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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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태수(漢中太守) 소고를 축출하고서 한중군(漢中郡)을 점령한 장로가 독립을 선언했다.
성도(成都)에서 출병하기 전부터 이미 배신할 심산이 분명했다. 한중 정벌을 완수하자마자 유언을 따르던 장수들을 살해하고 병력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거병에 성공했다.
유언군을 몰아내고 군벌로 독립한 장로는 분기탱천하여 병사들을 집결시켰다.
“지금부터 한중을 한녕(漢寧)으로 고치고 한녕군의 장졸들을 귀졸(鬼卒)이라 명명할 것이다! 우리들은 사악한 주구들에 맞서 오두미도(五斗米道)의 기치를 만천하에 증명해내리라!”
오두미교를 창시했던 할아버지의 대의를 이룰 때가 드디어 왔다.
한녕군은 오두미교의 천국이다.
탐욕스럽고 방탕한 무리들에게 무너지지 않으리라.
장로는 바깥과 이어지는 가도들을 모두 끊어버리고 스스로 고립을 선택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결집하여 관문을 지키게 했다.
“장로를 죽여라!”
“더러운 변절자…! 네놈을 찢어죽이겠다!!”
인질로 잡아두었던 장로의 식솔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유언군은 반란을 진압하고자 군세를 일으켰다.
유언은 목문도로 파견했던 차남 유탄을 총대장으로 임명하여 군세를 이끌도록 했다. 익주 세력을 계승할 후계자의 용맹을 장졸들에게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가맹관을 뚫어라!”
“익주의 강병들이여! 가맹관을 넘어라!”
성도에서 출병한 수만의 군세들이 한중군으로 향하는 관문인 가맹관(葭萌關)을 공격했다.
고패. 냉포. 양회. 등현.
서량을 휩쓸었던 익주의 맹장들이 진압에 투입되었다.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주군의 명을 완수하리라.
전장에 개입했던 서량의 금마초에게 패전하여 성도로 철군했던 익주의 장수들은 절치부심하는 심정으로 가맹관에 총공세를 퍼부었다.
“관문을 오르라!”
“놈들은 오합지졸이다! 계속 밀어붙여라!”
가맹관을 수비하는 장로군 병력들은 한녕군에서 급히 징발했던 신병이었다.
숙련병은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 어수룩한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장로군의 양앙과 양임이 분전하였으나 서량을 휩쓸었던 유언군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병사들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유언군의 병력은 가맹관을 오르기 시작했다.
“공자! 병사들이 관문을 넘었습니다!”
“그, 그게 정말이오…?”
안전한 후방에서 공방전을 지켜보던 유탄은 양회가 전한 낭보에 화색을 보였다.
수만의 군세들을 동원하였음에도 결국 진압에 실패한다면 아버지의 진노를 받게 될 터.
나약하고 소심한 성정이었던 유탄은 마음을 졸이면서 승전을 기다렸다. 하늘께서 간절한 소망에 응답해주듯 전황은 매우 유리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경하드립니다!”
“곧 가맹관이 함락될 겁니다!”
유탄을 호위하던 무관들이 소리쳤다.
가맹관에 불길이 치솟고 있다.
주군에게 반기를 들었던 어리석은 무리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놈들은 모두 비참하게 죽게 되리라.
오두미교를 앞장세워 거병했던 장로군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았다.
‘아아, 드디어 고비를 넘겼구나…!’
완승을 예측하는 무관들의 목소리에 유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서량의 마적들에게 살해당한 형님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죽음이 두려웠던 유탄은 성도에서 출전한 이후부터 많은 정예병들을 호위로 두었다. 장로가 자객들을 보내어 자신을 살해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놈들이 퇴각하고 있습니다!”
“어서 진격을 명령해주십시오! 놈들이 본거지로 돌아가기 전에 모조리 때려잡겠습니다!”
가맹관이 무너졌다.
양앙과 양임이 잔병들을 이끌고 퇴각을 시도했다.
놈들을 놓쳐선 안 된다.
고패와 냉포가 유탄에게 추격을 진언했다.
가맹관에서 패주한 잔병들을 몰살하여 한중군에 틀어박힌 장로에게 경고를 보내야 한다. 배신자를 따르는 주구들을 모두 진멸해야 마땅했다.
“냉포 장군이 기병대를 이끌고 추격하시오…!”
장수들의 격앙된 목소리가 두려웠던 유탄은 진언을 받아들여 추격을 명령했다.
아버지를 배신한 무리들을 척살하고서 한시라도 빨리 성도로 돌아가고 싶었던 마음도 컸다.
병사들의 비명.
차가운 금속음과 땅이 울리는 진동.
전장의 참상들이 무섭고 두려웠던 익주의 후계자는 어서 악몽이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혹한의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음에도 허도는 어느 때보다도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하북을 정벌하라.
원소군을 멸망시킬 때가 왔다.
천하를 양분했던 하북의 세력을 멸망시킴으로서 우리들은 최강의 패자임을 증명해낼 것이다.
전선에 주둔하던 모든 군세들에게 총동원령을 하달한 조조는 이번에야말로 천하통일의 숙원을 달성하겠다는 강한 의욕을 보였다.
“3만의 서주 병력이 패국에 집결했습니다.”
“사예주에서 2만의 병력이 낙양을 통과하여 허도로 오고 있는 중입니다.”
승상부의 참모들이 조조에게 현황을 보고했다.
군세들이 상경하고 있다.
중원 4개 주에 주둔하던 병력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양주의 구강군과 여강군에 주둔하던 유비군까지 하북 정벌군에 합류했다. 현재 유비군은 수춘성에서 출병하여 예주에 도달한 상태였다.
“유비군의 동태를 면밀하게 감시하라. 반기를 품고 있을지도 모르는 년이니.”
겉과 속이 다른 년.
활짝 웃으면서 등에 칼끝을 찌를 계집이다.
표리부동한 유비의 성정을 정확하게 간파한 조조는 곽가의 세작들을 풀어 유비군을 철저히 감시했다.
황실과 조정의 명령에 순종하는 모습들을 보였지만 마지막까지 안심할 순 없었다. 가장 치명적인 배신은 대단원에 당하는 변절이었으니까.
“주군의 총애를 받아 좌장군의 품계에 오른 유비가 이제 와서 배신을 꾀하겠습니까?”
군사좨주 곽가가 물었다.
그에 조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봉효는 세작들을 풀어 황실과 조정을 엄중히 경계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도둑년에게는 안일하군.”
“…예?”
“귀 큰 년이 바로 천하에서 가장 못 믿을 년일세.”
“…….”
인자한 성품과 인의를 중시하는 성정으로 군중들을 속이고 있을 뿐이다.
조조는 알고 있었다.
지금 가장 경계해야 할 인물이 바로 유비임을.
그렇기에 항상 주의를 기울였다.
날카롭게 갈아두었던 칼끝에 도리어 자신이 목숨을 잃는 촌극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대장군이 있지 않습니까. 대장군과 함께 붙여둔다면 감히 준동하지 못할 겁니다.”
“나도 그렇게 하려 하네.”
양주에서 상경한 유비군이 허도에 입성하면 곧바로 대장군부의 직속으로 투입될 예정이었다.
성휘가 버티고 있으면 귀 큰 년도 고분고분하게 명령을 받들 테니까.
“명부, 칠군(七軍)을 편성했습니다.”
진궁이 다가와 명단을 건넸다.
하북 정벌군을 총 7개 군으로 편성했다.
일곱 갈래로 분산하여 업성을 사방에서 총공격하려는 계획이었다.
하북의 중심지인 업성이 함락되면 하북의 사대부와 호족들이 저항하기를 포기하고 복종할 것이기에 조조는 단기결전으로 전쟁을 끝내려고 했다.
“병력은 어느 정도 모이겠는가?”
조조가 물었다.
그에 진궁이 대답했다.
“족히 14만의 병력이 집결할 겁니다.”
천하를 호령했던 군벌들을 쓰러트리고 세력을 흡수한 조조군은 유일한 일강(一强)이 되었다.
최소한의 병력만을 남기고 모든 군세들을 집결시켰기에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다.
14만.
실로 어마어마한 대군이다.
광활한 벌판을 메우고도 남을 정도로 대단하리라.
무소불위의 세력을 자랑하는 조조군은 마침내 십만을 훌쩍 넘는 군세들을 한꺼번에 투입시킬 정도로 강대하게 성장했다.
* * *
조조군이 하북 정벌을 천명하면서 전운이 고조되기 시작하자 원소군의 참모들은 상소를 올려 삭탈관직을 명령받은 죄인의 복권을 주청했다.
심사숙고하며 고민하던 원소는 결국 참모들의 상소를 받아들였다.
전풍. 저수. 국의.
패전의 책임을 짊어지고 관직에서 물러났던 공신들이 모두 돌아왔다.
“결코 자네의 은공을 잊지 않겠네.”
별가종사로 복권된 전풍이 복권에 앞장섰던 심배에게 감사를 표했다.
심배는 앙숙처럼 정쟁을 벌였던 정적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내려준 은인이었기에 기꺼이 고개를 숙였다.
“흠, 그리 기뻐할 것 없네.”
그에 심배는 시선을 돌리면서 대답했다.
대수로울 것 없다.
모두 주군을 위한 결정이니.
주군을 위해 결단하여 정한 것인데 어찌 나한테 감사를 표시한단 말인가.
심배는 전풍의 인사를 외면한 채 자리를 떠났다.
“당장 병주와 청주의 군세들을 소집하여 업성에 집중시키시오.”
전풍과 마찬가지로 삭탈관직에서 복권된 국의는 돌아오자마자 참모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업성에 집중하라.
모든 병력들을 업성의 방위에 투입해야 한다.
분명 조조군은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나고자 업성에 전력을 집중할 터였다.
“어처구니가 없군. 병주와 청주를 조조군에게 그대로 넘기자는 말인가?”
참모 신평이 헛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가당찮은 말이다.
병주와 청주에 주둔하는 병력들을 모두 불러들이라니.
틀림없이 주군에게 앙갚음을 하고자 실로 얼토당토않은 참언을 내뱉은 것이리라.
“병주와 청주는 빼앗기면 다시 되찾을 수 있소.”
국의는 자신을 불신하는 신평과 관료들을 노려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업성이 무너지면 하북 전역이 조조군의 손아귀에 넘어가게 될 거요. 정녕 그것을 바라시오?”
형양의 완패로 기세가 꺾여버린 원소군은 백척간두에 놓인 형국이었다.
그렇기에 국의는 청주와 병주를 포기하더라도 업성에 모든 군세들을 집중시킬 것을 주장했다.
반드시 업성을 지켜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참모들은 국의를 불신하는 반응을 보였다. 오직 함께하던 전풍과 봉기만이 국의의 주장이 타당하다며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