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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517화 (517/616)

<5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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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국조씨 가문의 아가씨는 안타깝게도 모친처럼 불같은 성정으로 유명했다.

급하고 격렬한 성미.

특히 드센 고집이 대단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아이들을 훈육했던 보모조차 아연실색할 정도로 대단한 악동이었다. 딸을 낳은 모친조차 한숨을 내쉬며 한탄했을 정도였다.

“기야아아악!! 싫어어어어어엇!!!”

흑발의 유녀가 울부짖으면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수레바퀴라도 된 걸까.

데굴데굴 구르면서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쩌렁쩌렁한 울음소리가 침전을 뒤흔들었다.

어떻게든 아가씨의 비위를 맞춰주고자 양손에 장난감을 번쩍 들고 있던 시녀들은 아연실색한 낯빛과 함께 그대로 굳어버렸다.

“머리를 빗으시어야 합니다, 아가씨…!”

“싫어!”

“그럼 옷이라도….”

“싫어어엇!!”

머리를 빗는 것도 싫다.

옷을 갈아입는 것도 싫다.

앙칼진 투정이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목욕을 싫어하는 고양이처럼 격렬하게 저항하는 통에 시녀들은 기진맥진할 수밖에 없었다.

‘아오, 진짜…’

‘머리라도 한 대 쥐어박았으면.’

자애로운 훈육을 다짐했던 시녀들조차 체벌을 잠시 생각할 정도로 패악질이 극심했다.

한 대라도 때릴까.

시녀들은 진심으로 고민했다.

체벌이 사실은 아예 잘못된 방법이 아닐지도 몰라.

소도 맞으면서 일한다잖아.

사실 사람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고.

잠시 체벌을 궁리했다.

하지만 결국 무산되었다.

무소불위의 권위에 도전했던 정적들을 모두 숙청하여 천하의 권력을 거머쥔 철혈의 승상이 바로 악동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참아야 돼,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손찌검을 했다간 우리 모두 죽은 목숨이라고!’

날랜 자객들을 동원하여 패국조씨 가문을 몰살시키려 했던 동귀비가 어찌 되었는가?

산 채로 두 눈이 뽑혔다.

자신이 학대했던 후궁전의 시녀들에게 평생 괄시를 당해야 하는 끔찍한 형벌에 처해졌다.

분명 죽을 때까지 고통이 이어질 터.

시녀들은 속내를 감히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히에에에에에에엑!!!”

어떻게 아이의 입에서 저런 괴성이….

경악을 넘어 경외를 느낄 지경에 이르렀다.

데굴데굴데굴데굴.

흑발의 소녀가 계속 바닥을 굴렀다.

아침부터 밤까지 바닥을 데굴데굴 나뒹굴면서 바닥을 청소해댄 탓에 의복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곱상하게 땋았던 머리카락도 마찬가지였다.

“머리를 빗으시어야 합니다, 아가씨.”

“옷이라도 갈아입으시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시녀들의 간절한 호소에도 조비는 망나니처럼 난동을 부리면서 격렬한 반대를 외쳤다.

이제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서글픈 한탄이 하늘에 닿을 듯했다.

“또 소란이군….”

기상천외한 성정을 자랑하는 아가씨의 난동에 시녀들이 골치를 겪고 있었을 때,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장군(大將軍) 이성휘.

극성을 부리는 악동의 아버지였다.

“아빠!”

아침부터 지금까지 괴성을 내지르며 시녀들을 번뇌에 빠트렸던 조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밝게 웃으면서 아버지를 맞이했다.

두 발로 성큼 일어섰다.

이윽고 아버지에게 달려들어 품에 안겼다.

“착한 아이로 있으라고 했을 텐데.”

“후에엑.”

이성휘가 무거운 한숨을 흘리면서 딸아이의 보드라운 뺨을 쭈욱 잡아당겼다.

찹쌀떡처럼 뺨이 늘어났다.

작고 조그마한 청설모를 보는 듯했다.

귀여운 용모와 함께 앙칼진 성질머리를 물려받았다는 점이 콕 닮았다.

“말썽쟁이를 돌보느라 수고 많았다.”

“괘, 괜찮습니다….”

고역에 시달렸을 시녀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하루 종일 힘들었겠지.

울화가 계속 치밀었을 게 분명하다.

이성휘는 안쓰러운 눈길로 시녀들에게 정월을 넘기자마자 급여를 올려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자애로운 아량을 베푸는 이성휘의 선정에 시녀들은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하여간.”

“이크!”

딸의 오뚝한 코를 건드렸다.

그러자 조비가 킥킥 웃으면서 어깨를 들썩였다.

“지금부터 내가 돌보겠다. 물러나서 하명을 기다리고 있어라.”

“예.”

정신적인 노고와 육체적인 고역에 시달렸을 시녀들을 위로하고자 육아를 대신하고자 했다.

평소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짙은 피로가 느껴지는 시녀들의 낯빛에서 안쓰러움을 느꼈다.

* * *

아빠.

아빠아.

아빠! 아빠!

사랑스럽게 안긴 유녀가 연신 아빠를 불러댔다.

반짝이는 붉은 눈동자.

비단처럼 새하얗고 보드라운 뺨.

정말이지 제 어머니를 쏙 닮았다.

그렇기에 아무리 말썽을 부리더라도 딸아이를 미워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아내를 빼닮은 딸이니까.

“간밤에 또 눈이 많이 내렸군.”

“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과 새하얗게 물든 궁궐을 산책했다.

알록달록한 낙엽으로 장식된 궁궐도 분명 절색이었지만 백색으로 점철된 궁궐의 풍경도 운치가 넘쳤다.

뽀득-! 뽀득-!

조비가 눈이 소복소복 쌓인 길을 거닐었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눈 밟히는 소리가 났다.

“하핫! 꺄하핫!”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예쁘게 땋은 유녀가 발랄하게 주변을 누볐다.

아빠와 단둘이서 나들이!

함께 놀 수 있다는 말에 조비는 격렬하게 거부하던 머리 빗기와 옷 갈아입기를 받아들였다.

인형처럼 예쁘장하게 차려입은 조비는 새하얗게 물든 눈길에 발자국을 새기면서 도도 뛰었다.

“이얏! 죽어랏!”

전력으로 달려들어 담벼락 아래를 장식하던 눈사람을 걷어찼다.

파악-!

눈사람의 머리가 박살났다.

어린 궁인들이 정성스럽게 만들었을 눈사람이 앙칼진 성격의 유녀에게 유명을 달리했다.

“…….”

저렇게 난폭할 수가.

해맑은 미소의 눈사람을 걷어차고 짓밟는 딸아이의 난폭한 모습에 이성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순수한 악의.

적의가 존재하지 않는 폭력.

될성부른 떡잎임을 자랑하고 싶은 걸까.

앞으로 장성하면 훌륭한 성격파탄자가 될 듯했다.

“아빠! 눈사람 부쉈어!”

조비가 두 팔을 휙휙 흔들면서 외쳤다.

히히.

해맑은 미소를 터트렸다.

나보다 큰 눈사람을 박살내버렸다!

천진난만한 얼굴에 희열이 감돌았다.

“저것들도 부숴버려야짓!”

담벼락 아래를 장식했던 눈사람을 박살냈던 조비가 새로운 표적을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재차 움직였다.

소녀가 달려들었다.

이번 표적은 여러 구의 눈사람들이었다.

커다란 눈사람과 작은 눈사람들.

일가족처럼 나란히 장식된 눈사람들이 사악한 유녀에게 노려졌다.

“이얏! 천하제일검 주먹!”

“…….”

고사리처럼 작은 주먹을 휘두르자 아빠 역할이었던 눈사람의 얼굴이 짓뭉개졌다.

혹시라도 다치진 않을까 이성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딸아이에게 다가섰다.

“천하제일검 발차기!”

“…….”

퍼억-! 퍼억-!

조그마한 눈사람들을 걷어찼다.

아이 역할이었던 눈사람들은 그렇게 사악한 유녀의 발차기에 짓밟히고 말았다.

‘분명 내년이면 세 살이겠지.’

혈기왕성하게 눈밭을 돌아다니는 조비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이성휘가 중얼거렸다.

언제 이렇게 훌쩍 자란 걸까.

수개월 동안 자리를 비운 사이에 훌쩍 자랐다.

자식들의 성장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다. 과연 내가 자식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겠느냐는 의심 때문이었다.

“꺄아악! 누, 눈사람이!”

“우아아아앙!!”

아침에 눈사람을 열심히 만들다가 가사를 끝마치고 돌아온 궁녀들은 박살난 결과물을 마주해야 했다.

코를 훌쩍대면서 부지런히 만들었던 눈사람들은 안타깝게도 한낱 눈덩이가 되고 말았다.

“히히히.”

궁녀들이 좌절하는 광경을 지켜보던 조비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순수한 악의가 낯빛에서 느껴졌다.

딸의 익살스러운 모습에 이성휘는 한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탄식했다.

“미, 미안하다….”

쓰러진 눈사람을 바라보며 절규하는 궁녀들의 반응에 죄책감을 느낀 이성휘가 품속에서 지갑을 꺼냈다.

한 명당 한 닢씩.

조비가 박살낸 눈사람의 값을 지불했다.

“대, 대장군!”

“아… 아니옵니다! 괜찮사옵니다!”

이성휘를 알아본 궁녀들은 극구 사양하면서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추위를 무릅쓰고 아침부터 눈사람을 만들었을 궁녀들의 노력을 고려하여 값을 지불했다.

“많이 춥겠다. 이제 돌아가자.”

“응!”

시녀들을 돌려보낸 이성휘는 조비를 업고서 승상부의 관저로 향했다.

지금쯤이면 돌아왔을까.

일찍 퇴궐한다고 언질을 두었으니 아마도 도착했으리라.

“어서 오게, 성휘.”

관저로 돌아오자 흑발을 늘어뜨린 미녀가 화사하게 웃으면서 맞이해주었다.

가족과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고자 업무를 정리하고 돌아온 조조는 앙증맞게 털옷을 두껍게 입은 딸의 모습을 보고는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들었다. 또 시녀들에게 말썽을 부렸다지.”

“우그으으…!”

조조가 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힐책했다.

뺨을 꾸욱 잡아당겼다.

말랑말랑한 뺨이 사정없이 늘어났다.

“비아야.”

“오빠!”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와 여동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조앙이 고개를 배꼼 드러냈다.

반가운 얼굴을 발견한 조비는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오라비에게 뛰어들었다.

아빠. 오빠.

끔찍이도 아끼는 가족들이다.

고집과 난동이 일상일 정도로 말괄량이였던 조비였지만 아빠와 오빠만큼은 고분고분 잘 따랐다.

“우리도 들어가도록 하지.”

“예, 알겠습니다.”

조조가 손을 내밀었다.

그에 이성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을 맞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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