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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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성 공방전이 계속 치열하게 이어졌다.
병사들의 함성.
장대비처럼 몰아치는 화살세례.
아비규환의 지옥을 방불케 했다.
공방을 치를 때마다 수천 명에 달하는 장졸들이 참화 속에 쓰러졌다. 그럼에도 원소군과 조조군은 공방을 거듭하면서 전의를 불태웠다.
“물러서지 마라! 성을 넘어라!”
악진이 소리쳤다.
반드시 성을 넘으라.
수많은 병사들이 운제를 타고 성벽을 올랐다.
비참하게 전사한 전우들의 주검이 산더미처럼 쌓였음에도 망설임 없이 진격했다. 수많은 공방전에서 승리를 거둔 역전의 강병들다운 용맹함이었다.
“궁노병들은 계속 활을 퍼부어라! 보병들은 바위를 계속 날려라! 절대 멈춰선 안 된다!”
압도적인 물량이 덮쳐왔다.
사방에서 파상공세가 이어지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군세들을 상대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정로장군(征虜將軍) 국의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끝이 없다.
대체 병력들이 얼마나 많단 말인가.
성문과 성벽을 침략했던 병사들의 주검으로 시산혈해를 쌓았음에도 공세가 이어졌다. 끊이질 않는 물량공세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정로장군, 위험합니다!”
“크윽…!”
꽈아아앙──!!!
요란한 파쇄음이 울렸다.
벽력거에서 발사된 육중한 바윗덩이가 업성의 성루에 부딪쳤다.
높게 쌓은 성루가 주저앉았다.
집중적으로 벽력거에 노려졌던 업성의 성루는 결국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채 무너지고 말았다.
“두려워 말라!”
“장졸들은 위치를 사수하라!!”
고람과 장합이 소리쳤다.
성루가 무너졌을 뿐이다.
견고한 성문과 성벽은 여전히 건재했다.
두려움에 어깨를 떨면서 움츠러들었던 병사들은 사기를 독려하는 고함소리에 다시 몸을 일으켰다. 병장기를 움켜쥐고서 적들을 향해 반격을 가했다.
“와라, 중원 놈들아!”
“업성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완강한 사기를 뽐냈다.
불길처럼 타오르는 전의를 보여주었다.
세력의 명운이 흔들리고 있다.
원소군 병사들은 저력을 발휘하면서 조조군의 공격을 열흘 동안 막아냈다.
절대 질 수 없다.
결코 져선 안 되는 싸움이다.
그렇기에 병사들은 아름다운 주군을 지키고자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지면서 꿋꿋이 버텨냈다. 강경한 결사항전에 조조군은 열흘이 흘렀음에도 성벽을 도모하지 못한 채 소모만을 거듭하고 있었다.
‘조조군을 어떻게 이긴단 말이냐…!’
‘병주와 청주에서 지원군이 당도하더라도 각개격파를 당할 뿐이다!’
원소군 장졸들이 결사를 부르짖으면서 항전을 선택했다.
하지만,
모든 장수들이 결사를 각오한 것은 아니었다.
성문교위 심영을 비롯하여 공방전에 회의감을 느낀 일부 장수들이 변절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안량과 문추가 죽었다.
답둔마저도 참살되지 않았던가.
하북 전역이 시산혈해처럼 아군과 오환족의 시체들로 가득했다.
병주와 청주에서 지원군이 도착하더라도 결국 조조군에게 몰살을 당할 뿐이다. 전황을 비관적으로 판단한 장수들은 기회를 노려 조조군에게 투항하려 했다.
* * *
난항에 둘러싸인 업성에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병주의 병마들이 호관(壺關)을 넘었다.
또한 청주의 지원군이 청하(淸河)에 당도했다.
위기에 봉착한 주군을 구하고자 충성스러운 장졸들이 강행군을 거듭하면서 달려오고 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면 이길 수 있다…!
전령들로부터 급보를 들은 전풍과 심배는 풍전등화의 위기를 뒤덮을 기회가 도래했음에 크게 기뻐했다.
“하늘께서 여전히 돕고 계시는군.”
“곽원과 왕수를 병주와 청주에 배치한 덕분일세.”
병주자사 고간과 청주자사 곽도를 대신하여 군현의 병마들을 지휘하던 곽원과 왕수가 출진했다.
병주와 청주의 지원군은 업성에 당도하자마자 공세를 이어나가는 조조군의 배후를 공격할 터.
삼면에서 총공세를 가할 수 있다.
한꺼번에 공세가 집중된다면 공성전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조조군은 지리멸렬하게 무너지리라.
“그렇다면 이 기쁜 소식을 장졸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등승이 전풍과 심배에게 제안했다.
승전보나 다름없는 소식이 알려진다면 피로에 지친 장졸들의 사기가 크게 치솟을 터였다.
“결코 안 될 말이네!”
“조조군의 귀에 들어간다면 어찌 되겠는가.”
업성을 구원하고자 달려온 병주와 청주의 병마들이 인근까지 당도했다는 사실이 만약 조조군에게 알려진다면 급습에 대비할 여력을 주게 된다.
결코 알려져선 안 된다.
반드시 기밀을 유지해야만 했다.
등승에게 거듭하여 덧붙인 전풍과 심배는 지원군이 한시라도 빨리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주군, 몸은 괜찮으시옵니까?”
군사들이 기밀을 논하고 있었을 때,
도독(都督) 저수는 관저에 출입하여 원소를 알현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걱정 말아요.”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수척해진 안색을 보이면서 말했다.
대량의 피를 토했다.
당연히 심신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원소는 연약해진 심신에게 무리를 명령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갈대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는 주군의 모습에 저수는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병사들에겐 내가 필요해요…. 수많은 역경에도 꿋꿋하게 일어섰던 완전무결의 상징이 필요해요.”
주군을 대신하여 총사령관을 수행하는 저수가 결코 무능력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저수는 하북을 대표하는 명장이다.
하지만 악전고투를 이어나가는 장졸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상징’이었다.
상징이 나서야 했다.
뒤덮은 절망을 물리칠 한줌의 희망이 절실했다.
그렇기에 원소는 무리를 해서라도 공방전의 일선에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무리는 금물입니다. 만약 주군께서 전선에 나서셨다가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어떻게든 버텨내야죠.”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충신의 간언에 수척해진 안색의 여인이 애써 미소를 지었다.
알고 있다.
위험천만한 행동이라는 것을.
하지만 지금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장졸들이 희망을 얻을 수 있도록 패색을 물리쳐야 했다.
“잠시 부축해주시겠어요?”
“…예.”
원소가 팔을 내밀었다.
그에 저수는 묵묵히 그녀를 부축해주었다.
가볍다.
몸이 너무도 가벼웠다.
마치 혼이 빠져나간 빈껍데기처럼 느껴졌다.
저수는 애써 불길함을 억누르면서 주군을 바깥으로 이끌었다. 피로와 추위에 지친 장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겠다는 그녀의 염원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
“장졸들은… 잘 싸워주고 있나요?”
“예, 물론입니다.”
힘겹게 발걸음을 내딛던 원소가 물었다.
저수가 대답했다.
“나약하고 못난 주군 때문에… 애꿎은 장졸들만 피해를 입고 있네요. 하북의 패자로서 당당하게 전선을 이끌었어야 했는데.”
완벽을 맹세했다.
끝까지 완전무결을 관철하려 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추태란 말인가….
건곤일척의 결투가 이어지는 중차대한 상황에 피를 토하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로 인해 업성의 장졸들은 외로운 고군분투를 이어나가야 했다.
“주군!”
“주군께서 오셨다!”
화려하게 치장한 갑주를 걸친 여장부가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면서 전선에 도착했다.
주군께서 오셨다.
드디어 우리들의 주인께서 참전하셨다.
장졸들이 병장기를 치켜들면서 함성을 내질렀다.
“열흘 동안 모두 막아냈습니다!”
“결코 조조군은 성벽을 넘지 못할 것이옵니다!”
아름다운 주군의 늠름한 자태를 목격하자 장졸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절대적인 충성심을 자랑하는 세력답게 원소가 전선에 가세하자마자 난항이 뒤집혔다. 반드시 목숨을 다해 업성을 사수하겠노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완연하게 드리운 패색에 좌절하지 않고 항전을 이어나간 그대들의 용기에 찬사를 표합니다. 용맹한 그대들이야말로 하북을 대표하는 수호자예요.”
항상 걸쳤던 갑옷이 너무도 무거웠다.
쓰러질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넘어질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원소는 사력을 다해 버티면서 장졸들에게 승전을 호언했다. 숨이 넘어갈 것처럼 위태로운 상태였음에도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예를 표했다.
“하북의 운명이 지금의 전투에 달려있습니다! 용맹무쌍한 장졸들이여, 여남원씨 가문의 기치를 높게 치켜들고서 함성을 지르라! 업성을 끝까지 사수하여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어나가자! 승리를 위하여!!”
촤앙-!!
원소가 보검을 빼들었다.
무거운 금속을 높게 들었다.
당장이라도 떨어트릴 것처럼 팔이 바들바들 떨렸음에도 죽을힘을 다해 자세를 유지했다.
희망의 상징이 되고자.
고난에 지친 병사들이 일어설 원동력이 되고자.
“저희들이야말로 영광입니다!”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나이다!”
멀리 있는 병사들은 위풍당당한 늠름함에 감복하여 함성을 내질렀다.
가까이에 있던 병사들은 꿋꿋하게 발걸음을 내딛은 결연한 용기에 감탄하여 병장기를 치켜들었다.
우리들은 이긴다.
기필코 승리를 거둬낼 것이다.
여남원씨 가문에 영광이 있으라.
수많은 역경과 고난이 들이닥치더라도 아름다운 주군을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목숨을 바치겠다.
열흘 동안 반복되었던 고군분투에 지쳐버린 최악의 상황이었음에도 함성을 내지르면서 일어섰다.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여 조조군의 압도적인 물량에 맞섰다.
‘이제 이틀…. 조금만 더 버티면 조조군은 공방전을 포기하고 중원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조금만,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열흘 동안 용맹하게 싸워주었다.
이틀만 지나면 병주와 청주에서 출병한 지원군들이 조조군의 후미를 공격해줄 터.
그때까지만 버티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최후의 기력까지 쥐어짜내면서 전선에 참전한 원소는 용맹하게 공방전을 이어나가는 강병들을 바라보면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 주군──!!”
그러나,
하늘은 그녀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절박한 고함이 쩌렁쩌렁 울렸다.
동문에서 다급하게 달려온 무관이 주군과 장수들에게 급보를 알렸다.
“성문교위 심영이 성문을 열었습니다! 지금 조조군이 물밀듯이 성내로 난입하고 있습니다!”
늦었다.
이미 늦었다.
사력을 다하더라도 대세를 뒤집을 순 없다.
잔인무도한 운명은 사력을 다하여 기사회생을 시도하던 원소군에게 절망을 선사했다. 한낱 용기 따위로는 절박한 현실을 이길 수 없음을 보여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