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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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다.
무간지옥에 떨어진 게 분명했다.
이것이 현실일 리 없다.
일방적인 학살이 반복되는 처참한 광경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꿈이다…! 현실일 리 없단 말이다…!”
강단이 허망함에 찬 목소리를 토해냈다.
조조군의 방진이 파도처럼 전장을 가득 뒤덮으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파도에 삼켜지면 죽는다.
벌써 수많은 장졸들이 방진에 휩쓸리고 말았다.
견고한 방패와 날카로운 창검으로 무장한 난공불락의 성벽은 계속 전진을 거듭하면서 저족과 흉노족 군세들의 공간을 게걸스럽게 빼앗았다.
“다가오지 마라!”
“거기서 더 다가온다면 단칼에 베겠다!”
우세한 질량으로 무장한 조조군의 진격에 속절없이 밀려난 저족과 흉노족은 독 안에 든 쥐 신세였다.
어떻게든 살고자 밀려드는 병사들의 압박을 저지하고자 강단의 무관들이 병장기를 치켜들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크아악!”
“으아… 으아아!!”
살고자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는 순간에도 난공불락의 성벽은 목숨을 위협하고 있었다.
방패를 내리쳐 머리통을 으깼다.
날카로운 장창을 뻗으면서 흉노족 병사들을 꼬챙이로 만들었다.
드드드드드드드드.
방패가 끌리는 소리가 울렸다.
흙먼지를 나부끼면서 굉음과 함께 밀려드는 방진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빽빽하게 밀집된 수만의 군세들 때문에 더 이상 진격이 불가능했음에도 우직하게 뚫어냈다. 피투성이의 시체들을 지르밟으면서 저족과 흉노족을 위협했다.
“죽을 거야! 다 죽을 거라고!”
“으아! 으아아아!! 적들이 몰려온다!!”
한계를 넘어선 공포와 두려움은 자멸로 이어졌다.
극심한 공포 때문일까.
아니면 사방을 둘러싼 압박 때문일까.
각축장에 사로잡힌 병사들이 이윽고 이상행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컥!!”
날카로운 날붙이를 양손에 쥐고 있던 병사가 제 목을 사정없이 찔렀다.
“비켜! 모두 비키라고!!”
지독한 두려움에 이성을 잃어버린 병사는 날붙이를 휘두르면서 전우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지옥이다!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이더냐!”
“두령,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처절한 참혹함만이 존재하는 현장을 목격한 강단이 굴욕에 젖은 목소리로 한탄했다.
그에 무관들이 강단을 이끌었다.
어서 빠져나가야 한다.
이대로 있다간 몰살을 당할 뿐이다.
충성스러운 강단의 무관들은 앞을 가로막는 병사를 베고 또 베면서 강제로 길을 열어젖혔다.
“커헉!”
“비켜라! 비켜라!!”
생존을 향한 의지와 두려움이 동족상잔을 불러일으켰다.
강단을 호위하던 무관들은 동족에게 창검을 내지르면서 산등성이로 향하는 활로를 모색했다.
“미안하다! 용서해다오!!”
절망에 빠진 병사들이 강단에게 손을 뻗었다.
필사적인 애원이,
통곡과 절규가 귓가에 울려퍼졌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사지에서 빠져나고자 애원의 손길들을 끊어내야 했다.
“아악!”
“두, 두령! 어떻게 우리들에게…!!”
검을 번쩍 휘두르면서 손아귀들을 베어냈다.
촤악-!
손아귀를 찢어발겼다.
참격과 함께 손가락들이 우수수 떨어져나갔다.
예리한 칼날로 위협하여 달려들던 병사들을 물러나게 만든 강단은 마침내 무관들과 함께 산등성이에 올랐다.
* * *
견고한 방패와 날카로운 장창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지나간 자리는 오직 피투성이의 융단뿐이었다.
목을 잃은 머리.
사방으로 흩어진 팔다리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하게 짓이겨진 몸뚱이까지.
사방이 온통 저족과 흉노족의 시체들로 가득했다.
포위를 통한 섬멸.
아니,
이것은 섬멸이 아니라 학살이다.
일방적인 유린이 반복되는 학살에 가까웠다.
포위망에 압박당한 군세들은 제대로 무기조차 휘두르지 못하고 죽었다. 그렇게 살해당한 병사들이 거의 대다수였다.
“투창!”
“놈들을 계속 밀어붙여라!”
방패병을 뒤에서 엄호하던 보병들이 뒤로 물러서던 적에게 투창세례를 가했다.
세차게 쏟아지는 투창세례에 맞은 저족과 흉노족이 비명을 내지르면서 쓰러졌다.
피할 방법이 없었다.
대체 어디로 피하란 말인가.
빽빽하게 모여든 밀집대형은 마치 고기방패처럼 무력하게 투창을 허용했다. 연이은 투창세례에 계속 죽음만 반복될 뿐이었다.
“커헉!”
“좌현왕…!!”
숙부 호주천을 보내고서 고립무원의 전장을 통솔하던 유표가 투창세례에 목숨을 잃었다.
다른 장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목숨을 잃은 병력이 무려 수천에 달했다.
“쏴라!”
“군중 너머로 사격하라!”
후방에서 대기하던 궁노병들이 포위망 너머로 화살세례를 가하기 시작했다.
중원을 침략하고자 한수와 동맹을 맺은 야인들에게 베풀 자비는 없다. 조조군은 투창세례에 이어 화살세례까지 가하면서 저족과 흉노족을 더욱 몰아세웠다.
“방진을 풀어라!”
“기병부대! 지금부터 적들을 유린한다!”
쿠웅.
쿠구구구구구궁.
전장을 가로지르던 난공불락의 성벽이 좌우로 열리면서 기병부대가 출진했다.
중앙에서 출격만을 기다리던 기병들은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내달렸다. 이윽고 기병들은 겁에 질린 저족과 흉노족을 잔인하게 짓밟았다.
“오랑캐 놈들!”
“네놈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수많은 병단들을 가용하여 맹공을 퍼붓는 조조군의 공세에서 숙련된 정예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날카로운 창을 겨누면서 달려든 조조군의 기병들은 성난 황소처럼 진격을 가로막는 장해물을 일소했다.
“오랑캐들이 벌벌 떨고 있군!”
“감히 중원을 침략하려 했던 대가다!”
송헌과 성렴이 지휘하는 기병부대가 적들의 유일한 활로였던 산등성이로 진격했다.
땅의 울림 때문일까.
산등성이를 등반하던 수많은 병사들이 추락했다.
어떻게든 탈출하고자 서두르던 발걸음이 원흉이 되어 참사로 이어졌다. 기병부대의 진격에 놀란 병사들이 좌르륵 밑으로 떨어져 죽었다.
“으, 으아악!”
“내 팔! 내 다리이이이!!”
추락에 휩쓸린 병사들의 모습은 매우 처참했다.
수백 명이 한꺼번에 쏠렸다.
마치 시체들을 불태우고자 모아둔 것처럼 보였다.
추락의 여파로 팔다리가 골절된 병사들이 아비규환의 현장을 만들었다.
기괴하게 팔다리가 꺾여버린 병사들이 바닥을 꿈틀대며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는 모습은 악몽에서도 보지 못한 몰골이었다.
“젠장!”
“빨리 가! 빨리 가라고!!”
눈앞에서 벌어진 참상에 경악하던 병사들은 쓰러진 채 시름하던 전우를 밟고 산등성이에 올랐다.
으아악!
크, 크아아…!!
두 발로 밟을 때마다 비명을 울렸다.
그러나 헐레벌떡 도망치는 병사들의 귀에는 시름하는 비명이 들리지 않았다. 송장이나 다름없는 부상병들을 짓밟으면서 위로 나아갈 뿐이었다.
“쫓아라! 놈들을 추격하라!”
“단 한 놈도 위로 보내선 안 된다!!”
처절한 퇴각이 벌어지던 현장에 조조군의 기병들이 도착했다.
유린이 벌어졌다.
잔혹한 학살이 다시금 되풀이되었다.
만리장성을 넘은 병력은 불과 수천에 불과했다.
칼에 베여 죽었다.
창에 찔리거나 화살에 맞아 죽었다.
기병들의 공격에 살해당한 병사들도 많았다.
하지만 가장 많은 사인은 압사(壓死)였다.
무게에 짓눌려 숨통이 끊어졌다.
협소한 공간에 놓인 병사들이 공포에 질린 채 절규와 착란을 반복하다가 스스로 자멸하고 말았다.
실로 잔혹한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 * *
저족과 흉노족 군세들을 삼면에서 포위하여 단번에 섬멸했다.
완벽에 가까운 포위섬멸.
수많은 전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아 마땅한 절세의 전술이었다.
수만에 육박하는 병력을 불과 반나절 만에 모두 몰살하여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완벽에 가까운 전술을 통해 대승을 거둔 조조군은 천하의 패권을 거머쥐고 있음을 만천하에 증명해냈다.
“이겼다!”
“하하핫! 이제 허도로 돌아갈 수 있겠군!”
북방과 중원의 오랜 역사에 한 장을 장식하게 되는 전투가 드디어 종결되었다.
조조군의 완승.
북방과 서융 세력의 대패로 막을 내렸다.
난세로 쇠퇴한 한나라를 침공하여 나라를 건국하겠다는 저족과 흉노족의 야망이 좌절되었으며, 그로 인하여 오호(五胡)들의 시대는 머나먼 훗날로 늦춰지게 되었다.
-한나라에 괴물이 있다.
-검을 휘두르는 악귀가 동족들을 유린했다.
-절대 장성을 넘지 마라. 절대로 넘어선 안 된다.
천신만고를 다하여 초원으로 돌아간 저족과 흉노족은 학살의 공포와 두려움을 퍼트렸다.
처절했던 고함소리.
포위망에 갇힌 채 죽어가던 단말마의 비명.
도움을 청하는 전우들을 뿌리치고서 산등성이를 넘어야 했던 치욕.
극심한 두려움을 겪었던 저족과 흉노족의 생존자들은 반쯤 미쳐버린 미치광이가 되고 말았다.
-으아, 으아아악!!
-검귀! 검귀가 온다아아!!
무려 6만이 넘는 병력들이 한꺼번에 몰살당하는 최악의 참사를 겪어야 했다. 어찌 미치지 않겠는가.
공포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두려움이 역병처럼 확산되었다.
절대 만리장성을 넘어선 안 된다.
저족과 흉노족을 포함한 사방의 이민족들은 한나라를 침략하는 것을 금기(禁忌)하게 되었다.
-울지 마렴, 아이야.
네가 큰 소리로 우니 검귀가 찾아왔구나.
자꾸 울면 검귀가 네 목을 들고 가버릴 거란다.
몰살의 여파로 서역과 북방에서는 수많은 과부들이 생겨났다.
남편을 안타깝게 잃은 과부들은 아버지가 보고 싶다며 아이가 엉엉 울음을 터트릴 때마다 증오와 두려움을 담아 ‘검귀’를 일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