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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495화 (495/616)

<49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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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배신한 한수를 죽였다.

무위군의 참변에 가세했던 성공영과 염행을 참살하여 원통함을 갚았다.

대의명분을 버리고 비굴한 탐욕만을 추종했던 서량의 군벌들까지 모두 도륙하여 복수를 완수했다.

각골통한(刻骨痛恨)의 한을 모두 치렀다.

이제 여한이 없다.

일말의 미련도 남지 않았다.

그렇기에 당당하게 그의 앞에 섰다.

“지금까지 수고 많았다.”

마초를 군막으로 안내한 이성휘는 그녀에게 순유와 방금까지 마셨던 차를 대접했다.

마지막 배려라는 걸까.

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은 양손을 뻗으면서 호의를 받아들였다.

찻주전자에 담긴 차는 여전히 따스했다.

쌀쌀한 찬바람에 어깨를 떨었던 마초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몸을 녹였다.

“네가 선봉을 맡아주어 단기간에 서량을 정벌할 수 있었다. 물론… 너한테는 매우 괴로운 일이었겠지만.”

중원을 제패한 침략자를 불러들여 서량의 형제들을 모두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트렸다.

한나라의 억압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새로운 세력을 이룩하기를 갈구했던 야심가들은 마초를 한수와 관중제장보다도 악랄한 배신자로 여길 터였다.

실로 씁쓸했다.

그 기구함에 차가 쓰게만 느껴졌다.

“각오한 일입니다.”

부하들을 지켜냈다.

가문과 종친들의 원수를 갚았다.

세간의 지탄과 동포들의 원망은 결코 불가피했다.

그렇기에 마초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너라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거라고 생각했다.”

천하무쌍 여포처럼 무명과 자존심을 중시하는 마초라면 마지막 명예를 지키고자 제 손으로 자진을 선택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초는 제 발로 둔영에 도달했다.

심경에 무슨 변화라도 생긴 걸까,

대의를 배신했던 변절자들을 모두 죽여 절치부심의 한을 갚았음에도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마지막까지 부하들이 걱정돼서인가?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안심해라. 약조는 지키겠다.”

이성휘가 다 마신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그에 마초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대장군을 믿습니다.”

당신은 나와 맺은 약조들을 모두 지켜주었다.

원수를 칠 선봉을 맡겨주었고,

원수를 내몰 병마들을 지원해주었다.

또한 심복들을 보내어 원수를 갚을 기회를 주었다.

어찌 신뢰하지 않을까.

마초에게 있어 이성휘는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거머쥔 주인이자 백골난망의 은혜를 내려준 은인이었다.

“저는 그저… 천하제일검의 손에 죽기를 바랄 뿐입니다.”

입술을 꾹 깨물면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알고 있다.

과도한 욕심이라는 것을.

고향과 동포들을 배신한 더러운 계집에게 영예로운 죽음이 허락될 리 없다.

그럼에도 마초는 간절한 기대감을 떠안고서 이성휘의 앞에 섰다.

외적들을 물리치고 반란을 평정하여 한나라를 도탄에서 구한 위대한 영웅에게 죽는다면 실로 영광일 테니까.

“그런가.”

이성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타악.

허리에 찬 칼자루를 쥐었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죽음을 선택한 여인은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경험했다.

“후회는 없나?”

“…예.”

마지막이 될 물음을 던졌다.

그를 통해 결연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알겠다.”

스릉-.

날카로운 칼끝이 검집을 벗어났다.

차갑게 내려앉은 금속음이 귓가를 울렸다.

칼자루를 뽑아드는 이성휘의 모습을 지켜보던 마초는 형용할 수 없는 고양감을 느꼈다.

공포는 없다.

그저 경의만이 존재할 뿐.

목숨이 경각에 달했음에도 오로지 감탄과 찬사만이 가슴을 한없이 자극하고 있었다.

‘역시 완벽하다….’

칼자루를 뽑아드는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당연했다.

평생을 추구했던 무(武)의 정점이 눈앞에 있었으니까.

“서량의 금마초는 이 자리에서 죽는다.”

천하제일검이 단언했다.

절치부심의 복수를 달성하여 의의를 상실한 마초는 겸허히 죽음을 기다렸다.

* * *

처음부터 쓰고 버릴 생각이었다.

날카로운 창검을 겨누면서 개입을 저지하는 조조군의 모습에 마대와 방덕은 진의에 다다랐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이제 쓸모를 다했으니 없애겠다는 뜻이다.

선봉에서 사력을 다해 분투했던 마등군의 잔당들은 배신감에 맹렬한 분노를 느꼈다.

“그럼 아가씨께서는…!”

보랏빛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이를 빠득 갈면서 입을 열었다.

중무장한 병사들에게 포위된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음에도 방덕은 오직 마초를 걱정했다.

생을 포기한 사람처럼 초연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돌렸던 아가씨의 모습에 동요가 밀려들었다. 두 눈을 질끈 감으면서 조조군의 기만에 현혹되었던 자신을 저주했다.

“당신의 아가씨께서 선택한 결정입니다.”

장료가 마대와 방덕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전쟁이 종결되자마자 절체절명의 상황에 직면한 그들에게 안쓰러운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장료는 엄숙한 표정을 지으면서 칼자루를 쥐었다. 사방에 장졸들을 배치하여 결코 마대와 방덕이 날뛰지 못하도록 경계했다.

‘만약 군중에서 경거망동이라도 벌어진다면… 마초의 고결한 희생이 덧없는 물거품이 되고 말 테니까.’

부하들을 위해 기꺼이 가시밭길을 선택했던 마초의 고결한 의지를 존중하기에 앞을 가로막았다.

결코 헛되게 하지 않겠다.

장료는 당장이라도 칼자루를 뽑아들 것처럼 마대와 방덕을 위협했다.

“방패부대!”

“절대 누구도 들여보내지 마라!”

쿠웅-!

방패를 치켜든 병사들이 본영을 포위했다.

뒤이어 장창으로 무장한 병력까지 출현하여 장료의 명령을 받들었다.

“큭!”

마대가 침음을 삼켰다.

어서 누이를 구해야 한다.

간악한 중원 놈들이 누이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과연 누이께서는 무사하실까?

극도의 공포와 불안감이 심장을 움켜잡았다.

‘차라리 무기만 있었어도!’

조조군의 둔영으로 압송되면서 무기를 빼앗기고 말았다.

순순히 병장기를 내려놓았던 누이의 모습을 떠올린 마대는 심중에서 격정이 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오래 전부터 누이는 토사구팽의 운명을 각오하고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누님!!”

마대가 크게 소리쳤다.

그의 시선은 누이가 향한 본영을 향하고 있었다.

“멈춰라!”

“더 다가온다면 창으로 찌르겠다!”

창검을 든 병사들이 고함을 내지르면서 경고했다.

큭…!

날선 위협에 마대가 뒤로 물러났다.

지금으로선 달리 방도가 없었다.

섣불리 강행돌파를 시도했다간 날카로운 창검에 온몸이 벌집이 되고 말 테니.

“흐음.”

아슬아슬한 대치구도를 바라보던 여포는 팔짱을 낀 채 이성휘와 마초가 있는 본영을 바라보았다.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까.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결과를 기다렸다.

이제 곧 결과가 날아들겠지.

주인님께서 무슨 결정을 내리더라도 마땅히 받아들일 것이다. 여포는 방천화극을 움켜쥐면서 무거운 긴장감이 느껴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 * *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참격이 이어졌다.

파앙-!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렸다.

하지만 벼락처럼 날카로운 참격은 무엇도 베어내지 못했다. 그저 텅 빈 허공을 베었을 뿐이었다.

떨리는 시선으로 이성휘가 칼끝을 휘두르는 모습을 지켜보던 마초는 내뱉은 호흡을 통해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어렵사리 인지했다.

“아아…?”

얼빠진 소리를 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호흡을 토해냈다.

마초는 등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느끼면서 이성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돌발행동에 대한 해답을 원하는 시선이었다.

“서량의 금마초는 이 자리에서 죽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대답을 했다.

그와 동시에,

내리쳤던 칼날을 다시 검집에 납검했다.

서늘한 금속음을 들은 마초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뺨을 바르르 떨었다.

“무슨… 소리입니까.”

“서량의 금마초는 이 자리에서 죽었다고 말했다.”

마초가 물었다.

그에 이성휘는 방금 했던 말을 반복하여 대답했다.

“날이 밝기 전에 떠나라. 귀신은 날이 밝아오기 전에 모습을 감추는 법이니까.”

거듭하여 마초에게 대답한 이성휘는 움켜쥐었던 칼자루에서 손을 떼면서 등을 돌렸다.

살생부는 완수되었다.

장안성을 침략했던 역적들은 모두 죽었다.

천인공노할 학살을 자행했던 역적들의 수급을 모두 손아귀에 넣었다. 이제 황실과 조정에 승전보를 보낼 일만 남겨두고 있었다.

“그게… 용인될 리 없잖습니까!”

마초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소리쳤다.

맹렬한 격정을 토해냈다.

갈색 머리카락이 나부낄 정도의 거센 반응이었다.

분노. 혼란. 자괴감. 치욕.

수많은 감정들이 일그러뜨린 얼굴에 공존하고 있었다.

“저는 억울하게 학살당한 장안성 백성들을 끝내 외면했습니다! 대의명분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면서 방관했습니다! 그런데 왜…, 어째서 저를 죽이지 않는 겁니까?!”

이해할 수 없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왜 나를 죽이지 않는 거지?

분명,

당신의 손에 죽기를 각오했는데.

인과응보의 말로를 맞이했던 변절자들과 함께 최후를 맞이하여 원죄를 씻고자 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외면하듯이 이성휘는 자신에게 마지막 속죄를 허락하지 않았다.

“제발…! 제발 저를 죽여주십시오…!”

마초가 손을 뻗었다.

애처로운 손길로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철퇴를 내려주기를.

부디 마지막 속죄를 할 기회를 내려주기를.

진심을 다해 호소하면서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

“…….”

간절함이 느껴지는 호소에 이성휘는 침묵으로 대답하면서 우두커니 섰다.

“매일 곁잠을 잘 때마다 장안성에서 죽은 원혼들의 통곡이 들립니다! 저주를 읊는 한탄과 원망이 계속해서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제발, 그 칼로 제 고통을 끊어주세요!”

살고 싶지 않다.

살아갈 이유도,

살아있을 이유 또한 없다.

원죄의 죄책감에 비참하게 말라가던 마초는 사력을 다해 죽음을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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