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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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리(乖離)에서 비롯된 의심이 번져나갔다.
이상했다.
조조군이 업성을 정면에서 노린다니.
업성은 여양성보다 훨씬 견고한 요새였다.
여양성을 정공법으로 함락시키지 못한 조조군이 업성을 정면에서 노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결국 여양성의 함락에 실패하여 안량과 문추를 오소로 유인하는 기만책을 동원했을 텐데…. 정말 조조군이 업성으로 올까요?’
슬픔을 억눌렀다.
무거워진 마음을 가라앉혔다.
물결처럼 밀려들었던 격정을 애써 삼켰다.
냉철한 이성과 사리분별을 회복한 원소는 밀실에서 발자취를 더듬는 것처럼 의심의 파편들을 맞춰나가기 시작했다.
“성동격서(聲東擊西)라도 꾀할 생각인가요?”
아니,
그럴 리 없었다.
저들이 어디를 노린단 말인가.
업성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그리고 오환족이 탈환한 내황성과 번양성도 쉽사리 함락시킬 수 있는 거점이 아니었다.
결국 엄동설한의 추위에 무너질 수밖에 없을 터….
“대체 노리는 게 뭐죠.”
턱을 괴었다.
심사숙고를 거듭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노림수.
조조군이 난황을 뒤집을 책략.
천신만고를 다하여 이룩했던 자신의 세력을 멸망시킬 비책에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주군!”
“들어오세요.”
고람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에 원소는 출입을 허락했다.
늠름한 무장이 들어섰다.
뒤이어 처참한 몰골로 변해버린 신평이 포대자루처럼 병사들에게 질질 끌려 들어왔다.
“주, 주군…! 소신에게 대체… 왜 이러십니까!”
다짜고짜 무관들이 저택에 난입하여 포로를 고문하듯이 매타작을 당했다.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신평이 억울함에 찬 표정으로 원소에게 소리쳤다.
“외곽을 순찰하던 위병에게 들었습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걸인이 당신을 찾았다고요. 정체불명의 괴한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죠?”
원소가 물었다.
그와 동시에 고람이 칼자루를 쥐었다.
거짓을 고한다면 목을 베겠다.
중엄한 살의를 발산하면서 신평을 위협했다.
적과 내통한 변절자를 처벌하듯이 자신을 경계하는 원소의 모습에 신평은 고개를 숙였다. 새파랗게 질린 낯빛을 한 채 온몸을 바들바들 떨어댔다.
“그, 그것이….”
신평이 말끝을 흐렸다.
증좌는 없다.
밀정을 때려죽인 뒤에 야산에 암매장했으니.
이대로 억울함을 토로하면서 발뺌을 할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변절자에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집행하는 고문이 두려웠기에 무릎을 꿇고서 곧바로 이실직고했다.
“허유가 보낸 밀정이었습니다! 조조에게 배신을 당한 뒤에 버려졌다며 군사기밀을 알려주었습니다!”
“뭐라고요…?”
불쾌한 배신자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원소가 미간을 찡그렸다.
손등으로 뺨을 훑으면서 붉은 눈동자를 번뜩였다.
상세하게 연유를 설명하지 않으면 당장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죽여 버리겠다. 살심을 머금은 눈동자가 신평에게 무언의 경고를 보냈다.
“동장군에 지친 조조군이 결국 철군할 것이니… 후미를 노린다면 크게 완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밀정을 보내어 귀띔해주었습니다.”
실로 한심한 대답이다.
후우.
원소가 무거운 한숨을 토해냈다.
관자놀이를 짓누르면서 편두통을 참아냈다.
“농간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나요?”
“주군, 허유는 쓰임새를 다하고서 조조에게 버려졌습니다. 부하가 죽고 자신은 연금되는 굴욕을 당했는데… 어찌 놈이 조조를 돕겠습니까.”
“허유가 아니라 조조군의 농간이라는 뜻입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원소의 대답에 신평이 횡설수설하듯 말을 더듬으면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설명해줄 이유는 없다.
손을 내저으면서 무관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무관들이 달려들어 처참한 몰골이었던 신평을 바깥으로 끄집어냈다.
“대체 왜 허유를 동원하면서까지 거짓 정보를 퍼트린 거죠? 분명 토사구팽으로 위장한 속임수일 텐데.”
까득-.
손톱을 깨물었다.
제자리를 맴돌면서 상념을 이어나갔다.
어째서 고육지계를 동원한 기만책을 벌였는가.
심사숙고를 거듭하던 원소는 이윽고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급히 위군태수(魏郡太守) 고번을 불러들였다.
“답돈에게서 연락이 왔나요?”
“걱정 마십시오! 내황성으로 파발을 보내어 답돈에게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사흘 이내로 업성에 도달할 겁니다!”
고번이 자신감에 물든 목소리로 말했다.
그와 반대로 원소의 얼굴은 충격으로 일그러졌다.
이제야 숨은 이면을 알아차렸다.
조조군의 노림수는 아군과 오환족의 포위망을 무너트리는 것에 있었음을.
“감히 제 허락 없이 파발을 보냈단 말입니까!”
이성휘의 기만책에 넘어갔음을 직감한 원소가 월권을 범한 고번에게 노성을 내질렀다.
* * *
두텁게 쌓인 눈더미를 박차면서 조조군의 기병들이 달려들었다.
동원된 병력은 3만.
용맹한 강병들로 구성된 정예였다.
오환족이 원소군의 방위에 가세할 것을 예상하고서 미리 매복하고 있었던 조조군은 표적이 도래하자마자 매서운 급습을 벌였다.
“공격하라!”
“오랑캐들을 쳐부수자!”
촤아악-!
병장기를 휘두르자 핏물이 흩뿌려졌다.
사방에서 살육이 연출되었다.
그때마다 새하얗게 물들었던 설원이 시뻘건 핏물에 더럽혀졌다. 끔찍하고 처절한 비명소리가 범람하면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조조군이다!”
“응전하라! 어서 응전하라!!”
선봉을 지휘하던 여광과 여상이 소리쳤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조조군의 급습에 선봉군이 쓸려나갔기 때문이다.
오환족에게 길을 안내하고자 선봉에 배치되었던 원소군의 기병부대는 여포와 장료가 지휘하는 중장기병에게 완파당했다.
“다 덤벼라, 오랑캐 새끼들아!!”
방천화극을 든 여인이 소리쳤다.
새하얀 입김을 토해냈다.
이를 빠득 갈면서 병장기를 휘둘렀다.
오환족의 수많은 전사들이 여포에게 맹렬히 달려들었으나 일합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녀의 주변에 오환족 전사들의 주검들이 점점 쌓여갔다.
“커헉!”
“대, 대체 어디서 나타난 놈들이냐!”
눈보라를 헤치면서 달려드는 조조군의 맹습은 오환족에게 강한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어디서 쳐들어왔는가.
대체 몇 놈이나 된단 말인가.
도무지 전황을 분간할 수 없었다.
답둔이 지휘하는 본대를 측면에서 호위하던 소복연과 오연은 신출귀몰한 조조군의 급습에 대경실색하는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후방에서도 적들이 온다!”
“젠장! 어떻게 알고서 미리 기다렸단 말이냐!”
배후도 안심할 수 없었다.
유비군이 오환족의 배후를 급습하면서 혼란을 가중시켰다.
수만의 군세들이 요동쳤다.
눈보라에 갇혀버린 오환족은 급격하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본대의 명령만을 간절하게 기다렸다.
“전사들은 나를 따르라!”
아군이 계속해서 패퇴를 거듭하고 있다.
오환왕(烏桓王) 답돈이 움직였다.
본대의 지휘를 북평군의 선우였던 능산저지에게 위임하고서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병장기를 치켜든 오환왕은 돌격을 가로막는 조조군 병사들을 무찌르면서 혈기지용을 떨쳤다. 우여곡절을 이겨내고서 오환족을 통일한 효웅다운 용맹이었다.
“놈이 답돈이다!”
“쳐라! 우리들이 놈을 잡는다!”
후방을 급습했던 유비군이 먼저 답돈을 조우했다.
안량과 문추를 참했기 때문일까.
유비군은 위풍당당한 용맹을 발산하면서 답돈을 향해 곧바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섣부른 실책이었다.
맹수처럼 사나운 오환왕은 전사들을 거느리고서 유비군을 향해 응전했다. 정면에서 달려들어 급습을 도리어 패퇴시키는 기염을 토해냈다.
“약해빠진 중원 놈들아! 비열한 급습 따위로 이 오환왕 답돈을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으냐!!”
양손으로 병장기를 거머쥐었다.
이윽고 사방에서 달려드는 유비군에게 휘둘렀다.
파아아아아앙──!!!
창격이 눈보라를 찢어발겼다.
짐승의 발톱처럼 날카롭고 무자비한 일격이 유비군을 양단해버렸다.
“크아악!”
“관우 장군과 장비 장군을 기다려라!”
치명적인 피해를 떠안은 뒤에야 유비군은 무모했던 돌격을 멈추게 되었다.
일기당천의 맹장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병장기를 치켜들면서 답돈을 경계했다.
“흐하핫! 버틴다고 이길 것 같으냐!”
피와 살점으로 얼룩진 장창을 치켜들면서 오환왕이 사나운 웃음을 터트렸다.
중원 놈들이 물러서고 있다.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치기 바빴다.
이대로 놈들을 모조리 격멸하여 사면초가의 위기를 반전시키겠다. 긴장된 표정으로 병장기를 움켜쥐면서 사방을 포위하고 있는 유비군을 노려보았다.
“네놈이 오환의 우두머리인가?”
위기에 봉착한 오환족이 기사회생하여 전황을 뒤집는 것은 불가능했다.
청룡언월도를 든 여인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적장 답돈이 있다.
무관들의 보고를 받고서 현장에 도착했다.
흑발을 늘어뜨린 여걸이 도착하자 노심초사하며 기다리던 부하들은 안도와 함께 기대감을 드러냈다.
“무력한 계집 따위가 막아서는군! 중원에서 무명이 자자하다는 대장군이나 썩 데려오라!”
답돈이 장창을 내리찍으며 위압을 떨쳤다.
그에 관우는 미간을 찡그렸다.
“죽어야 정신을 차릴 오랑캐로군…. 네놈에게는 잘못을 참회할 시간조차 주지 않겠다.”
양손으로 병장기를 거머쥐었다.
이윽고 날카로운 창끝을 치켜들면서 자세를 갈무리했다.
후욱-.
호흡을 내쉬면서 전신의 힘을 끌어올렸다.
수많은 부하들의 기대를 짊어진 맹장은 장인어른에게 산지직송으로 바칠 명절선물을 위해 청룡언월도를 힘껏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