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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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의 연회는 감미로운 풍악소리와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조정에 입궐한 관료들이 술잔을 기울이면서 떠들썩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기로 작정했는지 대취한 자들이 여럿 보였다.
서량을 정벌했다.
머지않아 하북도 정벌될 터.
수년 이내로 난세가 평정되리라.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희망이 마침내 눈앞으로 다가왔음에 관료들은 기쁨의 환열을 표현했다.
“과연 대장군은 대단하오…!”
“관중과 관서가 드디어 평화를 되찾았소이다.”
반역의 중심지였던 서량이 드디어 진압되었다.
서량은 반역의 땅이다.
수많은 역적들이 거병했던 지역이 아닌가.
난세의 풍파를 겪었던 조정대신들은 서량을 강압적으로 통치하기를 원했다. 동탁과 마등 같은 무리들이 재차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무엇이 걱정이십니까. 우리 한나라에는 천하의 명장인 대장군이 있습니다! 대장군의 위세에 눌린 역적들은 감히 반역을 꾀하지 못할 겁니다!”
서량에서 거병했던 동탁과 마등은 결국 이성휘에게 최후를 맞이했다. 누가 감히 반역을 꾀하겠는가?
이성휘의 무도를 숭상하는 젊은 관료들이 낙관적인 발언을 꺼냈다.
맹신.
혹은 광신에 가까웠다.
중원을 제패했던 천하제일검의 무업은 젊은 관료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열렬한 지지와 성원을 통해 대장군 이성휘를 향한 믿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장군께서 몸소 출진하시어 저왕을 참하셨소!”
스스로를 저왕이라 치켜세우며 변방의 부족들을 규합했던 양천만이 이성휘의 손에 참살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양천만의 휘하였던 부건, 부쌍 형제까지 죽였다.
전장에서 싸웠던 대장군부의 장수들이 한껏 격앙된 목소리로 이성휘의 군공을 찬양했다.
대장군은 천하를 대표하는 명장이다.
귀신처럼 완벽한 이성휘의 검술을 수차례 경험했던 팔건장은 그리 확신하고 있었다.
“과연 장수들의 충성심이 대단하군요.”
주황빛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연회를 주도하는 장수들을 바라보았다.
절대적인 신뢰.
절대적인 충성심.
여포와 장료를 위시한 팔건장은 이성휘를 절대적으로 추앙하고 있었다. 뒤이어 합류한 장졸들도 마찬가지였다.
흐음….
군사좨주 곽가가 우려를 담은 침음을 흘렸다.
“근심할 것 없다, 봉효.”
총애하는 참모와 함께 떠들썩한 연회장을 바라보던 흑발의 여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괜한 기우에 불과하다.
한낱 노파심에 지나지 않은 걱정이다.
조조는 숙청을 수차례 반복했을 정도로 의심이 많은 여인이었지만 남편만큼은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그 빌어먹을 무분별한 바람기를 제외하고는.
“한데 성휘가 보이지 않는군.”
상석에 앉은 조조가 물었다.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연회장에 성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다른 계집과 작당하고 있는 건 아닐 테지.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은 맹렬하게 달아오른 눈빛을 보내면서 남편의 위치를 물었다.
“상서낭중과 함께 바깥으로 나가셨습니다.”
전각을 나서는 이성휘와 허유의 뒷모습을 목격했던 궁녀가 조조에게 고했다.
혹여나 불호령이 떨어질까 궁녀는 노심초사하며 조조의 눈치를 살폈다.
성격 더럽기로 유명한 승상이다.
심기가 뒤틀리면 화풀이를 할 게 분명했다.
“그런가. 알겠다.”
하지만 조조는 태연하기만 했다.
손짓을 보내면서 온몸을 떨며 전전긍긍하던 궁녀를 물렸다.
“대장군께서 상서낭중을요?”
“뻔한 수작질에 대충 장단을 맞춰줄 생각이겠지.”
원소의 심복이었던 허유는 하북을 궤멸시킬 꾀주머니가 되어줄 터였다.
그것을 이성휘가 간과할 리 없었다.
정벌에 투입될 장졸들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라도 허유를 동원하겠지. 원소군의 군사기밀을 훤히 꿰뚫고 있는 아첨꾼은 여러모로 도움이 될 테니까.
흥….
코웃음을 치며 턱을 괴었다.
이유를 이해하면서도 경애하는 남편이 더러운 모사꾼의 비위나 맞춰주고 있는 것이 못마땅한 듯했다.
“그래도 바람을 피우는 것보단 낫겠지.”
“…네.”
“이번에야말로 진짜 요절을 냈을 테니까.”
“…….”
진심이다.
진심으로 하신 말씀이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성휘가 들어오거든 곧바로 데려오라.”
“예, 주군.”
하명을 받은 곽가가 뒤로 물러났다.
* * *
탐스러운 상아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관자놀이를 짓누르면서 중얼거렸다.
“…그래서 시녀로 들였다고요?”
“네엡.”
상서대의 집무실로 장소를 옮긴 순욱은 조카로부터 내막을 듣고는 미간을 찡그렸다.
새 시녀….
통탄을 금치 못할 소식이다.
주군께서 내막을 알게 된다면 광풍이 몰아칠 터.
어떻게든 대비해야 한다.
순욱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알리는 경종이 뇌리에서 계속 울리고 있음을 직감했다.
“…어째서 매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가요.”
평안할 때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
항상 위기는 언제나 평온에 안도하고 있을 때를 호시탐탐 노리는 법이었기 때문이다.
작금의 경우 또한 그러했다.
승전을 거둔 참모들을 축하하고자 연회장에 도착한 순욱은 골치 아픈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머리가 박살나는 한이 있어도 새로 영입한 시녀가 서량의 금마초가 라는 사실만큼은 숨겨야 돼…!’
무릎을 꿇은 자세로 고모님에게 내막을 이실직고한 순유가 중얼거렸다.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주군을 향한 절개를 지키기로 각오했다.
비록 시녀를 들였다는 사실을 고변했지만 들켜서는 안 될 극비만큼은 지키겠다며 얼굴을 굳혔다.
“후우…. 알겠습니다.”
순욱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결국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또 조카님이 대장군을 부추긴 건 아닐 테죠?”
상아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면서 물었다.
그에 순유가 놀라 두 팔을 올렸다.
“제, 제가 언제 그랬다고요…!”
지금까지 범한 전과들이 진범임을 증명해주고 있었지만 순유는 애써 발뺌하면서 진실을 외면했다.
“일단 숨기는 게 좋겠네요.”
대장군은 영천순씨 가문의 은인이다.
순욱과 순유는 이성휘를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묵인하기로 했다.
주군에 대한 불충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고모님께서요?”
앞뒤가 꽉꽉 막힌 벽창호 같은 고모님이 불충을 감수하면서까지 가담하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기에 순유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고모님을 바라보았다.
“…대장군이니까요.”
귀빈으로 대우해준 원소군과 결별하고 조조군을 따르기로 하여 연주에 도착했을 때 환대해준 사람이 바로 이성휘였다.
한낱 떠돌이에 불과했던 세객을 공손하게 맞이해주었다. 또한 재능을 알아보고서 단번에 부군사에 추천해주었다.
그는 은인이다.
은인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모의에 가담했던 것이 발각되어 동탁군에게 노려졌던 조카까지도 도와주지 않았던가.
순욱. 순유.
영천순씨 가문을 대표하는 군사들은 모두 이성휘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아왔다.
‘만약 대장군의 도움이 없었다면… 분명 지금의 영천순씨 가문은 존재하지 않았겠죠.’
눈가를 바르르 떨면서 과거를 회상했다.
기쁘면서 행복한,
햇살처럼 따사로운 기억이 떠올랐다.
부드럽고 도톰한 입술에 미소가 새겨졌다.
“헤헤. 역시 고모님도 마음이 있으신 거죠?”
“그럴 리 없잖습니까!”
“딱 봐도 견적이 나오는데요.”
“…머리를 딱 맞고 싶으신가요.”
실실 웃으면서 시근덕대는 조카의 능글맞은 모습에 순욱이 인상을 찡그리면서 회초리를 들었다.
“머지않아 공자를 가르치는 선생이 될 테니까요.”
“공자를요?”
순욱은 조조에게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었다.
지혜롭고 현명한 명사였던 순욱을 일찍부터 아들의 스승으로 내정한 것은 매우 당연했다.
글공부를 가르치게 되었다.
그 말에 순유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짜 엄청난 거 아니에요? 분명 승상은 아들을 끔찍이도 아끼는 분으로 유명한데….”
“과분할 따름입니다.”
후계자의 스승으로 임명했다는 것은 그만큼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반증이었다.
그리고 패국조씨 가문의 후계자를 보좌하는 재상으로 밀어주겠다는 결정과도 같았다.
“저는 태보에 임명되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네? 어째서요?”
태보(太保).
황제의 교육을 담당하는 삼사(三師)의 벼슬이다.
어째서 태사(太師), 태부(太傅)도 아닌 태보에 임명되고 싶다는 말을 한 것일까.
불길한 마음이 앞섰다.
그에 순욱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태보는 체육(體育)을 담당하잖아요.”
“……?”
“공자님의 올바른 성교육을 위해서 제가 나서야 하지 않겠어요, 푸헤헤. 낭독회라도 열어야지~”
“…….”
파앙-!
말이 끝나자마자 회초리를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찰싹찰싹 소리가 울렸다.
“제가 나이가 몇인데 엉덩이를… 꺄아앙!!”
후계자의 스승이 되었지만 사랑의 회초리는 여전히 순유가 독차지했다.
개과천선을 목적으로 하는 회초리가 탱탱한 엉덩잇살에 작렬했다. 찰싹찰싹 소리가 들릴 때마다 엉덩이가 출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