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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530화 (530/616)

<5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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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함께 천하를 거머쥐어요.

손을 내밀었다.

친애의 감정이 느껴졌다.

맹렬한 야망이 담겨져 있었다.

그 제안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분과 반란으로 시작된 난세를 끝장내자는… 실로 허무맹랑한 말이었음에도 마음이 움직였다.

-저는 절대로 굴하지 않아요. 설령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분수를 모르는 얼녀라며 비웃더라도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갈 거예요.

그녀는 얼녀(孽女)였다.

노비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대명문가의 여식.

완벽(完璧)이 될 수 없다.

치명적인 흠절(欠節)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럼에도 사세삼공 가문의 여식은 위풍당당하게 발걸음을 내딛으면서 자신에게 가해진 부조리와 불합리들을 모두 이겨냈다.

과연 당신은 나의 주군이다.

당신이야말로 난세를 평정할 여걸이다.

고아한 기품과 담대한 지도력으로 제장들을 호령하는 모습에 현혹되어 그녀의 군문에 서게 되었다.

-수많은 민중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지긋지긋한 난세가 끝나기만을 염원하고 있어요. 폭정과 도탄에 시름하는 민중들을 구제하는 것이야말로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려는 패자(覇者)에게 내려진 사명입니다.

난세를 평정하겠다.

수많은 민중들을 구원하려 한다.

신분과 혈통이 부여한 한계를 깨부수고 만인지상의 자리에 설 것이다.

태양처럼 아름답고 청려한 찬연함을 내뿜는 그녀에게 이끌려 수많은 호걸들이 합류했다. 난세를 평정하겠다는 웅대한 대의를 품은 사대부와 호족들 또한 기꺼이 막하가 되겠다며 몰려들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장졸들이 목숨을 잃었다. 오직 주군께서 대업을 이루시기만을 바라면서…!’

멈추지 않았다.

끝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위태롭게 나아가는 주군을 마지막 순간까지 보필하기 위해 강행군을 거듭했다.

만용(蠻勇)이라 불러도 좋다.

우자(愚者)의 우둔함이라 손가락질해도 상관없다.

죽음을 감내하고 목숨을 불태워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받아들이겠다.

하북의 태양을 천하의 하늘에 올릴 수만 있다면!

“뭣들 하느냐! 어서 다 덤벼라!!”

언월도를 거머쥔 사내가 크게 포효했다.

수많은 장졸들을 쓰러트렸다.

처참하게 살해당한 주검들이 넘쳐날 정도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힘이 넘쳐흘렀다.

하염없이 박동치는 심장에서 사출된 뜨거운 혈류가가 온몸을 휘감으면서 초인적인 용력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괴물 같은 놈…!”

“물러서지 마라! 놈들은 이제 독 안에 든 쥐다!”

안량과 문추가 유비군에게 포위되었다.

완전한 사면초가였다.

살아남은 원소군 병사들은 수백 명에 불과했다.

중과부적의 상황임을 어찌 모를까.

하지만 절대적인 불리함을 알면서도 원소군 병사들은 끝까지 적에게 병장기를 겨눴다. 최후의 일인까지 싸우겠다는 결연한 각오가 느껴졌다.

“도독!”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병사들이 소리쳤다.

그에 안량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북의 충성스러운 장졸들이여! 목숨이 다할 때까지 주군을 위해 싸우라!!”

쩌렁쩌렁한 사자후로 결사를 각오한 병사들을 고무시켰다.

두려움은 없다.

그저 죽을 때까지 싸울 뿐이다.

기만책에 걸려들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한 하북의 결사대는 포기하는 대신에 싸우는 것을 선택했다.

“이놈들!”

문추가 창을 내지르며 유비군에게 달려들었다.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수히 많은 적들에게 달려들었다.

“익덕.”

“응, 언니…!”

관우와 장비가 병장기를 움켜쥐면서 나서려 했다.

하지만 백발을 늘어뜨린 미녀가 쌍검을 늘어뜨리면서 의자매들을 막아섰다.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걸까.

관우와 장비가 앞을 막아선 맏언니를 응시했다.

“일단 장졸들에게 맡기자.”

“…예?”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다.

살아남은 병력은 불과 수백.

당장이라도 철의 파도에 휩쓸릴 것만 같았다.

안량과 문추를 위시한 하북의 결사대는 일기당천의 용맹을 자랑하듯이 싸웠다. 치열한 백병전이 계속 이어질수록 병력이 점점 줄어들었음에도 원소군은 끝까지 전의를 내려놓지 않았다.

“커헉!”

“네놈들을 길동무로 삼아주겠다!”

사방에서 창검이 날아들었다.

끔찍한 치명상을 입었다.

피를 울컥울컥 토해내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꺾이지 않았다.

한 명이 쓰러지면 두 명이 달려들어 안량과 문추를 호위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결사대의 용맹에 유비군은 아연실색하며 물러섰다. 광인들이 틀림없었다. 중원을 질주하며 수많은 공훈들을 세웠던 유비군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지독했다.

“큽!”

창을 휘두르면서 일당백을 이어나가던 문추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침음을 삼켰다.

푸욱-.

가슴팍에 화살이 꽂혔다.

제법 치명상이었는지 거구가 잠시 주춤거렸다.

“겨우 이따위 공격이냐! 이 필부 놈들!!”

문추가 두 눈을 부릅떴다.

병장기를 굳게 움켜잡았다.

이를 빠득 갈면서 극심한 고통을 억눌렀다.

겨우 화살 한 대에 부상을 입었을 뿐이다.

고개를 치켜들면서 전공을 차지하고자 달려드는 유비군을 노려보았다. 이윽고 문추는 핏물이 뚝뚝 흐르는 양손으로 쥐고 있던 병장기를 휘둘렀다.

“괴물 같은 놈!”

유비군 병사가 전우들을 거침없이 도륙하던 문추에게 창끝을 내질렀다.

옆구리에 창끝이 꽂혔다.

상처가 쭉 찢어지면서 핏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적들을 유린하던 병장기만큼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크하악!!”

창을 내리치면서 유비군 병사의 목을 베었다.

“이런 젠장할…!”

깊숙이 박힌 창끝을 뽑았다.

한손으로 상처를 틀어막으면서 뱃속의 내장이 쏟아지지 않게끔 버텼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무력하게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어서 덤벼라! 설마 네놈들은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적장에게 겁을 집어먹을 정도로 필부인 것이냐!!”

문추의 도발에 걸려든 장졸들이 칼자루를 거머쥐면서 달려들었다.

그 대가는 처참했다.

내장이 흘러나오는 옆구리를 움켜쥐고서 창을 휘두르는 문추의 맹공에 수많은 장졸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아아아아!!”

상처투성이의 맹수가 가장 무서운 법이다.

유비군은 피칠갑을 하고서 달려드는 문추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사방에서 공격해라!”

“놈은 지쳤다! 결국 쓰러질 수밖에 없다!!”

귀신이 아니다.

결국에는 사람이다.

유비군은 다시 심기일전하여 달려들었다.

푸후욱-!

푸확! 푸우욱!!

사방에서 동시에 창끝을 내질렀다.

날카로운 창끝들이 파고들면서 맹수처럼 날뛰던 맹장의 온몸을 유린했다.

어깨를 꿰뚫었다.

가슴을 찢어발기면서 복부에 큰 구멍을 냈다.

문추의 육신을 꿰뚫은 병장기들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맹공에 가세한 수십 명의 병사들은 노심초사하는 심정으로 우두커니 선 문추의 동태를 살폈다.

“이, 이놈들…!!”

맹장이 움직였다.

숨을 헐떡이면서 손을 뻗었다.

그에 병사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비명을 토해냈다.

무섭다.

맹수가 다시 날뛸까 두려웠다.

원초적인 공포가 밀려들면서 전의를 꺾어버렸다.

“어서 병사들을 도와라!”

“절대로 맹수가 날뛰게 둬선 안 된다!!”

뒤에서 지켜보던 병사들이 달려들어 병장기를 간신히 움켜잡고 있는 전우를 도왔다.

떨리는 어깨를 붙잡았다.

맹수를 관통한 병장기를 단단히 움켜쥐면서 그대로 고정시켰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마침내 맹수의 목숨이 끊어졌다.

수십 명의 병사들이 사생결단의 각오로 몰이사냥을 한 덕분에 겨우 문추를 죽일 수 있었다.

“네, 네놈들! 네놈들이 감히이이!!”

또 한 마리의 피투성이 짐승이 포효했다.

문추가 죽었다.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전우가 전사했다.

전우를 잃은 슬픔이 분노가 되어 몰아쳤다.

“안량을 막아라!”

“놈이 주군을 노리고 있다!”

하북사정주의 필두가 언월도를 휘두르면서 곧장 유비에게 달려들었다.

저 년이 대장이다.

분명 오소를 사수하는 지휘관일 터.

우두머리를 죽여 주군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겠다.

안량은 다른 장졸들과 마찬가지로 온몸이 피투성이였음에도 공세를 선택했다. 결국 전장에서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기에 망설임 없이 동귀어진을 벌였다.

“커헉!”

“크… 크하악!!”

앞을 가로막았던 유비군 병사들이 핏물을 쏟아내면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와 동시에 안량이 병력을 돌파했다.

한 명이라도 더 죽이겠다.

언월도를 양손으로 거머쥐면서 다짐했다.

오로지 살육만을 바라는 악귀로 전락해버린 안량의 모습은 과연 괴기스러웠다. 머리를 풀어헤친 채 달려드는 광경은 악몽에서나 볼 법한 흉상이었다.

“거기까지다, 하북사정주.”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발걸음을 내딛었다.

청룡언월도를 쥐었다.

고개를 들어 악귀의 흉상을 마주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언니를 지켜야 한다.

결연한 모습으로 언니의 앞을 가로막은 일기당천의 여걸은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자세를 취했다.

“그아아아아!!!”

돌파를 저지하려는 장졸들을 도륙하고서 길을 돌파한 안량이 눈앞까지 왔다.

그와 동시에 청룡언월도가 번뜩였다.

파아아아아악──!!!

혈선이 생겨났다.

붉은 틈새 사이로 대량의 핏물이 뿜어졌다.

산야의 맹수처럼 일직선으로 달려들었던 안량은 청룡언월도에 양단된 채 뒤로 나가떨어졌다.

“주, 주군…! 여남원씨… 가문을 위해…!”

치명상을 입었다.

회생이 불가능한 상처였다.

청룡언월도의 일합에 상체가 너덜너덜해졌다.

그럼에도 피를 토해내면서 일어서려 했다.

반송장이나 다름없는 상태임에도 두 발로 일어서는 괴기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에 유비군 장졸들은 마치 살아있는 귀신을 마주한 것처럼 온몸을 떨었다.

“주군…!”

툴썩-.

다시 일어섰던 안량이 무릎을 꿇었다.

끝내 주저앉았다.

두 눈을 부릅뜬 채 최후를 맞이했다.

죽었다.

안량이 죽었다.

싸늘한 공허함만이 잔존하는 안량의 눈빛이 생명의 소멸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장졸들은 움직일 수 없었다.

죽은 안량이 너무도 무서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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