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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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유를 고육지책의 희생양으로 만들어 업성에 거짓 정보를 퍼트렸다.
철군을 감행하는 조조군의 후미를 공격하여 역전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안 된다.
조조군의 기만책일 가능성이 높으니 업성을 견고하게 지켜야 한다.
거짓 정보에서 시작된 부화뇌동은 내황성과 번양성에 주둔하는 오환족을 제쳐두고서 업성에만 집중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로 인해…,
원소군과 양면전선을 형성했던 오환족을 매우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시시비비를 가리면서 첨예하게 대립할수록 안목이 좁아지기 마련이지 않나. 그것을 노렸다.”
원소군은 우수한 참모들을 기용하고 있었지만 의견이 하나로 뭉치지 못한다는 결점을 떠안고 있었다.
기주파와 예주파,
원소군의 여론은 두 파벌들로 분열된 상태였다.
예상대로 성공했다.
파벌들의 대립과 반목은 원소군이 멸망하는 순간까지도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었다. 그 맹점을 파고든 이성휘의 기만책은 훌륭하게 원소군을 무너트렸다.
“과연 영예로운 주군이시옵니다.”
잿빛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계책이다.
고육지계와 성동격서를 모두 성공시켰다.
책략과 전법들을 전수했던 스승으로서 제자의 일취월장에 뿌듯함을 느꼈다. 이제는 천하를 향해 당당하게 국사무쌍(國士無雙)을 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천하무쌍에 이어 국사무쌍…. 과연 영예로운 주군께서는 천하를 대표하는 효웅이시옵니다.”
“과찬이다.”
가후의 상찬에 이성휘는 겸손한 어투로 대답했다.
아직 멀었다.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
겸손을 보이면서 자만과 독단을 경계했다.
그렇기에 이성휘는 책략을 고안할 때마다 참모들을 소집하여 의논을 거쳤다. 자신의 책략에 결점이 존재한다면 수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예로운 주군이야말로 군웅할거의 패왕에 어울리는 분이시옵니다만…. 너무도 안타깝사옵니다.’
안타깝다.
너무도 뛰어나기에 아까웠다.
분명 패왕이 될 자질이다.
그럼에도 주군은 패왕이 되기를 포기했다.
영예로우신 주군께서는 군주의 반려이자 2인자로서만 만족할 뿐이었다.
‘이제 슬슬 체념할 때도 되었사옵니다만… 자꾸 욕심이 생기옵니다. 이것이 바로 밀당이라고 하는 것이옵니까?’
후우.
안타까움에 찬 한숨을 흘렸다.
천하의 권력을 거머쥐려는 야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성휘에게 끊임없이 야심을 독촉했던 가후는 어느덧 체념하기에 이르렀다.
‘정말 곤란한 분이옵니다. 이 가문화를 단념하게 만드시다니.’
나란히 걷던 이성휘의 모습을 힐끗 쳐다보았다.
당기는 쪽이라면 모를까,
설마 이렇게까지 사내에게 끌리게 되다니.
이제는 오로지 영예로운 주군께서 천하를 제패하는 모습을 응원할 뿐이었다.
“대장군, 형장에 죄인을 대령했습니다.”
집행을 맡은 학맹이 다가와 말했다.
그에 이성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후와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죄인의 형벌이 집행될 형장으로 향했다.
“살려주게, 대장군! 제발 살려주게!!”
병사들에게 압송된 사내가 절박한 목소리를 부르짖으면서 이성휘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간사하게 기른 메기수염.
아무렇게 풀어헤친 산발과 초라하게 변한 얼굴.
형장에 선 사내는 상서랑중(尙書郞中) 허유였다.
원소군에게 밀정을 파견하여 군사기밀을 몰래 알려준 것이 발각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변론의 여지가 없는 반역이 분명했기에 곧바로 집행했다.
“적들을 유인하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었는가! 대장군의 군략을 알아채고서 원소군에 심복을 파견했던 것일세! 부디 믿어주게!!”
허유의 외침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죽음을 모면하려는 잔꾀다.
비웃음을 흘리면서 배신자의 말로를 지켜보았다.
군율에 따라 변절자는 극형에 처한다.
배신과 공작을 반복하면서 오로지 사리사욕만을 추구했던 최악의 난신. 백해무익한 난신은 당장 죽여야 마땅했다.
“사… 살려줘! 살려주게!! 아만! 아마아안!! 오랜 벗의 간곡한 부탁일세! 제발 목숨만큼은 살려주게!!”
허유가 온몸을 비틀면서 소리쳤다.
침을 뚝뚝 흘렸다.
격앙된 목소리로 오랜 벗에게 자비를 구걸했다.
그러나 간곡한 외침이 조조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참언과 아첨만을 일삼았던 허유의 목소리가 지긋지긋했기 때문에 집행에 불참했다. 부하들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한 채 본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집행하라!”
이성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학맹이 집행인들에게 소리쳤다.
“으, 으아아악!!”
팔다리를 밧줄에 묶었다.
뒤이어 우마들이 밧줄을 끌기 시작했다.
평시였다면 참형으로 그쳤겠지.
하지만 지금은 군율이 적용되는 엄중한 전시였다.
그렇기에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졌다.
“끄, 끄아아아악!!!”
사내의 처절한 비명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팔다리가 동시에 으스러졌다.
교활한 배신자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말로였다.
동정심을 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정부패와 가렴주구를 범하면서 많은 병폐들을 조성시켰던 간신이 처절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비웃음을 날릴 뿐이었다.
* * *
오환족을 대파한 조조군이 마침내 전군을 동원하여 업성을 포위했다.
광범위한 포위망을 펼쳤다.
업성을 엄호하던 성채와 요새들까지 모두 함락시켰기에 포위망을 펼침에 있어 거침이 없었다.
기필코 업성을 함락시키겠다.
철옹성에 숨은 원소군에게 강경한 경고를 보냈다.
“답돈이 죽었다는군!”
“어디 그뿐인가? 동맹군으로 가세했던 오환족이 조조군의 급습에 전멸했다네!”
수만의 군세들이 겨우 반나절 만에 무너졌다.
오환족의 영웅이 죽었다.
북방을 호령했던 오환왕의 군세들마저 적의 강성함을 이기지 못하고 분쇄되었다.
공포와 두려움이 삽시간에 업성을 잠식했다.
비보가 확산되지 않도록 무관들을 동원하여 철저히 경계했음에도 확산을 막을 순 없었다.
“죽여주십시오! 주군…!”
“난전에서 순심 군사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조조군에게 대패했던 여광과 여상 형제가 패잔병들과 함께 구사일생으로 돌아왔다.
바닥에 엎드리며 머리를 내밀었다.
부디 어리석은 패장들에게 엄벌을 내려달라며 주군에게 호소했다.
“…지금은 모두 합심하여 조조군을 막아내야 할 때입니다. 그대들의 죄는 추후에 묻도록 하겠어요.”
성급한 판단에서 촉발된 패전이었다.
장수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원소는 조조군의 포위망을 돌파하여 업성으로 돌아온 여광과 여상에게 업성의 방비를 맡겼다.
하지만 주제넘게 월권을 행사했던 위군태수 고번만큼은 용서할 수 없었다. 위군태수의 관인을 거두고서 곽도처럼 감옥에 수감했다.
“동요하지 마라!”
“조금만 참고 인내하면 조조군은 물러갈 것이다!”
혼란과 두려움을 우려했기 때문일까.
무관들이 고함을 내질렀다.
성문과 성벽에 동원된 병사들의 사기를 독려했다.
엄동설한의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다.
연이은 악전고투로 기력을 소모한 중원의 침략자들은 이제 한계에 직면했다. 제아무리 강성한 정예병들이라도 동장군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을 터.
이길 수 있다!
우리들은 반드시 이길 것이다!
원소군 무관들이 격앙된 목소리로 승전을 부르짖으면서 업성을 뒤덮은 공포와 두려움을 걷어내려 했다.
‘최후의 발악을 하는군.’
‘중과부적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찌 모르는가!’
성벽에 배치되어 살아남은 패잔병들을 추스르던 여광과 여상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면서 중얼거렸다.
결국 조조가 천하를 통일할 터.
어찌하여 풍전등화의 상황임을 인정하지 못하고 발악한단 말인가.
여광과 여상은 조조군의 포위망을 돌파하고서 업성에 도달한 것이 아니었다.
전선에서 붙잡혔다.
그리고 조조와 이성휘에게 투항했다.
중원의 항장이 되었음에도 패잔병들과 업성으로 돌아온 것은 열후(列侯)에 책봉해주는 조건으로 한나라의 승상에게 중대한 임무를 받았기 때문이다.
“성문에 배치된 병력들이 제법 많습니다만 능히 뚫어낼 수 있습니다, 형님.”
“드디어 우리들도 제후가 될 수 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과연 그러했다.
무모하게 포위망을 돌파하다가 붙잡히는 수모를 겪었음에도 멀쩡히 살아있지 않은가.
게다가 다시없을 기회까지 받았다.
척박한 변방을 관할하는 장수로 살아가던 자신들에게 제후에 책봉될 기회가 내려왔다. 그것을 천재일우의 기회로 여긴 여광과 여상은 망설임 없이 조조군을 신종하기로 결심했다.
“여광 장군. 여상 장군.”
반란을 모의하던 여광과 여상에게 중무장한 사내가 다가왔다.
정로장군(征虜將軍) 국의.
패전의 책임을 지고서 삭탈관직에 처해졌다가 전풍과 함께 복권된 무장이었다.
대체 무슨 일로 찾아왔단 말인가.
여광과 여상은 반신반의하는 마음을 품으면서도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 국의를 맞이했다.
“정로장군, 다시 복직된 것을 축하하오.”
예를 취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에 국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광 장군과 여상 장군께서 용맹한 무장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소만… 설마 조조군의 포위망을 돌파할 정도로 용맹할 줄은 몰랐소.”
의심이 묻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농담을 가장한 취조였다.
죄인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심문에 가까웠다.
국의의 말에 여광과 여상이 얼굴을 굳혔다.
“그런데 순심 군사는 어찌 되었소? 분명 함께 종군하였을 터인데.”
“안타깝게도… 전선에서 낙오되고 말았소.”
거짓말이었다.
순심은 투항을 거부했기에 군중에 남겨졌다.
절개를 버릴 순 없다.
결코 네놈들에게 투항하지 않겠다.
끝까지 충심과 절개를 고수하면서 조조군의 위협에도 당당함을 관철했다. 그에 조조군은 순심을 당장에 죽이지는 않고 막사에 수감해두었다.
“설상가상이로군. 그렇지 않은가?”
“그, 그렇소.”
“동맹군이 전멸한 절체절명의 상황인데… 내부에는 더러운 배신자들까지 꿈틀대고 있으니 말이야.”
“무슨…!!”
국의가 손을 들어올렸다.
이윽고 무관들이 달려들어 여광과 여상에게 날카로운 칼끝을 겨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