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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496화 (496/616)

<49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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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체 왜….

오직 혼란에 젖은 의문만이 뇌리를 자극했다.

이해할 수 없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얼토당토않은 말과 함께 돌아서는 이성휘의 모습에 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은 대경실색한 몰골로 손아귀를 바르르 떨었다.

“대체… 대체 어째서입니까! 대체 왜!!”

억울함을 담아 소리쳤다.

죽기를 바랐는데.

당신의 손에 죽기만을 염원했는데.

대체 왜 마지막 속죄를 허락해주지 않으십니까.

“자신이 그렇게나 원망스러운가?”

이성휘가 물었다.

그에 마초가 대답했다.

“…예.”

아버지와 동생들을 지키지 못했다.

장안성 백성들의 절규와 통한을 끝내 외면했다.

조조군을 동원하여 복수를 결행함으로서 서량의 동포들마저 배신하고 말았다.

사는 것이 고통이다.

살아있는 것이 치욕이다.

원죄에서 비롯된 죄책감이 마음을 유리처럼 깨트렸다.

“제발…! 대장군의 손으로 고통을 끊어주세요.”

등을 돌린 채 애처로운 간청을 계속 경청하던 이성휘가 고개를 돌려 마초를 마주했다.

드디어 마음을 바꾼 것일까,

마초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이성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성휘가 검집에 집어넣었던 칼자루를 뽑아드는 일은 없었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마초를 응시할 뿐이었다.

“네 부하들은 네 죽음을 원치 않을 거다.”

“…….”

“결국 주인의 희생으로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네 부하들은 지금의 너처럼 매순간 삶을 부정하면서 스스로를 저주하고 원망하겠지.”

“…….”

속죄. 응보.

그것들은 허울에 불과했다.

더 이상의 고통을 참을 수 없어 죽음으로서 도망치려는 연약한 교활함에 지나지 않았다.

죽음으로서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은가?

아니,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부하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상처만을 남긴 채 홀로 괴로움에서 해방되려는 무책임의 말로였다.

“그들은 오로지 너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악전고투를 치렀다. 복수를 완수하면 네가 고통에서 해방되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떠안고서.”

쏟아지는 화살비와 날카로운 창검들의 위협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용전을 치렀다.

마대. 방덕.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마등군의 장졸들.

주인의 안위만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

조조군의 선봉으로서 수많은 성채와 거점들을 돌파했던 그들의 용맹과 희생에 경의를 느꼈다.

그렇기에 이성휘는 내막이 발각되었을 때의 여파를 감수하면서까지 마초를 살리기로 했다. 물론 여러 금기와 제약들이 그녀에게 붙게 되겠지만.

“새벽이 되기 전에 둔영을 떠나라. 너는 결국 무위군에서 전사한 것으로 해둘 테니.”

가짜 신분과 가짜 이름을 걸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을 마초에게 권유했다.

죄를 사면한 것은 아니다.

영원토록 ‘서량의 금마초’는 천인공노할 학살을 방관하고 외면한 인물로서 역사에 남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성휘가 마초에게 내리는 벌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겁니까?”

당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나를 구하려고 하지?

어째서 나에게 손을 뻗어주지?

수많은 의문들이 날아들었다.

전장에서 원수처럼 싸웠던 관계였다.

본인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을 터.

그런데도 굳이 위험을 감수하려는 이유가 뭘까.

자신과 부하들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이성휘의 숙려에 혼란을 참을 수 없었다.

‘동정? 아니면 연민?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지금까지 계속 적이잖아. 당연히 나를 죽여야 마땅한데.’

나는 사냥개에 불과하다.

토끼들을 모두 사냥한 뒤,

끓는 가마솥에 들어가게 될 처량한 소모품.

가문과 종친들의 복수를 완수할 수 있다면 그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꼴사납게 머리를 숙이고 들어온 사냥개에게 자비를 베풀려는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

그에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대로 꾹 닫혀버린 것처럼,

말을 꺼내지 못한 채 입술을 연신 달싹였다.

“살아라.”

말문이 막힌 그녀를 대신하여 이성휘가 말했다.

“그것이 내가 내리는 벌이다.”

새로운 인생을 나아갈 기회를 주었다.

따스한 자비일까.

아니면 끔찍한 저주일까.

그것은 오로지 그녀의 몫이었다.

“죽음으로 해결하지 마라. 죽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세상에 없다. 그저 도망칠 뿐이지.”

속죄의 방법들 중 가장 극단적인 경우가 바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죄를 청산하는 것이다.

목숨에는 목숨으로.

타인의 목숨을 빼앗았을 때 사용되는 속죄였다.

실로 무책임하다.

그저 죄를 면피하기 위한 잔꾀에 불과했다.

이성휘는 죄악감에 짓눌려 스스로 죽음을 간원하는 마초의 행동을 ‘무책임한 면피’라며 경직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초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가늘게 떨리는 시선.

잔뜩 움츠러든 가녀린 어깨.

동요와 혼란을 내비치면서 이성휘에게 속죄의 방법을 간원했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죄악감의 주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가느다란 팔뚝을 움켜쥐면서 도톰한 입술을 깨물었다.

“살아서 죄의 무게를 견뎌라. 괴로워하고 번민하면서 죄악감을 받아들여.”

군벌들의 만행을 방치했던 태만.

무고한 백성들의 절규를 외면했던 불의.

무력했던 과거의 자신을 매순간마다 떠올리면서 원죄를 직시해라.

그것이 바로 네게 주어진 형벌이다.

“받아들이겠나?”

발걸음을 내딛으면서 마초에게 다가선 이성휘가 손을 뻗으면서 물었다.

“…….”

냉철한 배려가 담긴 물음에 마초는 곧장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혼란스럽겠지.

망설이는 것은 당연했다.

아래로 늘어뜨린 팔을 애처롭게 떨었다.

부모를 잃어버린 어린아이처럼 동요를 계속 반복하면서 입술을 달싹였다.

“저, 저는….”

불안감에 휩싸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랜 침묵 끝의 대답이었다.

그럼에도 이성휘는 잠자코 대답을 기다렸다.

지금의 고민 또한 형벌의 고통일 테니.

“저는…!”

바닥에 주저앉아 죽음을 읍소하던 마초는 몰려드는 격정을 이기지 못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무슨 말을,

무슨 대답을 하지…?

내가 감히 삶을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내가 감히 기회의 손길을 맞잡아도 되는 걸까.

형벌,

그러나 그것은 냉철한 배려이기도 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여 죄를 면피하려는 어리석은 계집에게 내리는 자비.

주인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졌다는 진실을 접하고서 무간지옥의 고통을 겪게 될 부하들을 위한 아량.

천하의 그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는 천애의 외톨이에겐 너무도 과분한 온기였다.

“으읏…! 으으, 으아아…!”

단 하나의 온기에서 비롯된 감정이 두 눈을 축축하게 적셨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 채….

양손으로 바닥을 짚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분에 넘치는 선의였다.

투박하고 냉철한 배려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죄악감의 인도에 따라 죽음의 구렁텅이로 사라지려 했던 그녀는 천애의 외톨이에게 과분한 배려에 두 눈을 바르르 떨면서 감정을 쏟아냈다.

“그래도, 그래도… 살아야 하는 건가요…!”

꼴사납게 울었다.

시야가 흐려졌다.

짙은 물안개 안을 헤매듯이.

처량한 오열을 흐느끼면서 심중을 뒤덮은 알 수 없는 감정에 몸을 떨었다.

“살아남았으니까. 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들을 위해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 게다가… 여전히 너에게는 믿고 따르는 부하들이 있지 않나.”

“…….”

이성휘의 말에 애처롭게 오열하던 마초는 손아귀를 움켜쥐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깨닫게 된 걸까.

뺨을 타고 흘러내리던 눈물을 옷소매로 닦아냈다.

비참함을 딛고 일어섰다.

애처로운 절규만이 넘쳐흐르던 눈동자에 총명한 빛에 서리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비수에 찢겨나간 심장에 작은 불씨들이 흩날렸다.

“약조대로 네 부하들의 안위를 보장해주겠다. 아마도 조정에서 새로 부임하게 될 지방관을 보필하는 역할을 맡게 되겠지.”

마대와 방덕을 포함한 마등군의 잔당들에게 임시적으로 벼슬을 내려 조정군으로 삼았다.

서량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그렇기에 변란을 진압할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성휘는 마대와 방덕을 동원하여 각지에서 벌어지게 될 위협에 대비하고자 했다.

“노잣돈을 마련해주겠다. 신분을 숨기고 인적이 드문 산야로 내려가서 수년 동안 살아라.”

걸상 위에 놓인 가죽주머니를 가리켰다.

안에는 꽤 많은 돈이 있었다.

뛰어난 활약을 거둔 장수에게 내리는 포상이었다.

“대장군.”

군막 너머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위를 서던 고순이었다.

“분부하신 대로 말을 준비했습니다.”

둔영을 신속하게 탈출할 수 있도록 지척에 말을 준비시켜두었다.

어서 빠져나가라.

마초를 바라보면서 무언의 지시를 보냈다.

다행히도 동이 트기 전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강행군을 며칠 동안 반복한다면 양주를 탈출하여 세간의 시선을 따돌릴 수 있으리라.

“대, 대장군…!”

바닥에 주저앉았던 마초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이성휘에게 마침내 입을 열었다.

“뻔뻔하고 염치없는 부탁입니다만… 부디 대장군에게 간청이 있습니다.”

“말해라.”

간청이라.

당장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야.

이성휘가 마초에게 턱짓을 보내면서 대답했다.

“…뭐라고?”

이윽고 마초가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부탁에 이성휘는 잠시 평정심을 깨고선 놀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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