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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514화 (514/616)

<5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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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유의 사탕발림에 대충 맞장구를 놓았던 이성휘는 전각에 돌아오자마자 군사좨주 곽가와 마주했다.

“승상께서 부르십니다.”

주황빛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의 부름에 이성휘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왜 부르지?

설마 발각된 건가?

먹구름처럼 짙은 의심암귀에 휩싸였다.

낯빛은 평상시와 다름없었지만 이성휘는 어느 때보다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상석에서 자신을 응시하는 조조와 시선을 마주하게 된 이성휘는 가슴이 철렁히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곽가를 따라 조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허유를 만나고 온 겐가?”

“예.”

남편이 돌아오자 조조는 곧바로 착석을 권유했다.

그에 이성휘가 자리에 앉았다.

“분명 그놈은 아첨이나 떨었겠지.”

“예…. 비슷합니다.”

얼마나 장황하게 아첨을 떨어대던지.

아부. 아첨

간신의 기본소양이 아니던가.

십상시와 다를 바 없는 간신이었다.

황실과 조정을 기만하여 국정을 무너트렸던 환관들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더욱 교활한 모사꾼에게 반감을 느꼈다.

“마시게. 죽엽청일세.”

“감사합니다.”

자리를 함께한 이성휘와 조조는 아름다운 황금빛을 띄는 명주로 목을 축였다.

짙고 달콤한 향기가 났다.

동시에 화끈한 열기가 흘러넘쳤다.

죽엽청은 도수가 높은 고량주였다.

이성휘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죽엽청을 단번에 비워낸 조조를 응시했다.

“후우. 역시 죽엽청은 일품이군.”

새하얀 뺨이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랐다.

기분 좋은 취기였다.

달콤한 미소가 입가에 새겨졌다.

남편의 승전을 축하하는 연회이기 때문일까.

평소 즐겨마시던 명주들보다 더욱 각별하게 느껴졌다.

“취하시면 안 됩니다.”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취하면 성휘가 나를 등에 업어주면 되잖은가, 후후.”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배시시 웃음을 터트렸다.

붉게 달아오른 뺨.

촉촉하게 물든 도톰한 입술.

죽엽청 한 잔에 벌써부터 취한 듯했다.

뇌쇄적인 매력을 흩뿌리는 눈동자를 응시하면서 옅은 웃음을 지었다.

“여자는 취할수록 매력적이라지 않나.”

“…처음 듣는 말입니다.”

“그럼 지금의 나는 매력적인 여인으로 보이겠군.”

조조가 죽엽청을 들이키면서 말했다.

그에 이성휘가 입을 열었다.

“아만은 어느 때나 아름답습니다. 햇볕에 반사되어 찬연하게 반짝이는 유리처럼 말입니다.”

햇볕에 반사되어 빛나는 유리의 오색빛깔처럼 당신이 아름답다.

어느새 술에 취해버린 걸까.

아내를 응시하면서 낯간지러운 고백을 전했다.

본인도 다소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헛기침을 하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들 성휘를 무뚝뚝한 사내라고 하지만… 사실 엄청 낭만적인 사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네.”

조조가 웃으면서 술잔을 내밀었다.

그에 이성휘도 술잔을 뻗었다.

짜안-.

함께 술잔을 부딪쳤다.

수많은 장수와 관료들이 집결한 연회였음에도 이성휘와 조조는 알콩달콩한 금슬을 뽐냈다.

“겨울이 되면 하북으로 출정하겠군요.”

“아마 우리들은 얼어붙은 황하를 건너게 될 걸세.”

2월.

혹은 3월.

조조는 정월을 넘긴 이후에 출정하려 했다.

맹한을 뚫고 원소를 친다.

매우 대담하게도 한겨울에 시기를 잡았다.

원소군이 해자처럼 엄호하고 있는 황하가 견고하게 꽝꽝 얼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천하제일검께서 사자후를 내지르자 새카맣게 몰려들었던 저족과 흉노족의 군세가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담소를 나누던 이성휘와 조조의 시선에 떠들썩하게 천하제일검의 무용담을 자랑하는 장수들을 향했다.

크흠.

이성휘가 머쓱한 헛기침을 했다.

반면 조조는 웃음을 터트렸다.

“오오!”

금발을 늘어뜨린 아리따운 소녀가 두 손을 붕붕 휘두르면서 환호성을 흘렸다.

붉게 상기된 뺨.

초롱초롱하게 반짝이는 눈동자.

어린 황제는 천하제일검의 무용담에 푹 빠져들었는지 흥미진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직 어렸기에 술을 마실 수 없었던 황제는 달달한 음료를 연신 홀짝이고 있었다. 전장에서 승전하고 돌아온 제장들을 치하한 유협은 천하제일검의 무용담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폐하, 밤이 늦었사옵니다. 어서 침전으로 향하시옵소서.”

“으으! 조, 조금만…!”

벌써 시간이 해시(亥時)를 넘기고 있었다.

그에 궁녀가 어린 황제에게 짐짓 주의를 주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평소에 근엄하고 명민한 면모를 보여주었던 황제가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귀여운 응석에 궁녀는 큼큼 헛기침을 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흥, 이 도둑고양이가….”

곁눈질로 황제를 노려보던 조조가 못마땅함이 느껴지는 반응을 보이면서 죽엽청을 단번에 비워냈다.

심상찮다.

연거푸 죽엽청을 비워내는 아내의 모습에 이성휘는 두려움을 느꼈다.

혹시 주사(酒邪)를 부리진 않을까.

분명 술주정이 귀여운 애교로 끝나지 않으리라.

혹시라도 주사에 잔인무도한 성정이 조금이라도 반영된다면 미증유의 혼란이 벌어질 터. 어쩌면 욱하는 성질이 곱절로 배가되어 폭발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습니다.”

“내, 내가 술에 질 것 같은가…? 이 조맹덕이?!”

이미 진 것 같은데.

그것도 초전부터 완전히.

본격적으로 횡설수설대기 시작한 조조의 모습에 불길한 직감이 밀려들었다.

“후우…. 모시겠습니다, 아만.”

“아직 더 마실 걸세!”

이성휘가 양팔을 뻗으면서 흑발의 여인을 대담하게 안아들었다.

우우우웃─!!

그러자 조조가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는 기분이다.

과격하게 앙탈을 부리는 모습에 이성휘는 악동으로 명성이 자자한 첫째 딸을 떠올렸다. 과연 고집스러운 성격이 누구를 닮았는지 알 것 같았다.

“연회를 이만 파하는 게 좋을 것 같군.”

“네…. 알겠습니다.”

이성휘의 지시에 곽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단히 취하셨네….

계속 웅얼대는 주군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탁자 위에 빈 술병들이 보였다.

인사불성이 되어버린 주군의 모습에 곽가는 궁인들에게 눈짓을 보내어 폐회를 지시했다.

* * *

한나라의 승상이 대취하여 인사불성 상태가 되어버리면서 궁중의 연회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승상께서 죽엽청에 무너진 것을.

연회장에서 코가 비뚤어지도록 독주를 연거푸 마셨음에도 성에 차지 않았던 군부의 장수들은 장소를 이동하여 술자리를 열었다.

“많이 취하셨습니다.”

입술을 달싹이면서 술주정을 부려대던 흑발의 여인을 침소까지 옮겼다.

이윽고 그녀를 침상에 눕혔다.

“어지러어.”

백옥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침상을 나뒹굴면서 움직이기 답답했던 의복을 벗어던졌다.

풀썩-.

옷가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에 이성휘는 의복을 집어들어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녀에게 건네주었다.

“히히, 우리 서방님…!”

흑발을 늘어뜨린 주정뱅이가 배시시 웃음을 터트리면서 이성휘의 품에 달려들었다.

술에 취하더니 고양이가 되어버린 걸까.

갸릉.

갸르릉.

순진무구한 미소를 지으면서 보드라운 얼굴을 남편의 가슴에 비볐다.

“지금까지 얼마나 외로웠는데엡.”

“그렇습니까.”

“오기만, 돌아오기만… 쭉 기다렸단 말이야.”

“…….”

그녀는 결코 완벽한 영웅이 아니다.

슬퍼할 때가 많았다.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이기도 했다.

세간에서는 그녀를 원소와 함께 완전무결한 여장부라 칭송하지만 조조는 결코 완전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조조의 다양한 면모들을 보고서 경험했던 이성휘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응응….”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륵.

사르륵.

부드러운 머릿결을 쓰다듬을 때마다 새하얗게 쌓인 눈더미를 소복소복 밟는 소리가 났다.

“성휘.”

“예, 아만.”

“나 성휘를 진짜 좋아해.”

“저도 그렇습니다.”

창문을 통과한 달빛이 내리쬐면서 금낭화처럼 수줍게 물든 여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열기에 젖어든 붉은 눈동자.

새하얀 치아가 드러난 입술.

정성스럽게 조각한 백아처럼 아름다운 목덜미.

아름다웠다.

천하의 그 무엇보다도.

가히 성스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으응….”

손길을 뻗으면서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천천히.

정성스럽게 부드러운 살결을 훑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뺨을 쓰다듬으면서 천천히 목덜미로 손길을 옮겼다.

간지러웠던 걸까.

아니면 부끄러운 걸까.

교태에 가까운 신음소리가 귓가를 자극했다.

“우읏-.”

사내의 거친 손가락이 여인의 입술을 쓰다듬었다.

그 뒤,

얼굴을 뻗으면서 입맞춤을 했다.

입술을 포개자 달콤한 내음이 흘러넘쳤다.

죽엽청의 향기였다.

동시에 조조의 은은한 체취가 후각을 자극했다.

“계속 외로웠어…. 그러니까 공허해진 마음을… 성휘로 가득 채워줘.”

조조가 입술을 쭉 내밀면서 불평했다.

앙탈에 가까운 애교였다.

아내의 귀여운 앙탈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양팔을 뻗으면서 어서 안아달라고 졸라대는 성화에 보답하고자 침상에 몸을 던졌다.

“어떻게 채워줬으면 하십니까?”

이성휘가 물었다.

“지, 짓굿기는…!”

뻔히 다 알면서 되묻는 남편의 짓궂은 장난에 조조가 미간을 찡그렸다.

미간을 찡그렸음에도 사랑스럽다.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면서 목덜미에 입맞춤을 했다.

“아앙!”

침상에 누운 여인이 몸을 움찔 떨었다.

뜨거운 쾌감에 밀려들었다.

기대에 찬 눈길로 사랑하는 사내를 응시했다.

자신을 더 격렬하게 안아달라는 기대감이 촉촉하게 젖은 눈빛에서 묻어나왔다.

침소 바깥에서 하명을 기다리던 시녀들은 요염하게 흘러나오는 조조의 신음소리를 듣고는 멋쩍은 헛기침과 함께 멀리 물러섰다.

“어머, 대담하셔라…!”

“제발 셋째는 도련님을 닮기를!”

뜨겁게 운우지락을 나누는 침소를 바라보던 시녀들의 눈에는 기대와 걱정이 공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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