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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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맹렬하게 몰아치는 한파 속에서 그리웠던 사람과 다시 만났다.
가장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역만리에서 돌아온 사내를 환한 미소로 맞이하고 싶었으니까.
우울하게 눈물을 흘릴 순 없다.
상냥하고 다정한 그대가 걱정할 것 같았기에.
하지만 어째서일까.
좌우에 제장들을 대동하고서 돌아온 사내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주륵주륵 흘렀다.
그리움을 머금은 응어리들이 보드라운 뺨을 타고서 재회의 기쁨을 자아냈다.
“다행이다, 그대가 무사히 돌아와서….”
환희.
고마움.
슬픔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수많은 감정들이 맞물리면서 눈물이 되었다.
무사히 돌아온 오라버니의 모습에 마음이 팽창하듯 부풀었다.
“폐, 폐하….”
사내가 당혹어린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달래야 하지.
양손을 버둥대면서 난항을 겪었다.
오라버니가 허둥지둥하는 모습에 소녀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흑! 흐윽…! 그대가 너무… 보고 싶었다.”
뺨에 보조개를 그리면서 진심을 전했다.
보고 싶었다.
너무 보고 싶었다.
진심이 가득 담긴 고백으로 재회를 장식했다.
“심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성휘가 가슴에 손을 올리면서 예를 취했다.
그에 유협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렇게 늦었는가? 너무 늦었네.”
“죄송합니다….”
황송스러운 환대를 받은 이성휘는 쑥스러움이 많은 소녀와 궐문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개선식에 참석한 고관대작들은 마치 친남매처럼 돈독한 유협과 이성휘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옛날부터 자주 돈독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폐하께서 눈물을 보이시다니.”
“옛날부터 매우 돈독한 사이였다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이성휘를 뒤따르던 제장들은 금발을 늘어뜨린 소녀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당혹감을 표시했다.
오빠와 여동생,
친남매처럼 보일 정도로 우애가 깊었다.
그런데 정말로 우애(友愛)일까?
경국지색의 미녀들을 처첩으로 들인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는 이성휘였기에 의심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었다.
서량의 금마초마저 시녀로 들였기에 제장들은 유협과 이성휘의 뒷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자네 보았는가?”
“영민한 폐하께서 눈물을 보이셨네.”
“애절한 모습에 하마터면 나도 눈물을 흘릴 뻔하지 않았나.”
한나라의 황제와 대장군의 존안을 목도하고자 성문 광장에 몰린 백성들이 크게 술렁였다.
폐하께서 눈물을 보이셨다.
눈물을 흘리며 대장군을 환대했다.
그 소식이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영민하고 준엄한 면모만을 보였던 소녀가 또래처럼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아직 어린아이다.
여전히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소녀였다.
수많은 백성들이 동정과 연민을 보냈다.
무능한 황실을 비판해온 사대부와 호족들조차도 유협에게만큼은 호의를 보내고 있었기에 함께 슬퍼하였다.
“늦어서 송구합니다.”
“그대에게 사정이 있었잖은가. 괜찮다네.”
“…안 괜찮으신 것 같습니다.”
“흥, 괜찮다니까!”
유협이 어린아이처럼 토라진 모습을 보였다.
오직 오라버니들뿐이다.
유변과 이성휘에게만 또래 아이들처럼 귀여운 억지와 투정을 부렸다.
불만에 찬 뺨이 부욱 부풀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툭 건드려보고 싶다.
퉁명스런 표정을 짓는 것도 귀여웠다.
“도탄과 곤궁에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장안성에 남았던 것이 아닌가. 본디 짐이 했어야 할 일을… 그대가 대신 해주었네. 당연히 황제로서 그대에게 감사를 표해야 마땅해.”
구휼을 베풀어 굶주림에 허덕이던 백성들을 구제하지 않았다면 모두 아사했을 것이었다.
훌륭한 결단을 내려주었다.
이성휘의 선정은 상찬을 내려야 마땅했다.
그럼에도 잠시 투덜대면서 어리광을 부렸다.
오랜만에 재회한 오라버니에게 응석을 부리고 싶었으니까.
“읏-.”
유협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쿠욱.
이성휘가 뺨을 찔렀기 때문이었다.
“우으읏! 대체 뭔가!”
“뺨의 바람을 빼드렸습니다.”
“짐은 황제다! 어린아이가 아니다!”
“예, 물론 그렇습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소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올랐다.
어린아이 취급을 당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싫지 않았다.
황제를 허물없이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천하에 몇이나 될까.
여동생처럼 대하는 이성휘의 모습에 유협은 따스한 온기를 느꼈다. 매번 정쟁이 몰아쳤던 차가운 궁중에서는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상냥함이었다.
“그대는 짐에게 있어… 경애하는 오라버니다.”
작게 중얼거리듯이 속마음을 전했다.
드디어 마음을 드러냈다.
유협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붉어져 있었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선황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그, 그대도 짐의 오라버니다!”
항상 지켜주었다.
매번 도와주었다.
눈물을 흘릴 때마다 서툰 손길로나마 닦아주었다.
유협에게 있어 이성휘는 단순한 신하가 아니었다.
경애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언제나 나를 지켜준 사람.
목숨보다 소중한 또 한 명의 오라버니였다.
“자칫 불경스러울 수도 있는 말입니다만… 저를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하게 진심을 전달한 소녀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오라버니.
소녀의 고백에 마음이 고양되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초롱초롱한 눈길을 보내면서 뒤를 졸래졸래 쫓아왔던 유협을 여동생이라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기뻤다.
오라버니, 라고 불러줘서.
“저기 궐문에서 승상이 기다리고 있네.”
나란히 걷던 발걸음을 세웠다.
궐문에 도착했다.
유협은 쓴웃음을 흘리면서 우두커니 섰다.
내게 허락된 거리는 여기까지일 테니까.
궐문에서 남편과의 재회를 기다리는 흑발의 여인을 목격한 유협은 신경전을 벌이듯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그럼 폐하께서는….”
“짐은 나중에 뒤따르겠다. 학수고대했을 재회에 눈치 없이 끼어들 정도로 짐은 눈치가 없지 않다.”
밉다.
저 여자가 밉다.
이가 빠득 갈릴 정도로 미웠다.
하지만 진심으로 이성휘를 연모하고 있었기에 기뻐하기를 바라면서 자리를 양보했다.
교활하고 잔인한 독부를 미워하는 마음보다도 경애하는 오라버니를 향한 연모가 더욱 짙었기에.
‘그대도… 나보다는 저 여자를 더 좋아할 테니까.’
인정하기 싫었다.
하지만 인정해야 했다.
저 독부는 오라버니의 아내였으니까.
오라버니는 저 독부의 남편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분한 마음을 삭이면서 오라버니를 천하에서 가장 미워하는 여인에게 보내주었다.
* * *
성휘에게 있어 너는 어린애에 불과하다.
아무리 용을 쓴들,
결국 성휘의 마음을 얻진 못할 터.
그렇기에 잠시 양보했다.
작은 계집아이의 치기어린 감정에 불과할 테니까.
“성휘!”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파안대소를 흘리면서 남편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두 팔을 뻗었다.
육탄공세를 벌이듯이 힘껏 남편을 껴안았다.
얼마나 이 품이 그리웠던가….
차마 꿈에서조차 잊지 못했을 정도였다.
사랑하는 남편을 끌어안은 조조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행복을 만끽했다. 재회의 기쁨은 철혈의 여인조차도 흔들리게 만들 정도로 감정을 북받치게 만들었다.
“성휘…! 성휘…!”
“아만.”
고개를 숙여 사랑하는 아내에게 속삭였다.
다녀왔어.
감정을 담아 그녀의 아명을 불렀다.
소중하게 담아낸 감정이 무사히 전달되었는지 조조는 어깨를 바르르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리…! 왜 이리 늦었는가…! 얼마나 그대가 보고 싶었는데…!”
“송구합니다.”
조조가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여인의 얼굴이 보였다.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는지,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후환을 남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한수군과 관중제장 세력을 완파한 조조군은 북방으로 패주하던 이민족들을 집요하게 추격하여 몰살시켰다.
저족. 강족. 흉노족.
이들은 두고두고 후환이 될 터.
결코 아이들에게 위험을 떠맡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성휘는 이민족들의 침공에 대비할 시간을 마련하고자 기세등등하던 북방과 서역의 기세를 꺾어버린 것이다.
“알고 있네. 성휘의 마음을 어찌 모를까….”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미안했다.
부담을 짊어지게 만들었다.
홀로 중압감을 떠맡게 만들었다.
열사의 기후와 모래폭풍을 견뎌내느라 크게 초췌해진 남편의 모습에 조조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미안해, 매번 고생하게 만들어서.”
“아만을 연모하게 됐을 때부터 각오한 일입니다.”
“…정말 오래 전부터 다짐을 했었군.”
“어찌 다짐하지 않았겠습니까.”
한없이 귀엽고 한없이 사랑스러운 여인.
여인을 부드럽게 껴안았다.
마치 작은 다람쥐처럼 품에 쏙 들어왔다.
이역만리에서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조조가 남편을 그리워했던 것처럼 이성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워하지 않았던 날이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아내와 다시 만나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난 성휘의 진심을 알면서도… 번번이 의심했네.”
“이해합니다.”
“혹시 다른 여자를 데려오진 않을까, 만약 다른 여자를 데려오면 이번에야말로 진짜 이혼하려 했다네.”
“…….”
이혼.
그 말에 두 눈을 부릅떴다.
경각심이 밀려들었다.
다복하던 가정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전장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두려움이다.
양천만을 죽였을 때도.
부건, 부쌍 형제를 참살했을 때도.
그 어떤 위기의 순간에서도 느끼지 못한 공포가 폐부를 옥죄듯이 밀어닥쳤다.
“지금까지 성휘가 아무리 짐승새끼였어도… 처자식을 두고 바람을 피울 정도의 개새끼는 아니었는데 말일세.”
“…….”
사실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일부러 심중을 떠보려는 유도심문처럼 느껴졌다.
불안감에 숨이 막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매우 결백했다.
새로운 첩실을 들이지 않았다.
새로운 여인을 품에 안은 적도 없었다.
대체 무엇이 불안하단 말인가?
이번에야말로 떳떳하게 처자식을 대할 수 있었다.
“결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호언장담하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