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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486화 (486/616)

<48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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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

또 이 악몽이다.

-살려다오!

-누님! 누니이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아버지와 동생들이 찢어지는 비명을 내지르면서 손을 뻗었다.

아버지.

마휴. 마철.

한수와 관중제장의 더러운 모략에 살해당한 가족들이 억센 손아귀로 팔을 붙잡았다.

어째서냐.

어째서 우리들을 구하지 못했느냐.

서량의 금마초라 불리면서 수많은 장수들의 귀감이 되었음에도 정작 가족들을 구하지 못했다.

소중한 가족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다시금 짓밟았다. 마음을 찢어발긴 죄책감이 악몽으로 변용하여 정신을 갉아먹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탐스러운 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은 바닥에 엎드린 채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가문과 일가친척을 모두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인 마초는 한낱 가련한 계집에 불과했다.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죄책감에 찬 오열을 토해냈다.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가족들을 마주할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속을 헤집어놓는 격정의 소용돌이에 구역질마저 느껴졌다.

-이 년!

-내가 널 업어 키웠거늘!

-네년이 우리 일족을 망친 게다! 네년 때문이다!!

무위군에서 한수군의 손에 살해당한 친척들이 시커먼 연기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사방에서 손아귀들이 날아들었다.

머리를 잡아당겼다.

어깨를 짓누르면서 팔과 다리를 꼬집었다.

“아악…! 으으, 아아아악…!!”

팔을 휘두르면서 저항하면 언제든지 손아귀들을 모두 뿌리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불가능했다.

마비라도 된 것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반드시 지키겠다고 맹세했던 혈육들을 모두 잃었다는 절망과 죄책감이 무거운 중압감이 되어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차라리 저를 죽여주세요…! 무엇 하나도 지키지 못한 저를… 차라리 죽여 달라고요…!!”

억센 손아귀들에 휩싸인 여인이 절망감으로 퇴색된 호소를 토해냈다.

죽고 싶다.

차라리 죽고 싶었다.

가족들을 따라 영원한 안식을 맞이하고 싶었다.

일족의 복수. 부하들의 안위.

홀로 짊어지기엔 너무도 무거운 짐이었다.

당장이라도 온몸이 꺾여버릴 것만 같았기에 마초는 죽음을 염원했다. 막중한 부담을 짊어진 그녀에게 있어 삶이란 그저 고통과 절망에 불과했으니까.

“아아…!!”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것은 악몽일 뿐,

그럼에도 그녀는 아직 살아있었다.

살아있기에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살아있기에 절망과 죄책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 어떤 발악을 하더라도 그녀는 영원한 연쇄에 사로잡힌 채 한없는 절망을 경험하게 될 터였다.

-마초, 네 이년…!

-네년이 내 아내를… 내 자식들을 죽였어!

-용서 못한다! 절대 용서 못해! 끝까지 저주해주겠다! 네년의 가문이 천벌을 받은 것처럼 말이다!!

사방에서 피투성이의 망령들이 몰려들었다.

수만 명에 이르는 인파였다.

그들은 모두 흉측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창검에 도륙되어 팔다리를 잃은 장안성의 망령들은 휘청대는 발걸음으로 마초에게 다가왔다.

“그만…! 제발, 제발 그마아안!!”

이 악몽에서 깨어나기를.

부디,

고통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그러나 사방에서 몰려드는 망령들을 바라보면서 간절히 기도했음에도 악몽은 한없이 집요하기만 했다.

핏물과 살점들로 물든 손아귀들이 온몸을 붙잡으면서 날카로운 상처를 새겼다.

악몽에 사로잡힌 여인은 계속 고통에 찬 비명을 외쳐야 했다.

* * *

본인도 모르는 틈에 잠시 겉잠에 빠졌던 마초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두 눈을 번쩍 떴다.

“하아…! 하아아…!!”

이번에도 지독한 악몽이었다.

숨을 헐떡였다.

격앙된 호흡을 수차례 토해냈다.

악몽에서 겪은 잔악한 고통 때문일까.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또 악몽을 꾸셨습니까.”

바깥을 호위하던 무관이 물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잠에 들 때마다 매번 악몽을 치렀던 탓에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는 일이 잦았다.

그렇기에 마초가 내지른 단말마의 비명에도 바깥을 지키던 무관들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분명 이번에도 악몽을 꾼 것일 테니까.

“후우…. 잠시 산보 좀 다녀올게.”

“예, 알겠습니다.”

대장군 이성휘의 명령으로 선봉장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마초는 감시를 받는 처지였다.

그래서 군막을 잠시 나설 때도 항상 호위하는 무관에게 허락을 구해야만 했다.

“어서 이것들을 모두 옮겨!”

“마구간에 군마들이 잘 있는지 확인했겠지?!”

햇볕이 비춰들기 전의 새벽녘이었음에도 둔영은 매우 부산스러웠다.

전면전을 앞두고 있다.

당연히 그 준비로 바쁠 수밖에 없었다.

장졸들은 병장기를 비롯한 물자를 나르면서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전면전을 앞둔 병사들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하기만 했다.

“이 시간에 산보라니.”

“누군 바빠서 죽겠는데…! 참으로 한가하시군!”

마초를 목격한 병사들이 불만을 투덜거렸다.

선봉군을 지휘하여 계속 연전연승을 거두는 기염을 토해냈음에도 여전히 시선들이 따갑기만 했다.

마초를 경외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마초를 업신여기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갖가지의 시련과 고난들을 겪어야 했던 일기당천의 맹장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단아였다. 어느 세력도 그녀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으니까.

“마초 장군?”

사방에서 집중되는 힐난과 모멸의 시선에 쓴웃음을 짓던 마초에게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다가왔다.

장료.

대장군의 오른팔이었다.

이 새벽에 무슨 용무가 있는 걸까.

예상치 못한 조우에 어깨가 뻣뻣하게 굳었다.

“혹시 잠이 잘 안 오시나요?”

“으, 으응….”

악몽 때문에 잠을 설쳤다는 말할 수 없었기에 대충 얼버무리듯이 대답했다.

마초의 대답에 장료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군요. 저도 결전을 앞둔 전날에는 잠이 안 와서요.”

“어째서? 분명 산전수전을 겪은 몸일 텐데.”

대장군의 심복이라면 당연히 수많은 난전들을 승리로 이끌었던 역전의 용사일 터.

긴장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니.

호랑이가 작은 초식동물들에게 벌벌 떠는 것만큼이나 이상한 일이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몸이라도 전날마다 매번 잠을 설치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답니다. 후후, 정말 이상하죠?”

“…아니, 이상할 것까진 없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다운 장료의 미소에 마초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돌렸다.

여포가 그러하듯,

장료 또한 절세의 미녀였다.

오로지 경국지색의 미녀들만 대장군의 심복으로 임명될 수 있는 걸까.

그런 의문이 문득 들었을 정도로 대장군 휘하의 장수와 참모들은 출중한 미색과 매력을 자랑했다.

“마초 장군은 괜찮으신가요?”

“…뭐가.”

“대장군과 나눈 살생부의 약조 말이에요.”

“…….”

아무것도 모르던 여포와는 다르게 장료는 이성휘가 마초에게 부여했던 조건을 알고 있었다.

살생부의 완수.

명단에 있는 자들을 모두 척살하라.

그리고 장료는 살생부에 마초의 이름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 스스로 토사구팽의 처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마초에게 안쓰러움을 느꼈다.

“대장군에게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이 부질없는 목숨 하나만 희생하면 되잖아.”

겉치레가 아니다.

진심을 담아내어 꺼낸 말이었다.

대장군이 기회를 내려주지 않았다면 분명 한수군과 관중제장 세력이 보낸 자객들에게 모두 죽었을 터.

내가 희생하면 부하들은 살 수 있다.

장녀로서 가족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던 마초였기에 결코 망설이지 않았다.

“마초 장군을 볼 때마다… 누가 떠오르네요.”

장료가 쓴웃음을 흘렸다.

고립무원의 처지에 직면했던 부하들을 위해 기꺼이 무명과 명예를 내던졌던 여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때문일까,

결코 그녀가 밉지 않았다.

장안성에서 벌어진 잔악한 학살극에 연관되어 있음에도 결코 그녀를 힐난할 수 없었다.

“새벽이라 많이 쌀쌀한데 차라도 마실까요?”

“으, 응.”

장료가 제안했다.

그에 마초는 당혹스러움을 드러내면서도 고마운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새벽과 작별하고 아침을 맞이했다.

드디어 결전이다.

마침내 결전을 치를 때가 온 것이다.

흙먼지를 나부끼면서 주변을 분주하게 정찰하는 양군의 척후들이 전운을 맹렬하게 고조시켰다.

“썩 나와라, 겁쟁이 같은 중원 놈들아!”

양쪽 어깨에 맹수의 가죽을 두른 사내가 육중한 철추(鐵椎)를 치켜들면서 나섰다.

흥국(興國)의 왕,

아귀.

저족의 우두머리였던 양천만을 추종하여 전장에 출정한 아귀는 오만불손한 위압감을 떨치면서 조조군을 위협했다.

“그하핫!”

“왕께서 네놈들을 응징하실 게다!”

어마어마한 무게를 자랑하는 철추로 수많은 무용담을 남긴 아귀는 부하들로부터 열렬한 기대를 받고 있었다.

왕께서 질 리가 없다.

나약한 중원 놈들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터.

본인의 무력을 과신한 아귀는 저족의 우두머리에게 전공을 인정받고자 심복들만을 대동한 채로 조조군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적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흐하핫! 철추로 때려죽여주지!”

저족 전사가 소리쳤다.

그에 아귀가 너털웃음을 흘리면서 철추를 들었다.

적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창을 늘어뜨린 채 단기필마로 달려오고 있었다.

밤색 머리카락을 나부끼면서 질주를 거듭하는 여걸이 보였다. 흥국의 왕은 무장이랍시고 설치는 계집을 쓰러트리고서 범할 생각에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네, 네년은…!”

육중한 철추를 거머쥐면서 적장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던 아귀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음흉한 미소를 그리던 얼굴이 아연실색하여 침음을 내뱉었다.

“마초!”

양주 제일의 맹장이 들이닥쳤다.

창을 번쩍 들었다.

뒤이어 날카로운 창격을 휘둘렀다.

당혹감을 내비치면서 철추를 치켜들었던 아귀는 공세를 취할 겨를이 없었다. 단기필마로 달려든 마초에게 곧장 목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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