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8화>
===========================
장안성의 전령이 허도에 도달했다.
서량 정벌군이 움직였다.
대장군 이성휘가 병마들과 귀환길에 올랐다.
정벌을 완수하고서 장안성에 주둔했던 이성휘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허도가 크게 들썩였다.
열사의 사막과 사나운 모래폭풍을 이겨내고서 마침내 완승을 거둬냈다. 황실과 조정에 적의를 드러냈던 반란군과 한나라를 침략한 오랑캐들까지 모두 무찌른 이성휘는 구국의 영웅으로 등극했다.
“서량에서 반란을 주도했던 역적들이 모두 목 없는 귀신이 되었다는군!”
“놈들의 수급을 당장 성문에 매달아야 하네!”
마등. 한수.
황실과 조정에 반기를 들었던 서량의 우두머리들이 참살되었다.
후선. 정은. 이감. 장횡.
양흥. 성의. 마완. 양추.
천인공노할 학살을 자행했던 관서의 군벌들도 모두 효수되어 인과응보의 끝을 맞이했다.
양천만. 유표.
서량의 반란군에 합세하여 한나라를 침략했던 저족의 왕과 흉노의 좌현왕을 불귀의 객으로 만들었다.
머지않아 난세가 끝날 것이다.
기적적인 승전보에 백성들은 희망을 얻게 되었다.
난세를 조장하여 혼란을 부추겼던 군벌들을 진멸한 대장군 이성휘가 갈기갈기 찢겨나간 한나라를 통일하리라는 기대와 염원이 확산되었다.
“언니! 이제 정말로… 대장군이 돌아오는 거죠?!”
흑발을 늘어뜨린 여장부가 환열에 달아오른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위장군(衛將軍) 조홍.
그녀는 소식을 듣자마자 승상부로 달려왔다.
드디어 서방님께서 돌아오신다.
수개월간 귀환을 미루면서 애간장을 졸이게 만들었던 이성휘가 돌아오고 있다. 마침내 정벌군을 이끌고 돌아온다는 소식에 새하얀 뺨을 붉히면서 기뻐했다.
“전령을 보냈으니 확실하겠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기뻐하는 사촌동생의 모습에 조조가 옅은 웃음을 흘렸다.
기뻤다.
급보를 받자마자 방방 뛰었을 정도로.
어찌 기쁘지 않을까.
이역만리로 떠난 남편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체통을 지키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기뻐했다.
“매번 성휘는 나를 경악하게 만드는군. 관중제장에 이어 변방의 오랑캐들까지 정벌하다니….”
이역만리의 승전보가 계속해서 황실과 조정에 날아들었다.
적을 토벌했다.
반란군을 일소했다.
만리장성을 넘은 오랑캐들을 진멸했다.
호쾌한 연전연승으로 광활한 영토들을 모두 정벌한 이성휘의 활약이 한나라 13주를 뒤덮었다.
‘역시 이 조맹덕의 남편이다! 내가 고른 남편답군!’
흥흥.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천하제일검이 바로 내 남편이다!
당장이라도 바깥으로 뛰쳐나가 가공할 위업을 달성한 효웅이 내 남편이라며 자랑하고 싶었다.
‘문제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지만….’
힐끗-.
사촌동생을 곁눈질하면서 중얼거렸다.
결국 관계를 인정했음에도 여전히 불편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까지의 전례들을 통해 남편이 천하의 바람둥이임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음에도 좋아하는데.
단단히도 콩깍지가 씌었다.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자포자기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언니.”
뒤이어 표기장군(驃騎將軍) 조인이 들어섰다.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함일까.
아니,
조인이 그럴 리 없었다.
조인은 천진난만한 사촌과는 달리 공사를 철저하게 구분하는 성격이었으니까.
“예주의 병력이 당도했습니다. 사예주와 서주의 병력도 허도로 올라오고 있는 중입니다.”
하북 정벌의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하북(河北).
원소군을 도모할 때가 왔다.
표기장군 조인은 각지에 전령들을 파견하여 총동원령을 하달했다.
모든 병력과 물자들을 동원하여 원소군을 멸망시키겠다는 조조의 결단이 중원 전역에 내려졌다.
총동원령을 받든 장수들이 앞다투어 허도에 집결하기 시작했다. 여러 갈래로 나뉜 물줄기들이 한꺼번에 바다로 모여드는 것처럼 거대한 물결이 이어졌다.
“하여간 여전히 무뚝뚝하긴. 이제 서방님께서 돌아온다잖아. 조금은 기뻐하는 게 어때?”
“먼저 책무를 우선시할 뿐이다.”
감정을 억누르면서 무표정을 고수하는 사촌의 모습이 무척 답답하게 느껴졌다.
조홍이 핀잔을 늘어놓았다.
그에 조인은 엄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재회를 기뻐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뤄도 된다.
조인은 하달받은 명령을 완수하는 것에 전심을 다하고 있었다.
천하이강의 숙적인 원소군을 멸망시키고 하북을 정벌하고자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대업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장졸들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결코 나태한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자효.”
“예, 언니.”
“지금만큼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기뻐해도 된다.”
“…….”
경애하는 언니의 자애로운 허락에 조인은 부끄러움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으으읏….
부끄러움에 젖은 침음을 흘렸다.
고개를 푹 숙이면서 아름다운 얼굴을 붉혔다.
조조와 조홍에게 본심을 들켜버린 조인은 첫날밤을 앞둔 새신부처럼 수줍어하듯 입술을 우물거렸다.
“기, 기쁩니다….”
작은 목소리로 본심을 중얼거렸다.
‘자렴은 너무 경박하고 자효는 너무 진중하군.’
조조는 성격이 정반대인 사촌들을 곁눈질로 훑으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반쯤 섞으면 편할 텐데.
유별스러울 정도로 타고난 천성이 뚜렷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매력적이었다.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아름다웠다.
‘분명 성휘도 그렇게 생각했을 테지.’
자조어린 쓴웃음을 흘렸다.
체념.
혹은 단념.
남편의 첩실로 들어온 사촌들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역만리를 정벌한 영웅의 귀환이다. 개선식을 빈틈없이 준비해라.”
“네!”
사촌언니가 명령했다.
그에 조홍과 조인은 당찬 목소리로 받들었다.
* * *
돌아온다.
드디어 서량에서 돌아온다.
금발을 늘어뜨린 아름다운 소녀는 두근거리는 박동을 느끼면서 양손을 쥐었다.
‘지금까지 매번 도움만 받았어….’
매번 걸림돌이었다.
항상 도움을 바라면서 부담을 짊어지게 했다.
그것이 소녀의 마음을 너무도 아프게 만들었다.
비운과 불행으로 점철된 우여곡절을 겪었던 소녀는 ‘오라버니’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오빠…. 오라버니….’
그렇게 부를 날이 올까.
부디 허락된다면.
그대를 오라버니라고 부르고 싶다.
나를 구해주었던 그대에게.
내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나서주었던 그대에게.
겁에 질려 울기만 했던 나를 지키고자 검을 들었던 그대를 오라버니라 부르면서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폐하. 폐하-.”
환관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불렀다.
이윽고 소녀는 무거운 상념에서 벗어났다.
“무슨 일인가?”
“폐하, 대장군이 영천군에 당도했사옵니다.”
영천군(穎川郡).
이제 곧 이성휘가 허도에 도착할 터였다.
드디어 만날 수 있다.
금발을 늘어뜨린 소녀는 기대감에 달아오른 표정을 지으면서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폐하, 찬바람이 매섭습니다.”
“옥체가 우려되옵니다. 잠시 안에 계시옵소서.”
싸늘한 찬바람이 강세를 떨치고 있었음에도 유협은 문무백관들을 이끌고 이성휘를 맞이하려 했다.
황제가 직접 환대에 나섰다.
성문에 집결한 황제와 문무백관의 모습에 백성들이 크게 술렁였다.
만승천자께서 성문까지 나오셨다.
고귀한 혈통을 물려받은 아름다운 소녀를 먼발치에서나마 목도하고자 수많은 백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장졸들은 철통처럼 경계하라!”
“거동이 수상한 괴한을 발견하면 반드시 막아라.”
황제와 문무백관의 안전을 우려하여 궁궐의 친위부대인 중호군(中護軍)과 중령군(中領軍)이 투입되었다.
허리에 검을 찬 무관들이 앞을 막아서자 금세 대홍수를 이루었던 인파들이 점점 잠잠해졌다.
“폐하를 시해하려는 무리들이 군중에 숨어있을지도 모릅니다. 더욱 철저히 경계하세요.”
“알겠습니다, 상서령 어르신.”
조조는 이성휘의 환대를 자청한 유협에게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상서령 순욱을 보내어 어린 황제를 보필하게 했다.
거대한 결전을 앞두고 있다.
만약에라도 황제의 신변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다면 큰 차질을 빚게 될 터였다.
그렇기에 조조는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중호군과 중령군을 소집하여 전시처럼 허도를 통제했다.
“모두 전열을 갖춰라!”
“북을 울려라. 대장군의 귀환이다!”
찬바람에 몸을 떨면서 기다림을 이어나갔을 때,
무관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다급한 표정을 지으면서 병사들을 재촉했다.
드디어 천하제일검이 허도에 당도한 것이리라.
열사의 사막을 정벌했던 대장군이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황제를 따라 개선식에 참석한 관료들이 환열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성문 너머를 응시했다.
둥! 둥! 둥! 둥! 둥!
요란한 고각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 이후,
갑주를 걸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란을 진압하고 외적들을 격퇴한 한나라의 대장군이 제장들을 거느리고서 위풍당당하게 입성했다.
“아아….”
투명한 눈동자가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품었다.
눈물을 글썽였다.
소녀의 두 눈에 비련이 넘쳐흘렀다.
찬바람을 묵묵히 견디면서 재회를 기다렸던 소녀는 마침내 그리웠던 사내와 마주하게 되었다.
또 한 명의 오라버니.
소녀에게 있어 사내는 또 한 명의 오라버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