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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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군을 구원하고자 발걸음을 무모한 강행군을 감행했던 한수군과 관중제장 세력이 전멸했다.
살아남은 병력은 극소수.
험준한 산기슭을 오르던 대부분의 병력들이 처참하게 쓰러졌다.
시궁쥐처럼 간교하게 도망치던 서량의 반란군을 일망타진한 조조군은 주변을 포위하여 양천만과 호주천의 역습을 경계했다.
“그으…! 그아아악!!”
왼팔이 잘려나간 노년의 사내가 흙바닥을 나뒹굴면서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댔다.
핏물이 울컥 쏟아졌다.
필사적으로 잘려나간 단면을 꾹 움켜잡았음에도 핏물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필시 과다출혈로 사망할 터.
치명상을 입은 한수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면서 생존을 향한 갈망을 드러냈다.
“드디어 잡았다, 빌어먹을 새끼.”
마초가 이를 빠득 갈면서 말했다.
콰악-.
창을 내리꽂았다.
날카로운 창끝은 흙바닥을 나뒹굴던 한수의 머리맡에 꽂혔다.
“마, 마초…!!”
끔찍한 고통에 절규하던 한수는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복수귀와 시선을 마주하게 되었다.
복수심에 불타는 눈동자.
피와 살점으로 질척질척해진 머리카락.
악몽에서나 나올 법한 흉흉한 모습이다.
날카로운 창검에 몰살당한 가문과 종친들의 복수를 하고자 전장을 돌파하여 추격해왔다. 광기에 물든 복수심을 직면한 한수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어야 했다.
“매, 맹기야…! 살려다오! 제발 살려다오…!!”
피투성이가 된 노인이 목숨을 구걸했다.
잘려나간 단면을 움켜쥔 채,
꼴사나운 몰골로 조카딸에게 추태를 보였다.
“닥쳐!!”
마초가 모멸감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일갈했다.
발을 들어올렸다.
이윽고 한수의 어깨를 콱 짓밟았다.
어깨에 압력이 가해지자 핏물이 세차게 뿜어졌다.
“꺼억, 끄아아악!!”
한수가 두 눈을 까뒤집으면서 격렬히 저항했다.
그러나 자비는 없었다.
날카로운 창끝으로 한수의 어깨를 꿰뚫었다.
끔찍한 파육음과 함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어르신!”
방덕을 대적하던 성공영이 단말마의 비명을 듣고서 소리쳤다.
검을 휘두르면서 방덕을 밀어낸 성공영은 피투성이가 된 주군을 구하고자 했다.
“커헉-!!”
그러나 마대가 달려들어 현장에 개입하려던 성공영의 배후를 찔렀다.
날카로운 칼끝에 꿰뚫려버린 성공영은 피를 토하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맹기야! 나는 그래도… 네 숙부가 아니냐! 제발 목숨만큼은… 목숨만큼은 살려다오! 투항하겠다! 장졸들에게도 투항을 명령하마!”
한수가 굴종적인 추태를 보였다.
소싯적에 반란을 주도하면서 서량을 제패했던 영웅의 기개는 대체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담대하던 영웅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비겁하고 비열한 늙은이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 비겁한 쓰레기가…!!”
한때나마 존경했던 서량의 영웅이 비열한 졸장부에 불과했음을 깨달은 마초는 분노를 토해내면서 병장기를 쥐고 있던 팔을 바들바들 떨었다.
이따위,
이따위 놈에게…!
아버지와 동생들이 살해당했단 말인가.
치욕스럽다.
토혈이 쏟아질 것처럼 분했다.
복수심을 담아 불구대천의 원수를 노려보던 마초의 눈에 짙은 회한이 번져나갔다.
“아버지와 동생들을…! 내 전부였던 가족들을 모두 앗아가 놓고서…!! 그런데도 자비를 바란다고?”
야망을 실현하고자 정적과 후환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던 서량의 모략가가 자비를 구걸했다.
대체 어디까지 더 추락할 셈인가….
더 추해지기 전에,
이 비열한 늙은이를 죽여 버리겠다.
아버지와 동생들을 몰살한 원흉임에도 일말의 정을 품고 있었던 것일까. 한수의 꼴사나운 추태에 마초는 후회와 모멸로 점철된 결정을 내렸다.
“나를 살려준다면 충성을 다하마! 서량을 호령했던 네 아버지처럼 너를 우두머리로 추대해주마! 너와 내가 힘을 합친다면….”
“그냥 죽어. 더 이상 추태 떨지 말고.”
마초가 팔을 뻗으면서 검을 뽑아들었다.
증오를 토해냈다.
아버지의 동생들의 원수에게 모멸을 부르짖었다.
날카로운 칼끝을 치켜들었던 마초는 서량의 마지막 운명을 자신의 손으로 끊어냈다.
푸화악-!!
목이 떨어졌다.
세찬 피분수와 함께 늙은 몸뚱이가 넘어갔다.
인과응보처럼 배신했던 의형제의 딸에게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하하…! 아하하…!”
드디어 원수를 죽였다.
마침내 가족들의 숙원을 달성했다.
처참하게 도륙당한 한수의 주검을 바라보면서 허탈함에 젖은 실소를 터트렸다.
격정의 응어리가 승화되어 만들어진 눈물이 보드라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크읏, 아아…! 아아아아아아아!!”
복수를 달성했다는 기쁨과 허무만이 남아버린 회한이 공존했다.
흙바닥에 툴썩 주저앉았다.
피범벅이 된 검을 내던진 채 비참한 오열을 쏟아냈다.
마침내 원수를 갚았다.
심장소리가 격렬하게 요동치면서 결코 꿈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커헉!”
“크하악!!”
뒤이어 죽음의 연쇄가 벌어졌다.
장횡과 마완이 죽었다.
한수에게 가담했던 서량의 군벌들이 마대와 방덕에게 참살되어 변절의 말로를 맞이했다.
질기고 억센 악연의 고리들을 잘라냈다.
“누님! 놈들을 모두 처리했습니다!”
악전고투를 치르고서 복수를 달성한 마대는 고양감에 찬 환열을 담아 누이를 바라보았다.
눈물을 흘리면서 오열하는 누이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 마대는 아연실색하며 발걸음을 멈췄다.
“누, 누님….”
늠름하고 다부진 여장부의 모습만을 보였던 누이가 어린아이처럼 애처롭게 울고 있었다.
기쁨의 환열은 없었다.
구슬픈 오열에는 처량한 허무만이 존재할 뿐이다.
“마음이 많이… 격해지신 모양입니다.”
방덕이 숙연함에 물든 표정을 지었다.
그에 마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마음이 격해지지 않을까.
가문과 종친들을 살해한 원수를 마침내 죽였는데.
마대는 누이의 속내를 헤아리지 못하고 철부지처럼 기뻐했던 본인의 경거망동을 크게 자책했다.
“…….”
회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구슬프게 울부짖는 마초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사투를 벌인 상대였을 터.
짧은 찰나에 미운정이라도 든 것일까.
조운은 조용히 팔을 치켜들면서 현장을 수습하려던 장졸들을 잠시 물렸다.
“아버지…. 드디어 끝났어요.”
주저앉은 채 오열하던 마초가 중얼거렸다.
끝났다.
이제 드디어 끝났다.
절치부심하며 고통의 굴레를 끝까지 감내한 덕분에 한 맺힌 복수의 끝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한수. 성공영. 염행.’
숙적의 무리들을 진멸했다.
‘후선. 정은. 이감. 장횡. 성의. 마완. 양추.’
한수에게 가담했던 더러운 배신자들에게 변절의 말로를 안겨주었다.
‘이제 드디어… 쉴 수 있겠네요. 머지않아 아버지와 동생들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겠어요.’
손을 뻗었다.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이제 마지막 표적을 죽일 때다.
아버지와 동생들을 끝내 지켜내지 못했던 불효녀를 죽여 길고 길었던 고통을 끝내고자 했다.
* * *
연전연패를 당한 저족과 흉노족은 무위군을 포기하고 북쪽으로 퇴각했다.
한수가 죽었다.
그를 따르던 군벌들도 몰살되었다.
조조군의 급습으로 서량 세력이 사실상 멸망하면서 저족과 흉노족은 전쟁의 명분을 잃고 말았다.
부화뇌동의 혼란에 접어든 양천만과 호주천은 전선에서 군세들을 철수시켰다. 그로 인해 수만의 병력들은 만리장성으로 내몰리는 파국을 맞이했다.
“장성이다…!”
“선우! 어서 장성을 넘어야 합니다!”
위풍당당한 기염을 발산하면서 남하했던 저족과 흉노족 군세는 모순적이게도 ‘장성’에 가로막혔다.
계속 북진하던 군세들이 멈췄다.
6만의 병력들이 만리장성을 넘지 못하고 좁은 공간에 가로막혔다.
저족과 흉노족을 추격하며 북진을 계속해서 거듭했던 조조군이 마침내 만리장성 이남에 도착했다. 양떼처럼 울타리에 몰아넣은 이민족들을 모조리 도륙하기 위해서였다.
부우우우우우우우.
두웅-!! 두웅-!! 두웅-!! 두웅-!!
지평선을 메울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고각소리는 몰살을 알리는 신호였다.
산등성이에 위치한 만리장성을 빤히 바라보던 저족과 흉노족의 군세들은 떠밀리듯 배수진(背水陣)을 칠 수밖에 없었다.
“오냐! 다 죽여주마!!”
7척의 거인이 대검을 늘어뜨리면서 소리쳤다.
저왕(氐王) 양천만.
그는 죽기를 각오하고서 선두를 이끌었다.
조조군과의 혈전에서 중상을 입었음에도 용맹을 과시하면서 저족 전사들을 지휘했다. 결코 무력하게 당해주지만은 않겠다는 결의가 엿보였다.
“북방의 용장들이여! 검을 뽑으라!”
“어찌 묵돌 선우의 핏줄들이 중원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겠는가!”
호주천이 소리쳤다.
유표 또한 가세하며 검을 치켜들었다.
최후의 일인까지 장성을 등지고서 싸우리라.
연쇄적으로 이어진 거센 악전고투를 치렀음에도 흉노족의 두령들은 전투를 결심했다. 중원 놈들에게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흉노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드디어 저들을 장성에 몰아세웠네요.”
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참모가 만리장성에서 배수진을 형성하고 있는 군세들을 응시하며 말했다.
만리장성을 이용한 포위전이 마침내 펼쳐졌다.
군단들을 투입하여 파상공세를 이어나갔던 것이 바로 지금을 위해서였다. 계획대로 저족과 흉노족은 패퇴와 패주를 반복한 끝에 벼랑까지 내몰리게 되었다.
“이제 무대가 마련되었네요. 외적들을 모두 격퇴하여 대장군의 위엄을 만천하에 떨칠 때예요.”
“…….”
순유가 말했다.
그에 이성휘가 검을 뽑아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군 입진!!”
고순이 고함을 내지르자 장수들이 좌우로 도열하면서 길을 열었다.
이성휘가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 뒤를 충성스러운 장수들이 뒤따랐다.
드디어 천하제일검이 전장에 선다.
병장기를 치켜든 장졸들은 천하제일검을 선망과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강렬한 기대를 등에 업은 이성휘는 근위기병들을 이끌고 직접 선두에 섰다.
“전열을 갖춰라. 돌격을 준비하라. 감히 만리장성을 넘은 서융과 북적에게 침략자의 말로를 보여주자.”
대장군의 대장기가 선두에서 펄럭였다.
드디어 움직였다.
마침내 침묵을 깨고 천하제일검이 나섰다.
어리석은 만용을 떠안고서 중원을 침략했던 외적들에게 죽음을 선고할 때가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