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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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이 철군하려 한다.
신평의 강경한 주장에 여론이 크게 흔들렸다.
놈들을 쫓아야 한다.
아니다. 분명 기만책이 틀림없다.
작은 불씨가 태산을 송두리째로 불태우듯이 삽시간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불리한 전황에 계속 억눌렸던 상황이었기에 더욱 반응이 격렬했다.
“업성을 철옹성처럼 수비한다면 조조군은 엄동설한을 이기지 못하고 중원으로 회군할 겁니다. 병마들을 보내어 일전을 벌일 이유가 없습니다!”
“놈들을 잠자코 중원으로 돌려보낸다면 권토중래하여 다시 쳐들어올 게요! 어찌하여 후환을 남겨두려는 건가!”
천재일우의 기회가 도래했다.
그에 관료들은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손에 잡힐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애가 탈 노릇이다.
역전의 기회가 도래하자 관료들이 동요의 도가니에 빠진 것은 당연했다. 원소를 향한 절대적 충성심만큼이나 승전을 향한 갈망이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군사께서는 어찌 조조군이 철군할 것을 그리도 확신하시오?”
주부(主簿) 진림이 물었다.
그 물음에 신평은 횡설수설하듯 대답했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적들이 사기가 꺾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나. 주부는 참으로 공연한 질문으로 사람을 당황시키는군.”
분명 퇴각을 준비하고 있을 터.
세작들을 파견하여 적들의 동태를 살피도록 했다.
틀림없이 놈들은 물러난다.
전공에 굶주렸던 신평은 배신자가 건넨 기밀정보를 철석처럼 맹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군!”
하북의 패자가 전각에 들어섰다.
태양처럼 찬연하게 빛나는 금발.
늠름한 패기로 무장한 붉은색의 눈동자.
결연함에 젖은 표정.
일말의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는 눈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완전무결한 모습이었다.
도독들이 전사하고 여양성이 함락되는 최악의 참사가 벌어졌음에도 고결하게 빛났다. 결코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주군의 아름다운 모습에 부하들 또한 허둥대는 것을 멈추고 그녀를 응시했다.
“전언을 받았어요. 급습을 논의하고 있었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병문안을 다녀온 원소가 회의를 주관하던 전풍에게 물었다.
그에 전풍이 무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적들은 퇴각을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주군! 기회를 놓치지 말고 놈들을 쳐야 합니다!”
신평이 다부진 어조로 말했다.
적들이 퇴각을 준비하고 있다.
중원으로 돌아가기 전에 후미를 쳐야 한다.
역전의 전환점으로 작용할 자신의 비책을 확고하게 주장하면서 주군의 윤허를 받아내려 했다. 주군의 윤허가 떨어지면 누구도 시시비비를 논하지 못할 테니.
“조조군이 퇴각을 준비하고 있다고요?”
원소가 발걸음을 세웠다.
고개를 들어 신평을 바라보았다.
“그, 그렇습니다….”
움찔-.
시선을 마주하게 되자 신평이 어깨를 떨었다.
선명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를 응시하자 속마음을 간파당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배신자 허유에게 정보를 받았다는 사실이 금방 발각될 것 같았기에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고번, 척후들을 보냈나요?”
원소가 물었다.
그에 위군태수(魏郡太守) 고번이 대답했다.
“예, 주군! 이제 곧 척후들이 도착할 겁니다.”
세작들의 급보만으로 대응하기는 어렵다.
뒤이어 척후들을 보냈다.
재차 면밀하게 적들의 동태를 살피기 위함이었다.
조조군은 철군을 결정할 것인가.
원소군 장수들은 척후들의 보고만을 기다렸다.
“지금까지 공방전에 연전연승을 거두었던 조조군이 쉽게 단념할 리가 없어요. 여양성에서 승리를 거뒀을 때처럼 아군을 업성에서 끌어내려는 기만책이 분명하군요.”
중후한 목소리가 좌중을 압도했다.
참모들이 고개를 숙였다.
갑론을박을 벌이던 장수들도 예를 갖추면서 주군의 목소리에 경청했다.
혼란으로 들끓었던 좌중이 단번에 정리되었다.
충격적인 비보들로 인해 파용운란에 휩싸였던 분위기를 상쇄했다. 압도적인 위엄을 자랑하는 원소의 중재로 혼란은 일단락되었다.
“하, 하지만 주군…!”
신평이 다가서면서 입을 열었다.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주군에게 급습을 간청했다.
그러나 원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장들은 동요하지 말고 위치를 고수하세요. 결코 적들의 기만책에 넘어가선 안 됩니다.”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엄명을 내렸다.
동요하지 말라.
결코 부화뇌동을 해선 안 된다.
원소는 조조군의 기만책에 희생당한 부하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주먹을 바르르 쥐었다.
설령 신평의 주장처럼 조조군이 퇴각을 결정했더라도 움직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물론 신평의 주장에도 충분히 일리가 있었지만 위험천만한 도박에 장졸들의 목숨을 걸 순 없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정로장군 국의가 대답했다.
그러면서 신평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물러서라.
국의의 위압에 신평은 입을 꾹 다물면서 뒤로 물러섰다.
“주군!”
격앙된 외침과 함께 무관들이 도착했다.
척후로 파견된 병력이었다.
“어찌 되었는가! 적들이 철군하고 있는가!”
신평이 물었다.
그 물음에 대경실색한 낯빛의 무관들이 소스라치게 놀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 아닙니다! 여양성에 주둔하던 조조군의 본대가 이윽고 이곳 업성으로 진군을 개시했습니다!”
조조가 군세들을 움직였다.
하북 정벌.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
천하통일의 대업을 향한 백전불굴의 집념을 보여주듯이 엄동설한의 추위를 뚫고 군세들을 움직였다. 기필코 업성을 점령하겠노라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조조군이…!”
“당장 비상령을 내려라!!”
조조군이 쳐들어오고 있다.
원소군 장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업성이 무너지면 끝장이다.
연전연패에서 비롯된 위기감이 경추를 찌르는 듯했다.
“분명 퇴각을 예견하지 않았소!”
“그럼 그렇지…. 귀를 기울인 게 잘못이군.”
신평의 주장에 동조했던 많은 관료들이 치욕스러운 말을 남긴 채 물러났다.
조조군이 쳐들어오고 있다.
척후들의 급보에 신평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럴 리 없다…! 분명 허유는 악전고투를 이기지 못하고 연진(延津)으로 퇴각할 것이라고 했다!’
불리한 전황을 뒤덮은 일동공신이 되겠노라는 기대가 꺾이면서 망연자실의 절망으로 전락했다.
거짓 정보였다.
허유가 보낸 서한은 기만책에 불과했다.
어째서 조조에게 버림받은 허유가 교활한 기만책에 가담했단 말인가. 두 눈을 부릅뜨면서 고심을 이어나가던 신평이 이윽고 분노를 터트렸다.
‘감히 나를 우롱하다니…! 절대로 용서치 않겠다!!’
자신을 한순간에 멍청한 광대로 전락시킨 허유에게 분노를 토해냈다.
그 분노는 밀지를 건넨 밀정에게 이어졌다.
나를 기만하다니.
영천신씨 가문의 명성이 땅에 떨어졌다.
신평은 사병들에게 명령하여 인질로 붙잡아둔 허유의 밀정을 잔인하게 때려죽이도록 했다.
* * *
조조군이 움직였다.
업성을 출발한 전령이 내황성에 도착했다.
동맹이 공격을 받고 있다.
이윽고 오환왕(烏桓王) 답돈이 출병을 선언했다.
“중원 놈들이 결국 움직였군. 맹우를 돕겠다.”
잔인무도한 귀신이었던 공손찬을 함께 쓰러트렸던 동맹이 아닌가.
답돈은 동맹의 신의를 내세우면서 두령들에게 용전을 명령했다. 중원의 침략자들을 모두 말살하여 북방을 안정시키겠다며 전쟁의 기치를 내걸었다.
“병장기를 들어라!”
“출병이다! 어서 움직여라!!”
좌선우(左單于) 소복연. 우선우(右單于) 오연.
오환족을 대표하는 부족왕들이 군세를 이끌었다.
중원의 적들을 격멸하라.
전장을 급습하여 내황성과 번양성을 함락시켰던 오환족의 기세가 매우 사나웠다.
“조조군이 움직였다는 보고가 사실인가?”
답둔을 보필하고자 업성에서 파견된 순심이 내황성에 도착했던 전령에게 물었다.
적들의 계략일지도 모른다.
순심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전령을 바라보았다.
“업성에 비상령이 떨어졌습니다! 모든 제장들이 업성의 방비에 투입되었습니다!”
전령의 확고한 대답에도 순심은 의구심을 드러내면서 침음을 삼켰다.
하지만 조조군이 전군을 동원하여 업성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절체절명의 위기였으므로 태평하게 숙고할 여유가 없었다.
“출병하라!”
“드디어 결전이다! 선봉을 따르라!”
출진의 때가 왔다.
드디어 중원의 적들과 전면전을 치른다.
계속 좀이 쑤시던 중이었다.
전쟁과 싸움을 즐기는 오환족답게 전면전이 도래했음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저족과 흉노족을 쳐부쉈던 조조군을 우리 오환족이 격멸한다면 최강의 세력임을 증명할 수 있을 터.
한나라의 정규군처럼 군기와 병장기로 무장한 오환족은 위풍당당한 면모를 보이면서 남쪽으로 향했다.
“눈보라가 참으로 거세구려…!”
“하지만 적들을 급습하기에 아주 좋은 최적의 환경이 아니겠소!”
업성의 원소군과 함께 양면에서 조조군을 공격하고자 남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군이 쉽지 않았다.
계속해서 눈보라가 몰아쳤기 때문이었다.
시야가 너무 어둡다.
방향 또한 분간하기 어려웠다.
만약 업성에서 파견된 여광, 여상 형제가 선봉에서 병마들을 이끌지 않았자면 눈보라 속에서 고립당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으리라.
“저기 군세가 보입니다!”
“지원군인가…? 하지만 지원군이 온다는 말은 없었는데.”
힘겹게 눈보라를 뚫어내면서 남쪽으로 향하던 원소군과 오환족은 철벽처럼 길목을 가로막은 정체불명의 군세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척후들을 지휘하던 무관이 다가왔다.
그에 여광이 고개를 들었다.
“확실히 군세가 분명하군! 청주에서 합류한 병마들인가?”
거침없이 몰아치는 눈보라 때문에 바람에 나부끼는 군기를 목격하게 쉽지 않았다.
어디서 온 군세들이란 말인가.
분명 조조군은 업성을 공격하고 있을 터.
전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던 여광과 여상은 척후들을 보내어 상황을 알아보려고 했다.
그 순간,
부우우우우우우우우──!!!
공격을 알리는 나발이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했다.
조조군이다.
설원에 매복하고 있던 조조군이었다.
여광과 여상의 얼굴이 공포와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