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9화>
==============================
함정에 빠졌다.
놈들의 계략에 휘말렸다.
사방에서 빗발치는 화살세례가 덫에 걸려든 어리석은 무리들을 징벌하기 시작했다.
“크학!”
“무, 물러서라!”
무위군을 사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내달렸던 강행군은 죽음을 재촉하는 우행(愚行)이 되고 말았다.
교활한 함정에 빠져버린 서량군 장졸들은 쏟아지는 화살세례를 피해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험준한 산기슭에서 기습을 당한 것이었기에 기민한 대처를 취하기 쉽지 않았다.
분명 그것을 노린 것이다.
음험한 모략을 꾸민 책략가는 의도적으로 산기슭에 장료와 복병들을 배치시켰다.
“놈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보병들은 나를 따르라!”
산기슭에 몰래 은신하던 보병들이 벌떡 일어섰다.
창검을 거머쥔 보병들이 비탈길을 내려오면서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던 서량군을 급습했다.
푸욱-!
푸후우욱─!!
일방적인 살육이 펼쳐졌다.
전열이 무너졌다.
서량군은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스스로 함정으로 들어온 서량군은 일방적인 살육에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비명과 절규를 내지르면서 활로를 찾을 뿐이었다.
“어서 어르신을 지켜라!”
날카로운 창을 치켜든 염행이 소리쳤다.
단단히 중무장한 병사들이 한수를 호위하면서 화살세례를 온몸으로 막았다.
그러나 안심할 순 없었다.
흉악한 적수가 사자후를 내지르면서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수! 네놈을 기필코 죽이겠다──!!”
서량의 금마초.
복수에 미친 귀신이 달려오고 있었다.
한수를 호위하던 염행은 마초를 노려보면서 병장기를 움켜쥐었다.
어르신으로부터 명령이 떨어지면 망설임 없이 돌격하여 마초와 단기접전을 벌이려 했다.
“마, 마초…!”
“이런 지독한 년! 여기까지 쫓아왔단 말이냐!”
전장을 질주하면서 흉노족 군세들을 밀어붙이던 서량의 금마초가 왜 배후에서 나타난단 말인가!
분명,
뒤를 계속 쫓아온 게 틀림없었다.
실로 지독한 년이다.
아버지와 동생들의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만으로 전장을 돌파하여 배후에 도달하는 기염을 토하다니.
한수에게 빌붙었던 관중제장은 새파랗게 질린 표정을 지으면서 마초를 경계했다. 창을 치켜든 일기당천의 맹장이 자신들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규! 어르신을 모시고 빠져나가라!”
“예!”
화살세례를 피해 도망치던 장졸들을 무자비하게 찢어발기면서 달려드는 피칠갑의 괴물.
저것은 귀신이다.
결코 어르신에게 보낼 순 없다.
염행은 부하들과 함께 마초를 대적하려 했다.
“한수우우우──!!!”
온몸을 피와 살점으로 물들인 맹수가 포효했다.
드디어 보인다.
증오스러운 숙적이 보였다.
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었던 ‘숙부’가 저 너머에 있었다.
“물러서라, 짐승 같은 년아! 내가 대적하겠다!”
“염행!!”
염행이 창을 치켜들었다.
그에 마초가 염행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네년과 네년의 사촌까지 모두 죽이겠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마씨 일족까지 모두 끊어내어 지긋지긋한 악연에 종지부를 찍으리라.
염행이 창을 내지르며 마초의 목숨을 노렸다.
“염행! 네놈부터 목을 쳐주마!”
불구대천의 원수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옹주 제일의 맹장을 처리해야 했다.
그림자처럼 한수를 호위하는 염행은 끝까지 복수에 걸림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초는 우선적으로 염행을 노렸다.
‘분명 네놈도 살생부에 이름이 있었지…!’
성공영과 함께 염행은 한수의 심복으로서 살생부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것을 떠올린 마초는 양손으로 병장기를 움켜쥐면서 살의를 발산했다.
“죽여주마, 한수의 똘마니!”
“마초!!”
양주 제일의 맹장.
옹주 제일의 맹장.
서량을 대표하는 맹장들이 서로에게 창격을 내지르면서 격돌했다.
둘은 오랜 숙적관계였다.
마등군과 한수군이 각축전을 벌일 때마다 전장에서 조우하여 혈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부분 무승부를 기록했다.
한쪽이 크게 우세했더라면 아마도 둘 중에 한 명은 결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테니.
“크흡!”
“그아아아!!”
살벌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사나운 고함과 함께,
병장기들이 금속의 포효를 이어나갔다.
쩌적-!
쩌저저저정──!!
마초와 염행의 무위는 거의 비등했다.
순식간에 수십 합을 치렀다.
그럼에도 두 맹장들은 계속 공방을 이어나갔다.
“과연 대단하군, 마초. 중원 놈들에게 목숨을 구걸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실망했었는데….”
“잡졸 하나를 쓰러트리는데 힘을 쓸 게 있겠어?”
염행의 말에 마초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그에 염행이 큭큭 웃음을 터트렸다.
“잡졸이라…. 그렇다면 네년의 피붙이들은 모두 이 잡졸에게 죽은 셈이로군.”
“뭐?”
“무위군에 있던 네년의 친척들을 모두 참살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지?”
“이 개자식이…!!”
남성과 여성,
노인과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무위군의 마씨 일가를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몰살시킨 원흉이 눈앞에 있다.
마초의 얼굴이 경악과 노여움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염행이 조소하며 창을 움켜쥐었다.
일가를 몰살시키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범한 원수가 눈앞에 있다. 마초는 광분을 토해내면서 염행에게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염행!! 네놈을 잘게 찢어발겨주마──!!!”
죽여 버리겠다.
반드시 그 낯짝을 찢어발겨주마.
비분강개하며 증오를 토해냈다.
친척들을 무자비하게 몰살한 범인이 눈앞에서 조롱하고 있다. 그 도발을 참을 수 있을 리 없었다.
“큭! 무식한 년!”
마초가 연이어 창을 내리쳤다.
쩌엉-! 쩌엉-! 쩌엉-! 쩌엉-!
싸구려 도발에 걸려들었다.
덕분에 어르신께선 부하들과 무사히 현장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소정의 목적을 완수하였음에 염행은 창을 치켜들면서 마초에게 반격을 가했다.
“그아아아아아아──!!!”
괴성으 내지르며 염행에게 증오를 휘둘렀다.
공방이 수백 합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쉽사리 성패가 정해지지 않았다.
접전이 팽팽하게 이어질수록 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워지면서 숨이 차올랐다. 마초와 염행은 거칠게 숨을 토해내면서 서로를 계속 노려보았다.
“하아…! 하아…!!”
어깨를 들썩였다.
숨을 토해내면서 병장기를 움켜쥐었다.
이대로 끝낼 순 없다.
기필코 눈앞의 원수를 죽인다.
들불처럼 타오르는 복수심이 마초를 이끌었다.
“마초를 죽여라.”
염행이 명령했다.
그에 염행의 부하들이 창검을 치켜들면서 마초에게 다가섰다.
“비겁하다고 생각하진 마라. 설령 무명을 더럽히더라도 어르신을 우선하는 것이 내 사명이니.”
염행이 뒤로 물러섰다.
거의 힘을 다했는지,
발걸음이 몹시 비틀대고 있었다.
결투에서 몇 번이고 죽을 위기를 넘긴 염행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래서 부하들에게 마초를 대신 처리하도록 명령한 것이었다.
“과연 비겁하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네놈들다운 방식이야. 힘으로는 못 이기니까 잔머리만 굴려대지.”
창검을 치켜들면서 천천히 다가오는 적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갑자기 다수를 상대하게 된 상대하게 된 불리한 상황이었음에도 태연한 모습이었다.
일방적으로 괄시를 당했다고 여긴 염행의 부하들은 창검을 번뜩이면서 마초를 위협했다. 당장 달려들 것처럼 흉흉한 기세였다.
“근데 잔머리는 이쪽이 더 빠른 모양이네.”
“뭐?”
적들에게 포위된 마초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히이이이잉─!!!
그 순간,
말의 울음소리와 함께 기병이 달려들었다.
“가후 군사가 보냈다.”
신출귀몰하게 전장에 난입한 장수는 회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걸이었다.
위기에 봉착했던 마초를 바라보면서 눈살을 찌푸린 여걸은 현란하게 병장기를 휘두르면서 염행의 부하들을 모두 도륙했다.
“크아악!”
“조, 조조군이다…!”
늦지 않게 적기에 도착하여 마초를 구해냈다.
조운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전장에 가세한 본인의 결정을 후회하는 듯했다.
“고마워, 도와주러 와줘서.”
마초가 창을 내지르면서 염행을 쓰러트렸다.
그 뒤,
양손으로 창을 내리찍었다.
“크윽! 크아아악!!”
염행이 비명을 토해냈다.
날카로운 창끝이 어깨를 관통했기 때문이다.
콰직-! 콰직-!!
계속해서 파육음이 이어졌다.
단칼에 철천지원수의 목숨을 끊어줄 생각이 없었기에 급소를 피해 쑤셔넣었다.
날카로운 창끝이 온몸을 찌를 때마다 염행은 온몸을 바들바들 떨어대면서 고통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그쯤해둬. 그러다가 놓치겠어.”
“…어.”
조운이 미간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그에 마초는 창을 도끼처럼 내리치면서 철천지원수의 머리를 박살냈다.
* * *
염행에게 장졸들을 일임한 한수는 관중제장과 함께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이미 무위군은 함락되었다.
조조군과 더 이상 싸워봤자 승산이 없었다.
크게 쇠약해진 한수는 양천만과 호주천을 의지하고자 전장에서 도주했다. 대다수의 병력들을 그대로 산기슭에 버려둔 채로 말이다.
“저 늙은이가 한수다!”
“한수를 죽여라! 저기 한수가 도망친다!!”
하지만 패주는 쉽지 않았다.
마대와 방덕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이미 패망한 마등군의 잔당들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가당찮은 처지에 놓였다. 그에 한수는 죽음의 손아귀가 목을 움켜쥐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어서 피하십시오, 어르신!”
한수를 보필하던 성공영이 장졸들과 함께 말머리를 돌렸다.
염행이 그러하였듯 성공영 또한 주군을 지켜내고자 결사를 선택했다. 죽음을 각오한 장졸들이 마대와 방덕을 가로막았다.
‘큭…! 전장에서 너무 지체했군!’
한수가 침음을 삼키면서 말에 박차를 가했다.
시간을 너무 허비했다.
산기슭에 낙오된 병력들이 대부분 전멸했을 터.
기습을 주도했던 조조군에게 붙잡힐까 두려웠던 한수는 심복들마저 내버린 채 패주를 감행했다.
‘아직… 아직 승산은 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후일을 도모할 것이다! 지금까지 성공해온 것처럼!!’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경험했음에도 지금의 자리에까지 올라오지 않았던가.
맹주로 추대했던 북궁백옥과 왕국을 모살하여 기사회생에 성공했던 지난날들을 떠올린 한수는 전력으로 질주하는 군마에 온몸을 의지했다.
“한수, 이 마맹기가 네놈을 죽이러 왔다──!!!”
온갖 풍파를 겪은 듯한 초췌한 몰골의 남성이 군벌들과 함께 포위망을 빠져나가고 있었을 때,
피칠갑을 한 귀신이 맹렬히 쫓아왔다.
무사히 따돌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에서 비롯된 착각이었다.
염행을 도륙하여 길목을 돌파한 마초는 만무부당의 맹위를 발산하면서 마침내 불구대천의 원수에게 도달했다.
“으아악!!”
장횡이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마, 마초…!!”
마완 또한 마찬가지였다.
흉신악살처럼 지독한 살의를 쏟아내면서 달려든 마초의 위세에 놀라 말에서 떨어졌다.
“이 쥐새끼 같은 놈아!!”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마침내 원수를 따라잡았다.
맹렬한 혈기가 온몸을 감싸는 듯했다.
계속 박동치는 심장소리가 매우 시끄러웠음에도 마초는 끝까지 냉정함을 유지했다. 코앞까지 다가온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마초! 이 거머리 같은 계집이…!!”
한수가 일갈하면서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그러나,
이미 마초의 창은 휘둘러진 뒤였다.
결코 원수에게 자비를 베풀 마초가 아니었다.
“그, 그아아아아악!!”
촤악,
핏물이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주인을 잃은 팔이 허공을 날았다.
칼자루를 움켜쥐고자 했던 왼팔은 역할을 완수하지 못한 채 어깻죽지에서 잘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