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520화 (520/616)

<520화>

===============================

구강군(九江郡)의 유비군이 도착했다.

총 3만 5천.

양주의 대군이 기세등등한 기염을 뽐내면서 황도에 들어섰다.

구강군을 발판으로 여강군과 주변 일대까지 요원지화처럼 장악한 유비군은 조조군 산하의 군벌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좌장군(左將軍) 의성정후(宜城亭侯) 유비.

눈보라처럼 찬연하게 빛나는 백발을 늘어뜨린 여걸이 의자매들과 함께 궁성으로 들어섰다.

“그간 강녕하셨나요, 대장군.”

유비가 화사하게 웃으면서 궐문으로 직접 마중까지 나온 이성휘를 맞이했다.

생글생글-.

아름다운 얼굴에 천진난만한 미소를 머금었다.

자애로운 선정으로 원술의 폭정에 시달렸던 구강군의 백성들을 구원한 제후. 양주 백성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는 제후답게 성스러운 후광이 눈부셨다.

“먼 길을 와주었군. 고맙다.”

“당연히 부름이 내려왔으면 달려와야죠.”

이성휘가 감사를 표했다.

그에 유비는 다소곳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산하(傘下)이면서 동맹(同盟).

조조군과 유비군은 복잡한 관계였다.

전횡을 주도했던 동탁군을 무찌르고자 조조군의 산하로 편입된 유비군은 그 이후부터 계속 명령을 받들어 여러 임무들을 수행해왔다.

용병집단에 가깝다고 할까.

조조군이 병력과 물자들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유비군은 대부분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소식 들었다. 양주를 훌륭하게 다스리고 있다고.”

“과찬이세요.”

여남원씨 가문의 폭군에게 유린당했던 양주 백성들은 유비의 선정으로 생기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유비의 명망을 흠모한 백성들이 앞다투어 수춘성으로 몰려들었다. 폭정을 피하고자 산야에 숨었던 백성들까지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손견군의 동태는?”

“이렇다고 할 조짐은 없었어요. 불쾌하게 여기면서도 계속 지켜보겠다는 의중인 것 같아요.”

양주의 구심점으로 등극한 유비의 존재는 손견군의 입장에서는 껄끄러운 장애물이나 다름없었다.

원술군이 패망하면서 뿔뿔이 흩어졌던 양주의 피난민을 규합하여 세력을 조성하던 손견군으로선 당연히 백성들을 가로채는 유비군을 성가시게 여길 터였다.

“흠….”

손견군은 군사동맹을 맺은 세력이었지만 언젠가 분명 천하의 패권을 두고 대립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손견군을 적으로 돌릴 순 없었다.

지금은 모든 전력들을 하북 정벌에 집중할 때였다.

“크흠, 대장군.”

이성휘와 유비가 담소를 나누고 있었을 때,

옆에서 이야기를 경청하던 흑발의 여인이 헛기침을 흘리면서 앞으로 다가왔다.

전장군(前將軍) 관우.

유비의 의자매인 일기당천의 여걸이었다.

밤하늘처럼 수려한 흑발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미녀는 새하얀 뺨을 붉히면서 도톰한 입술을 끔뻑였다.

“외람된 질문이오나… 도련님들께선 잘 계십니까?”

“…….”

그 물음에 이성휘는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도련님.

앙이와 현이를 말하는 건가?

지금 상황에서 왜 내 아이들의 안부를 묻지?

의아하다는 이성휘의 반응에 유비와 장비는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본인들은 지금 상황에 전혀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병치레 없이 무럭무럭 크고 있다.”

“다행입니다…!”

관우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와 동시에 유비와 장비의 얼굴이 붉어졌다.

“입조를 끝내고 저택에 들르는 것은 어떤가.”

“예?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앙증맞은 아이들이 있는 저택에 들르라는 이성휘의 제안에 관우가 크게 반색하며 대답했다.

* * *

중원을 제패했던 용장들이 허도로 집결했다.

전운이 도래했다.

사예주를 침략한 원소군에게 되갚아줄 때가 왔다.

유비군을 위시한 전선의 제장들이 허도에 입성하여 이성휘의 명령을 기다렸다. 드디어 설욕전을 벌일 때가 왔다며 장수들은 분기탱천한 모습을 보였다.

“형주에서 올라온 병력이라고 하는군!”

“예주의 군현들이 허도로 상경한 병사들로 쫙 깔렸네!”

유표군이 단념하고 철수했던 남양군을 점령한 군세들이 최소한의 병력만을 남긴 채 허도로 돌아왔다.

이전. 우금. 악진.

조조군의 명장들이 귀환했다.

다른 전선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주군의 부름을 받들고자 주력부대를 이끌고 영천군에 주둔했다. 전선에서 상경한 군사들로 예주의 군현들은 포화를 이루었다.

“주군!”

“명을 받들고자 상경했습니다!”

충직한 장수들이 승상부에 입궐하여 조조를 알현하였다.

강행군을 반복하여 허도로 상경하는 고난을 겪었음에도 장수들은 흔들림 없는 충의를 보여주었다. 과연 오랫동안 조조를 따랐던 숙장들다운 충성심이었다.

드디어 원소군을 친다.

뜨겁게 달아오른 혈류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천하통일의 대업을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기에 장수들은 어느 때보다도 격렬한 고양감을 느끼고 있었다.

“수고 많았다.”

흑발을 늘어뜨린 여걸이 총동원령에 응답하여 달려온 제장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그대들의 용전에 항상 경의를 표한다.”

처억-.

장수들이 일제히 예를 취했다.

일말의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경례였다.

주군을 위해 우여곡절과 칠난팔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역전의 용사들은 묵묵히 명령만을 기다렸다.

“황실과 조정에 출사표를 올려 하북 정벌의 대의를 만천하에 알릴 것이다. 그대들의 손에 대의가 달려있음을 명심하라.”

그에 장수들은 우렁찬 함성으로 대답했다.

존명(尊命).

천하통일의 대의를 뼈에 새겼다.

주군에게 진충보국의 충심을 증명한 장수들이 이윽고 승상부에서 물러났다. 출병하기 전까지 허도로 상경한 장졸들을 정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때가 왔다.”

조조가 붓을 들었다.

출사표(出師表).

한나라의 승상이 북방을 정벌하고자 한다.

만천하에 정벌의 대의명분을 알리고자 조조는 황실과 조정에 올릴 표문을 작성했다. 천하이강의 숙적을 토벌하기 위한 명분을 표문에 담아냈다.

“황실에 기별을 보내라. 승상이 알현을 청한다고.”

“예, 주공.”

천하의 대의명분을 받들어 난세를 평정하고자 하북을 치고자 한다.

출사표를 간결하게 작성했다.

장황하게 쓸 필요는 없었다.

번드레한 허식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조조는 중점들만 요약하여 표문을 완성했다.

* * *

조조는 승상부의 기별을 전하자마자 곧바로 대전에 출입하여 황제 유협을 알현하였다.

미리 예상했던 것일까.

유협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서 옥좌에 정좌하고 있었다.

출사표를 떠안고서 대전에 들어섰던 조조는 옥좌에 앉은 황제를 응시하면서 발걸음을 움직였다. 미리 독대를 요청하였기에 드넓은 대전에는 최소한의 인원만이 있을 뿐이었다.

“폐하, 하북 정벌을 윤허해주십시오.”

위풍당당한 발걸음으로 어전에 시립한 조조가 황제를 보필하는 환관에게 출사표를 내밀었다.

그에 환관은 건네받은 출사표를 유협에게 올렸다.

“마침내 하북을 정벌하는군.”

서량의 난적들을 토벌한 조조군은 기세등등해진 여세를 몰아 하북의 숙적을 토벌하려 했다.

조조가 올린 출사표를 정독하던 유협은 지리멸렬하듯 흩어졌던 천하가 통일을 앞두고 있음을 느꼈다.

천하통일.

그것은 곧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다.

과연 ‘새로운 시작’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미 유협은 그것을 짐작해왔다.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왕조를 창립하려는 야심을 꾀하고 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이미 옛적부터 조조의 야심을 꿰뚫고 있었다.

“하북을 점령하고 나면… 이제 어디에 서려는가?”

봉기를 일으켰던 난신과 중원을 침공해온 군벌들을 격퇴한 전공을 내세우며 승상이 되지 않았던가.

하북을 정벌한 다음에는,

원소군을 멸망시킨 다음에는….

분명 승상보다 높은 자리에 서려고 할 터.

승상은 천자를 보좌하여 천하를 경영하는 최고위의 관직이다. 승상보다 높은 관직은 존재하지 않기에 황실과 조정에 작위(爵位)를 요구할 것이 분명했다.

“승상은 평범한 제후로 만족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공(公)을 원하는가, 아니면 왕(王)을 원하는가.”

“…….”

유협이 힐문하듯 물었다.

그에 조조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답하지 않겠다.

이미 너는 답을 알고 있으니.

황제가 책봉하는 작위는 과정에 불과하다.

들판을 새카맣게 불태우는 들불처럼 맹렬하게 타오르는 야심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은 네년이 차지하고 있는 바로 그 독존(獨存)의 자리니까.

“알겠다.”

야망의 맹화로 활활 타오르는 붉은 눈동자.

그것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마음대로 하라.”

금발을 늘어뜨린 소녀가 만감이 교차하는 눈동자에 체념을 담아냈다.

아니,

체념(諦念)이 아니었다.

유협의 대답은 단념(斷念)에 가까웠다.

시대의 소용돌이에 순응하여 한나라의 황위와 사직을 포기하겠다는 무거운 단념이 목소리에서 흘러나왔다.

“…예?”

조조가 두 눈을 치켜뜨면서 물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의구심에 찬 눈길로 옥좌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진의를 의심하고 경계하는 것은 당연했다.

한나라의 부흥을 천명했던 계집이 단념한 모습으로 순종하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선황께서 그러하셨듯이 짐도 도탄지고에 시름해온 백성들을 태평성대로 이끌 위인에게 물려주려 한다.”

“…….”

이해할 수 없다.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4백 년의 사직을 넘기겠단 말인가.

선양을 결정한다는 것은 한나라의 역사를 지탱했던 역대 황제들을 모두 배신한다는 뜻이다. 한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장졸들의 희생을 모두 진흙탕에 처박아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원하는 게 있을 텐데요.”

조조가 물었다.

그에 유협이 입을 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