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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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中原)과 서량(西涼).
서역(西域)과 북적(北狄).
여러 세력들이 참전한 최대의 쟁투가 펼쳐졌다.
누가 서량의 패권을 쥘 것인가.
그것은 이 쟁투의 성패를 통해 결정될 터였다.
“돌격하라!”
“우리 부대도 아군에게 가세한다!”
파랑이 몰아치는 것처럼 수많은 기마군단들이 전투에 동원되었다.
수만을 훌쩍 넘어서는 기병들이 흙먼지를 나부끼면서 질주를 감행했다.
물러서지 마라.
적을 격퇴하여 고지를 점령하라.
중원과 서량에 이어 서역과 북적까지도 가세하면서 사상 초유의 기병전(騎兵戰)이 탄생했다. 거친 말발굽과 울음소리가 전장 전역을 가득 메웠다.
“서량의 금마초다!”
“마초…! 마초가 나타났다!!”
갈색 머리카락을 나부끼면서 달려드는 여걸의 모습에 저족을 거느린 두령들은 공포에 질린 고함을 내질렀다.
기병부대를 이끌고 서량을 휩쓸었던 일기당천의 여걸은 흉포하고 난폭한 서융(西戎)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역병과도 같았다.
마초!
마초가 나타났다!
공포에 질린 절규들이 뒤따랐다.
마초가 선두를 가로막는 적들을 분쇄하면서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공포가 더욱 깊어졌다.
“한수! 어서 썩 모습을 드러내라!!”
핏물을 뒤집어쓴 귀신이 소리쳤다.
한수,
세력과 종친들을 몰살한 불구대천.
분명 좌우에 관중제장을 거느리고 있을 터.
복수의 완수가 머지않았다.
혈혈단신으로 적진을 뚫어낸 마초는 바람에 나부끼는 한수군의 군기들을 노려보면서 일점돌파를 이어나갔다.
“계집 주제에 오만하기 짝이 없군!”
쌍수검을 늘어뜨린 거한의 사내가 달려들었다.
양복.
저족의 우두머리인 양천만의 종제(從弟)였다.
태산처럼 우악스러운 양천만의 종제답게 양복 또한 기골이 장대한 거인이었다.
콰아악-.
양손으로 칼자루를 거머쥔 양복은 당장이라도 마초를 일도양단할 것처럼 위협했다.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던 저족의 두령들은 기대에 찬 눈길로 용맹하게 뛰어든 양복을 바라보았다.
“네 이년! 토막을 내주마!!”
검을 번쩍 휘둘렀다.
쩌어엉──!!!
뒤이어 마초의 창과 충돌했다.
쌍수검을 내질렀던 양복은 마초의 압도적인 괴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잠시 물러섰다.
그 순간 날카로운 창끝이 파고들었다.
“큭!!”
양복의 가슴에 창이 꽂혔다.
하지만 거인은 버텨냈다.
날카로운 창끝이 가슴을 파고들었음에도 이를 빠득 갈면서 한손으로 창을 움켜잡았다.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로 가득했다.
“그아아아아!! 찢어발겨주마!!”
저족의 거인이 성난 곰처럼 달려들었다.
그에 마초는 허리에 찬 검을 뽑았다.
촤악!!
촤아아악──!!!
세차게 도륙했다.
절예의 검술을 휘두르면서 거인의 우악스러운 거구에 수많은 혈선들을 새겼다.
“쇠가죽처럼 질긴 놈.”
날카로운 칼끝이 양복의 아래턱을 관통하여 뒤통수로 튀어나왔다.
푸화아악-.
뇌수가 울컥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거인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양복 왕이 쓰러졌다!”
“마초…! 저 년은 정녕 귀신이란 말인가!”
일당백의 거인이 가느다란 체구의 여인에게 별다른 저항조차 못해보고 쓰러졌다.
양복을 참살한 마초는 가슴을 꿰뚫은 창을 다시 뽑아들면서 돌격을 반복했다. 한참 멀게만 느껴졌던 한수군의 군기들이 어느덧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마초 장군의 뒤를 따르라!”
“변방의 오랑캐들이 겁에 질려 물러서고 있다!”
“지금이 기회다-! 감히 장성을 넘은 외적들에게 중원의 힘을 보여주자!!”
마대와 방덕이 마초를 뒤따랐다.
이윽고 성렴과 조성이 후열을 이끌고서 가세했다.
거센 모래바람이 몰아쳤다.
그럼에도 조조군은 공세를 망설이지 않았다.
황량한 전장을 질주한 기병들이 창검을 내지르면서 마초가 뚫어낸 공격로를 열어젖혔다.
일점돌파에서 시작된 조조군의 공세가 계속 이어질수록 저족 군세는 뒷걸음질을 반복했다. 그에 한수군과 관중제장 세력도 떠밀리듯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 * *
저족 군세가 패퇴했다.
후열로 합류한 흉노족 기병들도 밀리기 시작했다.
계속 무승부와 패퇴를 반복하고 있다.
강대한 세력들이 연합한 동맹군이 조조군의 공세에 무력하게 뒷걸음질만을 이어가고 있었다.
“전황이 어찌 돌아가고 있단 말인가!”
“젠장, 저족 놈들…! 승리를 호언장담하더니!”
진서장군 한수를 호위하던 관중제장들이 분개를 토해내면서 저족의 무력함을 규탄했다.
며칠 동안 계속 완패의 고배를 마셨다.
기울어진 전세를 회복하고자 양천만과 호주천은 사력을 다해 역공을 벌였음에도 조조군에게 넘어간 전세를 회복하기란 불가능했다.
“퇴각하라!”
“진채를 뽑고 퇴각한다!”
또 완패했다.
무려 엿새째였다.
엿새 동안 무려 여덟 번을 싸웠음에도 모두 패배하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다.
대체 어쩔 셈이란 말인가.
한수는 전령을 보내어 양천만과 호주천에게 절박함을 호소했음에도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많은 병력을 잃었다.
물자마저 적에게 노획품으로 빼앗겼다.
심지어 패주를 거듭하면서 병사들의 사기까지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르신, 퇴각하셔야 합니다. 척후들이 전장에서 마초를 포착했습니다.”
“찰거머리 같은 년!”
성공영의 보고에 한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말머리를 돌렸다.
저족과 흉노족의 연전연패에 절규하던 한수는 마초의 집요한 추격에 분통을 터트렸다.
이게 대체 몇 번째인가?
엿새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마초는 기병들을 거느리고서 한수군의 본진을 들이쳤다.
복수귀의 광기어린 집착에 대경실색한 한수는 마초를 포착할 때마다 후방으로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또 물러나야 한단 말이냐!”
“호주천 선우가 비등하게 싸우고 있으나… 결국 패주할 것 같습니다.”
엿새 동안의 연패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저족을 대신하여 흉노족이 선두를 이끌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남흉노는 저족보다 훨씬 무기력하게 패퇴하는 수모를 당했다.
“안 된다! 더 이상 어디로 물러선단 말이냐!”
이번 전투에도 패퇴한다면 조조군에게 무위군을 빼앗기게 될 터였다.
무위군의 방위가 무너졌다.
조조군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무위군만큼은 지켜내야 한다.
다급한 위기감을 느낀 한수는 양천만과 호주천에게 전령을 보내어 지원군을 부탁했다. 일단 어떻게든 무위군만이라도 지켜내야 한다는 초조함이 느껴졌다.
“어르신!”
한수군의 장수였던 양규가 달려왔다.
“무위군이 조조군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별동대를 보내어 급습한 것 같습니다!”
“대체 어떻게 방위를 뚫었단 말이냐!”
1만의 병력을 무위군에 남겨두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지 않았는가.
무위군이 공격받고 있다.
서둘러 대응하지 않으면 거점을 잃게 되겠지.
한가롭게 양천만과 호주천의 지원군을 기다릴 때가 아니었다.
“내가 직접 가겠다!”
“어, 어르신?!”
한수가 호기로운 면모를 보이면서 나섰다.
그에 성공영이 놀라 소리쳤다.
“성이 함락되지 않았다면 승산은 충분하다! 무위군만큼은 내 손으로 지켜내겠다!”
무리하게 공세를 감행한 조조군은 오로지 무위군의 함락에 집중하고 있을 터.
그 틈을 노리겠다.
공성에 집중하고 있는 조조군의 배후를 공격한다면 대승을 노려볼 만했다.
기사회생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던 한수는 본대를 성공영에게 맡긴 채 관중제장을 이끌었다.
“나를 따르라, 서량의 용장들이여!”
이번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
이번에야말로 놈들의 오만을 꺾어주겠다.
엿새 동안의 참패로 굴욕을 당한 한수는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듯 과감한 반격을 결정했다.
이감과 성의, 마완이 한수를 뒤따랐다.
조조군을 물리치고 관서와 관중을 탈환하겠다는 각오를 품은 관중제장 세력은 무위군으로 나아갔다.
‘무위군은 내 것이다! 마등을 죽이고 빼앗은 영토란 말이다! 네놈들에게 허망하게 빼앗길 것 같으냐!!’
저족과 흉노족의 환심을 얻어내려고 무위군 백성들을 팔아넘겼음에도 뒤틀린 망집을 자랑했다.
세력과 영토,
마등을 죽이고 모든 것들을 빼앗았다.
누구에게도 결코 넘겨줄 수 없다.
인고의 세월을 바친 덕분에 거머쥘 수 있었던 수많은 군벌들의 유산이 아닌가. 이대로 무력하게 빼앗기지만은 않을 것이다.
“드디어 걸려들었다!”
“변방의 수괴들아, 이번에는 못 도망친다!!”
한수와 관중제장이 강행군을 거쳐 무위군에 도달하였을 때,
조조군이 삼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교활한 여우처럼 매번 빠져나가던 한수도 무위군이 위험에 봉착했다는 급보만큼은 격렬히 반응할 터.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보았다.
예상대로 한수는 스스로 외통수에 걸려들었다.
제아무리 모략에 능한 한수라도 중상모략의 대가였던 가후에게는 한낱 애송이에 불과했다.
“적들이 함정에 걸려들었다! 박차고 나아가 역적들을 진멸하라!!”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우렁찬 사자후를 내지르면서 총공세를 명령했다.
정동장군(征東將軍) 장료.
순식간에 무위군을 함락시킨 장료는 전장과 이어진 산기슭에 매복을 준비했다.
분명 한수는 관중제장과 함께 쳐들어올 터.
가후에게 언질을 받았던 장료는 노련한 궁노병들을 길목마다 배치했다. 궁지에 몰린 시궁쥐들이 냅다 달려들기만을 기다린 것이다.
“쏴라!”
“놈들을 벌집으로 만들어라!”
산기슭에 매복하고 있던 궁노병들이 벌떡 일어서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삼면에서 활이 빗발쳤다.
날카로운 화살세례들이 서량의 반란군을 위협했다.
가후의 매복계에 고스란히 걸려버린 서량 병사들은 조조군의 일제사격에 그대로 노출되고 말았다.
“퇴각하라…! 어서 퇴각하라!!”
조조군의 함정이다.
교활한 함정에 넘어가고 말았다.
비명을 토해내면서 떼죽음을 당하는 장졸들의 최후를 지켜보던 한수가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이 한문약이 이따위의 협잡에 넘어가다니….
섣불리 병마들을 동원하는 경거망동을 범한 한수는 스스로의 경솔함을 자책했다.
“한수──!!!”
심복들을 대동하고서 급히 전장을 이탈하려던 한수를 향해 쩌렁쩌렁한 고함소리가 날아들었다.
“이 마맹기가 네놈을 죽이러 왔다!!”
서량의 복수귀가 도달했다.
아버지와 동생들,
비명횡사한 일가친척들의 복수를 하고자.
마초가 휘하들을 이끌고서 퇴로를 가로막았다.
집요한 추격을 따돌리고자 후퇴를 반복하면서 마초를 헛걸음을 하게 만들었던 한수였지만, 계속 칠전팔기를 거듭하면서 추격을 이어왔던 복수귀에게 배후를 붙잡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