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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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놈들이 금성군(金城郡)에 이르렀단 말인가.
있을 수 없다.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서량의 풍토와 지리에 까막눈인 외적들이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황량한 사막을 단번에 돌파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관중과 관서를 제패한 조조군이 서량에 이르렀다.
금성군을 수비하던 곽헌과 장석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는 장졸들을 바라보면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노, 놈들이 어떻게 사막을 건넜단 말인가…!”
실로 절망적이었다.
거센 모래바람을 돌파하여 금성군을 공격하는 기병들의 모습은 짙은 절망을 불러일으켰다.
단숨에 사막을 건넜다.
지름길을 이용한 것이 분명했다.
“으아악!”
“마초가 귀신이 되어 돌아왔다!”
전장에서 탈주하는 병사들의 날선 고함소리를 통해 한수군의 장수들은 의문을 풀게 되었다.
마초가 돌아왔다.
날카로운 기예를 뽐내면서 전장을 돌파하는 여걸은 분명 서량의 금마초였다.
기병부대를 지휘하여 금성군의 전열을 무너트린 마초는 여세를 몰아 곽헌과 장석이 있는 본영으로 말머리를 향했다.
“마초!”
갈색 머리카락을 나부끼면서 돌격해오는 마초의 모습에 곽헌이 놀라 소리쳤다.
살아있었던 말인가…!
곽헌은 온몸이 경직되고 말았다.
함양에서 죽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마초가 조조군을 이끌고 돌아온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곽헌-!! 장석-!!”
흉신악살의 형상을 한 여걸이 달려들었다.
“이 지독한 년이…! 복수를 위해 돌아왔단 말인가!”
귀신이다.
저승에서 돌아온 귀신이 틀림없다.
지독한 복수심을 발산하면서 달려드는 마초의 모습은 귀신이라 칭하기에 충분했다.
마초의 흉악한 위압감에 압도된 금성군의 장졸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무너졌다.
“마, 마초!”
날카로운 창끝이 곽헌의 목을 꿰뚫었다.
콰악-!
이윽고 곽헌의 목이 떨어졌다.
단기필마로 금성군을 돌파한 마초는 한수의 심복을 참살했다. 그럼에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어 한수군의 무관들을 베었다.
“마초, 제정신이더냐! 감히 중원의 외적들을 서량에 끌어들이다니!”
복수심에 미쳐 중원의 외적들을 서량으로 끌어들였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게 분명했다.
함께 동귀어진을 하자는 것과 다름없는 짓이었다.
“네놈들을 모두 죽여 아버지와 동생들의 복수를 이룰 수만 있다면… 무슨 응보든 받아들이겠어.”
곽헌을 죽인 마초는 뒤이어 장석까지 죽였다.
“으아악!”
“장석 장군이 죽었다!”
눈앞에서 장석이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 무관들이 비명을 내지르면서 달아났다.
금성군이 무너졌다.
결국 한수군은 뿔뿔이 와해되고 말았다.
마대와 방덕이 이끄는 병마들이 들이치면서 서량으로 향하는 관문이 함락되었다. 열사의 사막에 의지하여 외적들을 막아내겠다는 한수의 전략이 사상누각처럼 무너지게 된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아가씨!”
연보랏빛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다급한 기색을 보이면서 마초에게 다가왔다.
실로 무모했다.
혈혈단신으로 적진을 급습하다니.
비탈길을 내려오는 수레처럼 너무도 무모한 마초의 행동에 우려를 품었다. 자칫 복수심에 이성을 잃어버리진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금성군이 뚫렸다!”
“한수군의 잔당들을 모두 격멸하라!”
마초의 맹공으로 금성군이 무너지자 조조군의 후속병력이 노도처럼 몰려들었다.
2만의 병력이 가세했다.
여포와 장료가 지휘하는 군단들이었다.
위압적인 맹위를 자랑하는 조조군이 금성군을 점령하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과연 원소군을 완파한 세력답게 전투에 매우 능숙했다.
“누님, 대장군에게 승전을 보고하겠습니다.”
“어.”
마대가 무관들을 이끌고 자리를 비웠다.
단둘이 남게 되자 방덕이 마초에게 짐짓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가씨, 투항을 조건으로 대장군에게 무엇을 약속했는지… 감히 들을 수 있겠습니까?”
매우 조심스러운 물음이었다.
패자의 치욕을 당했을 터.
씻을 수 없는 수모를 겪었을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방덕은 혹시라도 아가씨께서 모멸을 느끼실까 걱정되어 마대가 떠난 뒤에 입을 연 것이다.
“별일 아니었어.”
“…….”
탐스러운 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도톰한 입술을 꾹 깨물면서 말했다.
거짓말이다.
애써 진실을 숨기려 하고 있었다.
마초와 친자매처럼 지낸 방덕이었기에 그녀가 지금 거짓말로 둘러대고 있음을 간파했다.
입술을 꾹 깨무는 것은 그녀가 거짓말을 둘러댈 때 보이는 버릇이었으니까.
“아가씨, 저한테는 부디… 속내를 숨기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옅은 울음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호소했다.
“…….”
그럼에도 마초는 입을 열지 않았다.
굳게 입술을 깨문 채,
옆으로 묵묵히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말하기 싫은 것일까.
아니면 말할 수가 없는 것일까.
친자매나 다름없는 부하의 애절한 호소에도 매정하게 침묵했다.
* * *
조조군과 내통했던 군벌들을 죽이고 세력을 흡수한 한수는 어수선해진 진중의 분위기를 가다듬기도 전에 흉흉한 비보를 듣게 되었다.
금성군이 함락되었다.
조조군이 사막을 건너 금성군을 공격한 것이다.
믿을 수 없는 비보에 눈앞이 잠깐 흐려졌다.
배신한 군벌들을 둔영으로 불러내어 숙청하는 과감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던가. 그러나 조조군은 판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광석화처럼 사막을 횡단하여 금성군을 점령해버렸다.
“마초가 놈들에게 가세했습니다!”
“뭐, 뭣…! 마맹기가 넘어갔단 말인가!”
마초.
망령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한수가 두 눈을 부릅뜨며 어깨를 바들바들 떨었다.
그 이름은 한수에게 있어 금기나 다름없었다.
서량의 금마초가 조조군에 투항하여 선봉장 노릇을 하고 있음에 비명을 토해냈다. 당장이라도 양주 제일의 맹장이 서평군까지 달려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초! 마초…!! 끝까지 나를 괴롭히는군!!”
이를 빠득 갈았다.
바위처럼 매서운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아버지와 동생들의 원수를 갚겠다며 오랫동안 굶주린 맹수처럼 포악을 휘두를 것이 분명했다.
어깨를 바들바들 떨면서 두려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어째서 살아있는 게냐…!’
함양에서 조조군의 파상공세를 막다가 장렬히 산화했던 것이 아니었는가.
그 년은 죽었어야 했다.
이름 없는 산야에 쓰러졌어야 했다.
척후들을 계속 함양까지 보냈음에도 흔적을 포착하지 못했기에 죽었다고 확신한 것이었다.
복수심에 불타는 망령을 대적하게 되었음에 한수는 깊은 시름에 잠기게 되었다.
“어르신, 마초가 놈들에게 가세했다는 것을 군벌들이 알게 된다면 군중이 크게 동요할 겁니다.”
혼란. 동요. 반목.
동맹을 맺은 연합군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독이다.
성공영이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조조군과 은밀히 내통했던 군벌들을 처형하여 어수선해진 상황에 금성군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진다면 분열은 더욱 가속화되리라.
“만약 변절을 궁리하는 놈들이 있다면 제가 처치하겠습니다.”
염행이 두 눈을 번뜩이면서 말했다.
배신자는 참살할 뿐이다.
완고한 충성을 자랑하는 과격파다운 말이었다.
무위군을 마씨 일족을 잔인하게 도륙했던 염행이었기에 가능했다. 어르신의 명이 떨어진다면 일말의 망설임 없이 배신자들에게 창을 내지를 게 틀림없었다.
“…강족과 저족에게 도움을 청해야겠군.”
참담함에 젖은 한숨을 내쉰 한수가 중얼거렸다.
강족(羌族). 저족(氐族).
그들은 서융(西戎)이라 불리는 이민족들이다.
마초의 귀순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한수는 변방의 이민족 무리들을 끌어들이려 했다.
탐욕스러운 서융의 무리들은 도움을 조건으로 무리한 조건을 붙일 게 분명했지만 지금은 한가롭게 주판을 굴릴 때가 아니었다.
* * *
이성휘는 심사숙고를 이어나간 끝에 마등군의 귀순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응당 조건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투욱-.
발치에 엎드린 채 흙바닥에 이마를 찧고 있던 마초에게 죽간을 내던졌다.
“살생부다. 명단에 있는 역적들을 모두 죽여라.”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바짝 엎드렸던 마초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네, 네…! 따르겠습니다….”
떨리는 손길로 죽간을 거머쥐었다.
온몸이 경직된 탓일까.
갓 태어난 사슴처럼 어개를 바들바들 떨었다.
포로처럼 군중에 억류된 부하들의 명운을 짊어지고 있었기에 용맹무쌍한 맹장이라도 어깨가 떨릴 수밖에 없었다.
“읏.”
살생부에 적힌 이름들을 확인하던 마초가 당혹감에 찬 반응을 보였다.
마등(馬騰).
아버지의 이름이 존재했다.
연합군을 호령했던 맹주였기에 살생부에 이름이 적힌 것은 당연했다. 마초는 형용할 수 없는 격정을 느끼면서도 애써 그것을 억눌렀다.
‘한수. 성공영. 염행….’
한수와 심복들의 이름이 있었다.
‘후선. 정은. 이감. 장횡. 성의. 마완. 양추.’
또한 관중제장의 이름들도 그 뒤에 존재했다.
항전을 택한 군벌은 물론,
심지어 조조군에 투항의사를 밝혔던 군벌들도 살생부에 이름이 있었다.
“대, 대장군….”
“살생부를 완수한다면 부하들의 안위만큼은 대장군의 명예를 걸고 보장해주겠다.”
갈색 머리카락을 흙바닥에 늘어뜨린 여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이성휘의 목소리는 차디찬 칼끝처럼 단호하기만 했다.
마초(馬超).
살생부의 명단에는 귀순을 요청해온 그녀의 이름이 존재했다.