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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535화 (535/616)

<5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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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양성에서 완패한 원소군은 업성에서 지구전을 고수하면서 조조군이 지치기를 기다렸다.

오랜 공방전으로 크게 지쳤을 터.

머지않아 사기마저 완전히 꺾일 것이었다.

안량과 문추가 전사했기 때문일까.

당장 조조군을 하북에서 몰아내야 한다며 강경하게 주장하던 무장들이 지구전에 찬성했다. 전면전으로는 결코 조조군을 이길 수 없다는 박탈감을 은연중에 품은 것이리라.

“배신자 허유가 토사구팽을 당했다고 합니다.”

조조군의 진중에 숨어들었던 세작들의 첩보가 업성에 도착했다.

허유가 구금되었다.

그를 줄곧 따랐던 한순이 참살당했다.

한순을 참살하고 허유를 체포한 장본인이 이성휘였다. 둔영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사였기에 원소군의 세작들은 매우 상세하게 전말을 알렸다.

“허유는 불경하고 불손한 기행들을 자주 벌여 조조군의 중진들에게 많은 노여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안타깝게 포로로 붙잡힌 병주자사를 심문하겠다며 오만불손을 일삼았다가 이성휘에게 제압되었습니다.”

수많은 세작들이 그것을 목격했다.

틀림없다.

결코 토사구팽을 당한 것이리라.

이성휘의 연이은 기만책에 낭패를 당했던 원소군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첩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분명히 의심할 나위 없는 ‘진짜 정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인과응보 아니겠소!”

“참으로 간신에게 어울리는 말로이외다!”

주군의 권세를 남용하여 오만불손한 행동들을 일삼았던 허유는 조조군에서도 호가호위의 우행을 벌였다가 처형당할 위기에 봉착했다.

본성이 그러한데 어쩌겠는가.

비열하고 치졸한 본성이 명을 재촉한 셈이다.

‘허유가 조조에게 버림받았단 말인가?!’

세작들이 전한 급보에 신평이 두 눈을 부릅떴다.

허유의 밀정이 바친 서한.

사실 그것을 멀쩡하게 가지고 있었다.

동생 신비에게도 비밀로 붙여두었다.

배신자가 보낸 밀정으로부터 서한을 몰래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너무도 위험했기 때문이다.

‘조조와 이성휘에게 토사구팽을 당했다면…! 서한에 적힌 조조군의 군사기밀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전공을 세울 기회다.

정치적 위기를 모면할 천재일우의 계기였다.

주먹을 바들바들 떨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적의 기만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저히 그냥 묵과하기 어려웠다.

‘결국 곽도처럼 숙청당할 바에야… 결국 낭패를 당하게 되더라도 기꺼이 발악하겠다! 어차피 우리 예주파(豫州派)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 아닌가!’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신평은 치열한 정쟁에서 살아남고자 원소군의 명운을 판돈으로 거는 최악의 본말전도를 선택했다.

“조조군은 결국… 철군을 결정할 것이오!”

중원의 침략자들은 엄동설한의 추위를 이기지 못한 채 말머리를 돌릴 것이다.

결국 철군할 수밖에 없다.

저들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충분히 타당성이 있는 정보였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혹한의 날씨와 연이은 악전고투로 인해 조조군이 내환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승세를 연이어 이어나가는 저들이 결국 이점을 포기하고 물러날 것이란 말인가?”

전풍이 물었다.

그에 신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이다. 양면으로 가로막힌 저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소? 추위에 바들바들 떨면서 군량만 축내다가 중원으로 돌아갈 것이오.”

만약 조조군이 오환족을 공격한다면 업성의 병마들이 출격하여 후미를 노릴 것이다.

또한 조조군이 업성을 공격한다면 오환족이 출정하여 후미를 공격할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양면전쟁이다.

오환족의 가세로 조조군은 승전을 거뒀음에도 고립무원의 궁지에 내몰리고 말았다.

“조조군이 철군이라니….”

“분명 신평 군사의 말에 일리가 있소이다.”

장수들이 반신반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참모들도 마찬가지였다.

조조군이 철군을 결정할 것이다.

신중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는 주장이었다.

“조조군이 속전속결로 철군을 결행한다면… 틀림없이 연진(延津) 방면으로 향할 것이오.”

혹한의 동장군에 사기가 꺾여버린 조조군을 배후에서 공격한다면 대승을 거둘 수 있으리라.

놈들이 철군할 때가 기회다.

하북을 침략한 중원의 정벌군을 모두 궤멸시킨다면 조조군이 강탈했던 천하의 패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것은 너무도 위험하네! 자네는 여양성에서 벌어졌던 일을 잊었는가!”

전풍이 경직된 목소리로 말했다.

가벼이 움직일 순 없다.

안량과 문추가 이성휘의 기만책에 현혹되어 목숨을 잃지 않았던가.

재차 참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전풍을 비롯한 참모들은 조조군의 기만책을 꺼림칙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업성의 병마들을 동원하여 조조군의 배후를 급습하자는 방책에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늘께서 주신 기회를 놓치겠단 말이오? 조조군의 철군을 이대로 좌시한다면 여름이 되자마자 병마들을이끌고 재차 업성을 위협할 게요!”

이길 수 있다.

이번에야말로 저들을 무찌를 수 있다.

불구대천의 숙적을 완파할 절호의 기회인데 어찌하여 우유부단하게 받아들인단 말인가.

전풍의 반응을 우유부단함의 극치로 받아들인 신평이 강경한 목소리를 토해냈다. 기필코 자신의 주장을 강행하겠다는 행동이었다.

‘나를 시기하여 주장을 묵살할 생각인가, 곽도를 시작으로 우리 예주파를 숙청할 생각일 테니! 이번만큼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

전풍. 심배.

기주 출신의 사대부들을 대표하는 중신들을 바라보면서 이를 빠득 갈았다.

천재일우로 얻은 기회다.

조조군에게 토사구팽을 당한 허유가 건넨 군사기밀이니 분명 확실할 터였다.

그렇기에 더욱 강경하게 밀어붙였다.

* * *

소중한 벗들이 떠나갔다.

그리고,

또 하나의 벗 또한 생명이 위독했다.

금세 핏물로 흥건해진 등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움에 젖은 침음을 삼켰다.

“하하…. 괜찮네, 괜찮네….”

사흘 동안이나 사경을 헤매다가 겨우 눈을 뜬 사내가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화살에 맞았을 뿐이다.

겨우 화살 한 대를 맞았을 뿐이지 않은가.

언제든지 다시 회복할 수 있다.

침상에 몸져누운 봉기는 금발을 늘어뜨린 아름다운 여인과 시선을 마주하면서 애써 웃음을 지었다.

“그러니 울지 말게…. 나는 정말 괜찮으니.”

여인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여양성의 비보를 들었을 때처럼,

슬픔과 애통함의 감정이 애처롭게 흘러내렸다.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봉기는 침상에서 꼼짝도 할 수 없는 중환자였다. 그렇기에 애처로운 광경을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미안해요. 모두 저 때문이에요. 우둔하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주군 때문에… 안량과 문추에 이어 당신마저도 목숨을 잃을 뻔했어요.”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사과했다.

고개를 푹 숙였다.

피투성이로 돌아온 친우에게 울음기에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찬연하게 흘러내리는 슬픔의 응어리를 바라보던 봉기는 앓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어찌 사과하는가? 나도, 안량과 문추도…. 또한 순우경도…. 스스로의 결의에 따라 자네를 따랐을 뿐이네.”

그 어떤 죽음과 고통으로도 충성을 덮진 못한다.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고통에 휩싸이게 되더라도.

찬연한 대의와 고결한 용맹함을 떨치면서 천군만마를 호령했던 하북의 태양을 향한 충성심을 최후의 순간까지 관철할 것이었다.

“그저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자네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다는 것일세.”

천하통일의 대업에 뛰어든 것은 아름다운 주군에게 고결한 영광과 영예로운 번영을 바치기 위함이었다.

그녀만이 가능하다.

그녀이기에 가능하리라.

천하의 모든 권력을 거머쥐소서.

우리들은 당신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천하통일의 대업을 위한 초석이 되겠나이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행복’이라면.

“결코 이리 되어선 안 되는 일이었네…. 어찌 우리들의 노력이 슬픔과 비통함을 낳았단 말인가. 참으로 애석한 일이로군.”

희생 없는 대업은 없다.

그것은 불가능한 몽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가능한 몽상을 품었다.

찬연한 태양처럼 빛나는 주군에게 천하통일의 완수라는 지고의 행복을 안겨주고 싶었으니까.

“너무… 멀리 와버렸어요.”

원소가 오랜 벗의 손을 맞잡았다.

체념에 물든 목소리를 흘렸다.

그녀의 표정에는 근심와 슬픔만이 가득했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어요….”

수많은 적들을 죽였다.

수많은 전우들을 희생시켰다.

시산혈해를 쌓고 쌓아서 오늘에 이른 것이 아닌가.

돌아갈 곳은 없다.

돌아갈 길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설령 공허한 잿더미만이 남게 되더라도.

‘결국 저도 뒤따르게 되겠죠.’

전쟁의 끝을 예상한 것일까.

어쩌면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을지도 모른다.

짙은 슬픔이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뒤덮었다.

“못난 우리들이…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어.”

냉철하고 준엄한 여걸.

완벽을 자랑하는 완전무결한 군주.

그것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분신에 불과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어린아이처럼 슬퍼하는 착하고 여린 내면이 바로 그녀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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