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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518화 (518/616)

<5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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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도로 돌아온 이후부터 제갈량은 이성휘의 저택에서 머물게 되었다.

보호자였던 제갈현이 좌풍익(左馮翊)에 임명되면서 서로 이별했기 때문이다. 조카딸의 후견을 부탁한 제갈현의 간청에 이성휘는 흔쾌히 전각을 내어주었다.

오라버니가 허도로 오고 있다.

제갈량은 오라버니가 허도에 주거를 마련할 때까지만 염치 불구하고 머물기로 했다.

“후으으, 따뜻해….”

방울꽃처럼 청아한 은발을 늘어뜨린 소녀가 노곤노곤한 표정을 지으면서 책상에 엎드렸다.

방을 데우는 따스한 온기.

화기(火氣)로 데워진 난방이 자꾸만 눈꺼풀을 무겁게 만들었다.

이렇게 사치스러운 생활을 보내도 되는 걸까.

분명 땔감을 펑펑 쓰겠지.

궁궐처럼 어마어마한 저택을 데우고자 엄청난 양의 땔감이 소모될 터였다.

서주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누추하고 궁핍한 생활을 보낸 촌년에게 실로 호화로운 대접이었다.

“정말 허도로 오길 잘했어.”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지붕.

냉풍이 밀려들던 곰팡이 붙은 벽.

밟을 때마다 삐걱대던 냉골 같은 바닥.

난방이 없는 남루한 초가집에서 살았던 제갈량에게 있어 지금의 생활은 별천지와 같았다.

이런 집을 마련할 수 있을까.

고관대작이 된다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아.

이래서 사람들이 출세에 목을 매는 거구나.

나도 대장군처럼 빨리 출세해서 이렇게 으리으리한 저택을 마련해야지.

겨울이 올 때마다 추위와 궁핍에 벌벌 떠는 가문의 친척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라도 한시라도 빨리 출세해야 했다.

“그냥 쪽방 하나로도 괜찮은데.”

제갈현에게 후견을 부탁받은 이성휘는 제갈량을 가문의 빈객으로 맞이했다.

대장군의 빈객.

너무도 호화로운 신분이었다.

조카딸을 맡긴 숙부님도 대장군이 이렇게까지 과분한 예우를 하사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으리라.

심부름을 도맡을 시비.

알록달록한 비단으로 지은 침구와 의복들.

거기에 월초마다 두둑한 용돈까지 제공해주었다.

방이 여러 개 딸린 전각을 제공받는 영예를 하사받고 대장군의 가족들과 함께 식사까지 했다.

“관중과 악의에 비견될 천재라면 응당 누려야 마땅한 대접이지만!”

매우 과분한 호사였다.

이렇게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아도 되는 걸까.

불안감에 망설이던 제갈량은 이윽고 기고만장한 자신감을 뽐내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무능한 범부가 그렇게 지껄였다면 철면피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겠지.

하지만 제갈량은 후대까지 명망을 남기는 명재상의 그릇이었다.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에 비교할 만큼 자신감이 대단했기에 부담을 꿋꿋하게 이겨냈다.

“놀러왔음!”

대장군에게 받은 은공을 앞으로 착실하게 갚아나가야지… 라고 생각하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을 때,

흑발의 소녀가 등장했다.

당찬 목소리.

생기발랄한 표정.

장인이 만든 인형처럼 귀여운 용모.

어사중승(御史中丞) 사마의가 장지문을 열어젖히면서 고개를 내밀었다.

“여긴 왜 왔어요?”

“친구 집에 놀러오는 건 당연한 거 아님.”

친구. 친구.

사마의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대충 구색이나 맞추려는 제갈량과는 달리 사마의는 진심으로 친구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조금 덜떨어진 모습이었지만 순박한 미소에서 천진난만한 마음씨를 엿볼 수 있었다.

“뭐하고 있었음?”

“당연히 경전을 공부하고 있었죠.”

“본좌가 올 때까지 꾸벅꾸벅 졸고 있었잖음.”

“잠시 명상하는 중이었어요.”

제갈량은 불쑥 난입한 사마의를 귀찮은 방해꾼으로 취급하면서도 손님으로 들였다.

쿨쩍-.

사마의가 콧물을 훌쩍였다.

엄동설한을 뚫고 대장군의 저택에 도달한 사마의는 따뜻한 이부자리에 곧장 몸을 파묻었다.

“흐아아…. 이제야 좀 살 것 같음.”

이불을 돌돌 둘렀다.

마치 부화를 앞둔 병아리를 보는 듯하다.

많이 추웠는지 온몸을 꿈틀꿈틀 움직이면서 바닥에서 올라오는 온기를 만끽했다.

“많이 춥나요? 눈이 많이 오던데.”

“장난 아님! 본좌, 그대로 동사할 뻔했음!”

“허풍 떨긴….”

“지, 진짜임! 눈이 빠질 정도로 추웠음!”

눈보라가 몰아치는 것을 보자마자 전각에만 머물렀던 터라 자세히 모르겠다.

그렇게 춥나?

창문을 열어 바깥을 바라보았다.

칼바람처럼 매서운 맹한이 몰아침과 동시에 새하얗게 점철된 설원이 시야에 들어왔다.

“…….”

“키에엑! 추워죽겠음, 어서 문 닫으셈!!”

과연 맹렬한 추위였다.

엄동설한이라 부를 만했다.

하지만 고향 낭야국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바다와 인접한 지역이었다.

허도보다 훨씬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낭야국의 친척들은 과연 괜찮을까.

제갈량은 빨리 창문을 닫으라고 호소하는 사마의의 절박한 외침을 무시하면서 친척들을 걱정했다.

“에취! 왜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건지.”

“으아아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문까지 활짝 열렸다.

이중으로 몰아치는 찬바람.

사마의는 다람쥐처럼 이부자리에 쏙 숨어들었다.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어깨에 수북하게 쌓여있던 눈을 털어내면서 문지방을 넘었다. 사마의와 거의 동시에 저택을 나섰던 종사중랑(從事中郞) 양수였다.

“어깨보다 가슴에 더 눈이 쌓였는데요?”

“시, 시끄러워요…!”

제갈량의 지적에 양수는 얼굴을 붉히면서 바깥으로 나가 윗가슴에 쌓인 눈을 털어냈다.

과연 대단한 아가씨였다.

가슴에 저토록 많은 눈을 적재하다니.

분명 일반 여성들에 비해 크고 우월한 면적을 자랑하기 때문일 터.

본인도 알고 있는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대장군부의 참모들께서 여기는 무슨 일이죠?”

제갈량이 팔짱을 끼며 양수와 사마의에게 물었다.

무슨 만남의 광장도 아니고.

엄동설한을 무릅쓰고 행차한 명문가 출신의 여식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냥 놀러왔음.”

“대장군을 알현하러 온 김에 들른 거예요.”

제갈량은 불쑥 찾아온 불청객들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손님은 손님이었기에 추위에 떨던 사마의와 양수를 위해 차를 대접했다. 손님을 푸대접하며 내쫓았다는 소문이 알려졌다간 가문의 위신이 깎일 테니.

“저급한 찻잎으로 우려낸 차라도 못 마실 정도까지는 아니네요.”

양수가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말했다.

다소 쓴맛이 감돈다.

분명 저렴한 찻잎을 쓴 것이리라.

대명문가의 여식으로서 언제나 최상급 찻잎으로 우려낸 차만을 고집했던 양수였기에 한 모금을 마신 것만으로도 정확히 맛을 구별해냈다.

“그렇게 매일 비싸고 기름진 것들만 드셔서 가슴이 젖소처럼 커진 건가요?”

“가, 가슴하곤 상관없어요!”

아니,

무관할 리가 없다.

분명 상관이 있다. 그것도 많이.

위풍당당함을 뽐내듯이 눈앞에서 위아래로 출렁이는 큼지막한 거유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

대장군부의 신참들이 떠들썩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때,

귀여운 유년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끔뻑끔뻑.

아름다운 눈동자를 빛냈다.

부스럭대는 소리를 듣고서 스리슬쩍 다가온 너구리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래의 여자아이들보다 귀엽게 생긴 유년은 부스스한 낯빛으로 양수와 사마의를 주시했다.

“누, 누구임?”

“대장군의 아드님이잖아요.”

사마의가 물었다.

그에 양수가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대답했다.

“어서 와. 모르는 한자가 생겼어?”

“…(끄덕끄덕).”

도련님의 방문을 낯설어하는 양수와 사마의와는 달리 제갈량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반겼다.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나?

항상 짜증내거나 멸시하는 표정을 일관하던 제갈량이 아니었던가.

불쑥 방문한 도련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미소를 보내는 모습이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오(嗚). 이건 슬플 오야. 입(口)에 까마귀(烏)가 합쳐서 우는 것을 표현한 거지. 까마귀가 나무 위에 매달려서 꽥꽥 울어대곤 하잖아.”

“…(끄덕끄덕).”

“많이 어렵지? 어려운 글자들이 많으니까.”

“…(도리도리).”

괜찮아.

더 공부할 수 있어.

어려운 한자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제갈량의 가르침에 눈동자를 빛냈다.

양손에 서책을 쥐고서 제갈량의 침소까지 달려왔던 이현은 궁금증을 해결했는지 고개를 꾸벅였다.

“본좌도 잘 가르침!”

“한나라 제일의 신동이 나설 때네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아이와 친밀한 제갈량의 모습이 부러웠는지 사마의와 양수가 스스로를 뽐내면서 선생님을 자처했다.

샤삭-.

이현이 제갈량의 뒤에 폭 숨었다.

외부인을 경계하는 야생동물을 보는 듯했다.

제갈량의 배후에 숨어버린 이현은 고개를 내밀면서 양수와 사마의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두 눈에 경계심이 역력했다.

“현이가 겁먹었잖아요. 어서 썩 물러나요.”

제갈량이 손을 휙휙 저으면서 말했다.

파리를 내쫓는 듯한 손짓이었다.

“큭…! 제가 더 잘 가르칠 수 있거든요! 절차탁마의 정신으로 도련님을 훌륭하게 가르치겠어요!”

학구열을 뽐내는 자존심이 대단했던 양수는 얌전히 물러선 사마의와는 달리 결코 굽히지 않았다.

한나라 제일의 신동이라 불렸던 천재로서 홍농양씨 가문의 명성을 걸고서라도 물러설 수 없었다.

내가 더 잘 가르칠 수 있어!

이를 빠득 갈면서 분기탱천하는 모습을 보였다.

“…….”

무서워.

어머니보다 가슴이 커다란 누나가 왁왁 떠들어대는 모습이 무서웠던 이현은 뒷걸음질 치며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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