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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498화 (498/616)

<49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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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군(大將軍) 이성휘가 서량을 정벌했다.

관중(關中). 관서(關西). 서량(西涼).

방대한 영토들이 모두 조조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서쪽의 후환들을 제거하여 삼면전쟁의 위협을 말소했다. 분명 조조군은 여세를 몰아 원소군과 유표군을 공격하여 천하통일의 대업을 속행할 것이었다.

“빌어먹을 환관 년이 감히!!”

형주자사 유표가 격앙된 고함을 내지르면서 걸상에 있던 집기들을 모두 내동댕이쳤다.

콰당탕-!

죽간과 서적들이 요란하게 떨어졌다.

벼루가 박살났다.

서적이 떨어지고 죽간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치욕에서 비롯된 격노를 토해내면서 욕지거리를 내뱉는 주군의 모습에 장수들은 아연실색하면서 자리를 지켰다.

“환관의 양자에게서 태어난 하찮은 년에게 어찌 모든 영광과 영예가 떨어진단 말이냐!”

이해할 수 없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극심한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천하통일의 대업을 달성하여 새로운 황제가 되고자 했던 유표는 조조군의 승승장구에 모멸을 품었다. 응당 자신이 차지해야 했어야 마땅한 영광과 영예가 비천한 환관 년에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북의 원가 년을 부추겨 중원을 정복하겠다는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다니. 그럼 도대체 누가 환관 년을 막는단 말인가!’

치욕감을 삼키면서 한탄을 토해냈다.

원소군이 완패했다.

서량 세력마저 멸망하고 말았다.

분명 한껏 기고만장해진 놈들은 형주를 도모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을 터.

중원의 천군만마가 일제히 남하를 개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바심을 느꼈다. 조조군이 서량을 정복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결국 서량을 정복하다니….”

“분명 조조는 형주의 남양군을 노릴 겁니다.”

조조군의 근거지인 허도와 형주의 남양군은 이틀도 안 되어 당도할 수 있을 정도로 근접한 거리였다.

남양군이 노려질 것이다.

유표군 장수들이 우려를 표시했다.

대군을 동원하여 이역만리를 정벌했던 조조군이 설마 남양군을 도모하지 못하겠는가. 분명 남양군의 모든 성채들을 함락시키고 번성까지 밀고 내려오리라.

“군사, 만약 조조군이 정벌군을 일으킨다면 어디를 노릴 것 같소? 북쪽의 하북인지, 아니면 남쪽의 형주인지… 그것을 먼저 알아내야 하오.”

채모가 물었다.

그에 괴월이 난색을 보였다.

“예, 알겠습니다.”

조조가 정벌군을 일으킨다면 유표군은 우여곡절 끝에 점령한 남양군을 고스란히 내어줘야 할 판이었다.

백병전은 승산이 없다.

장강의 지류를 휘어감은 번성과 양양에서 조조군을 대적해야 했다.

형주의 함대들을 동원하여 수륙양용을 펼친다면 능히 승산이 있을 것이다. 채모는 장윤과 함께 장강 위에서 조조군의 진격을 저지하고자 계획하고 있었다.

“남양군의 병력을 모두 철수시키게!”

유표가 걸상을 내리치면서 소리쳤다.

조조군의 완승이 위기감을 느낀 유표군은 남양군에서 병력을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

“아, 안 됩니다!”

“어떻게 점령한 땅입니까! 이대로 조조군에게 남양군을 양보할 순 없습니다!”

채중과 채화가 놀라 소리쳤다.

남양군을 넘겨준다니,

막대한 손실을 감내하고서 점령했던 땅이 아닌가.

이대로 무력하게 남양군에세 퇴각한다면 필시 만천하의 조롱을 받게 될 터였다. 채중과 채화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결정의 재고를 요청했다.

“너희들이 뭘 안다고 지껄이느냐!”

채모가 대노하여 종제들을 꾸짖었다.

백전불퇴의 조조군을 상대로 뭍에서 싸운다는 것은 지나친 만용에 가까웠다.

매형이 고된 결정을 내리셨다.

어찌 그 심중도 모르고 경거망동을 범한단 말이냐.

매서운 고함소리에 채중과 채화가 뒤로 물러섰다.

“도독.”

유표가 고개를 들어 채모를 불렀다.

“함대들을 보내어 남양군의 철수를 돕게. 1주일 안으로 철수를 끝내야 하네.”

“예, 알겠습니다.”

남양군을 사수하기 위해 대규모의 병력을 동원하였다가 패전을 하게 된다면 대참사를 맞이하게 될 터.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다.

흩어진 힘을 축적하면서 권토중래를 도모해야만 했다.

유비군과 손견군과의 싸움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기에 유표군은 소극적인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 * *

유표군이 스스로 남양군을 내어주고서 병력을 철수했다는 소식을 들은 상서낭중(尙書郞中) 허유는 강한 확신을 느끼게 되었다.

천하의 패권은 조조에게 있다.

머지않아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수해내리라.

패국조씨 가문과 친분을 맺는다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터.

간사하고 탐욕스러운 성정의 참모는 온갖 사탕발림을 늘어놓으면서 조조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 원소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승상께서는 잠시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괜찮다, 아이들을 보러 온 것이니.”

주공께서 부재중인 동안에 도련님과 아가씨를 만나려는 허유의 행동에 시녀들은 곤혹감을 표시했다.

과연 들여도 되는 걸까.

시녀들이 우물쭈물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분명 주공의 오랜 벗이다.

지금까지 승상부를 자주 들르지 않았는가.

하지만 주공께서 금지옥엽처럼 아끼는 아들과 딸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긴다면 자신들은 모두 불귀의 객이 될 것이었다.

그렇기에 시녀들은 허유의 요청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결코 불가하오. 주군의 윤허를 받으시오.”

갑주를 걸친 거구의 사내가 허유에게 다가왔다.

호군도위(護軍都尉) 전위.

패국조씨 가문의 후계자를 호위하는 무관이 기별도 없이 찾아온 불청객을 막아섰다.

엄숙한 기세를 발산하는 근위장의 모습에 시녀들이 놀라 물러섰다.

“너, 넌 뭐냐…!”

허유가 뒷걸음질 치며 물었다.

맹금처럼 부릅뜬 두 눈.

거대한 체구가 제련된 강철을 연상시켰다.

등에는 쌍철극을 짊어지고 있었다.

주먹 한 번 휘둘러본 적 없는 백면서생에 불과했던 허유는 무거운 위압감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호군도위 전위라고 하오. 승상 어르신에게 윤허를 받지 못했다면 들어올 수 없소. 썩 돌아가시오.”

“네, 네 이놈! 내가 누군 줄 알고서 감히 건방을 떠는 것이냐!”

본인이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한 허유는 노발대발하며 앞을 가로막은 무관에게 삿대질을 했다.

조조와의 친분을 내세웠다.

지금까지 연줄을 앞세우면서 허세를 떨었던 소인배다운 행동이었다.

상서낭중에 임명된 이후부터 헛바람이 들린 허유는 온갖 오만불손한 말들을 전위에게 지껄여댔다.

“물러나십시오, 당장.”

“큭…! 어디 두고 보자!”

관저를 호위하던 근위병들이 허유의 고함소리를 듣고 몰려들기 시작했다.

소란이 확대될지도 모른다.

조조에게 노여움을 사게 될까 우려스러웠던 허유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흥! 아만과 나는 둘도 없는 막역한 관계다! 아만에게 낱낱이 고하여 엄벌을 받게 해주지! 이 사실을 아만이 알게 된다면 네놈은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게다!’

허유는 원소를 보필했을 당시에도 연줄을 앞세우면서 온갖 패악질을 벌였던 전과가 있었다.

결국 원소군의 참모들에게 부정부패가 발각되어 처형당할 위기에 직면했음에도 버릇이 여전했다.

탐욕스러운 간신배였던 허유는 허도에 도착한 이후부터 계속 조조의 명성을 의지하여 업성에서 범한 오만불손한 악행들을 고스란히 저질렀다.

* * *

소스라치게 놀란 도둑처럼 관저를 빠져나간 허유는 곧장 조조에게 달려갔다.

“아만! 아만!!”

집무실에서 관료들과 업무를 주관하던 조조는 허유의 새된 목소리에 미간을 찡그렸다.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예민한 성격이 날카롭게 곤두서는 듯했다.

풀밭에 돋아난 잔풀처럼 빈약한 인내심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분노를 억눌렀다.

“무슨 일인가, 자원.”

관료들에게 손짓하여 집무실에서 내보낸 조조는 한숨을 내쉬면서 허유에게 물었다.

그에 허유가 곧장 대답했다.

“귀여운 조카님들을 보러 갔는데 전위라는 놈이 감히 나에게 온갖 무례를 범했네! 비렁뱅이를 대하듯이 나를 처참하게 쫓아내더군!”

“…….”

단번에 이해했다.

관저에서 벌어진 소란을 대충 알 것 같았다.

조조는 다시 한 번 잔풀처럼 미약한 인내심을 발휘하여 노여움을 억눌렀다.

“당장 놈을 처벌해주게! 그대의 오랜 벗이 한낱 무관에게 괄시를 당했단 말일세!”

허유는 눈앞의 여인이 노여움을 한계까지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노발대발하며 떠들어댔다.

당장 삭탈관직하여 변방으로 유배를 보내라며 강압적으로 말했다. 궁궐을 침입했던 자객들과 사투를 벌여 패국조씨 가문의 식솔들을 구한 용장에게 말이다.

“자원.”

조조가 입을 열었다.

오랜 벗에게 침착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내 아이들은 네놈을 숙부로 둔 적이 없다. 가렴주구를 저질러 본초에게 버림받은 간신 주제에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숙부 노릇을 할 셈이냐.”

“뭐, 뭐…?”

무엇이든 들어줄 것이라고 여겼던 벗으로부터 예상과는 정반대의 답변을 듣게 되었다.

살의가 느껴지는 조조의 목소리에 허유는 대경실색하며 몸을 움찔 떨었다.

“그리고 나를 아만이라 부르지 마라. 천하에 그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남자는 아버지와 남편뿐이다.”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은 한없이 침착하면서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 분수도 모르고 오만을 떨어대는 간신을 노려보는 눈동자만큼은 사납게 번뜩였다.

“두 번 다시 나를 아만이라 부른다면 당장 그 자리에서 혓바닥을 뽑아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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