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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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중원 전역에서 집결한 병력.
수레에 실린 채 이동을 기다리는 물자들.
허도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도 엄숙했다.
혹한의 눈보라조차 녹여버릴 듯한 맹렬하게 달아오른 전운이 확산되었다. 서량에서 돌아온 가장을 다시 떠나보내야 하는 가족들은 슬픔에 몸을 떨었다.
“명령만 내려줘. 병마들이 모두 준비됐으니까.”
선봉군 역할의 일군(一軍)을 지휘하게 된 거기장군 하후돈이 이성휘에게 다가와 말했다.
일군은 진류군에 주둔했다.
승상과 대장군의 명령이 떨어지면 속전속결로 황하를 도하하기 위해서였다.
패국의 여걸답게 자신감이 넘쳤다.
하북을 정벌하여 대업을 완수하겠다는 뜨거운 혈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예정대로 일군은 연진을 공격해주십시오. 그 뒤를 이어 이군은 백마를 점령할 겁니다.”
연진(延津). 백마(白馬).
업성을 도모하고자 반드시 점령해야 하는 요충지들이었다.
조조군은 압도적인 전력을 총동원하여 연진과 백마를 동시에 취하려 했다.
분명 원소군도 예상하고 있겠지.
그렇기에 조조는 확실하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선봉장에게 요충지를 일격에 점령할 것을 명령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네.”
타오르는 불길처럼 맹렬한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걸이 고개를 들며 중얼거렸다.
만감이 교차했다.
문득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쉬지 않고 달리고 달린 끝에 천하를 양분하며 대립해온 대단원에 이르렀다.
여전히 수많은 군벌들이 각지에서 난립하며 세력을 과시하고 있었지만 한낱 피라미에 불과했다. 진짜 적수는 원소군 뿐이었다.
“황건적들을 때려잡던 시절에 엊그제 같은데.”
“그렇습니까?”
“너를 낙양에서 처음 만났던 것도 그렇게 느껴져.”
“저도 그렇습니다.”
하후돈의 말에 이성휘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본인 또한 그러했기 때문이다.
조조와 대면한 것도.
패국조씨 가문의 종친들과 만난 것도.
한순간의 찰나처럼 느껴졌다.
“연주를 시작으로 수많은 군벌들을 제패한 끝에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것들을 짊어지게 되었지요.”
“힘을 빼면 어깨가 짓눌릴 정도로 말이지.”
간절한 염원과 소망을 짊어지고 있었기에 전쟁에서 결코 질 수 없다.
반드시 이긴다.
반드시 승리를 쟁취한다.
그것이 바로 중압감을 짊어진 무장들의 과업이다.
“서방님.”
“장수들이 모두 집결했습니다.”
조홍과 조인이 다가왔다.
연병장에 모두 집결했다.
전선에서 귀환한 장수들이 대장군의 호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 이성휘가 발걸음을 움직였다.
“대장군!”
“명을 내려주십시오!”
대장군이 입진했다.
이윽고 이성휘가 연병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장수들이 경외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천하제일검.
난세를 대표하는 효웅이 도착했다.
패국조씨 가문의 종친들을 좌우에 거느리고서 등장한 이성휘가 중후한 위엄으로 군중을 휘어잡았다.
“부름을 받고 먼 길을 와주어 고맙다. 망설임 없이 군세를 이끌고서 합류한 그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연병장에 모인 장수들은 수백 명에 달했다.
거병부터 함께 했던 자들.
세력을 확장하는 중에 합류한 자들.
황건적의 난을 거치면서 분열된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대의에 동참하여 전장을 종군했던 끝에 오늘에 이르렀다.
다부진 표정을 지으면서 목소리를 경청하는 장수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난세를 끝내겠다는 일념을 가슴에 품고서 지금까지 달려온 장수들을 가슴 깊이 존경했다.
“우리들은 거센 모래폭풍을 무찌르고 서량을 정복했다. 그리고 이제는 혹한의 눈보라가 몰아치는 하북을 앞두고 있다. 혹독한 환경이 천하통일을 방해하기라도 하듯 진격을 막아서는 형국이지.”
중원을 제패하였음에도 고난은 끊이질 않았다.
역경이 몰아쳤다.
뒤이어 환난의 연쇄가 밀려들었다.
천하가 통일되는 것을 방해하기라도 하듯이 계속해서 새로운 적과 혹독한 시련을 상대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천하통일의 대업을 어깨에 짊어진 우리들의 숙명이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진흙탕에 몸을 던져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책무다.”
무수히 많은 적수들을 상대하면서 온몸을 짓누르는 고통을 견뎌내는 것이 우리들의 숙명이자 책무다.
이상을 위해 싸우라.
대의명분에 기꺼이 목숨을 바쳐라.
정의를 위해 싸우고 충성을 위해 죽는 것은 당연히 우리들이 치러야 할 위업이다.
“숙명을 내리는 것은 하늘이지만 그를 극복하는 것은 우리 사람이다! 수많은 적수들이 대업을 가로막더라도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우리들은 이길 것이다!”
뜨거운 혈류가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전의를 느끼며 주먹을 쥐었다.
고개를 들어 강철처럼 견고한 자신감을 보였다.
용맹과 충성을 요구하는 대장군의 명령에 장수들은 크게 감화된 반응을 보였다. 중원을 제패한 강병들답게 늠름한 기세가 느껴졌다.
“창검을 쥐어라. 고각을 울려라. 함성을 내지르면서 발걸음을 내딛어라. 이제 우리들은 전장으로 간다. 우리들의 주군에게 명예로운 승리를 바쳐라!”
쩌렁쩌렁한 고함이 울렸다.
승리를 바쳐라.
연병장에 집결한 장수들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대장군으로서 너무도 당연한 명령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군중의 마음을 더욱 자극했다.
“예, 대장군!”
“명을 받들겠습니다!”
역전의 용사들이 혈기왕성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배후에서 지켜보던 종친들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의가 담긴 연설에 화답을 보냈다.
결전이 다가왔다.
목숨을 바쳐 승리할 것이다.
시체들이 산을 이루고 선혈이 하해처럼 흐를지라도 대장군이 말한 ‘명예로운 승리’를 가져오리라.
“…….”
먼발치에서 연병장의 광경을 응시하던 흑발의 여인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무관이 행차를 알리려 했다.
그에 여인은 한손을 들어올리며 무관을 제지했다.
눈치 없기는….
무관을 곁눈질로 노려보면서 경고를 보냈다.
* * *
원소는 정로장군 국의의 제안을 받아들여 병주자사 고간과 청주자사 곽도를 불러들여 방어선을 펼쳤다.
황하에서 적들을 막으라.
수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길목들을 차단했다.
전장에 참전한 장졸들은 몰아치는 눈보라를 꿋꿋하게 견뎌내면서 참호를 팠다. 그리고 목책들을 쌓으면서 적의 공세에 대비했다.
“분명 조조군은 전격전을 꾀할 겁니다. 엄동설한의 추위 속에 장기전은 불가능할 테니 말입니다.”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눈보라가 세상을 아득하게 뒤덮어버릴 것처럼 맹렬하게 몰아쳤다.
시야가 흐려졌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침략자들에게 혹한의 추위는 최악의 적이 될 터.
곽도는 업성을 호위하는 성채와 요새들을 중심으로 장기전에 대비했다. 연이은 승전들로 오만에 취한 조조군을 설원에 파묻어버리겠다는 심산이었다.
“한겨울의 엄동설한에 황하가 꽝꽝 얼었습니다. 거의 육지 수준입니다.”
현장에 투입된 무관이 달려와 보고했다.
황하가 완전히 얼었다.
세차게 흐르던 황하의 격류가 멈춰버리고 말았다.
호흡을 내뱉자 새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
폐부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추위에 방한복을 추스른 고간은 장수들을 소집하여 만전의 준비를 명령했다.
“어서 참호를 파라!”
“목책을 세워라! 눈보라에 쓰러지지 않게 고정해야 한다!”
명령을 받은 무관들이 전선을 돌아다니면서 준비를 재촉했다.
언제 조조군이 올지 모른다.
한시라도 빨리 준비를 끝마쳐야 했다.
곡괭이를 양손으로 움켜쥔 병사들은 추위에 단단해진 땅을 사정없이 내리찍으면서 참호를 팠다. 추위에 손가락들이 떨어져나갈 것 같았음에도 작업을 서둘렀다.
부우우우우우우.
부우우우우우우우우──!!
작업을 서두르던 그때,
새하얀 장막으로 뒤덮인 지평선 너머에서 고각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열심히 참호를 파던 병사들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수많은 발걸음들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주변을 정찰하던 척후들은 심상찮은 이변을 감지하고는 곧바로 고간과 곽도에게 달려왔다.
“병주자사!”
“조조군…! 조조군입니다!!”
칼바람처럼 매서운 눈보라를 돌파한 조조군이 삼면에서 진격해오기 시작했다.
연진. 백마.
두 거점들이 동시에 노려졌다.
이윽고 원소군은 새하얀 장막을 걷어내면서 모습을 드러낸 중원의 군세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조조군이 황하를 뒤덮었다!”
“저, 저게 모두 군사들이란 말인가!”
밀물처럼 새카맣게 몰려든 장졸들이 얼어붙은 황하를 건너기 시작했다.
무려 14만.
규격을 초월한 압도적인 병력을 자랑했다.
마치 개미떼와 같았다.
위풍당당한 기염을 발산하면서 설원을 통과하는 조조군의 위용에 원소군은 단번에 전의를 상실했다. 벌벌 떨리는 두 눈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병력이 대체 얼마나 된단 말이냐!!”
곽도가 경악하여 척후들을 쏘아붙였다.
가늠할 수 없다.
감히 병력을 추산할 수 없었다.
남쪽에서 밀려드는 강철의 파도가 광활하게 펼쳐진 설원을 가득 메웠다. 족히 10만은 넘을 것 같은 조조군의 규모에 아연실색하며 입을 벌렸다.
“역적들을 쳐라!”
“사예주에서 당한 원한을 갚아주겠다!”
상상을 아득하게 초월한 규모에 원소군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을 때,
방어선에 근접한 조조군이 이윽고 총공세를 시작했다.
“조조군을 막아라!”
“원소군을 토벌하라!”
결전이 벌어졌다.
천하의 주인을 결정하는 대단원에 들어섰다.
성패를 통해 패자(覇者)가 결정되리라.
천하를 양분하면서 대립과 충돌을 반복했던 조조군과 원소군은 엄동설한의 추위 속에 부딪쳤다.
설원을 내달리는 기병부대와 공세를 저지하고자 날아드는 화살세례들. 수많은 장졸들이 거센 함성을 내지르면서 전운을 폭발시켰다.
누가 승자가 되느냐.
누가 패자가 되느냐.
승자는 천하를, 패자는 몰락을 향하리라.
난세를 평정했던 수많은 호걸들이 전장에 집결하여 전의를 불태웠다. 천하의 향방을 결정하는 거대한 대전(大戰)을 승리로 이끌고자 목숨을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