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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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유아독존을 실현하듯 오만한 성정을 자랑하는 제갈량은 대인관계에 매우 냉소적인 편이었다.
바보에게 쓸 시간은 없다.
오로지 자신이 인정한 사람에게만 마음을 열었다.
무능하고 용렬한 범부들을 천하에서 가장 혐오했기에 촌철살인의 독설로 가시 돋친 모습들을 보였다.
“저더러… 덜떨어진 꼬마의 비위나 맞추라고요?”
들어선 안 될 말을 들어버린 사람처럼 은발을 늘어뜨린 소녀가 인상을 찡그리면서 되물었다.
사마의.
해괴한 말투를 쓰는 덜떨어진 아가씨.
분명 대장군부의 참모로 기용될 정도로 다재다능한 자질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척 안타깝게도 그녀는 우수함을 모두 뒤덮을 정도로 많이 덜떨어졌다.
그런 덜떨어진 애와 친구를 하라고?
제갈량은 황실과 조정으로부터 사사를 명령받은 것처럼 충격적인 표정을 지었다.
“량아, 너보다 두 살이 많다더구나.”
“…정신연령은 한참 어린데.”
“그러지 말고 친하게 지내보려무나.”
“…….”
숙부님의 간곡한 부탁에도 제갈량은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다.
“싫어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비위를 맞추라니.
간사하게 알랑방귀를 뀌고 싶진 않았다.
제아무리 숙부님의 부탁이더라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난제 중의 난제였다.
‘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없다고요!’
사마의가 괴상한 행동들로 대인관계를 박살낸 외톨이라면 제갈량은 편협한 성격으로 대인관계를 박살낸 외톨이였다.
교우(交友). 교제(交際).
이역만리에나 존재할 법한 개념이다.
친구? 그게 뭐지?
이용해먹기 좋은 소모품을 부르는 이름인가?
제갈량은 어느 때보다도 깊은 번뇌에 휩싸였다.
“정말 미안하구나. 경조윤 어르신의 환심을 얻으려는 욕심에 무턱대고 말을 해버렸다.”
“…….”
조조의 돌발적인 결정으로 좌풍위에 임명된 제갈현은 아무런 배경도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였다.
한적한 시골에서 농사나 짓던 한미한 가문이었기에 허도에 아는 연줄이 하나도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과거에 원술을 섬겼던 전적이 있었다.
만약 관료들이 전적을 지적하면서 상소문을 집단적으로 올린다면 천재일우의 기회처럼 굴러들어온 좌풍위의 벼슬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을 터였다.
“후우,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제갈량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친애하는 숙부님의 부탁이었으니까.
양친을 일찍 여의고서 숙부의 슬하에서 자랐다.
제갈량에게 있어 제갈현은 숙부이면서 동시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제갈량은 달군 쇳덩이를 삼키는 심정으로 무리한 부탁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장담은 못해요.”
꾸욱-.
손아귀를 강하게 쥐면서 중얼거렸다.
* * *
본디 짐승은 먹이를 족족 주는 사람을 주인으로 받드는 법이다.
사람 또한 짐승.
특히 호감을 포섭하려는 상대는 짐승처럼 덜떨어진 소녀였다.
대충 먹이를 주면 꼬리를 치겠지.
제갈량은 장졸에게 어렵사리 구한 단것들을 한아름을 들고서 대장군의 군막에 출근했다.
“자요. 어서 먹어요.”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음?”
흑발을 늘어뜨린 소녀가 게슴츠레한 눈빛을 보내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의심이 가득했다.
경계심이 넘쳐흘렀다.
혹시 독이라도 탄 게 아닐까.
사마의는 진심으로 독살(毒殺)을 걱정했다.
“우수한 두뇌를 자랑하는 본좌에게 결국 못 이기니까 수를 쓰려는 거 아님? 대장군의 심복인 본좌를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속셈인 거임!”
“…….”
진짜 한 대만 때렸으면 속이 시원하겠네.
야단법석을 떠는 사마의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그냥 단순한 호의죠.”
“본좌더러 덜떨어진 망아지라고 했으면서….”
쳇.
바보 주제에 기억력은 좋다니까.
그건 그냥 헤어질 때 나누는 인사말이었는데.
“그렇게나 독살이 걱정된다면 젖소한테 먹어보라고 하죠.”
“왜 갑자기 저한테 화살을 돌려요?!”
대명문가의 수려한 아가씨가 벌떡 일어섰다.
출렁-.
움직임에 맞춰 풍만한 가슴이 위아래로 출렁였다.
박진감 넘치는 신체운동을 통해 대명문가의 아가씨는 젖소라는 외설적인 별명의 적합함을 증명했다.
“사양 말고 드세요. 큼지막한 젖탱이를 유지하려면 단것은 필수잖아요.”
“큭! 저는 단것을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럴 리가요. 그럼 그 젖은 어떻게….”
“왜 자꾸 가슴 타령이에요!”
아연실색한 낯빛으로 가슴을 가리키는 제갈량.
그에 양수는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히면서 탐스럽게 부푼 가슴을 양팔로 폭 가렸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양팔로 가려지지 않을 정도의 거유였기 때문이다.
‘아, 안 그래도 요즘 또 커지기 시작했는데…!’
만약 양수의 속마음을 한나라의 승상께서 들었다면 한사군(漢四郡)으로 멀리 귀양을 보냈으리라.
“빨리 먹으라고요!”
“아, 알았음…! 먹으면 되잖음!”
꾹.
꾸욱-.
제갈량이 조청으로 졸여낸 유밀과를 들어 사마의의 말랑말랑한 뺨을 두드렸다.
강압적인 권유를 이길 수 없었던 사마의는 결국 제갈량이 시키는 대로 유밀과를 물었다.
“오오, 맛있음!”
“그럼 당연하죠.”
사마의가 유밀과를 포함한 단것들을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독살을 걱정했던 소녀와 동일인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허겁지겁 먹어댔다.
오랜만에 즐기는 군것질이다.
걸신이 들린 것처럼 먹는 것도 당연했다.
“그럼 저도 하나만….”
“…….”
“왜, 왜요! 하나쯤은 괜찮잖아요!”
“특별히 드리죠.”
행복한 표정으로 군것질을 즐기는 사마의의 모습에 식탐을 느꼈는지 양수도 유밀과를 집었다.
우물-.
과자를 입에 물었다.
특유의 단맛이 미각을 강타했다.
황량한 전선에서 거친 음식들만 먹었기에 유밀과가 더욱 감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제 조금은 호감도가 올랐으려나?’
제갈량이 사마의를 힐끗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역시 단순하다.
단것을 계속 입에 넣어주면 마음을 구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따라 떠들썩하군.”
군막에 들어선 이성휘가 군것질을 즐기는 참모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힐난하려는 의도는 없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다.
그렇기에 지엄한 군율을 강요하지 않았다.
참모진에 새로 합류한 제갈량과 군것질을 즐기면서 떠들썩하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대장군.”
제갈량이 일어서면서 이성휘에게 예를 취했다.
“대, 대장군!”
양수는 황급하게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를 털어내고서 고개를 숙였다.
“대장군, 왔음?”
반면 사마의는 과자를 먹기에 바빴다.
“1주일 내로 장안성에서 철군한다.”
이성휘가 참모들에게 군령을 전했다.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
정벌에 지친 병마들을 이끌고 허도로 귀환한다.
대장군의 하명에 제갈량과 양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받들었다.
“그렇게 빨리요?”
금발을 늘어뜨린 대명문가의 아가씨가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정벌군을 계속 바깥에 둘 순 없으니. 최대한 빨리 허도로 귀환하려 한다,”
경조윤 사마방에게 전권을 위임한 이성휘는 곧바로 철군을 결정했다.
결전이 머지않았다.
새로운 전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귀환하여 아내의 곁을 지켜야 한다.
애처가와 바람둥이 속성을 겸비한 변종다운 행동이었다.
“아- 하셈.”
“…….”
인형처럼 귀여운 소녀가 이성휘에게 유밀과를 내밀었다.
이성휘는 입을 벌리면서 약과를 물었다.
“…큭!”
남매처럼 친숙한 이성휘와 사마의의 모습에 제갈량이 두 눈을 번뜩였다.
‘참자, 참아…. 들짐승이 재롱을 떤다고 생각하자.’
질투. 질투. 질투.
한없이 질투가 타올랐다.
친애하는 주인님이 멍청한 강아지만 예뻐하는 모습에 하악질을 하는 고양이를 보는 듯했다.
“입에 다 묻었다.”
이성휘가 손수건을 꺼내어 사마의의 입가에 덕지덕지 묻은 부스러기를 닦아주었다.
히히.
소녀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에 이성휘도 옅은 미소를 지었다.
“칠칠치 못하긴.”
“으읏! 많이 묻었음?”
“엄청나게.”
친남매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정다운 모습이다.
제갈량의 낯빛이 굳어졌다.
주인님을 빼앗길까 마음을 졸이는 고양이처럼 입술을 삐죽였다.
“왜 그럼? 오줌이라도 마려움? 변소까지 가줌?”
“닥쳐요.”
정중함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물음에 곧바로 날카로운 가시를 드러냈다.
울화가 치밀었다.
화를 계속 억눌렀다간 속병이 날 것 같았다.
결국 제갈량은 본성을 선택했다.
“돼지처럼 그만 처먹어대고 일이나 해요! 장졸들은 철군을 준비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텐데 아직도 한가롭게 과자나 처먹고 있네! 녹봉도둑 같으니!”
입가에 부스러기들을 덕지덕지 묻힌 사마의에게 화살세례처럼 독설을 연사했다.
불똥이 삽시간에 튀었다.
크흠.
이성휘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입에 물고 있던 유밀과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사마의와 양수는 ‘네가 가져왔잖아….’ 라는 눈빛을 제갈량에게 보냈다.
“그만 먹어!”
“히에에엑.”
제갈량이 손아귀를 뻗어 사마의가 먹으려던 과자를 냉큼 빼앗았다.
평소처럼 흉포한 독설가로 변해버린 제갈량의 모습에 사마의는 질색하듯 우는 소리를 냈다.
“당신도 다 먹었으면 일이나 해요, 젖탱이.”
“하나 밖에 안 먹었는데….”
“흥! 가슴이 툭 불렀으면서. 어디서 거짓말이야?”
“그, 그냥 나온 거예요!”
어린 참모들의 요란법석에 이성휘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서 업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도통 집중이 되질 않았다.
출렁출렁-.
당분을 머금은 과일처럼 흔들리는 거유.
제갈량과 실랑이를 벌일 때마다 탐스러운 젖가슴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실로 음란한 발육이었다.
‘진짜 학식을 쌓을 때마다 가슴이 커지나….’
아니,
그럴 리는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 아내께서는….
시답잖은 망상을 이어나가던 이성휘는 이윽고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