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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539화 (539/616)

<5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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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촉과 정남이 처음부터 원소를 배신하고자 도모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연쇄적인 실패 때문이었다.

하북에 소속된 지역들을 통일하면서 상승가도를 이어나가던 원소군에게 있어 연쇄적인 실패들은 반란과 반목을 부추기는 원흉으로 작용했다.

-업성마저 무너질지도 모른다.

-결국 조조군에게 하북을 빼앗기게 되리라.

-주군께서 염원하는 천하통일의 대업은 일장춘몽의 허영에 불과할 것이다.

몰락하기 전에 살길을 찾아야 한다.

이대로 함께 몰락할 순 없다.

서서히 가라앉는 배에 몸을 맡기진 않겠다.

반신반의하며 전황을 지켜보던 초촉과 정남은 동맹군으로 가세한 오환족이 조조군에게 대패를 당했다는 비보를 듣고서 마침내 반란의 칼끝을 치켜들었다.

“관원들을 소집시켜라!”

“뜻에 거역하는 놈들은 모두 베겠다!”

탁군(涿郡)과 광양군(廣陽郡)의 장수들이 반란에 가담했다.

그에 자신감을 얻은 것일까.

초촉은 스스로를 유주자사(幽州刺史)라고 칭하면서 거짓 명분을 만들어냈다.

또한 정남도 마찬가지였다.

유주도위(幽州都尉)를 자칭하면서 군현들의 병권을 장악했다. 반란에 성공한 다음에 유주를 통째로 조조에게 바치기 위함이었다.

“천인공노할 역적들아! 지금까지 주군에게 많은 은혜를 받았으면서 어찌 반란을 획책한단 말이더냐! 네놈들은 사람이 아니라 더러운 축생이다!!”

수많은 관원들이 초촉과 정남에게 가담했다.

하지만 오직 주부(主簿) 한형만은 충의지심의 절개를 보이면서 초촉과 정남을 크게 꾸짖었다.

“이 늙은이가 감히…!”

초촉이 대노하여 칼자루를 쥐었다.

그에 정남이 손을 뻗으면서 만류했다.

“주부 한형을 건드려선 안 되네. 그를 존경하는 사대부와 호족들이 많지 않은가? 분명 반발이 일어나게 될 것일세.”

한형은 유주를 수비하는 장수들을 감독하고 경계하는 별가였다.

하지만 지금은 초라한 늙은이에 불과했다.

괜히 민심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판단한 초촉은 무관들에게 명령하여 한형을 감옥에 가두도록 했다.

“조조군에게 수급들을 보내도록 하지. 투항을 알리는 서한도 보내겠네.”

후일을 도모하고자 유주로 피신했던 오환족의 두령들은 안타깝게도 모두 목 없는 귀신이 되고 말았다.

소복연. 오연.

부족을 대표하는 수많은 두령들이 죽임을 당했다.

조조에게 투항하기 위한 제물로서 오환족 두령들이 희생되었다. 동맹군으로 가세한 두령들의 수급이라면 분명 조조의 환심을 살 수 있을 터였다.

‘주군께서 자초하신 것이오…! 조조군에게 연전연패를 당하는 굴욕만 겪지 않았어도 일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진 않았을 테니!’

수많은 군벌들을 쓰러트리고 빛나는 영광을 거머쥐었기에 원소를 ‘완벽의 상징’으로 여긴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연이은 패배들을 하면서부터 그녀는 완벽의 상징이 아니게 되었다.

앞서 멸망했던 수많은 군벌들처럼 처절하게 몰락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부화뇌동을 일으켰다. 그것은 이윽고 반란의 불씨가 되어 원소를 덮쳐왔다.

* * *

당장 오환족의 출병을 막아라.

불길함을 직감한 원소가 곧바로 파발을 보냈다.

이것은 함정이다.

내황성과 번양성에 주둔하는 군세들을 바깥으로 끌어내기 위한 기만책이 틀림없었다.

안량과 문추를 오소로 몰아넣었던 기만책과 유사한 속임수였기에 함정임을 확신했다.

“제발… 제발 늦지 않았기를…!”

손톱을 꾹 깨물었다.

이토록 간절하게 천운을 바랐던 적이 있었을까.

천운 따위는 없다.

오직 사람의 힘으로 행할 뿐이다.

그렇게 주장하면서 요행을 기대하지 않았던 원소는 처음으로 하늘에게 요행을 내려주기를 염원했다.

“주군! 답돈과 오환족의 두령들이…! 조조군의 급습에 대패를 당했다고 합니다!”

내황성으로 향했던 전령이 돌아왔다.

답돈이 전사했다.

동맹군으로 가세한 오환족이 모두 처형되었다.

광활한 설원이 시산혈해로 뒤덮였다는 비보를 접한 원소는 좌절감에 몸을 떨었다. 오환족의 패전으로 결국 양면전선마저 무너졌기 때문이다.

“답돈이 죽었단 말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조조군의 손에 참수되어 수급이 내걸렸다.

답돈이 틀림없었다.

오환족을 통일했던 용맹무쌍한 전사가 조조군의 속임수에 빠져 처참한 말로를 맞이했다.

동맹의 신의를 지키고자 병마들을 이끌고 출병했던 오환족은 설원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수만에 달하는 병력들이 반나절 만에 모두 일소되었다.

‘결국… 하늘은 이 본초를 버린 것이군요….’

천운은 없었다.

오직 불행만이 존재할 뿐.

사람의 힘과 노력만을 강조했던 오만방자한 계집에게 천운을 내려줄 정도로 하늘은 자비롭지 않았다.

잠시나마 요행을 바란 것이 잘못이었을까.

천신만고의 노력으로 천천히 쌓아올렸던 꿈과 야망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으윽…! 아아악…!!”

원소가 관자놀이를 짓누르면서 툴썩 주저앉았다.

꿈이 무너진다.

야망이 침몰하고 있다.

이상과 대의가 익사(溺死)를 앞두고 있었다.

절망을 동반한 극심한 충격이 지긋지긋한 고질병처럼 겪었던 두통을 일으켰다.

“주군!”

“괘, 괜찮으십니까…!”

머리를 쪼개는 듯했다.

뇌리를 찌르는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무수히 겪었던 편두통과는 다르다.

생명의 근원을 갉아먹는 무자비한 고통이 고스란히 뇌리에 전해졌다.

“어서 의원을 불러라!”

전풍이 소리쳤다.

고통에 시름하던 원소가 손을 뻗으면서 만류했다.

“안 됩니다, 경거망동… 마세요.”

오환족이 전멸했다는 비보가 알려지면 업성은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져들 터.

안 된다.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순 없었다.

병주와 청주에서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든 업성을 사수해야 한다.

장졸들의 사기를 우려한 원소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순간에조차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했다.

“괜찮습니다. 잠깐만 쉬면… 가라앉을 겁니다.”

바닥에 주저앉은 원소가 다시 자리에 착석했다.

호흡을 갈무리했다.

쇳물처럼 들끓었던 마음을 천천히 가라앉혔다.

매번 고질병처럼 두통을 겪었기에 억누르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은 손수건으로 연신 식은땀을 닦으면서 털방울처럼 어지럽게 얽혀버린 마음을 진정시켰다.

“주군, 유주에서 급보가 도착했습니다…!”

원소가 심호흡을 내쉬면서 관자놀이를 천천히 주무르고 있었을 때,

바깥에서 대기하던 무관이 다가왔다.

새로운 급보가 도착한 것일까.

무관의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무슨 일인가요?”

병주와 청주에서는 곧바로 병력과 물자들을 보내겠다는 답변이 도착했으나 유주만은 묵묵부답이었다.

이제 결단을 내린 것일까.

유주에 주둔하는 기병부대가 업성 전선에 가세한다면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바, 반란이 벌어졌습니다….”

“뭐라고요?”

낯빛이 사색으로 변한 무관이 입을 열었다.

그에 원소가 되물었다.

반란이 벌어졌다니?

용맹한 장수들이 철통처럼 수비하고 있는 유주에서 어떻게 반란이 벌어진단 말인가.

“초촉과 정남을 위시한 무장들이 주부 한형을 억류하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북방의 이민족들을 토벌하면서 전공을 쌓았던 숙장들이 조조군에게 돌아섰다.

탁군과 광양군이 넘어갔다.

유주의 강성한 기병부대들마저 반란에 합류했다.

여남원씨 가문에 불변의 충성을 맹세했던 무장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한 것이다.

소식을 들은 원소는 격분에 휩싸였다.

“어, 어째서…! 보름만 더 버티면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데!!”

꽈악-.

주먹을 움켜쥐었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들끓는 격정을 토해냈다.

“대체 왜!!”

연이은 패배.

불신으로 인한 반란.

하북에 망조(亡兆)가 파고들기 시작했다.

조조군과 대립하며 천하이강의 구도를 달성했던 하북 세력이 몰락하기 시작했다. 패색이 점점 완연해질수록 공포와 불안감은 현실이 되어 원소를 궁지에 몰아세웠다.

“우욱…!”

구역질을 느꼈는지 원소가 한손으로 입가를 틀어막았다.

울화가 치밀었다.

간신히 억눌렀던 분기가 차올랐다.

거기에 더해 유황불처럼 맹렬하게 타오르는 분노마저 몰아치면서 한계에 달하게 되었다. 연이은 참화들이 결국 원소를 무너트리기에 이른 것이다.

“쿨럭──!!”

기침과 함께 각혈이 쏟아졌다.

선혈이 주륵 흘러내렸다.

입을 틀어막았던 손으로 막아보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주군!”

“어서…! 어서 의원을 불러라!!”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피를 토해내면서 무력하게 주저앉았다.

황망한 상황에 대경실색한 전풍과 심배가 무관들에게 어서 의원을 데려오도록 분부했다.

치료가 필요하다.

안정을 취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원소가 각혈하며 쓰러졌음에도 하북을 침략한 조조군은 치료와 안정을 취할 시간을 결코 허락해주지 않았다.

“조조군이 몰려오고 있다!”

“모든 장졸들은 조조군의 공세에 대비하라! 반드시 업성을 수비해야 한다!!”

당장이라도 놓쳐버릴 것처럼 위태로운 정신을 애써 부여잡던 원소는 요란하게 울리는 종소리를 들었다.

위기를 알리는 경종(警鐘)일까.

아니면 세력의 몰락을 알리는 조종(弔鐘)일까.

몰락의 손아귀가 그녀의 육신을 움켜잡았다.

수많은 군벌들을 파멸로 이끌었던 몰락의 손아귀가 당장이라도 원소를 낭떠러지로 떨어트릴 것 같았다.

“비상령을 선포하고… 제장들을 소집시키세요.”

원소가 힘겹게 숨을 토해내면서 말했다.

다시 일어섰다.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텨냈다.

누구도 나를 범할 수 없다.

몰락 따위가 나를 유린하게 두지 않겠다.

난세를 종결시키고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대업을 이루고자 수많은 장졸들이 목숨을 바쳤다. 장졸들의 헌신과 희생을 헛되이 만들 순 없었기에 사력을 다하여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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