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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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군(衛將軍) 조홍이 성을 함락시켰다.
목야성(牧野城)이 떨어졌다.
업성을 호위하던 위군(魏郡)의 성채를 넘어섰다.
칠전팔기의 노력으로 임무를 완수해낸 조홍은 상서낭중 허유를 보내어 본진에 승전보를 전했다.
원래 휘하의 무관을 전령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허유가 격앙된 목소리로 자청했기에 반신반의하면서도 결국 그를 보냈다. 단순히 승전보를 전하는 일이었으니까.
‘패국조씨 가문의 계집이 목야성을 함락시킬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원소군 놈들의 마음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 전공이 크다고 할 수 있겠지….’
목야성에 가까이 다가가서 투항을 요구했다가 병마들에게 정면을 습격당하는 치명적인 실책을 범했다.
그럼에도 허유는 자신을 크게 치켜세우면서 공신이라고 떠들어댔다. 본인의 실책으로 많은 병사들이 죽었음에도 일말의 가책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병마들은 소모품일 뿐이다.
오만방자한 모습이 그리 말하는 듯했다.
“어르신, 병주자사 고간이 붙잡혔답니다!”
본영에 도착한 허유는 본대의 장졸들을 수소문하고 돌아온 한순으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병주자사 고간이 붙잡혔다.
포로 신분으로 막사에 억류되어 있다.
철천지원수나 다름없는 계집의 조카가 포로로 붙잡혔다는 소식에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원소군의 몰락이 머지않았다며 주먹을 바르르 떨었다.
“원가 년의 종말이 머지않았구나!!”
두 눈을 부릅뜨면서 소리쳤다.
하북이 무너지고 있다.
여남원씨 가문이 몰락하고 있었다.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겠다는 원소의 야망이 덧없이 무너지고 있음에 맹렬한 희열을 느꼈다.
슬픔과 안타까움은 없다.
분노와 복수심으로 일그러진 낯짝에는 오로지 환열만이 가득했다.
조조군의 앞잡이 노릇을 자청하면서 향로를 제공했음에도 일말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았다. 오랜 벗이자 주군이었던 여인이 처절한 위기에 직면했음에도.
“어서 길을 열어라! 놈의 낯짝을 봐야겠다!”
병주자사 고간이 수감되었다는 막사에 도착한 허유가 기고만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승상과 대장군의 허락 없이는 불가합니다.”
막사를 경계하던 무관들이 나섰다.
철컥-!
창검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에 놀란 허유가 뒤로 물러섰다.
“포로를 심문하기 위함이다! 무식한 무골들은 포로를 심문하여 군사기밀을 알아내는 것도 모르느냐!”
노여움을 씩씩대면서 무관들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허유의 노성에도 불구하고 무관들은 바위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명령이 내려오지 않았다.
대장군부의 무관들은 이성휘만큼 매우 완고한 성정이었기에 허유의 겁박에도 요지부동이었다.
‘본초, 네년이 아끼는 조카를 처참하게 죽여주마!’
심문은 명분일 뿐이다.
한순과 병사들을 동원하여 포로로 붙잡혀온 고간을 때려죽이려 했다.
개돼지처럼 처참하게 죽여야 마땅하다는 원소를 향한 복수심 때문이었다.
“무슨 일인가, 상서낭중.”
불한당처럼 현장에 난입한 허유가 대장군부의 무관들을 상대로 강압을 벌이고 있었을 때,
이성휘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장군께서 오셨다.
허유와 대치했던 무관들이 경례를 붙이면서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잘 와주었네!”
이성휘가 등장하자 허유가 화색을 띄우면서 다가왔다.
그를 몹시 반가워했다.
자신의 편이 되어줄 것이라며 확신하는 듯했다.
“포로로 붙잡은 병주자사 고간을 친히 심문하여 군사기밀을 알아내려고 했는데 아둔한 무관들이 불가하다며 계속 막아섰네!”
허유가 무관들을 가리키며 노여움을 드러냈다.
권위를 빌려 으름장을 놓을 셈인가.
원소의 권위를 남발하며 호가호위를 일삼았던 소인배에게 잘 어울리는 행동이었다.
“성렴.”
“예, 대장군!”
이성휘의 부름에 성렴이 외쳤다.
“군영에서 소란을 범한 자는 어떻게 처분하는가.”
“즉시 현장에서 효수합니다.”
성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을 빼들었다.
스릉-.
차가운 금속음이 울렸다.
섬뜩하게 빛나는 칼끝을 목격한 허유가 대경실색하며 비명을 토해냈다. 그대로 흙바닥에 주저앉은 허유는 양손을 내저으면서 목숨을 구걸했다.
“크헉!”
이성휘가 검을 휘둘렀다.
푸화아악─!!
뜨거운 피분수와 함께 한순의 목이 떨어졌다.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위험천만한 현장을 관망하던 한순은 주인을 잘못 섬긴 죄로 목이 달아났다.
“으, 으아아악!!”
핏물을 뒤집어쓴 허유가 꽥꽥 소리쳤다.
한순의 머리가 발치에 떨어졌다.
믿을 수 없다.
한순이… 한순이 죽다니!
머리가 잘려나간 한순의 주검이 무기력하게 쓰러지는 광경을 목격한 허유는 그만 바지에 오줌을 지려버리고 말았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한순을 죽이다니!!”
잘려나간 머리를 바라보면서 부르짖던 허유가 이성휘를 향해 노성을 토해냈다.
하지만 이성휘는 아무런 대답 없이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상서낭중을 막사에서 내쫓아라.”
성렴에게 명령했다.
그에 성렴의 부하들이 허유에게 달려들었다.
* * *
구사일생으로 업성에 돌아온 청주자사 곽도는 안량과 문추가 패인(敗因)임을 지적했다.
결코 내 책임이 아니다.
무리하게 야전을 지휘했던 안량과 문추에게 패전의 책임이 있을 것이었다.
실로 후안무치한 행동이다.
본인이 가장 격렬하게 야전을 주장했음에도 완패의 책임을 안량과 문추에게 떠넘기는 모습이 파렴치하기 짝이 없었다.
“주군, 제 잘못이 아닙니다! 안량 도독과 문추 도독의 무리하게 계획한 전격전 때문에 대패하게 된 겁니다!”
초췌한 몰골로 귀환한 곽도는 책임전가를 반복하면서 원소에게 결백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간곡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원소의 눈빛은 새벽에 내려앉은 서릿발처럼 싸늘할 뿐이었다.
“장합과 고람은 당신이 강경한 공세를 연이어 주장했다던데요. 말이 틀리군요.”
곽도가 임기응변에만 능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인물이라는 것은 원소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곽도를 심복으로 기용했던 것은 여남원씨 가문을 오랫동안 섬긴 중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다.
가만히 좌시하기엔 너무도 원죄가 깊었다.
“무, 무고한 참언입니다! 장합과 고람이 여양성에서 임전무퇴로 싸웠다면 적들의 파상공세를 충분히 막아냈을 겁니다! 비겁하고 용렬하여 여양성을 빼앗긴 주제에… 감히 그 책임을 소신에게 떠넘기다니!!”
원소의 힐문에 곽도는 여양성을 방비했던 장졸들을 비방했다.
여양성은 철벽의 요새였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면 충분히 막아냈으리라.
설령 급습이 실패했더라도 여양성에서 적들을 막아냈다면 전선이 후퇴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곽도는 안량과 문추를 비롯하여 장합과 고람에게도 책임을 전가하면서 발을 빼려고 했다.
“닥쳐라, 이놈!”
“감히 주군에게 참언을 늘어놓다니!”
더러운 흉신(凶臣)을 단칼에 베리라.
감히 도독들을 능멸하다니!
심지어 여양성에서 조조군을 상대로 분전했던 장졸들의 희생마저 모욕했다.
장합과 고람이 비분강개하며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모멸감에 휩싸인 장수들은 당장이라도 칼자루를 뽑아들 것처럼 노여움을 발산했다.
만약 근위병들이 막아서지 않았더라면 장합과 고람은 당장 곽도의 목을 쳐버렸을 것이었다.
“맹대 교위.”
“예, 주군!”
원소가 손을 들었다.
그에 배후에서 대기하던 맹대가 대답했다.
“당장 곽도를 체포하여 감옥으로 압송하세요. 전쟁을 망친 장본인이자 공신들을 참소한 역신입니다. 지금부터 모든 관직과 지위를 박탈하겠습니다.”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칼끝처럼 날카로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대패로 이끈 원흉이다.
또한 장수들을 모함한 역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곽도의 목숨을 거두지 않았다.
계속 분골쇄신하며 자신을 보필했던 참모에게 일말의 회한을 느낀 것이리라. 그렇기에 원소는 목숨만큼은 거두지 않기로 했다.
“주, 주군! 주군!! 소신은 죄가 없습니다! 결코 저들의 참언에 귀를 기울여선 안 됩니다!!”
맹대의 부하들이 곽도를 붙잡았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음을 직감한 곽도는 억하심정에 물든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억울합니다, 주군! 소신은 죄가 없습니다!!”
내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안 돼!
이렇게 몰락할 순 없다!
수많은 정적들을 정쟁으로 제거하면서 승진을 거듭했던 곽도는 주군의 노여움을 받은 신하가 처하게 되는 비참한 결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격앙된 목소리를 이어나가면서 오랜 벗이자 주군인 원소에게 자비와 아량을 구걸했다.
“끝까지 뻔뻔한 작자 같으니….”
“당장 극형으로 다스려야 마땅할 것이오.”
눈물과 콧물을 줄줄 흘리면서 애걸복걸하는 곽도의 추태를 바라보던 장합과 고람이 이를 빠득 갈았다.
다른 장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인으로서 존경했던 안량과 문추를 참소한 역적에게 모멸감을 내비쳤다.
참모들의 반응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고한 참언으로 수많은 관료들을 음해하고 내쫓았던 곽도는 결국 파멸에 빠져들고 말았다.
병사들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포대자루처럼 질질 끌려가면서 주군을 애타게 찾았다. 그러나 원소는 이미 고개를 돌린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