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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526화 (526/616)

<5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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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은 여양성을 에워쌌던 포위망을 풀고 병마들을 철수시켰다.

20리 밖으로 물러났다.

목책을 치우고 둔영을 뒤에 세웠다.

난공불락의 요새를 함락할 방법이 없다.

계속된 연전연패로 수세에 직면했음을 적에게 알려주듯이 조조군은 병마들을 뒤로 물렸다. 연이어 병력들이 출병하면서 드러난 공백을 보완하려는 의도처럼 보였다.

“너무 노골적이지 않을까요?”

제갈량이 우려를 담아 물었다.

노골적이다.

훤히 의도가 엿보이는 행동이었다.

과연 원소군이 노골적인 기만책에 넘어갈까?

포위망을 형성하던 군진을 철수시킨 이성휘의 결정에 의문을 품었다. 여양성을 수비하는 노련한 숙장들이 결코 넘어갈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만책의 의도는 아니다. 잠시 원소군에게 숨통을 열어줬을 뿐이지.”

제갈량과 함께 둔영을 순시하던 이성휘가 발걸음을 내딛으면서 입을 열었다.

흐음….

이성휘의 대답에도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았는지 제갈량은 침음을 흘리면서 고운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계신 걸까.

방울꽃처럼 아름다운 은발을 늘어뜨린 소녀는 그럼에도 해답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주변 성채들은 왜 공격한 거임? 계속 주변을 압박하면 오히려 적들이 위축되지 않겠음. 나라면 계속 여양성에 틀어박혀 있을 것 같은데.”

사마의가 고개를 갸웃 흔들었다.

당최 이유를 모르겠다.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걸까?

여양성에서 출병하여 업성을 호위하는 다른 성채들을 공략하기 시작한 이성휘의 행동에 사마의 또한 의문을 느끼기는 매한가지였다.

“왜일 것 같나?”

사마의의 물음에 이성휘는 옅은 미소를 머금으면서 오히려 되물었다.

문제를 맞춰보라는 의도였다.

이성휘의 물음에 오기가 생겼는지 사마의와 제갈량은 끙끙 앓으면서 머리를 굴렸다.

대체 뭘까.

대체 왜일까.

귀여운 참모들이 골똘히 고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성휘는 잠자코 기다렸다. 곁눈질로 슬쩍 두 참모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눈이 또 오는군.”

새하얀 함박눈이 쏟아졌다.

빌어먹을.

대체 언제까지 올 셈이란 말인가.

고개를 들어 흩날리는 함박눈을 주시하던 이성휘는 우산을 펼쳐 제갈량과 사마의를 가려주었다.

“중달의 대답처럼 주변 성채와 요새들이 적에게 공격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겠지. 성채와 요새들이 함락될수록 점점 고립되고 있다는 압박감에 시달릴 테니.”

“…….”

이성휘가 설명을 시작했다.

사마의와 제갈량은 우수한 모범생처럼 기대에 물든 눈빛을 반짝이면서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과연 노림수가 무엇일까.

수많은 전투들을 승리로 이끌었던 천하제일검의 작전에 어린 참모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것은 범론에 불과하다. 일반적인 경우를 예상했을 뿐이지.”

“그러면?”

“여양성의 장수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원소에게 불변의 충성을 맹세한 놈들이니.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지.”

“…….”

고립에 봉착하면 위축되기 마련이다.

업성이 공격받고 있다.

주변 요새와 성채들 또한 파상공세를 받고 있었다.

당연히 일반적인 경우라면 수성에 만전을 기하면서 더욱 출병하기를 꺼려할 것이었다. 주변이 고립된 상황에서 자신들이 결정할 수 있는 방책은 극도로 제한적일 테니까.

“난황에 직면할수록 점점 조바심을 느끼겠죠. 조바심은 부담으로 촉발될 테고요. 그러면… 여양성의 장수들은 어떻게든 불리함을 뒤집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휩싸여 무리한 반격을 준비하겠죠!”

“그렇게 되겠지.”

제갈량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이성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적들이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반격을 가해올 텐데 위험해지지 않겠음? 뻔히 보이는 방법으로 반전을 노리진 않을 거 아님.”

“그렇겠지.”

사마의가 물음에 이성휘는 우산을 걷으면서 대답했다.

내리던 눈이 걷혔다.

눈에 뒤덮인 우산을 털어내면서 사마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설마! 그래서 오소에…!”

“적들을 끌어들일 좋은 미끼지.”

오소는 후방에 위치한 지역이면서도 동시에 여양성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야음을 틈타 기습하기 쉽다.

이성휘는 여양성의 척후들이 포착하기 쉬운 오소에 의도적으로 군수기지를 세웠다.

후방의 물자들을 비축해둔 군수기지.

불리한 전황을 단번에 만회할 수 있는 최선책을 원소군에게 친절히 제시했다.

“여기 계셨네요! 한참 찾았어요!”

명석하고 영민한 참모들과 둔영을 순시하던 이성휘를 향해 가슴… 아니, 양수가 달려왔다.

출렁출렁-.

두터운 방한복을 입고 있었음에도 가슴이 위아래로 출렁였다.

달려오던 양수를 주시하던 이성휘의 시선이 커다랗고 묵직한 젖가슴을 향했다. 무척이나 실례되는 행동임을 알면서도 마성의 거유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꺄아악!!”

양수가 돌연 사라졌다.

눈밭을 달려오다가 함정처럼 설치된 구덩이에 그만 빠져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었다.

그녀에게는 훌륭한 푹신하고 커다란 주머니가 있었으니까.

“으읏! 아, 안 빠져…!”

우월함을 자랑하는 학식주머니가 구멍을 틈새 없이 막아버린 덕분에 상체가 파묻히는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

허리까지 눈밭에 삼켜졌다.

눈에 파묻혀서 옴짝달싹 못하게 된 양수가 두 팔을 붕붕 휘두르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푸하하! 가슴 괴물!”

“드디어 그 젖탱이가 도움이 됐네요.”

우스꽝스러운 양수의 모습에 사마의와 제갈량이 박장대소를 터트리면서 참사의 현장에 다가갔다.

그 순간,

사마의와 제갈량 또한 눈밭에 푹 삼켜졌다.

“으에엑!”

“꺄앗!”

양수처럼 구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음란한 몸매를 자랑하는 대명문가의 여식과는 달리 사마의와 제갈량은 빈약하기만 했다.

그 결과,

빈약한 몸매의 소녀들은 목덜미까지 파묻혔다.

“…….”

처음부터 끝까지 참사의 과정을 목격했던 이성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 * *

이성휘의 명령대로 조조군은 오소에 후방의 물자들을 비축했다.

무려 14만에 이르는 장졸들에게 모두 배급해야 했기에 비축한 군량은 산을 이룰 정도로 상당했다.

후방에 배치된 병력들은 오소에 군수기지를 건설하고 군량을 수송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화살이 빗발치는 전장보다는 낫겠지만 중노동이 반복되는 작업들이 이어졌기에 결코 편하지는 않았다.

“에취! 으으…! 내가 왜 삽질이나 해야 하는 건데!”

재채기를 반복하면서 엄동설한의 추위에 떨던 여걸이 불만에 찬 목소리를 냈다.

삽질하려고 전쟁터에 나왔나?

이성휘가 가한 푸대접에 분통을 터트렸다.

까앙-! 까앙-!

빌어먹을….

삽을 꽂을 때마다 금속음이 울렸다.

맹추위에 얼어붙은 흙더미는 삽의 공격을 완강하게 버텨냈다. 그때마다 양손에 저릿한 통증이 가해졌다.

“중요한 임무라더니! 완전 속았어! 연나라의 여걸이 삽질이나 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소녀가 소리쳤다.

중요한 임무라며!

전쟁의 종지부를 찍을 임무라고 했잖아!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다더니.

지금까지 자신과 언니들의 편의를 봐주고 벼슬까지 내려준 은인에게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배신감이 치밀었다.

“손이 멈췄다, 익덕. 어서 역군들을 도와라.”

곡괭이로 얼어붙은 흙더미를 내리찍던 흑발의 여인이 의동생을 보며 말했다.

해야 될 일이 태산이다.

나태한 모습을 보일 여유가 없었다.

이성휘의 명령으로 오소에 배치된 유비군은 물자를 나르는 수송부대를 호위하면서 군수기지의 작업에 동참하고 있었다.

“언니는 속아놓고선 화도 안나?”

“어허! 장인어른의 의중을 왜곡할 셈이냐.”

“…….”

관우가 근엄한 목소리로 군령에 불응하려는 동생을 짐짓 꾸짖었다.

뭘 기대하는 걸까.

뺨을 붉게 물들인 언니의 모습에 오한을 느꼈다.

“대장군께서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주변을 광활하게 물들인 눈보라처럼 새하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성이 다가왔다.

쫑긋쫑긋-.

머리 위의 귀 장식이 움직였다.

백발을 늘어뜨린 여인은 강옥처럼 새빨간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불평불만이 팽배한 막내를 다독였다.

“어서 움직이자. 대장군께선 우리들을 믿고 중요한 군수기지를 맡기셨잖아.”

유비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언니! 오소를 철통처럼 지켜낸다면 대장군께서 분명 소원을 들어주실 겁니다!”

“…그건 언니의 바람일 뿐이잖아.”

도원결의 자매들이 떠들썩한 순간을 보내고 있었을 때,

불온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토목공사에 동원되었던 역군들 중의 일부가 자취를 감춘 것이었다.

원소군의 세작들이다.

정보를 입수하고 후방을 교란하는 공작이 임무였던 세작들이 오소에 건설된 군수기지를 발견하고서 정탐에 나섰다.

어마어마한 양의 물자들이 오소에 집결했다.

풍요로운 곡창지대에서 수송된 오소의 군량은 하북 정벌에 동원된 14만 대군에게 모두 보급하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이제 슬슬 원소군이 냄새를 맡았으려나.’

유비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면서 중얼거렸다.

실로 호화로운 미끼였다.

여양성의 병력들을 끌어내기 위해 오소에 군수기지를 세우다니.

천하제일검이기에 가능한 작전이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자 14만 대군에게 보급할 군량을 도박판의 판돈으로 걸어버린 일생일대의 결정에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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