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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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이 열리고 말았다.
결코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성문이 내부의 배신자들에 의해 개방되었다.
성문교위 심영의 변절에 호응하고자 표기장군 조인과 위장군 조홍이 군세들을 이끌고 성문을 점령했다.
“성문을 접수하라!”
“첨탑과 성벽을 점거해야 한다! 서둘러라!!”
적들이 몰려들었다.
성문 주변이 온통 조조군으로 가득했다.
불길이 치솟았다.
자욱하게 흘러나온 연기로 넘쳐났다.
물밀듯이 성내로 난입하는 조조군의 모습을 허망하게 지켜보던 원소군은 탄식을 토해내야 했다. 전우들의 희생이 결국 배신자의 손에 끝장을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누구냐! 대체 어떤 놈이 성문을 연 것이야!!”
치중종사(治中從事) 심배가 비분강개하며 무관들에게 소리쳤다.
성문이 내부에서 열렸다.
분명 조조군과 내통한 배신자가 연 것이리라.
대체 어떤 놈이 세력을 팔아넘겼단 말인가!
칼자루를 움켜쥔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조조군에게 함락된 동문을 지켜보았다. 심배의 두 눈에는 어두운 절망으로 가득했다.
“그, 그것이…! 성문교위 심영입니다!”
“정녕 사실이냐!!”
성문교위 심영.
동문을 수비하던 수문장이 적들과 내통했다.
소식을 들은 심배는 피를 울컥 쏟아내는 듯한 심정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위군심씨 가문의 혈족이자 자신의 조카였던 업성의 장수가 성문을 개방하여 조조군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분기를 금치 못했다.
“그토록 철저하게 내부를 경계했건만…! 하북을 팔아넘긴 진짜 배신자가 우리 가문에 있었구나! 위군심씨 가문의 혈족이 주군을 배신하다니!!”
이보다도 더한 수치가 있을까.
심배는 깊은 모멸감에 어깨를 바들바들 떨었다.
정로장군 국의를 포함한 장수들을 경계하면서 배신을 대비했으나 정작 배신자가 자신의 조카였다.
조카가 주군을 팔아넘겼다.
가문의 혈족이 세력을 송두리째로 무너트렸다.
위군심씨 가문은 더러운 배신자를 양성한 문중으로서 영원히 비난과 멸시를 당하게 될 것이다.
실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참극이었다.
‘주군을 위해…! 천하통일의 대업을 위해! 불철주야로 노력하며 기틀을 쌓아올렸건만! 결국 못난 놈에게 발목이 잡혀… 대업이 무너졌구나!!’
분탄을 토해냈다.
절망과 비참함에 사로잡혔다.
천하통일을 이루고자 바쳤던 기대와 염원이 한순간에 끔찍한 비명으로 변했다. 바닥에 주저앉은 심배는 연이어 바닥을 내리치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성내를 점령하라! 적의 방어선을 넘어라!”
황금 갑주를 걸친 흑발의 여인이 소리쳤다.
검을 들어올렸다.
날카로운 칼끝으로 적들을 가리켰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백척간두의 절박함이 조홍을 계속 재촉했다.
공방전에서 얼마나 많은 전우들이 비명횡사하며 죽어갔던가. 그들의 희생을 헛되이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필코 업성을 함락시켜야 했다.
“위, 위험합니다!”
“괜찮아요! 계속 밀어붙이세요!”
부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조홍은 전진을 거듭하면서 일선을 이끌었다.
조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방에서 화살세례가 계속 빗발치고 있었음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원소군을 끝장내겠다.
조홍과 조인이 용맹무쌍하게 분전하여 업성의 외성을 점령했다. 이윽고 조조군 병사들은 원소군을 계속 몰아내면서 시가지로 들어섰다.
“공격하라!”
“성문이 열렸다! 원소군을 쳐라!”
성문을 돌파했다.
뒤이어 외성을 공격하여 사투를 벌였다.
패국조씨 가문의 종친들이 뚫어낸 돌파구를 이용하여 후속부대들이 난공불락의 요새에 입성했다.
성문교위 심영이 성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사기가 하락한 원소군은 지리멸렬하듯 연이어 무너지면서 조조군에게 거점들을 내어주는 양상을 보였다.
“끝도 없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놈들이 동문에 이어 북문과 남문까지 연이어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조홍과 조인이 외성을 돌파했다.
후속부대를 지휘하는 장수들은 북문과 남문을 공격하여 방어선을 무너트렸다.
내부가 속절없이 뚫렸다.
외부에서도 공세가 이어지고 있었다.
안팎으로 이어지는 파상공세에 직면한 원소군은 최악의 국면에 진입했다. 고람과 장합이 분전하면서 전황을 이끌었지만 열세를 뒤집을 순 없었다.
“북문이 무너질 것 같습니다!”
“어서 남문에도 지원군을 보내야 합니다!”
총공세가 시작되었다.
모든 성문들이 조조군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내통자의 소행이다.
그들이 조조군에게 급습을 종용한 것이리라.
안과 밖에서 동시에 공세를 받게 된 원소군은 모래성처럼 삽시간에 무너졌다. 지금까지 사력을 다해 버텨내던 병사들의 절박한 용맹함이 녹아내리듯이 말이다.
“배신자들이 성문을 열었다!”
“조조군이… 벌써 성내로 침입했다!”
성문이 무너졌다.
성벽이 뚫리고 말았다.
전우들의 장렬한 희생으로 지켜냈던 성문과 성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은 유일한 희망마저 앗아갔다.
결국 조조군에게 함락되었다.
사방에서 맹렬하게 치솟는 불길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 * *
드디어 업성의 성문을 열었다.
자욱하게 솟구치는 연기.
성벽 너머로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병사들의 함성.
휘하의 장수들을 거느리고서 상황을 관망하던 조조는 작전이 성공했음을 깨달았다. 조홍과 조인이 결국 업성의 내부를 점령한 것이다.
“성공했습니다!”
“과연 표기장군과 위장군입니다!”
동문을 점령했다.
북문과 남문도 함락되기 직전이다.
그리고 유비군이 총공세를 벌이는 서문도 머지않아 무너지게 될 터였다.
연이은 승전보에 장수들은 희열감이 뒤섞인 표정을 지으면서 주먹을 거머쥐었다.
“원소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업성이 함락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입니다!”
난공불락의 요새를 돌파했다.
더 이상 원소군은 발악할 수 없을 터.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조조는 모든 전선에 전령들을 파견하여 속전속결을 명령했다.
“병주와 청주의 지원군이 도착하면 모든 게 끝장이다. 공방전을 최대한 속전속결로 끝내야 한다. 병마들을 모두 총동원하여 원소군을 멸망시켜라.”
업성의 성문을 돌파하면서 대단원의 종결이 보이기 시작했음에도 여전히 경계심을 표출했다.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었다.
숙적을 상대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일말의 자만도 용납하지 않았다.
최대한의 전력으로 너를 끝장내겠다.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은 위풍당당하게 하북을 통일했던 세력의 종말을 응시했다. 야심으로 타오르는 붉은 눈동자로 숙적의 멸망을 담아냈다.
“공격하라!”
“원소군이 무너지고 있다!”
칼끝을 치켜든 장수들이 소리쳤다.
승세를 거머쥐었다.
드디어 하북 정벌을 완수할 때다.
연이은 공방전으로 체력을 소진했던 병사들도 분기탱천하여 전선에 뛰어들었다. 승기를 거둘 때가 왔음을 병사들도 직감한 것이리라.
“조조군이 계속 밀려들고 있소…!”
“그야말로 중과부적이구려.”
노도처럼 밀려드는 조조군을 상대로 고군분투를 이어가던 장합과 고람이 무거운 호흡을 토해냈다.
금세 조조군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
성내가 온통 조조군으로 가득했다.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감히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절망적이었다.
“놈들은 진퇴양난이다!”
“사방을 포위하여 하북사정주를 상대하라!”
오소에서 안량과 문추를 죽였다.
이제 남은 장수들을 없앨 차례였다.
사방에서 공세가 시작되었다.
그에 장합과 고람은 병장기를 거머쥐면서 동귀어진을 각오해야 했다.
* * *
거사가 성공했다.
성문교위 심영이 불러들인 조조군이 마침내 성루에 군기를 꽂았다.
멸망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을 뒤집는 것은 불가능했다.
신중한 면모를 보이면서 전황을 주시하던 장수들은 이윽고 서로 합심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승상의 군대를 도와라!”
“이제부터 우리들은 승상을 따를 것이다!!”
변절을 속삭이면서 반란을 준비하던 업성의 장수들이 격앙된 함성과 함께 창검을 치켜들었다.
창고에 불을 질렀다.
둔영에 난입하여 병사들을 살해했다.
내부에서 벌어진 반란은 어떻게든 위기를 타개하려던 원소군의 명맥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배신이다!”
“중랑장 소유가 배신했다!”
투구에 두른 붉은색 띠.
주군을 배신한 반란군임을 상징했다.
중랑장(中郞將) 소유.
교위(校尉) 마연. 교위(校尉) 장의.
업성을 방비하던 장수들이 조조군에 가담하여 내성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열었다. 조조에게 충심을 입증하고자 선두를 이끌었다.
“우리들이… 원소를 죽입시다!”
“승상 어르신에게 충성을 입증할 방법은 오직 그것 밖에 없을 거요!”
원소는 장졸들을 독려하고자 전선에 가세한 상태였다.
지금 습격하면 승산이 있다.
분명 아직까지 전선에서 대피하지 못했을 터.
하북의 군주를 죽일 기회는 지금뿐이다.
배신의 기치를 치켜들었던 장수들이 서로 의기투합하며 비열한 암습을 모의했다.
충성을 다해 보필했던 주군을 배신하는 일이었음에도 업성의 장수들은 결코 망설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