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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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짓밟힌다.
오랜 염원이 잿더미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업성이 함락되었다.
그것은 세력의 멸망을 의미했다.
“주군을 호위하라!”
“지금은 누가 아군인지 짐작할 수 없다! 우선 주군을 관저로 모셔야 한다!”
창검을 든 무관들이 소리쳤다.
바깥의 적들이 몰려들었다.
성내를 수비하던 아군들이 배신했다.
피아를 분간하기 어려운 아비규환의 상황에 직면한 원소군은 내성에서 농성하는 것을 선택했다. 일단 지금으로선 그것이 최선이었기에.
‘이것이 바로… 제 이상의 끝인가요…?’
불길에 휩싸인 성루.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지는 시가지.
철옹성처럼 견고했던 업성이 결국 조조군의 파상공세에 무너지고 말았다.
꿈의 몰락.
염원의 비참한 말로.
앞서 멸망했던 수많은 세력들처럼 멸문지화의 기로를 맞이했다. 심혈을 기울여 쌓아올렸던 대업이 한순간에 와해되어 무너지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몰락하는군요.’
병사들의 비명.
날카롭게 부딪치는 금속음.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은 참담하게 변해버린 업성의 정경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몰락을 직감했다.
몰락(沒落).
수많은 군벌들을 나락으로 떨어트렸던 멸망의 손길이 이윽고 자신마저 침범하려 하고 있었다.
“주군…! 내성까지 모시겠습니다!”
분무장군(奮武將軍) 저수가 손을 뻗었다.
전선은 위험하다.
계속해서 조조군이 밀려들고 있었다.
악화일로로 빠져버린 전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저수는 근위병단을 동원하여 주군을 호위했다. 지금은 누구도 믿을 수 없었기에 근위병단에게 모든 것을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전선을 벗어나야 한다!”
“근위병들은 사방을 경계하라! 포악한 흉수가 사방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중랑장 소유가 배신했다.
교위 마연과 교위 장의도 그에 가세했다.
사방이 모두 적이다.
누가 배신자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더러운 배신과 무자비한 변절이 업성을 둘러싸면서 원소군의 마지막 명맥마저 무너트렸다.
“등승 장군, 내성까지 주군을 호위하게!”
“그럼 분무장군께선….”
“몰려드는 적들을 막아보도록 하겠네.”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전선을 지휘하는 대장이 어떻게 장졸들을 버려두고서 떠날 수 있겠는가.
몰려드는 적들과 싸우겠다.
그것은 장렬한 결사항전을 의미했다.
죽기를 각오하고 적들을 막아내겠다는 저수의 결연한 의지에 등승은 참담함을 감출 수 없었다.
“주군, 부디 무사하셔야 합니다.”
“…….”
저수가 고개를 숙이면서 원소에게 예를 취했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틀림없이 마지막이 될 테지.
망국을 앞둔 장수들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기사회생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저수는 끝까지 충절을 완수하고자 전선에 남았다. 목숨을 다해 조조군을 막겠다며 주군에게 마지막 다짐을 건넸다.
“부, 분무장군…!”
“소장이 사력을 다해 적들과 대적하겠나이다.”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참담함에 젖어든 표정으로 하북의 충신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매몰차게 전개되는 악화일로는 마지막 이별을 나눌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조조군이 맹렬한 기세를 뽐내면서 주변까지 육박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시간이 없다.
어서 주군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야 한다.
근위병들이 주변을 철통처럼 경계하면서 원소를 내성으로 이끌었다.
“마지막까지 모실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안타까움에 젖은 눈길로 자신을 하염없이 응시하는 모습에 저수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에 비친 감정을 알아챌 수 있었다.
분명 이것이 마지막이겠지….
고결한 이상과 용맹으로 천군만마를 호령했던 군주에게 마지막 예를 취하면서 재회가 허락되지 않는 작별을 고했다.
* * *
패전이 명확한 상황이다.
또한 몰락이 예견된 전세이기도 했다.
그러나 도망칠 수 없었다.
불구덩이에 스스로 뛰어드는 미련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저수가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또한 전선에 남은 장졸들도 마찬가지였다.
죽음을 각오한 결사대가 되었다.
물밀듯이 쏟아지는 적들을 상대로 물러서지 않겠노라며 서로에게 맹세했다. 비열한 배신과 변절이 세력을 몰락으로 이끌었음에도 불변의 충성심이 찬연하게 빛났다.
“원소가 저기 있다!”
“공격하라! 원소를 붙잡아라!”
동문을 돌파한 조조군이 승세를 거듭하면서 저수가 있는 전선에 이르렀다.
위장군 조홍. 표기장군 조인.
패국조씨 가문의 종친들이 창검을 겨누면서 업성의 결사대와 대치했다.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으리라.
맹렬하게 타오르는 원소군의 눈빛을 주시한 조인은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북의 강병들이여! 주군에게 받은 은혜를 목숨으로서 보답할 때가 왔다! 여남원씨 가문을 위해!!”
저수가 소리쳤다.
날카로운 창검을 치켜들면서 병사들의 사기를 높였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라.
결사대의 함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모조리 덤벼라!”
“우리들은 업성과 함께 죽을 것이다!”
압도적인 물량을 자랑하는 조조군에게 사방이 포위되었음에도 결코 굴하지 않았다.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죽기를 각오한 병사들이었다.
날카로운 창검을 치켜든 조조군을 상대로 용맹하게 달려들면서 백병전을 벌였다. 예상치 못한 적들의 반격에 조홍과 조인은 잠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빨리 원소를 붙잡아야 하는데…!”
“우선 전선부터 정리하는 게 먼저야.”
원소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그에 패국조씨 가문의 강병들은 기사회생의 불꽃을 짓밟고자 공격을 되받아쳤다.
“놈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단번에 밀어붙여라! 원소를 쫓아라!!”
원소의 대장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틀림없다.
대장기를 미처 회수하지 못했을 정도로 혼비백산하여 달아난 것이리라.
소수의 병력들만 대동하고서 도망치고 있을 터.
지금 추격하면 곧바로 따라잡을 수 있다.
신속하게 사태를 파악한 조홍과 조인은 강병들에게 돌파를 명령했다. 하지만 업성의 결사대는 결코 적들에게 길을 내어줄 생각이 없었다.
“못 간다, 이놈들!”
“주군에게 가도록 놔둘 것 같으냐!”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
아니,
죽더라도 길을 비키지 않겠다.
분무장군 저수와 장졸들은 주군께서 조금이라도 멀리 대피할 수 있도록 필사적으로 통로를 가로막았다.
“커허억!”
“못… 간다! 못 보낸다!!”
화살세례가 빗발쳤다.
날카로운 화살들이 업성의 결사대를 덮쳤다.
그럼에도 결사대는 용맹하게 항전했다.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지면서 앞을 막아서는 결사대의 용맹이 실로 매서웠다. 수많은 전우들이 쓰러졌음에도 끝까지 저항하며 조홍과 조인을 위협했다.
‘주군, 지금까지 함께하여… 진심으로 영광이었습니다.’
적들의 압도적인 물량에 결사대가 무너졌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다.
저수는 자신의 차례가 왔음을 직감했다.
업성의 방어선을 지휘했던 총사령관이 검을 치켜들면서 앞장섰다. 거센 불길에 휩싸여 몰락하는 업성과 운명을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
“분무장군 저수다!”
“적의 총사령관이다! 놈을 죽여라!!”
총사령관이 직접 나섰다.
그에 조조군의 무관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도독을 지켜라!”
“최후까지 분전하라! 우리들은 하북의 강병이다!”
덧없이 사그라질 것임을 알면서도 원소군 병사들은 불꽃처럼 마지막 힘을 쥐어짜냈다.
모든 이들이 알고 있다.
전세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목숨보다 소중한 맹세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커헉!”
“네…! 네 이놈들!!”
결사대가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내성을 등지고서 싸웠다.
중원의 침략자들을 노려보면서 몸을 눕혔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면서도 조조군의 발목을 붙잡았다. 무서울 정도로 광적인 결사대의 저항에 직면한 조조군은 아연실색하며 두려워해야 했다.
“크읍-!”
화살들이 날아들어 저수의 어깨를 꿰뚫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뒤이어 날카로운 칼끝이 복부를 찔렀다.
대량의 핏물을 쏟아냈다.
하지만 절명해도 이상하지 않을 치명상을 입었음에도 저수는 두 눈을 부릅뜨면서 끝내 버텨냈다.
버텨야 한다.
일분이라도 더….
조금이라도 놈들을 붙잡아둬야 한다.
절박한 사명감이 정신을 지탱하면서 죽음을 밀어냈다.
“물러… 서지… 마라! 끝까지… 싸워라!!”
피거품을 토해내면서 울분에 찬 목소리를 부르짖었다.
몸이 휘청거렸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했다.
핏물을 주륵주륵 흘리면서 고함을 내지르는 저수의 모습에서 충신의 결연한 충성심이 느껴졌다.
“도독…!”
“모두 일어서라! 도독을 따르라!”
절박한 사투를 반복하던 상처투성이의 병사들이 저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부르짖었다.
도독께서 싸우고 계신다.
어찌 가만히 그 모습을 방관하고 있겠는가.
창검을 치켜들면서 침략자들에게 마지막 적의를 내비쳤다.
“…궁노병을 준비하라.”
주군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결사대의 용맹무쌍한 모습은 과연 군인의 귀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임무에 집중할 때였다.
치열하게 버티는 결사대를 주시하던 조인은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궁노병들을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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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유부녀. 아이 2명 출산)
ai로 만든 일러스트입니다. 주스타 님께서 제공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