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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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리고 헐벗은 백성들을 구휼하느라 시일보다 더 늦어질 것 같습니다.
장안성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대장군 이성휘가 행군을 중지하고 장안성에 주둔했다는 소식이었다.
두 달.
혹은 석 달 정도.
귀환이 장기간 늦어질지도 모른다.
열풍의 사막에서 악전고투를 이겨낸 남편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었던 조조는 가슴이 철렁하는 실망과 상실감에 휩싸였다.
“느, 늦는단 말인가…?”
시무룩-.
총명하던 눈빛이 추욱 늘어졌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천 명의 장졸들을 총동원하여 대장군의 개선식을 준비하던 조조는 허탈함을 느꼈다.
“후우, 백성들을 위한 일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
역도들의 만행으로 장안성은 황량한 잿더미와 자갈만이 휘날리는 폐허가 되고 말았다.
연쇄적으로 벌어진 맹화에 초토화된 장안성을 구원하고자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남편이 어려운 결정을 내렸음을 알기에 조조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앙이와 비가 많이 실망할 텐데….’
이제 아빠가 돌아온다며 아침마다 떠들썩하게 기뻐하던 아들과 딸의 모습이 떠올렸다.
후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도탄에 빠진 민중들을 구하고자 멈춰선 것인데.
내심 섭섭하면서도 남편의 의중을 존중하기에 조조는 결정을 윤허했다. 상서령 순욱에게 명령하여 백성들에게 베풀 물자를 장안성에 수송하도록 명했다.
“혹여 새 여자가 생긴 것은 아닐 테지?”
“…….”
조조가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전령들과 함께 허도에 도착한 위속은 그 말에 고개를 푹 숙였다.
어떻게 알았지?!
과연 귀신처럼 매서운 분이다.
잔당들과 투항했던 맹주 마등의 여식을 거뒀다.
대장군의 처첩들처럼 아름다운 용모와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서량의 여인을 말이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대장군께선 도탄지고에 빠진 백성들을 위해 남으셨습니다.”
말을 더듬으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말할 수 없다.
차마 이실직고할 수 없었다.
아름다운 미색을 자랑하는 역적의 여식을 거뒀다는 말을 꺼내자마자 살벌한 질투가 폭발하리라.
지금까지의 경험들을 통해 조조의 반응을 예측해낸 위속은 입을 꾹 다물면서 비밀을 지켰다.
“크흠, 잠시 실언을 늘어놓았군.”
조조가 머쓱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움 때문일까.
아니면 재회의 상실 때문일까.
남편의 자상하고 자애로운 성품을 무심코 의심해버리고 말았다.
칠난팔고와 같은 고통에 시달리는 어려운 민중들을 구제하고자 전력으로 노력하는 남편의 진심을 어떻게 곡해할 수 있을까.
그것은 실례이자 무례였다.
남편을 진심으로 연모하는 현모양처로서 결코 범해선 안 될 문제였다.
‘지금까지 성휘는 도탄에 빠진 민중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성휘를 절대로 의심하지 않겠다.’
아내를 위해.
자식들을 위해.
이성휘는 가장의 도리를 완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조는 아쉬움을 투덜대면서도 결국 물자들을 보내어 남편을 지원했다.
“아… 아닙니다.”
주륵-.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온몸에 오한이 드는 듯했다.
대장군을 향한 충절을 지키고자 한나라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승상에게 거짓을 고하고 말았다.
드높은 충용을 겸비한 병주의 무장답게 멸문지화를 당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했다. 대장군을 향한 충절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걸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흠, 당연히 성휘가 그럴 리 없겠지. 만약 이번에도 새 여자를 데려오면… 이혼을 해버릴 테니.”
“…….”
나한테 왜 그래.
긴장감에 요동치던 가슴이 울렁거렸다.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파국으로 향하는 기로에 선 듯했다.
물론 바람을 피운 쪽이 원흉이겠지만….
문제는 바람둥이가 바로 한나라의 대장군이자 승상의 남편이라는 것이었다.
“상서령.”
“예, 주군.”
상아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다가오면서 조조에게 고개를 숙였다.
상서령(尙書令) 순욱.
장안성으로 물자들을 조달하라는 명령을 받은 순욱은 재차 임무를 받게 되었다.
“관중과 관서, 서량에 지방관들을 파견하겠다. 내정에 능한 관료들을 선발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조조는 원소군과의 전쟁에 박차를 가하면서도 점령지를 복구하는 재건에 힘을 기울였다.
삼보(三輔). 옹주(雍州). 양주(凉州).
관료들을 대거 파견하여 황폐화된 영토를 일으키고자 계획했다.
분명 수많은 인력들이 필요할 터.
단번에 해결하기 어려운 명령이었음에도 순욱은 내색하지 않고 명령을 받들었다. 참화에 시름하는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한 대업이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명단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한 순욱은 식은땀을 흘리는 위속을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상서대로 돌아왔다.
뒤이어 순욱은 새로 들인 제자를 호출했다.
완벽한 성적으로 과거를 통과하여 상서대에 임관한 어린 관료였다.
방울꽃처럼 아름다운 백발을 늘어뜨린 소녀가 청명한 푸른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순욱에게 다가왔다.
“부르셨어요, 상서령 어르신?”
상서대(尙書臺) 시랑(侍郞)
제갈량.
뛰어난 학식과 언변으로 시험관들로부터 모두 만점을 받아낸 최고의 수석(首席).
한나라 제일의 신동이라고 불리는 홍농양씨 가문의 아가씨와 비견되는 절예의 천재.
내정. 정치. 군사. 외교.
모든 분야들에 재능을 갖춘 오만한 재목.
상서령 순욱은 완전무결한 재능들을 겸비한 소녀에게 와룡(臥龍)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분명 시랑은 대장군을 친히 연접할 기회를 저에게 부탁했었죠?”
“네.”
“그 기회를 드릴게요.”
“……!!”
서주에서 상경한 어린 소녀는 신출귀몰한 전략으로 원소군을 형양에서 완파한 천하제일검에게 집착에 가까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집착….
아니, 광착(狂着)에 가까웠다.
오로지 집착 하나만으로 서주에서 상경하여 상서대에 임관하는 기염을 토해내지 않았는가.
보통 집념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구름처럼 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서 장원으로 급제한 작은 용이 고개를 들어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저, 정말인가요?!”
제갈량이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드디어 만날 수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기대에 고양감이 차올랐다.
수많은 인재들이 집결한 상서대에 임관했음에도 항상 냉소적인 모습만을 일관하던 소녀가 두 눈을 반짝이면서 환열에 찬 눈빛을 발산했다.
“장안성으로 가서 대장군을 보필하세요.”
“네!”
불세출의 전쟁영웅을 동경하는 소녀에게 순욱은 지척에서 보필할 기회를 주었다.
제갈량은 상서대가 인정한 천재였다.
분명 대장군에게 큰 도움이 될 터.
굶주린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푸는 이성휘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던 순욱은 와룡을 파견하여 구휼을 돕도록 했다.
* * *
장안성에 주둔한 조조군이 구휼미를 베푼다는 소식에 삼보 지역의 백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대장군이 선정을 베풀고 있다.
천하제일검의 보호를 받고 싶었던 백성들은 장안성으로 이주하여 보살핌을 청했다.
한꺼번에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들면서 당장 처결해야 될 업무들이 산더미처럼 쌓이게 되었다.
“허도로 돌아가는 거 아니었음?!”
집에 가고 싶음!
어서 본좌를 집으로 돌려보내줘!
흑발을 늘어뜨린 소녀가 당혹감을 토로했다.
험난했던 천난만고를 끝내고 이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콧노래를 흥얼거렸던 사마의는 장안성에 발목이 붙잡히고 말았다.
“우는 소리는 뚝 그치고 일이나 해요!”
백옥처럼 새하얀 얼굴에 거무스름한 음영이 드리운 여성이 소리쳤다.
한나라 제일의 신동.
천하제일검을 보필하는 참모로서 산더미 같은 업무에 쓰러질 순 없는 일이다.
버텨….
죽더라도 버텨야 돼.
본인을 향한 자존심이 대단했던 양수는 고군분투의 난항을 꿋꿋하게 버텨냈다.
‘이번 원정에서는 크게 활약을 못했으니까….’
몰락한 장안성을 재건하는 업무만큼은 훌륭하게 완수해야 한다.
드높은 자긍심이 요동쳤다.
고고한 자존심이 맹렬하게 울부짖었다.
바로 옆의 낙제생보다는 우월하다는 인정을 받아내야 했기에.
“일손이 너무 부족함! 누구라도 와줬으면 좋겠음!”
사마의가 두 팔을 쭉 뻗으면서 소리쳤다.
혹시 알고 있을까.
방금 그녀는 평생 후회할 소원을 빌었다.
누구라도 와줬으면 좋겠다.
그 소원은 머지않아 날카로운 비수가 된 채로 가슴에 날아들 터였다.
“중노동에 종사하는 장졸들을 생각해서라도 업무에 집중해요. 아님 마구간에서 말이나 돌보든가.”
“시, 싫음! 두 번 다시 안 할 거임!”
“성과가 계속 바닥을 치면 대장군께서 당신을 마구간에 보내버릴 텐데요. 어디에도 써먹지 못하는 폐품을 인간당근으로 줘버릴지도 모르죠.”
양수가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사마의의 성질을 건드렸다.
그에 사마의가 혀를 차며 말했다.
“칫! 양덕조는 젖소처럼 커다란 가슴을 흔들어대면서 대장군을 유혹하니까 괜찮다는 거임?”
“유혹한 적 없어요!”
“맨날 흔들어대는 주제에.”
“그, 그건 걸을 때마다 흔들리니까…!”
성희롱성 발언에 용광로처럼 얼굴이 달아오른 양수는 두 팔로 젖가슴을 가렸다.
약관의 숫처녀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젖가슴이 압박에 눌리면서 탄력 넘치는 유압(乳壓)을 자랑했다.
푸릉-. 푸릉-.
부끄러움에 몸을 흔들 때마다 가슴이 출렁였다.
우월함을 자랑하는 거유가 마치 과시하듯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대명문가의 고귀함과 상반되는 매우 음란한 발육이 아닐 수 없었다. 커다란 학식주머니는 수많은 사내들을 홀리게 만들었을 정도였다.
물론 본인은 학을 뗄 정도로 싫어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