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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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방은 팔불출임을 자랑하듯 제갈현을 자주 초대하여 딸을 자랑했다.
-어릴 적부터 신동으로 유명했다.
-조금 유난스럽지만 심성은 정말 착한 아이다.
-심중이 깊고 배려심이 많은 아이다. 분명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딸을 치켜세우는 사마방의 모습에서 필사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인자한 미소에 숨은 조급함.
바르르 떨리는 눈길에서 초조한 감정이 엿보였다.
그토록 딸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걸까….
청렴한 성정으로 명망을 떨쳤던 사마방은 처음으로 타인에게 알랑방귀를 늘어놓았다.
“하하, 어찌 제가 모르겠습니까. 저 또한 원만한 교우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제갈현은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면서 대답했다.
량아가 잘하고 있을까.
벌벌 떨리는 손아귀로 찻잔을 붙잡았다.
촌철살인의 독설로 동년배들을 펑펑 울렸던 조카딸의 모습을 떠올린 제갈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조카딸의 명성은 익히 들었네. 과거에서 장원으로 급제를 했다던데.”
“우, 운이 좋을 뿐입니다….”
“아닐세. 어찌 천운만으로 중원 전역에서 구름처럼 몰려든 인재들을 제칠 수 있었겠나.”
제갈현의 겸손한 대답에 사마방이 인자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과연 와룡이라 불릴 만하네.”
상서성(尙書省)의 와룡(臥龍).
과연 딸의 단짝이 되기에 충분한 재녀였다.
우수하고 총명한 벗이 생겼다.
허도를 술렁이게 만들었던 재녀를 벗으로 두었다는 사실에 사마방은 어깨를 으쓱이며 기뻐했다.
‘허울에 불과한 100명의 친구보다는 마음을 진솔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진정한 벗이 더욱 값진 법이지.’
벗.
이 얼마나 좋은 말인가.
부디 좌풍익의 조카딸과 좋은 친구가 되기를.
진심을 담아 염원했다.
“부디 내 딸을 잘 부탁하겠네!”
시집이라도 보내십니까,
필사적인 사마방의 모습을 관료들이 본다면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저을 터였다.
“아뇨, 저야말로… 조카딸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갈현도 이에 질세라 허리를 넙죽 숙였다.
사마씨 가문. 제갈씨 가문.
양가가 상견례를 치르는 현장이었다.
* * *
사마방과 제갈현의 간절한 염원을 매몰차게 외면하듯이 사마의와 제갈량은 매번 앙숙임을 자랑했다.
“이 밥통!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 거야!”
캬아악-!
고양이가 날카롭게 하악질을 했다.
“까, 까먹었음….”
히에엑….
그에 강아지는 놀라 움츠렸다.
“…….”
과연 대장군부가 화목해질 날이 올까.
사마의와 제갈량의 떠들썩한 모습을 주시하던 이성휘가 중얼거렸다.
“힘이 넘쳐서 좋네요.”
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미녀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이성휘에게 말했다.
그에 이성휘는 침음을 삼켰다.
떠들썩해서 좋다.
하지만 화목과는 거리가 멀었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2세대 군사들을 모두 모으자 파국이 도래했다.
“철군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요. 아마 내일쯤이면 선봉군이 먼저 출발할 수 있을 거예요.”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에 분기탱천한 장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철군을 준비했다.
선봉군이 준비를 얼추 끝냈다.
내일이면 곧바로 강행군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여포와 장료가 선봉군을 이끌었다.
대부분 기병들로 구성된 부대였기에 전속력으로 달린다면 열흘 안에는 허도에 도달할 터였다.
“공명.”
“네, 대장군.”
사마의의 말랑말랑한 뺨을 찰떡처럼 당기던 제갈량이 고개를 돌려 부름에 대답했다.
“내일 관료들이 모두 임지로 향한다고 들었다.”
“…예.”
내일이면 숙부와 생이별을 하게 된다.
장안성의 동쪽에 위치한 좌풍익은 사예주에 소속된 군현이었지만 허도와 거리가 제법 멀었다.
어쩌면 수개월.
혹은 1년 넘게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성휘는 제갈량이 숙부와 마지막 회포를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일찍 사별한 부모를 대신하여 보살펴주었던 숙부를 떠나보내는 일이다.
어찌 슬프지 않을까.
게다가 제갈량은 아직 어린아이였다.
명석하고 뛰어난 학식과 지모를 자랑했지만 여전히 보호자의 보살핌이 필요했다.
조조에게 서한을 보내어 제갈현을 추천했던 이성휘는 자신이 제갈현과 제갈량을 이별시킨 것 같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힘내삼. 본좌의 아버지도 장안성에 남음.”
툭툭.
사마의가 제갈량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흥…. 위로는 됐거든요.”
“히에엑.”
“그래도 뭐, 고마워요.”
“제갈씨는 부끄러움이 참 많음.”
은발을 늘어뜨린 소녀가 피식 웃었다.
위로를 받아 기뻤는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동료애가 넘치는 훈훈한 광경을 사마방과 제갈현이 보았다면 기쁨의 눈물을 주륵주륵 흘렸으리라.
“중달, 너는?”
“본좌는 아버지와 이별해도 괜찮음.”
이성휘의 물음에 사마의는 평온한 표정을 지으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불속성 효녀.
뜨거운 효심이 가득 넘쳐흘렀다.
유교의 가르침과 정반대인 새로운 유형의 효심이었다.
“오늘은 이별을 겪을 사람이 참 많군.”
사마의와 제갈량을 일찍 퇴근시킨 이성휘가 무겁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역만리를 원정했던 장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에 들뜬 상태였다.
하지만 어린 참모들은 이별을 앞두고 있었다.
이별은 항상 슬픈 법이다.
헤어져야 하는 상대가 친밀한 사람일수록 감당해야 하는 슬픔이 더욱 깊어졌다.
그렇기에 이성휘는 어린 참모들에게 이별의 슬픔을 받아들일 시간을 주었다.
* * *
마대와 방덕을 포함한 마등군의 잔당들은 양주자사(凉州刺史) 서막의 휘하로 편입되었다.
전투에서 완승을 거뒀음에도 여전히 변방에는 강족과 저족이 강세를 점하고 있었기에 서막은 마대와 방덕을 부장으로 삼아 양주를 수비하고자 했다.
내일 양주자사 서막과 함께 떠나게 된다.
장졸들과 출진을 준비하던 마대와 방덕은 대장군부에서 도착한 반가운 손님을 맞이했다.
“누님!”
“아가씨…!”
마대가 놀라 소리쳤다.
방덕은 눈물을 머금으면서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살아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멀쩡히 살아있는 모습을 보자 감정이 푹 치밀었다.
꾸욱-.
보랏빛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양손을 뻗으면서 아가씨를 껴안았다.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을까.
그 고통을 함께 나누지 못해 원통할 따름이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난 괜찮아.”
이름을 버리는 조건으로 제2의 인생을 얻었다.
마초는 죽었다.
서량의 금마초는 전장에서 전사했다.
출병을 준비하는 군중으로 찾아온 여인은 대장군의 시녀일 뿐이었다.
아직 정식으로 시녀가 된 것은 아니지만 마초는 여포와 장료를 따라 대장군의 시녀가 되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혹시 저들에게 몹쓸 짓이라도…!”
“그런 건 없었어.”
마대가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그에 마초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입을 열었다.
몹쓸 짓은 무슨.
대장군과 음란한 행위를 이어나가던 시녀들의 모습을 보긴 했지만.
“그런데 왜… 대장군을 섬기기로 하신 겁니까.”
한적한 산야에서 살아갈 기회를 주었음에도 마초는 결국 대장군을 섬기는 길을 선택했다.
어째서,
어째서 그러신 겁니까….
이별을 선택한 아가씨가 야속하기만 했다.
분명 가시밭길이 될 터.
많은 어려움들을 감당해야 할 것이었다.
“그 사람이 우리들을 살려줬으니까.”
마초가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겸연쩍은 듯 뺨을 긁었다.
새하얀 달처럼 아름다운 뺨에 홍조가 어렸다.
“은혜를 입었으면… 당연히 갚아야지 않겠어? 그게 도리라고 생각해.”
복수에 성공할 수 있었다.
부하들을 모두 구해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은혜를 갚고 싶었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여 고통과 죄악감에서 벗어나겠다는 이기적인 자포자기를 품었을 때, 격앙된 목소리로 나를 꾸짖어준 그 사람을 따르고 싶어졌다.
과연 보은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생긴 걸까.
그것은 당사자도 알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누님.”
마대가 고개를 푹 숙이면서 중얼거렸다.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었던 누님과의 이별에 감정이 넘쳐흘렀다.
“아가씨…!”
마초는 죽었다.
서량의 배신자들과 함께 전사했다.
그 사실이 애처로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부디, 부디…! 건강하셔야 합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부디 무탈하셔야 합니다….”
울음기에 찬 목소리를 쏟아냈다.
이윽고 울음기에 젖었던 목소리는 구슬픈 대성통곡으로 이어졌다.
무사하기를.
부다 무사하기를.
단 하나의 염원만을 계속 되뇌었다.
* * *
장안성에서 재정비를 끝낸 조조군이 마침내 허도로 귀환하게 되었다.
허도로 돌아간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역만리에서 수많은 전공을 세운 장졸들은 중엄한 발걸음을 내딛으면서 동쪽으로 향했다.
“드디어 돌아간다!”
“하하…! 이번에도 살아남다니.”
병장기를 치켜든 장졸들이 전열을 갖추면서 이동하는 광경은 한쪽으로 흐르는 물결을 연상시켰다.
철컥. 철컥. 철컥.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금속음이 울렸다.
예리한 병장기로 무장한 병사들은 중원을 제패했던 강병임을 증명하듯 위압감이 넘쳤다.
‘드디어 돌아간다.’
서량 정벌을 완수하고 귀환길에 올랐다.
천하제일검이 허도로 귀환한다는 사실이 널리 확산되자 천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원소군. 유표군. 유언군. 손견군.
급보를 받은 세력들이 위압에 짓눌렸다.
수많은 명사들이 실패하리라 예견했던 서량 정벌을 훌륭하게 완수한 이성휘는 천하를 뒤흔드는 효웅으로 등극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