 변절한 반란군의 공격으로 결사항전은 곧바로 진압되고 말았다.
“쏴라!”
“저항하는 놈들은 다 죽여라!”
압도적인 물량을 동원한 살육이 자행되면서 항전을 부르짖던 목소리가 금세 잦아들었다.
완전히 승세가 넘어간 전황에서 벌어지는 저항들은 미약한 발악에 불과했다. 저항이 반복될 때마다 희생만 늘어날 뿐이었다.
“투항… 하겠소.”
“병장기를 버릴 테니 살려주시오!”
성문들이 모두 무너졌다.
조조군 병력들이 사방을 포위하고 있었다.
더 이상 승산이 없다.
항전을 꾀하던 장수들이 병장기를 버리고 조조군에게 투항하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투항하면 살려줄 것이다!”
“투항하는 자는 죽이지 않겠다!”
조조군 무관들이 업성의 시가지를 질주하면서 잔당 병력에게 투항을 종용했다.
그러자 눈치를 보면서 투항하기를 망설이던 수많은 장졸들이 병장기를 버리고서 백기를 치켜들었다.
“시가지를 대부분 점령했습니다. 남은 잔당들은 원소와 함께 농성하는 병력뿐이에요.”
원소를 대신하여 업성의 병마들을 지휘했던 분무장군 저수가 표기장군 조인에게 전사했다.
이미 대세는 정해졌다.
내성에서 농성하는 잔당들의 항전은 무의미하게 시간을 끄는 것에 불과했다.
장료의 보고에 이성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참한 전투였군.”
“네, 주인님의 말씀대로예요….”
기병대를 이끌고서 치열한 시가전을 지휘했던 장료는 매우 초췌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얼굴에 묻은 그을음.
갑옷에 선명하게 새겨진 상처들.
어느 전투보다도 극심했음을 말해주었다.
“항병들을 모두 압송하라!”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만반의 경계를 갖춰라!”
치열한 결사항전이 벌어졌던 시가전에서도 결국 조조군이 승리를 거두었다.
원소군은 사력을 다해 항전했으나 무너지는 전황을 뒤집지 못한 채 무너졌다. 배신자들이 변절하여 성문을 열었을 때부터 이미 승패는 정해진 셈이었다.
“대장군, 유비군이 당도했습니다.”
뒤늦게 성문을 돌파했던 유비군도 저항을 물리치고서 시가지에 입성했다.
모두 끝났다.
이 전투로 원소군은 멸망했다.
학맹에게서 보고를 받은 이성휘는 오랜 숙적이었던 원소군이 멸망했음을 깨닫고서 쓴웃음을 지었다.
“주군에게 승전보를 보내라.”
“예, 대장군!”
업성을 함락되었다.
기사회생을 도모하려 했던 원소군을 궤멸시켰다.
시가전이 진압된 이후에 입성한 이성휘는 장수들을 동원하여 전황을 수습했다. 우선 치료와 구조에 중점을 두면서 맹렬하데 달아오른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대, 대장군…! 오… 오셨습니까. 제장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문을 개방하여 조조군을 맞이했던 성문교위 심영이 함께 배신한 장수들과 함께 이성휘를 찾아왔다.
떨리는 눈길로 상황을 주시했다.
조조군에 결정적인 공헌을 세웠음에도 배신자는 불안감이 감도는 표정으로 이성휘의 눈치를 살폈다.
“수고했다. 귀관의 공로가 컸다.”
“그, 그리 말씀해주시니… 영광입니다.”
이성휘가 손을 들었다.
뒤이어 심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약조는 반드시 지키겠다.”
관직과 봉토를 내리고 열후에 책봉한다.
그것이 바로 투항의 조건이다.
세력을 팔아넘긴 더러운 배신자.
하지만 조조군에게 있어 성문교위 심영은 결정적인 공적을 세운 공신이었다.
“그런데 다른 장수들이 보이지 않는군.”
이성휘가 물었다.
그에 심영이 질문에 대답했다.
“승상에게 주군… 아니, 패주(敗主)의 목을 직접 진상하고자 병사들을 이끌고 내성으로 향했습니다.”
반역에 가담했던 장수들이 원소의 수급을 거머쥐고자 내성으로 진격했다.
심영의 대답에 이성휘의 얼굴이 처절하게 일그러졌다. 이를 빠득 갈면서 몸을 돌렸다.
패주.
분명 원소를 일컫는 것일 터.
아군에게 투항한 무리들이 원소의 목숨을 도모하고자 내성으로 쳐들어갔다는 소식에 두 눈을 부릅떴다.
“함진영은 어찌 되었나. 고순에게 원소를 확보하도록 일러뒀을 텐데.”
성문을 돌파하자마자 고순에게 원소의 신병을 확보하도록 명령했다.
신병을 확보해야 한다.
절대로 원소를 죽여선 안 된다.
연이어 엄명을 내리면서 원소의 신병을 최우선적으로 확보하도록 장수들을 압박하지 않았던가.
고순과 함진영이라면 능히 임무를 달성했겠지만 불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혀를 차면서 노심초사하던 이성휘는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
“당장 내성으로 간다. 기병들을 인솔하라.”
“네!”
이성휘가 발걸음을 내딛으면서 소리쳤다.
그에 장료가 대답했다.
“원소는 죽이지 말라고 일렀거늘!”
“흐악!”
학맹이 검을 뽑으면서 심영을 위협했다.
날카로운 칼끝에 소스라치게 놀란 심영은 대경실색하는 반응을 보이면서 주저앉았다.
“봉선, 선두를 맡아라!”
“알았어!”
이성휘가 다급함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방천화극을 치켜든 여인은 능숙하게 적토마에 오르면서 기병대의 선두에 섰다.
최대한 신속하게.
한시라도 빨리 현장에 도달해야 한다.
대장군이 직접 통솔하는 기병들이 불길에 사로잡힌 시가지를 질주하면서 내성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